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43
"키야아아아악!"
기계거미가 마지막 비명을 남기며 쓰러졌다.
나는 녀석의 다리를 모두 잘라낸 플라스마 링을 회수해 다시 손목에 끼웠다.
[던전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기계팔 EW-04'를 획득 하셨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던전 밖으로 나왔다.
"나오셨습니까."
던전 옆에는 늘 그렇듯 한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양복을 칼같이 각 잡아 입고, 뿔테안경을 쓴 꼼꼼, 아니, 깐깐해 보이기까지 하는 30대 남자.
은하그룹에서 내게 붙여준 비서 '도일해' 씨였다.
"도 비서님, 제가 던전 나오면 연락드린다니까요."
"아닙니다. 던전 밖으로 나오셨을 때 어떤 위급 사항이 발생할지 모르니 항상대기 인력을 두는 것이 최선입니다."
"못 말리겠군요. 알겠습니다. 이번 던전 보상이에요, 받으세요."
솔직히 처음에는 비서란 존재가 거추장스럽기만 했는데, 이제는 없으면 불편할 정도였다. 아이템 처리와 내 재산 관리, 그리고 스케줄 관리와 신상 보호 문제까지 도맡아 하는 도 비서가 있음으로써, 나는 오로지 던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요 이틀간 무슨 일 있었나요?"
"국내에는 별일 없었습니다만, 세계적으로 몇 가지 이슈가 있었습니다. 몽골에 이어 결국 호주 대륙이 몬스터들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결국 그렇게 됐군.'
몽골과 호주 대륙은 전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곳이니만큼 전생에서도 가장 빨리 무너진 나라 중 하나였다.
아마 캐나다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등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들 또한 결국 몬스터들에 의해 빠르게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미국 서부 지역에 초대형몬스터가 등장했습니다. 로키산맥 부근인데, 어깨가 구름을 뚫고올라 갈 정도로 커다란 사이클롭스라고 합니다."
도 비서가 잠시 스마트폰으로 검색 하더니 내게 사이클롭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거대한 산맥이 마치 유치원 울타리 처럼 보일 정도로 커다란 거인이 보였다. 거인에 비해 마치 개미만큼 작아 보이는 인간들의 집이 거인의 거대한 발에 짓밟히는 중이었다.
"안타깝군요."
당분간 저 몬스터를 처리할 만한 헌터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저놈의 눈에서 나오는 초능력이 현대의 화기와는 상성이 최악이기 때문에 핵을 쓸 것을 결심하지 않는 한 미군 또한 처리할 수 없는 놈이었다.
로키산맥의 사이클롭스는 당분간 미 서부에서 건드릴 수 없는, 걸어 다니는 재앙으로 군림할 것이다.
'내가 간다면 해결이 되긴 하겠지만…….'
나는 곧 이곳 한국에서 등장할 재앙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나라고 해도 저놈을 처리하기 위해선 크나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 그럴 이유도 없었고.
대체로 몬스터에게 떨어지는 부산물은 던전 보상에 비해서는 약한 편이었다.
전 세계에서는 앞으로 계속해서 저 사이클롭스 같은 보스급 몬스터들이 등장하게 된다.
저런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도록 세계 각지에서 등장하는 던전들을 빠르게 클리어해 줘야 하는데, 인구밀도가 낮고, 헌터에 대한 국가적 인프라가 덜 갖춰진 나라일수록 빠르게 몬스터의 먹이로 사라져 가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티칸 시국이 '라비우스의 악마' 던전을 클리어할 헌터들을 모집한다고 했습니다."
'라비우스의 악마' 던전.
세상에 현재까지 등장한 던전 중 공략 불가로 판정된 위험도 최고 등급의 던전들이 몇 개 있었는데, 이 던전이 그중 하나였다.
무려 50명이 넘는 헌터가 들어갔지만 단 한 명도 살아 나오지 못한 최악의 던전. 그중에서는 바티칸에서 뛰어난 각성자를 모아 만든 성당 기사단의 단원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고 그냥 놔둘 수는 없느냐?
그럴 수는 없었다.
사이클롭스가 등장한 미 서부처럼 사람들이 도시로 피난했거나, 아니면 사람이 원래 없는 교외 지역이었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하고 던전 클리어를 포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문제는 이 던전이 나타난 곳 이 바티칸 시국 중심부인 미켈란젤로 돔의 한복판이라는 것이다.
사이클롭스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공략 불가로 판정된 던전이라고 해서 놔뒀다가는 언제 재앙 같은 몬스터들이 터져 나올지 모르는 터라, 바티칸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던전을 클리어해야 했다.
때문에 바티칸 시국에서는 막대한 지출을 감수하고 전 세계에서 헌터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과연 바티칸이 이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인가?
[마스터, 바티칸은 어떻게 됩니까? 마스터는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슈리가 물어왔다.
'후후, 글쎄?'
[괜한 데서 똥폼 잡지 마시고 얼른 말씀해 주십시오.]
'또, 똥폼이라니! 안 알라줌.'
[마스터가 그러실 때마다 직박구리 폴더 내의 파일을 하나씩 지우도록하겠습니다.]
'잘 들어! 오직 너만을 위해 설명 할 테니까! 원한다면 백 번도 설명 할 수도 있어!'
[한 번이면 됩니다.]
'바티칸은 결과적으로 '라비우스의 악마' 던전 공략에 성공해. 그리고 그것을 발판으로 명실상부 인류 최고의 마법국가로 발돋움하지.'
바티칸은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결국은 그 최악의 던전을 클리어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빛의 마법서]라는 희대의 신성마법서를 발견하게 된다.
빛의 마법은 특성상 적성이 맞지 않으면 배울 시도조차 못하는 마법 이었는데, '라비우스의 악마' 던전에서 살아 돌아온 바티칸 시국의 각성자들은 신기하게도 모두가 빛의 마법서를 익힐 수 있게 적성이 변화되었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이 빛의 마법을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바티칸은 곧 멸망하고 말아.'
[왜요?]
'몰라.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모르게 몰락하고 말았어. 나도 그 이유는 몰라.'
내가 기계룡과 자폭하는 그날까지도 바티칸의 갑작스러운 멸망은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였다.
나는 입맛을 다셨다.
'그들이 인류 전력으로 남아 있었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최고의 마법사용 국가.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가볍지 않았건만, 그 무게를 견디지 못했는 지 일찍이 가라앉고 말았다.
이번 생에서도 과연 같은 길을 걷게 될지…….
"감사합니다, 도 비서님. 그럼 기계팔 아이템 하수 형한테 잘 전달해 주세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도 비서가 준비해 준 차량에 몸을 실었다.
도 비서도 내 옆자리에 앉자 차가 출발했다.
그런데 차를 타고 얼마 가지 않았을 때였다.
"저, 저기 온다!"
"잡아!!"
"헌터님, 헌터님! 잠시 저희 얘기 좀 들어주십시오!"
"이번에 나온 아이템은 무엇입니까?"
'에이, 또 시작이네.'
은하그룹이 짧은 시간 내에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기술들을 개발해 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의 다른 기업들과 기술 협약을 맺게 되며 얼마 전부터 내게도 산업스파이와 기자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어디서 부터 퍼진 건지 내가 은하그룹의 유일한 헌터란 정보가 샌 것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역시 비밀이란 오래가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은 세계 각지에서 나를 스카우트하거나, 내게서 물건을 사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내가 주로 현대 장르의, 그것도 기술적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높은 아이템이 있는 던전만 어떻게 알고 골라 들어가서 클리어하고 나온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같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들이라 그런지 내가 가는 곳들을 잘도 알아내서 나를 귀찮게 하고 있었다.
"헌터님, 저희 회사로 이적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최고의 조건을 보장하겠습니다!"
"헌터님! 이번에 나온 아이템, 종류가 뭐든 저희가 30억 이상에 매입할 수 있습니다!"
"헌터님! 헌터님!"
나는 차의 소음 차단 기능을 켜고 자리에 몸을 뉘었다.
"어휴, 귀찮아 죽겠네."
다행히 도 비서와 은하그룹의 철저한 보호로 내 얼굴을 비롯한 신상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대로 라면 시간문제였다.
옆에서 도 비서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물었다.
"신 헌터님."
"네."
"혹시 다른 곳으로 가실 거라면, 꼭 미리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그 목소리에 깃든 약간의 불안감을 읽을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디 안 가니까. 아직까지는 은하그룹에서 해주는 것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거든요."
은하그룹과의 협업은 굉장히 만족 스러웠다.
그들은 비단 계약 사항만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어떻게 나를 서포트 할지를 고민하며 최상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도 비서를 파견하여 헌터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 것은 물론, 새로 개발되는 최신 장비들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다.
그리고 가장 큰 장점은, 내 조언을 항상 진지하고 심각한 자세로 받아 들인다는 것이었다.
'회귀'라는 전례 없는 사건을 통해 미래 정보를 가지고 있는 나는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변해가게 될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미래 정보를 바탕으로 한 조언을 주는 것은 사실 상당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문제였다. 자칫 미친놈처럼 취급되거나, 혹은 이것저것 캐물어서 곤란한 상황이 초래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은하그룹, 정확히 말하면 은대호 회장과 은하수의 대응은 담백했다.
'일단 오케이.'
꼬치꼬치 캐묻지도, 헛소리로 취급하지도 않고, 그들은 내 조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가 준 정보를 바탕으로 리스크와 효율성, 예상 효과를 분석한 다음, 그것이 큰 무리라고 판단이 되지 않는 한 그대로 실행했다. 다소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더라도 말이다.
그것이 이전까지 내가 그들에게 안겨준 신뢰와 이득에 대한 그들식의 보답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을 두고 내가 왜 다른 그룹과 거래를 트겠는가?
'걱정도 팔자셔.'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차량의 부드러운 움직임에 몸을 맡겼다.
* * * '오라클 능력자가 필요해.'
앞으로 있을 정보전쟁에서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내 자신을 지키려면,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능력자를 영입 해야 했다.
하지만 당장 그런 능력자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찌해야 한담……. 아케우스를 찾아가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며, 나는 서울 여의도의 한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다른 건물들과 비슷하게 생겨 별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건물 밖은 많은 헌터들로 붐비고 있었다. 남녀노소, 늙은이부터 어린 여자아이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중 한 꼬마와 눈이 마주쳤다. 막대사탕을 빨며 양갈래 머리를 한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싱긋.
한 차례 그 꼬마를 향해 웃어준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띵동-
"어서 오십시오. 신분증을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안내원이 나를 반겼다.
나는 품에서 얼마 전에 발급받은 '헌터증'을 꺼내 입구의 안내원에게 제시했다.
"신무결 헌터시군요. 들어가시지요."
헌터증은 어느 정도의 테스트를 통해 '던전을 개척할 능력을 가진 각성자들'에게 발급하는 일종의 자격증으로, 얼마 전부터 한국 헌터 협회와 정부에서 주도하여 자격이 되는 자들에게 발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