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045 띵동- VIP룸 앞에는 헌터관과는 달리 안내인이 없었다. VIP룸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직접 VIP룸 앞에 상주하며 헌터증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45/215)

  기계신과 함께 045 띵동- VIP룸 앞에는 헌터관과는 달리 안내인이 없었다. VIP룸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직접 VIP룸 앞에 상주하며 헌터증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VIP룸의 문을 향해 걸어갔다.

  이미 문 앞에는 아까 봤던 얼치기 헌터들이 도착해 있는 것이 보였다. VIP룸으로 가는 통로에는 품격이 느껴지는 명화들이 걸려 있었으나, 이미 여러 번 봐서 별 감흥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얼치기들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호오? 아까 그 곰돌이 헌터 아니야?"

  그놈들 중 한 명이 나를 발견하고 친구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쳤다.

  "그러게? 딴에는 저도 VIP룸 구경 하고 싶어서 올라왔나 보다. 그치?"

  "자기분수에는 구경할 수조차 없는 곳인 줄도 모르고. 쯧쯧."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왜 곰돌이 인형을 샀다는 게 그 사람의 실력에 대한 판단 근거가 되는 거지? 그리고 실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저렇게 마구 무시해도 되는 건가?

  "이봐요들, 대체 내가 댁들에게 어떻게 보이길래 이렇게 무시하는 겁니까?"

  궁금한 마음에 결국 입을 열었다.

  "음?"

  셋이 내 질문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다시 내게 고개를 돌렸다.

  "촌뜨기 헌터로 보인다, 왜?"

  "별로 쓸만해 보이는 장비도 없고, 너 초짜 맞잖아?"

  "좋은 말 할 때 돌아가라. 여긴 뉴비가 오는 곳이 아니에요."

  그들은 그렇게 말하며 서로 또 다시 낄낄거렸다. 그런 면에서는 죽이 잘 맞는 친구들이라 할 수 있었다.

  "허, 참."

  나는 기가 막혀서 머리를 긁적였다.

  [마스터 딱밤 한 대 맞으면 저승길 갈 사람들이……. 이런 걸 두고 하릇강아지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는 거군요.]

  슈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게 느껴졌다.

  원인은 내가 걸치고 있는 아이템들이 별로 좋아 보이는 게 없어서인 듯했다.

  그러나 그건 그야말로 저놈들이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진짜 좋은 아이템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 이제 들어와도…… 헛!! 오셨습니까?"

  그때 VIP룸의 매니저가 문을 열고 나오며 아들 일행을 VIP룸으로 들이려다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문자 보고 왔습니다."

  "방금 보냈는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마침 이 아래 있었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안으로 ……."

  "잠깐만요."

  나와 매니저의 대화를 들으며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굳어 있는 세 명을 나는 슬쩍 바라보았다.

  '이거, 잘하면……?'

  나는 매니저에게 고개를 돌렸다.

  "매니저님."

  "예, 신무결 헌터님."

  "매니저님 아드님이 저 보고 개나 소나 하는 촌뜨기 헌터 주제에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오느냐고, 사람들 앞에서 공개 망신을 주더군요."

  "예, 예……?"

  매니저는 혼이 나간 얼굴로 나와 자신의 아들을 번갈아 보았다.

  "아래층에서 들은 사람 많으니 물어보면 아실 겁니다. 지금 여기서도 면전에서 면박을 주었고요. 매니저 님의 잘못이 아닌 건 알지만, 감정이 상해서 더 이상 이곳에는 오기 싫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뭐, 뭐라고요……?"

  매니저가 청천벽력 같은 내 통고에 새하얗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었다.

  이제까지 내가 이곳에 공급했던 물건들이야말로 이곳이 거대 클랜들도 주시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VIP룸으로 발돋움하게 해주었던 명품들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그 가치가 뛰어난 물품들은 뛰어난 헌터들이 얻게 마련이었고, 뛰어난 헌터들은 거대 클랜이나 그룹에 소속되어 있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발굴한 스킬북과 아이템은 웬만해서는 그들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자기들의 가치를 올려줄 아이템들을 왜 그룹 외부로 유출한단 말인가?

  그런 면에서 헌터스 마켓 서울 지부의 VIP룸은 최상의 가치를 지닌 스킬북들을 돈을 주고라도 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가 되었다. 바로 내 덕분에.

  물론 나야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스킬들이 등장하고, 지금 등장한 스킬들의 가치가 낮아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스킬북을 매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래 가치의 흐름을 알고 있다는 건 이런 면에서는 참 크나큰 메리트였던 것이다.

  아무튼 매니저의 입장에서 내가 이 곳을 떠나 다른 곳에 물건을 넘긴다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로 들렸으리라. 더군다나 자신의 아들로 인해 그런 불상사가 생겼다는 걸 알면…….

  매니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그가 옆의 아들을 돌아보았다.

  "관영아."

  "예, 예, 아버지."

  "당장 무릎 꿇고 사죄드리거라."

  "아, 아버지!"

  관영이라 불린 헌터가 강력하게 반발했다.

  "내 그렇게 사람 함부로 무시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비 말을 개똥처럼 알아듣더니 결국 이런 사달을 만드느냐!!"

  평소의 정중하고 깍듯하던 매니저 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우리 관영 씨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곧 죽어도 자존심이 있기 때문인지 무릎을 꿇기는 망설여지는 모양이다.

  "됐습니다."

  "헌터님!"

  "저 사람이 무릎을 꿇는다고 해도 별로 진심이 담길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군요."

  "그럼…… 제가 아비 된 사람으로서 대신 무릎 꿇고 사죄드리겠습니다."

  그가 정말 무릎을 꿇으려는 것처럼 움직였다.

  나는 무릎을 꿇으려는 매니저를 재빨리 말리며 일으켜 세웠다.

  "아니요, 사과는 본인이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법입니다. 음, 그것 보다 얼른 물건을 보고 싶군요."

  "예…… 알겠습니다."

  매니저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VIP룸의 문을 열었다. 아들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이 단단히 화가 난 듯 보였다.

  문이 닫히며 세 얼간이의 멍한 얼굴이 사라졌다.

  나는 이내 그들에게서 신경을 끄고 VIP룸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언제 봐도 화려하군.'

  백화점 명품관처럼 깔끔하고 세련 되게 인테리어된 VIP룸 곳곳에는 귀한 아이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전시된 각 아이템의 주위로 아이템의 테마와 맞는 인테리어가 독립적으로 꾸려져 있었다.

  예를 들어 착용 시 온몸을 물로 둘러 수중에서도 지상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갑옷인 저 [아쿠아 브레스트 아머]의 경우, 물속을 연 상시키는 아름다운 배경을 아이템 주변에 디자인해 놓았다. 그것도 무려 사파이어와 금까지 쓴 화려하고 값비싼 치장.

  그야말로 사치의 정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이곳에 있는 아이템들은 하나같이 수십억을 호가했고, 개중에는 100억이 넘어가는 초고가의 아이템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못 보던 테마관이 하나 더 생긴 것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까 문자로만 보았던 검은색의 주머니를 발견 할 수 있었다. 마치 검은색 복주머니처럼 위쪽이 끈으로 묶인 모양이었는데, 주머니와 끈을 제외하면 아무런 무늬도 없었다.

  주머니가 보관된 부스는 마지 우주를 연상시키는 컨셉으로 꾸며져 있었다.

  [아공간 주머니]

  -주머니에 2*2*2㎥ 크기의 아공간과 1/100의 무게 감소 효과가 깃든 주머니입니다.

  가격 112억 원.

  나는 입맛을 다셨다.

  이 설명만 봐도 꼭 사야 할 아이템이었다.

  이번에는 [하늘의 눈]으로 아이템들 들여다봤다.

  -이름 : 아르카시아의 공간주머니 -희귀도 : 유니크 -상태 : 뛰어난 공간마법사 아르카시아가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 만들어낸 주머니 -설명 : 아공간과 무게 분산·감소 효과가 붙어 있는 주머니. 다른 주머니에 설치할 수 있으며 카르마 포인트를 투자할수록 아공간과 무게 감소 효과가 성장한다. [1/100]

  '미친.'

  대박이었다.

  설명으로는 못 보던 무게 분산 효과와 주머니 설치기능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한계 성장치가 얼마인지 몰라도 일단 여기서 아공간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내 주 무기는 미래과학 무기.

  나중으로 갈수록 기술이 집약되며 무기의 부피가 줄어들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검 같은 냉병기에 비해 무겁고 휴대가 불편한 게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미래과학무기들이 대체로 제3의 에너지원을 필요로 하는 만큼, 탄환과 에너지팩 등의 소모품들이 필요하다는 리스크도 존재했다.

  이 주머니는 그 리스크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아이템이었다.

  '어떻게 유니크 템이 여기로 굴러 들어온 거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회귀한 후 처음 보는 유니크 아이템을 여기서 건질 줄이야!!

  나만큼 뛰어난 감정 스킬을 가진 사람이 여기에 없다는 것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만약 헌터스 마켓에서 그만한 감정사를 영입할 수 있었다면, 이 주머니가 이 가격으로 내 눈앞에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감정 관련 스킬을 갖고 있는 자들은 나 이외에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템 정보를, 더군다나 유니크 아이템 정보를 이만큼 자세히 확인할 수 있는 자는 이 시점에서는 정말로 희소한 인적 자원인 것이다.

  나는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매니저에게 구매 의사를 밝혔다.

  "바로 구매하시겠습니까?"

  "예."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까는 매니저 아들의 실수를 빌미 삼아 20% 정도의 디스카운트를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매니저로서의 그의 권한과 그가 가진 지불 능력을 고려했을 때-그것을 알아낼 때 슈리의 도움을 조금 받았다 -20% 넘게 디스카운트를 요구한다면 내 요구를 거절하는 쪽이 그에게는 실리면에서 나았다.

  아무튼 그럴 생각이었는데…… 이 아이템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안 그래도 헐값이나 다름없는 가격을 더 후려친다는 것은 이 아이템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다.

  대신 나는 매니저에게 다른 것을 요구했다.

  "매니저님."

  "네, 네."

  내가 뭔가를 부탁하리라는 것을 직 감한 매니저가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앞으로도 제 아이템들을 이곳에서 보실수 있게 될 겁니다."

  "부탁이 무엇입니까?"

  매니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앞으로 VIP룸에 또 아이템이 입고된다면, 다른 각성자들보다 1시간 정도 빨리 알려주실수 있겠습니까?"

  [아르카시아의 공간주머니]처럼 평가절하된 아이템이 또 나온다면, 그것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매니저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1시간 정도라면 가능합니다. VIP 룸을 꾸밀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보통 이처럼 테마를 꾸미고 VIP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지만, 내게는 그 전에 메시지를 보내주겠다는 소리였다.

  나는 바로 매니저가 제시한 계좌로 112억 원을 입금시켰다. 그리고 구매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은하그룹에서 제공한 우리 집으로 배송해 달라고 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매니저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VIP룸을 나섰다.

  여전히 문 앞에는 세 얼간이가 안 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서 있었다. 나는 그들을 흘끗 쳐다보고는 지나쳤다. 그런 내 뒤로 매니저가 문 앞 까지 따라 나와 90도로 인사했다.

  "구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나는 돌아서서 그에게 다시 한번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런 내 뒤로 세 얼간이 중 매니저 아드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저, 저 사람 여기서 뭐 샀어요?"

  "쯧쯧, 한심한 놈. 자세한 건 고객 정보 보호 때문에 말 못하지만, 네 놈이 함부로 무시한 저분이 백억이 넘는 아이템을 사셨다는 것만 알아 둬라."

  "배…….백억?"

  세 얼간의 턱이 빠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그래, 백억!! 그리고 저분은!!! 에잇!! 자칫 네놈 때문에 내가 큰 고객을 잃고 실직할 뻔한 건 아느냐!! 그리고 말이다!"

  한껏 화를 내던 매니저가 한숨을 쉬었다.

  "네놈들, 오늘 저승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것에 감사해라."

  '다음에 오면 내 정보 보호에 좀더 주의해 달라고 해야겠군.'

  아무리 아들이라 해도 은근슬쩍 나에 대해 얘기하는 매니저의 모습이 별로 탐탁지 않았다.

  안 그래도 거대 클랜과 그룹들에서 요즘 뭔가 눈치채고 자꾸 나한테 접촉하려 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내 정보가 여기저기 퍼지는 건 사양이었다.

  그 생각을 끝으로,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 * * 1층의 일반관 문이 열렸다.

  "아저찌가 신무결이에요?"

  그때 웬 쪼끄만 여자아이 하나가 허리에 양손을 얹으며 내 앞을 척 막아섰다.

  삐삐머리처럼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7살가량 되어 보이는 귀여운 아이였다.

  "어, 그렇다만."

  나는 당황과 황당이 뒤섞인 얼굴로 눈앞의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아저찌!"

  "뭐? 왜?"

  아저찌? 혀 짧은 발음이 좀 귀여웠다.

  "저 좀 살려주세요!"

  "……?"

  이것이 예지능력자인 송애니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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