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44 헌터증을 발급받는 것, 즉 헌터가 되는 것만으로도 세금이 감면되며 각종 편의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이 부여된다.
각성자들 중 몬스터를 대적할 수 있는 헌터란 이제는 국가 안전에 있어서 절대적인 자원이었으니 그 정도 지원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런 지원뿐만이 아니었다.
정부는 헌터들에게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국내에 능력 있는 헌터들을 유치하고자 '헌터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곳 또한 그 '헌터 특별법'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헌터스 마켓.
전국에 던전과 몬스터들이 넘쳐나기 시작한 만큼, 아이템과 스킬들 또한 수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던전에서 나오는 스킬과 아이템들은 일반인들 또한 익히고 쓸 수 있는 것들.
자연히 돈 많은 일반인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혹은 호기심을 위해 아이템과 스킬들에 눈독을 들였다.
그 때문에 정부는 최전선에서 뛰는 헌터들에게 아이템과 스킬 자원이 집중될 수 있도록 '헌터스 마켓'이라는 곳을 만들어냈다.
이곳에서는 헌터들이 가져온 아이템에 대한 감정가를 제시해 주고, 그것을 구매하고자 하는 고객과 연결해 준다. 그것도 거의 무료에 가까운 수수료로.
다만 이곳을 이용하는데는 간단한 조건이 붙는다.
처음 하루 동안은 '헌터'에게만 물건을 파는데에 동의할 것. 하루라는 시간 동안 헌터들에게 물건이 안 팔리면 일반인들에게도 같은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기회가 제공된다.
전국의 주요 지역에는 이처럼 '헌터스 마켓'이라는 곳이 만들어졌다. 간편하게 가진 아이템을 팔 수 있는데다 판매 수수료도 매우 저렴한 이 곳을, 이미 수많은 헌터가 애용하고 있었다.
이곳은 서울과 경기도 지역의 아이템들이 모여 판매되는 '헌터스 마켓' 여의도 지부였다.
나는 방금 입구에 있는 '일반관'을 지나 신분증을 제시하고 더욱 위층에 있는 '헌터관'으로 들어온 것이다. 일반관보다 훨씬 사람이 한산한 헌터관에서는 갓 올라온 따끈따끈한 아이템과 스킬북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어디 보자.'
나는 오늘도 아이쇼핑을 시작했다.
'일단 스킬북 코너부터.'
진열된 스킬들을 [하늘의 눈]을 쭈욱 훑었다.
대부분이 '커먼', 그리고 간혹가다 '언커먼' 등급의 스킬북이 보였다.
'레어'는 딱 한 개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다지 쓸모없는 스킬이었다.
'역시 쓸만한 건 없군.'
효용 가치가 높은 고가의 스킬북들은 전부 헌터스 마켓의 VIP룸에 진열되어 있을 터였다.
VIP룸은 헌터들 중에서도 능력과 구매력이 인정된 자들, 혹은 거대 클랜과 길드, 회사의 관계자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물건을 VIP룸을 구분하지 않고 헌터관에 뒀더니, 물건을 강탈하고자 하는 범죄자들이 많아져서 결국 VIP룸을 만들고 만 것이다.
VIP룸은 상주하는 각성자들이 24 시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나 또한 VIP 멤버였는데, VIP의 멤버들에게는 VIP룸에 물품이 들어 오면 자동으로 어떤 물품이 입고되었는지 문자 등으로 알려온다.
오늘은 입고 알림이 오지 않았으므로 따로 그곳에 들어갈 볼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노리는 것은, 아직 가치가 밝혀지지 않은 저렴한 스킬북이나 아이템들이었으니까. 다음은 아이템 코너를 훑어봤다.
역시 마찬가지로 커먼과 언커먼 천지였다.
그러다 한 곳에서 눈길이 멈추었다.
-희귀도 : 레어 그것은…… 인형이었다.
이곳에 오기 시작한 이후, 두 번째로 보는 레어 아이템이었다.
나는 먼저 가격을 훑어봤다.
-200,000,000원.
0이 8개, 2억이었다.
'헐.'
나는 가격을 보고 놀랐다.
가격이 레어치고는 너무 쌌다.
언커먼과 커먼도 최소 수백에서 조금 쓸만한 능력이 붙었다 밝혀지면 수억은 가볍게 넘어간다.
그런데 '레어'가 2억에 불과하다?
나는 전시관에 쓰여 있는 인형의 능력을 읽어봤다.
혹시 능력이 구리나 싶어서였다.
[곰돌이 가방]
-가방의 10배에 해당하는 부피를 넣을 수 있다.
'오, 아공간 가방?'
마침 아공간 아티팩트가 필요하긴 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곰돌이의 등 쪽에 가방끈이 달려 있었다.
'쓰인 능력으로만 보면 애매하긴 하군.'
부피 증가 옵션이 있긴 했지만 애초에 가방이 작아서 수납량이 10배로 증가해 봤자 군인들이 메는 더플 백과 물품 수납량이 비슷할 것 같았다. 무게 감소 옵션도 없었고.
이 정도면 2억이란 가격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아마 아이템의 주인과 감정사들도 여기까지밖에 밝혀내지 못한 거겠지.
하지만 '레어'라면 아마 드러나지 않은 능력이 더 있을 터였다.
나는 이번에는 [하늘의 눈]으로 곰 돌이 인형을 살펴보았다.
-이름 : 곰돌이 가방 티버 -희귀도 : 레어 -상태 : 주인 없는 상태 -설명 : 가방의 크기보다 많은 부피를 수납할 수 있다. 주인의 위험을 감지한 경우 자동으로 착용자를 가방 속으로 수납하여 '화가 난 티버 모드'를 발동한다. 단, 착용자가 가방에 들어갈 수 있는 몸집이고, 12세 미만의 어린아이인 경우에만 주인으로 인식된다.
'허허.'
조금 아까웠다.
지금 내게 아공간 아이템이 필요하긴 했지만, 내가 쓸 수는 없는 아이템이었다. 부피에 비해 용적이 너무 모자랐고, 무엇보다 모양이 내가 들고 다니려면 너무나 많은 걸 잃어야 할 것처럼 생겼다.
[왜요, 귀엽잖아요?]
'귀여워서 더 문제라고!'
어쨌든 꽤나 특이한 아이템이었다.
아마 마법 장르의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인 듯한데, 어떤 팔불출 마법사가 자신의 아이를 위해 만든 게 아닐까?
'근데 '화가 난 티버 모드'는 뭐지?'
더 자세한 설명을 보고 싶었지만, 내 [하늘의 눈]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그나마도 최근에 다녀온 던전들에서 번 포인트를 거의 [하늘의 눈]과 [의기활신유가선공]에 투자한 덕분에 이 정도의 정보까지 볼 수 있게된 것이다.
'흠, 살까 말까.'
전에 봤던 레어 아이템은 이미 구매해서 우리 집에 보관 중이었다.
그런데 이건 좀 고민이 되었다.
'쓸모가 있으려나…….'
2억이나 되는 아이템이었지만, 가격은 별로 고려할 요소가 아니었다.
내가 각성자가 된 지는 고작 세 달이 되어가지만, 그동안 남들이 공략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던전들만 공략하고 다닌 덕에 보상으로 값 비싼 것들을 많이 획득했다.
스킬은 괜히 이것저것 익힌다고 좋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몇 개만 빼고는 제 가격에 맞게 이곳에 팔아치웠다. 아이템들도 내가 쓸 것들만 몇 개 챙겨놓고 모두 은하그룹에 팔았고.
돈 있는 자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좋은 스킬과 아이템에 목말라 하고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스킬북과 아이템의 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상태였다.
덕분에 나는 이미 이백억 원이 넘어가는 재산을 벌었다. 그리고 이 돈을 투자해 던전시대 초기에 빠르게 성장한 굵직굵직한 회사의 주식 들을 미리 사들인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청년 거부가 되어 있었다.
물론 은하그룹의 주식이 가장 많았다.
'흐음, 그래, 돈도 많으니 일단 사 놓자.'
아공간 아이템이라면 그래도 쓸모가 있을 수 있으니까.
나는 카운터에서 이 곰인형을 결제 하고 집으로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얼마 전에 집을 은하그룹에서 제공한 주거지역으로 옮겼다. 은하그룹 주요 인사들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최근 은하그룹이 완공한 최첨단 주거지역이었고, 그만큼 관리도 잘 되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내가 없을 때도 아이템을 안전하게 받아줄 터였다.
그렇게 주문을 완료했을 때였다.
"하~ 여기에서 곰인형을 사는 사람도 다 있네?"
저 멀리서 세 명의 헌터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내 쪽을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딴에는 자기들끼리 얘기하며 나를 쳐다보는 형태였지만, 목소리가 커서 주변에 있는 헌터들에게 다 들릴 정도였다.
"그러게. 요즘은 진짜 개나 소나 다 헌터라니까. 몬스터랑 싸울 수 있을 만한 사람은 모두 헌터로 인정한다고? 지랄, 던전이 어떤 곳인 줄 알고."
"내 말이. 실제로 던전 들어가면 벌벌 떨면서 아무것도 못 할 사람들 까지 헌터로 인정한다니까? 저것 봐, 그러니까 곰인형으로 인형놀이나 하는 사람들까지 이곳에 들어오지. 낄낄."
놈들이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저들은 알까? 이 곰인형이 내 감정가로는 10억 원이 넘어가는 희귀 아이템이라는 것을.
아마 이 곰인형의 '화가 난 티버 모드'라는 것이 발동되면 모르긴 몰라도 저기 모인 저놈들 실력으로는 그냥 박살이 날 터였다.
어떻게 아냐고?
느껴지는 마력도 이 곰인형에 비해 별 볼 일 없는데다, 스킬들도 하나 같이 평범한 그저그런 녀석들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 레어 아이템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템이었다.
"야야, 그만 웃고 빨리 올라가 보자. 우리 아버지가 여기 VIP룸 매니저긴 하시지만 손님이 없을 때만 구경시켜 줄 수 있다고 하셨단 말이야. 마침 지금 손님이 없으니 빨리 가봐야지."
'VIP룸 매니저 아들 일행이었군.'
VIP룸에 직접 들어을 능력은 없으니 아버지를 졸라서 구경시켜 달라고 한 모양이었다.
VIP룸의 매니저는 나도 몇 번 본 사람이었다.
'상당히 깍듯하고 예의 바른 아저씨였는데, 아들은 상당히 껄렁해 보이는 게 속 꽤나 썩으셨겠군.'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헌터관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띵동!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스마트워치에 문자가 도착했다.
-VIP룸 물품 입고.
'호오?'
뭔가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나는 아래의 내용을 더 살펴봤다.
-입고 물품명은 '아공간 주머니'
주머니에 2*2*2㎥의 아공간과 1/10의 무게 감소 효과가 깃든 주머니입니다.
가격 112억 원.
'오?'
내가 필요로 하던 종류의 아이템이었다.
안 그래도 조만간 있을 '베히모스 던전 공략' 전까지 쓸만한 아공간 아이템을 구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당장 VIP룸으로 발길을 돌렸다.
VIP룸은 헌터관보다 위층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