기계신과 함께 047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신무결 헌터님, 아까 주문하신 물품들 도착했습니다!"
도 비서의 목소리였다.
'아, 왔구나.'
114억짜리 택배가 도착했다.
문을 열어보니 경호원들과 함께 서 있는 도 비서의 모습이 보였다. 택배 물품이 백억 원이 넘는 VIP룸의 물품이니만큼 헌터스 마켓에서도 실력 있는 경호원들을 여럿 보내온 듯 했다.
"다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감사 합니다."
내 인사에 모두 꾸벅 인사를 하고는 떠나갔다.
나는 안으로 돌아와 택배 물품을 뜯어보았다.
검은색 주머니와 곰인형이 보였다. 나는 곰인형을 꺼내 한쪽에 던져두고는 검은색의 아공간 주머니부터 살펴보았다.
손도 넣어보고, 이것저것 해보다가 내 바지 주머니에 아공간 주머니를 부착시킬 수 있었다.
실험해 보니 아공간은 내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는 방식으로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공간 주머니를 갈무리하고 나니 애니가 빤히 곰인형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아공간 주머니를 살피는 내내 곰인형에서 눈을 떼지 않은 듯했다.
'흐음.'
살짝 장난기가 발동했다.
"아저씨가 이번에 이사하면서 인테리어용으로 산 곰인형인데 어때, 귀엽지?"
애니가 애써 곰인형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리는 게 보였다.
"애, 애니는 곰인형 같은 건 옛날에 졸업했거든요! 애니도 전에는 인태리용 곰 있었어요!"
'인테리어'라는 단어도 몰라서 '인태리'라고 말하면서 허세를 부린다.
'귀엽네, 큭큭.'
"누가 뭐래냐? 나는 그냥 귀엽냐고 물은 건데."
내가 키득거리며 곰인형을 내밀었다.
"한 번 만져볼래?"
애니가 곰인형을 만지고 싶은 마음과 7살 어린아이의 자존심사이에서 갈등하는 게 보였다.
나는 애니가 결정하기 쉽도록 애니의 품에 곰인형을 푹 안겼다.
애니가 곰인형을 안아 들었다.
"와, 부드럽다……."
애니의 눈가가 황홀해지는 것이 보였다.
애니는 곰인형을 품에 꼬옥 안고 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나는 애니의 눈빛에서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과 열망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모습이 어린 시절의 나와 겹쳐 보였다.
'나도 저렇게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 했는데.'
요 십수 년간 고아원에 배분되는 복지 예산과 후원이 다소 늘었다지만 식비와 의복비, 그리고 생활비 등에 쓰이고 나면 예산은 항상 쪼들리게 마련이었다.
특히 내가 있던 고아원은 재정적으로도 가난한 편이어서 장난감 같은 것은 구경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학교의 다른 친구들이 새로운 장난감을 샀다고 자랑하는 것을 들을 때면 부러워하고는 했다.
그때의 내 눈빛이 아마 지금 애니의 저 눈빛과 똑같았으리라.
나는 적어도 이 아이가 곰인형과 놀아본 적이 없다는 것은 눈치챌 수 있었다. 곰인형을 어렸을 때 졸업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할머니와 단 둘이서 가난하게 살아오며 너무나 일찍 어른의 역할을 강요받은 아이가 과연 할머니에게 곰인형을 사달라는 소리를 한 번이라도 했을까 싶다.
"애니야."
"네, 아저씨."
다소 풀죽은 애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음이 약해진 덕분인지 발음도 '아저씨'였다.
"그 인형 너 가져."
"네……?"
애니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게 보였다.
"그 곰인형 너 가지라고. 아저씨가 주는 선물이야."
"제가…… 정말 제가 가져도 돼요……?"
애니가 이제까지 보여왔던 당찬 모습과는 달리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왔다.
그렇게 이 곰인형이 갖고 싶었나 보다.
"그래, 이 곰인형 이름은 티버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아껴줘야 한다?"
애니가 멍하니 곰인형을 내려다보더니 곰인형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숨이 막히도록 곰인형을 꼬옥 안았다.
나는 애가 숨이 막히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가만히 다가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곰인형을 안고 있는 애니의 어깨가 작게 들썩이는 것이 보였다. 끄윽끄윽하며 울음을 참는 소리도 들려왔다.
"애니야, 아저씨 화장실 갔다올 테니까 티버하고 인사 나누고 있어."
나는 모르는 척, 아이가 새로운 친구와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마렵지도 않은 소변을 보러 화장실로 향했다.
* * *
"실패했다고?"
나른함에 몸을 맡기고 있던 한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의 품에는 예쁘장하게 생긴 묘령의 여자가 안겨 있었다. 방금 전 끌려왔을 때까지만 해도 반항기로 똘똘 뭉쳐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려던 여자였다.
남자가 여자를 거칠게 밀쳐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남자에게 밀쳐진 여자가 마치 먹이를 잃은 어린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며 남자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근처에 있던 직사각형의 수조(水槽)로 다가갔다.
수조 안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회백색 연질의 물체가 액체에 잠겨 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뇌(腦)였다.
살아 있는, 인간의 뇌.
남자가 무표정하게 손을 수조 안으로 집어넣어 뇌에 손바닥을 대었다. 수조 옆에 붙어 있던 여러 개의 화면 중에 한 그래프가 거칠게 요동쳤다. 뇌의 고통을 나타내는 그래프였다.
"자아, 착하지. 말 잘 들어라."
남자가 천천히 뇌를 쓰다듬다가 손바닥을 대었다. 그와 동시에 이번에는 다른 그래프에 표시된 수치가 올라갔다. 뇌의 마력량을 나타내는 그래프였다.
잠시 그렇게 뇌에 손을 댄 채로 눈을 감고 있던 남자가 다시 눈을 떴다.
"안개 녀석, 정말 죽었잖아? 멍청한 놈."
남자가 짜증이 난다는 듯 손을 움직였다.
뇌에 연결된 그래프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뇌가 만약 비명을 지를 수 있었다면 이 공간은 찢어지는 듯 한 비명 소리로 가득 찼을 것이다.
한동안 뇌에 대고 화풀이를 해대던 남자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하아, 야, 뭐 해? 다시 안 와?"
남자가 아까 내팽개쳤던 여자에게 명령했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뭐야?"
남자가 엎드려 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갈비뼈 어림을 붙잡고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남자가 밀칠때 그만 갈비뼈가 부러진 것이다.
"하아, 이젠 별게 다 짜증나게 하네."
남자가 손바닥으로 마력을 토해내자 여자는 꿈틀거리다가 이내 축 늘어져 버렸다. 죽어버린 것이다.
"암괴, 이거 치우고 다른 애 들여 보내."
"예, 알겠습니다."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여자의 시체가 스르르 땅속으로 가라앉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른 여성이 스르륵 솟아올랐다.
방금 죽은 여자와 차이점이 있다면 처음 태도가 그다지 반항적이지 않다는 점이었으며, 공통점이 있다면 20살 안팎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손이 뒤로 묶인 채 두려움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남자가 의자에 앉은 채로 손을까 딱여 여자를 가까이 오게 했다. 두려움에 질려 있는 여자는 그가 시키는 대로 가까이 다가왔다.
"너도 참 이쁘구나?"
남자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여자의 손을 잡아 품으로 이끌었다.
"옳지, 착하다."
그가 여자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천천히 그녀의 목을 타고 가슴 부위로 다가갔다. 그리고 슬며시 그 사이의 벌어진 틈으로 들어가…… 돌연 그녀의 멱살을 콱 움켜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코앞으로 그녀의 얼굴을 끌고 와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다.
"너, 기회를 봐서 날 죽일 생각이구나?"
여자가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여자의 머릿속을 속속들이 읽고 있는 남자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 거짓말이었다.
"하하하하! 그래그래, 여자는 반항 하는 맛이 있어야 재밌지! 재밌어, 재밌어."
남자가 양손으로 여자의 머리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검지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검지가 조금씩 여자의 머릿속으로 사라졌다.
여자의 눈이 넘어가며 흰자위가 보였다.
"자아, 너도 날 미친 듯이 원하게 될 거다."
그가 낄낄거리며 그녀의 머리에서 다시 손가락을 떼었다.
놀랍게도 머리는 손가락이 들어가기 전과 똑같이 상처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여자의 눈동자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잠시 고개를 갸웃한 여자가 남자를 바라보았다. 단지 바라만 보고 있었을 뿐인데, 여자의 뺨이 발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여자는 이상하게 상기된 표정으로, 그리고 무언가를 갈구하는 애타는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옷깃의 단추를 풀었다.
남자는 다시 나른하게 누웠다.
"흐음, 꼬마 이름이 아마…… 송애니였나? 애니야, 이 친구들이 새 친구가 안 들어왔다고 아쉬워하잖니?"
그가 아쉬운 눈빛으로 주변을 돌아 보았다.
"그렇지, 친구들?"
그의 주위로는, 네 개의 수조가 사방을 점하고 있었다.
각 수조에는 각종 기계장치에 연결 되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인간의 뇌가 하나씩 담겨 있었다.
"애니야, 너도 곧 친구로…… 만들어줄게."
그는 밀려오는 쾌락에 몸을 맡기며 눈을 감았다.
* * * 애니는 당분간 내가 데리고 있기로 했다.
애니는 애초에 나에게 의지할 생각으로 찾아왔고, 나 또한 오라클 능력자인 애니를 적들의 손에 들어가게 방관할 수 없었다.
처음 며칠간은 애니의 곁을 지키며 애니를 납치하려는 시도가 있는지 지켜봤다. 그리고 그동안 내 자신의 역량 발전에만 신경 쓰느라 미뤄왔던 일들을 해나갔다.
일단 나는 가장 먼저 전생에서의 내가 아는 빌런 리스트를 추려서 능력과 빌런 별로 특성과 위험도를 분석해 두었다.
이제 바야흐로 직접 빌런들과 부딪 칠 때가 되었기 때문에 머릿속에 만든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하는 김에 내가 아는 유명한 각성자들의 리스트를 작성해서 나름대로 아이템처럼 등급을 매겨보았다.
매번 미뤄만 뒀는데 한번 시작하니 정리할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에 몰두했다.
은하그룹에서는 나의 휴식을 반기며 이때다 싶어 아이템 연구 협력을 부탁했고, 나는 애니를 데리고 다니며 연구에 협조했다.
애니는 그동안내 옆에서 곰인형 티버와 소꿉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른인 척해도 아직 어린애는 어린애인지라 티버와 함께 노는 모습에서는 7살 특유의 천진함이 엿보였다.
티버는 의사가 됐다가 환자가 됐다가, 슈퍼마켓 주인이 되었다가 아기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딱히 애니를 노리고 접근하는 자는 없었다.
나는 내가 없는 동안에는 애니의 신변 보호를 은하그룹에 맡기고 다시 바깥 활동을 준비했다. 기다리던 '그 사건'이 일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은하그룹에서는 이미 사전에 내가 없는 동안에 애니를 지켜줄 것을 약속했다.
'애니를 노리는 놈들이 있다고 했으니 은하그룹 차원에서 잘 막아주겠지.'
아마 웬만한 빌런들은 은하그룹 차원에서도 간단하게 막아낼 것이다. 내 지원과 조언으로 은하그룹은 이미 막강한 기계화방어시스템을 구축한 상태였으니까.
은하그룹은 이미 예전부터 나를 오라클 능력자로 생각하고 많은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주요 던전들의 발생과 세계의 흐름에 관해 많은 것을 예측했고, 그 예측의 대다수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몬스터들과 각성 범죄자들로부터의 보안 체계를 구축하라는 내 말에 은하그룹이 따른 것도 그런 이유였다. 애니 또한 유용한 오라클 능력자임이 밝혀졌으니 은하그룹에서 애니를 소홀히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다리던 날이 찾아왔다.
대한민국에도 결국 초대형 몬스터가 출현했다.
대마수 베히모스.
나는 뉴스로 거대한 매머드를 연상 시키는 베히모스의 모습을 보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