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046 내 앞에서 한 꼬마가 앉아 맛있게 불고기버거를 먹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송애니'라 밝힌 이 아이는 배가 많이 고팠는지 순식간에 햄버거 하나를 뚝딱 해치웠… (46/215)

  기계신과 함께 046 내 앞에서 한 꼬마가 앉아 맛있게 불고기버거를 먹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송애니'라 밝힌 이 아이는 배가 많이 고팠는지 순식간에 햄버거 하나를 뚝딱 해치웠다.

  "하나 더 사 줘?"

  햄버거를 어찌나 복스럽게 먹던지 나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그러나 꼬마아이, 애니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이스크림 사 주세요!"

  참으로 당당한 아이였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애니에게 내밀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해 줄래? 왜 살려달라고 한 거야? 설마 배고파서 살려달라고 한 건 아니지?"

  물론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평범한 아이가 아니란 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 : 송애니 -상태 : 각성자, 새침데기 -고유 스킬 : [위험을 보는 자], [암운 속의 빛]

  이 아이를 '들여다본' 결과였다.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자인가?'

  아무래도 뉘앙스로 봤을 때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배는 고팠지만 당연히 그것 때문이 아니에요! 아저찌는 절 어린애로 아시는 거예요?"

  애니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나를 흘겨봤다.

  "아저씨를 아저찌라고 부르는 사람은 어린애 맞는데?"

  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꼬마를 놀려 대었다.

  "으윽, 아저찌! 아니, 아저찌, 씨, 씨, 아저씨, 아저찌! 이익!!"

  몇 번 '아저씨'를 시도해 보더니 꼬마아이가 성질을 내며 다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무튼 아저찌!"

  "왜?"

  "아저찌 쎄요?"

  "그럼, 되게 세지."

  "흐음~"

  애니가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올려 다봤다.

  "왜, 안 세 보여?"

  "네, 안 세 보이는데 셀 거라 생각 해요!"

  "그래, 왜?"

  나는 자못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이가 하는 행동이 꽤 귀여웠기 때문이다.

  "제가 사실 이래 봬도 각성자거든요!"

  애니가 '에햄'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저는 알아요! 지금 벌어 질 일도 아저찌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거예요!"

  "응?"

  창- 애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리가 있던 가게의 유리창들이 갑자기 와장창 깨지며 불이 나가 버렸다.

  "꺄아아악!!"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질러 대었다.

  나는 이상을 감지하자마자 팔찌를 꺼내어 하나는 내 앞에, 하나는 애니의 앞에 배치시켰다.

  어스름한 저녁이었기 때문에 불이 꺼진 실내는 깜깜해졌다. 사람들이 다급히 건물 밖으로 도망가는 가운데 연기 같은 것이 창문을 통해 새어 들어왔다.

  "꼬맹이가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구나?"

  그때 유령같이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 이놈이 무슨 말을 하나 궁금했던 것이다.

  "자, 술래잡기는 끝났다. 빨리 가자~"

  안개 속에서 놈의 팔이 튀어나와 애니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스윽- 내 팔찌가 놈의 손목을 그대로 '지나갔다.'

  "크아아아악!"

  놈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한쪽 손목이 사라지고 없었다. 단면은 뜨겁게 지져져서 피가 흐르지는 않았다.

  "웨, 웬 놈이냐!!"

  "내가 물을 말이다. 뭐 하는 놈이냐?"

  내가 마력을 드러내며 물었다.

  놈은 내 기세를 읽고 즉각 안 되겠다 싶었는지 다시 몸을 안개 속으로 숨겼다. 그리고 도망가려 했다.

  나는 즉각 팔찌 두 개를 모두 날려 보내 놈의 주변을 플라스마 막으로 둘러쌌다.

  치치이- 플라스마 막을 빠져나가려던 놈의 안개와 플라스마 막이 닿으며 수증기가 발생했다.

  "으아아악!"

  안개가 흐려지며 놈이 결국 본체를 드러내고 말았다.

  빼빼 마르고 창백한 얼굴의 대머리 사내였다. 그는 내 플라스마 막 속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새장 속의 새가 된 상태였다.

  나는 성큼성큼 다가가 플라스마의 새장 속으로 들어갔다. 새장에 갇힌 새를 데려다가 몇 가지 정보를 캐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크윽!"

  놈의 입에서 갑자기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놈은 자진한 것이다.

  나는 재빨리 놈의 몸에 손을 대었다. [유가선공]으로 치유를 시도해 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러나 이미 늦어 있었다. 놈은 저승의 경계를 넘어간 상태였다. 게다가 놈의 몸은 급속도로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려 본모습조차 제대로 알아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안개화 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단지 잡힐 위기에 처했단 이유로 자결 하고 말았다.

  안개화는 잠입이나 탈출 시 유용한 능력이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잡힌 상태로 기회를 엿볼 생각을 했을 텐데 이렇게 쉽게 자결하다니.

  그만큼 놈이 자신의 뒤에도사리고 있는 세력을 두려워했다는 반증이었다. 잠시라도 잡히느니 차라리 자결 하는 것을 택할 정도로.

  '슈리, 놈의 얼굴은?'

  [캡처해 놨습니다.]

  주위는 난장판이 된 상태였고, 밖에서는 경찰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자세한 건 이따가 물어볼게. 일단 따라와 줄래?"

  "네!"

  애니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아이스 크림의 마지막 한 스푼을 입에 털어 넣었다.

  * * * 나는 경찰의 취조에 간단하게 응해 준 다음 바로 애니와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헌터라는 신분에 더해 은하그룹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기 때문에 금방 경찰서에서 풀려날 수가 있었다.

  "윽! 지저분하게 이게 뭐예요! 역시 남자 혼자 사는 집은 어쩔 수 없다니까."

  애니가 우리 집에 들어오자마자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식탁에 미처 치우지 않은 휴지조각이나 하지 않은 설거지들이 애니의 손에 의해 싹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남자치곤 깨끗한 건데.'

  나는 뻘품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괜히 거실을 청소기로 한번 밀고 걸레로 닦아냈다.

  내 집은 온전히 내 영역이라는 생각에 청소부는 물론 도 비서도 들이지 않은 것이 실책이었단 말인가?

  "아이 참, 분리수거도 제대로 안돼 있네.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끼리 제대로 버려야 한다구요! 아저찌는 지구 환경도 제대로 생각 안 해요?"

  애니는 그렇게 잔소리까지 해대며 쓰레기봉투 속의 쓰레기들을 종류별로 분리해 모아놨다.

  "휴! 다 했다!"

  애니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18평의 작은 집은 아까 들어왔을 때와는 달리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이 작은 꼬마숙녀의 야무진 손길에 감탄하고 말았다.

  애가 어떻게 자랐길래 이렇게 똑 부러지게 처신한단 말인가!

  이제 고작해야 7, 8세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건만!

  나는 아이가 기특해서 찬장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내밀었다.

  "사탕 먹을래?"

  "아저찌, 어린애 취급하지 말아주실래요?"

  애니가 새침한 표정으로 토라졌다.

  "어린애 취급이 아니라, 내가 좋아 하는 걸 주는 거야. 혹시 사탕 싫어 하니?"

  내가 사탕을 도로 가져가려 하자 애니가 턱 내 손목을 잡았다.

  "아니여! 그럼 성의를 봐서 먹을게요!"

  그러고 사탕을 가져가 입에 쏘옥 넣고 오물오물 굴리기 시작했다.

  "자아, 그럼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줄래?"

  애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니는 기억이 있을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이미 애니가 걸을 수 있을 때부터 몸이 쇠약해져 있어서 애니는 걸을 수 있을 때부터 할머니를 도와 집안 살림을 해나갔다.

  방금 보여준 살림 실력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안쓰럽다 할 수 있었지만, 애니 말로는 그때가 자기의 짧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 했던 때라고 한다.

  그리고 던전시대가 열리고 얼마 후, 할머니는 그만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들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애니는 그 과정에서 특별한 능력을 얻어 각성하게 되었다.

  할머니를 잃고 엉엉 울고 난 애니는 눈물을 닦고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을 직시했다. 할머니 다음은, 자신의 차례였다. 그것도 몬스터보다 위험하고 무서운 '인간'들에 의해서 자신은 죽을 터였다.

  애니는 그들이 나타날 거라 예지된 곳을 항상 간발의 차이로 피해서 도망 다녔다.

  그들을 피해도망 다니기를 몇 주.

  애니는 힘이 들었다. 여자애 홀로 도망 다니기에는 결코 녹록지 않은 세상이었으니까.

  그리고 어느 날, 적들로부터 도망 가는 것 말고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늘 제 앞에 보이는 선택지는 도망 뿐이었는데, 어느 날 아저찌의 모습이 나타났어요."

  내 이름과 언제 어디로 가면 날 만날 수 있는지. 그렇게 떠오른 정보대로 따라온 결과, 애니는 결국 아까 나를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아저찌를 만나자마자 위험이 올 거라는 건 저도 그때 알았어요!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 더라니! 민폐 끼친 점은 정말 죄송 합니다!"

  애니가 탁자에서 내려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어린 말투와는 달리 여러모로 조숙하고 똑똑한 아이였다.

  "고생이 많았구나."

  나는 애니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애니는 내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나는 애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미래가 바뀌었다. 사실 내가 전생 과는 달리 바로 헌터 일을 시작한 시점에서 미래는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클리어되지 않아야 할 던전들이 클리어되었고, 그로 인해 죽어야 할 사람들이 죽지 않게 되었다. 거기에 이제 '오라클'들의 눈이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오라클.

  정보계 능력자들 중 시공간 너머의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극소수의 각성자.

  눈앞에 있는 이 송애니란 꼬마 또한 오라클 능력자였다.

  애니는 위험을 예지하고 그것을 회피하려는 과정에서 나를 찾아낸 것이겠지만, 다른 과정으로 나를 주시하게 되는 오라클들 또한 생길 터였다.

  날카로운 송곳이 주머니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내 능력이 뛰어날수록 오라클들이 나를 주시할 확률은 높아질 테니까.

  아마 애니를 찾아낸 놈들도 오라클 능력자의 조력이 있지 않았을까?

  '확실한 건 아니지만 이미 오라클의 눈이 나를 향했다고 보고 움직여야 돼.'

  상황은 언제나 최악을 가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

  내가 애니의 옆에 있는 순간부터 놈들에게 존재를 들켰다고 봐야 한다.

  물론 아직까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는 잘 모를 것이다. 아직은 여유가 있는 지금부터 미리 대비해야 했다. 놈들의 존재를.

  [마스터, 전에 마스터가 말씀하신 '그놈들'일까요?]

  '모르겠어. 하지만 그럴 확률이 높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을 손에 넣고, 그것을 악용하는 각성자들, 빌런.

  그중에서도 사상 최강, 최악의 빌런들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슈리의 던전 데이터베이스에는 빌런에 대한 내용은 기록 되어 있지 않았다. 던전 데이터베이스에는 말 그대로 '던전'에 대한 내용만 있었기 때문에. 게다가 나 또한 이들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했다.

  전생의 나는 프리랜서로 여기저기 용병처럼 다니며 일했기 때문에 빌런들과의 전쟁에 있어서도 고급 정보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일반인들 보다는 잘 알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 우연히 그 빌런들 중 하나랑 엮이게된 것 같으니 이참에 빌런 한 녀석을 지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놈들은 놔두면 놔둘수록 주변의 멀쩡한 살을 먹고 자라나는 암세포 같은 녀석들이라 한 놈이라도 빨리 쳐낼수록 인류에게는 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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