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42
"그건 그렇고 형, 밖의 저 사람들은 뭐야?"
나는 21살이었기 때문에 30대인 은하수와는 형 동생 하기로 했다. 외견은 정반대였지만.
"아, 저 사람들…… 말하자면 산업 스파이?"
최근 은하그룹은 단시간에 엄청난 기술적 도약을 겪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어마무시했냐 하면, 거의 50년에 걸쳐야 할 기술적인 발전을 이 3달 동안 이루어내었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 기술을 탐내는 타기업 혹은 타국의 스파이들이 귀찮게 굴고 있다는 거였다.
"슬슬 기자들도 냄새를 맡고 있긴 한데, 기자들은 오히려 달래기가 쉬우니까."
은하수가 엄지와 검지, 중지를 슥슥 비볐다.
돈으로 해결했다는 의미.
"아무튼 너도 이제 조심해야 될 때가 됐다. 우리 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바로 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여기저기서 널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니까."
은하그룹이 이렇게 놀라운 발전을 할 수 있었던데에는 물론 내가 가져온 아이템들이 큰 일조를 했다.
"뭐, 내 공이 없진 않았지?"
나는 씨익 웃으며 은하수를 바라봤다.
"근데 형도 겸손 떨 때가 다 있네? 형이 없었으면 아마 아이템의 기술을 채 반도 못 파악했을걸?"
"으하하하, 이 녀석, 이래서 마음에 든다니까!"
은하수는 왕자병 기질이 있어서 이런 칭찬을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내가 한 말은 맞는 말이었다.
현대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들은 시간이지 지날수록 그 기술력이 발전하고 있었는데, 대략 1달이면 10 년에서 20년이 앞선 아이템들이 등장한다.
즉 던전시대가 열리고 3달이 지난 지금은 30년에서 60년 정도 앞선 시대의 기계들이 발견되고는 했는데, 현재까지 이 기계들의 과학기술 수준을 따라잡은 곳은 세계적으로 봐도 은하그룹과 다른 두세 개의 기업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중에서도 은하그룹은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는데, 이는 모두 사실상 눈앞에 있는 이 천재 은하수 덕분이었다.
그는 천재적인 기계공학 엔지니어 였지만 뛰어난 화학공학자이자 전기 공학자이기도 했다. 거기에 생명공학과 토목공학에도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으니, 거의 공학 분야 전 반에 두루 능통한 과학계의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가 각성자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고유 스킬은 [물아일체]라는, 조금은 뜬금없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이 스킬이야말로 바로 은하 그룹 기술 연구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었다.
[물아일체]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원하는 사물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그 사물이 되어볼 수 있는 스킬이었는데, 은하수는 이 스킬을 사용해 물체에 들어감으로써 그 물체의 작동 원리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었다.
혼자서 웬만한 연구소는 씹어 먹는 연구성과를 올린 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거참, 그런데 민간 부분에서 몇 가지 기술을 상용화할 거라고 발표한 것만으로 저 난리라니. 우리가 개발한 기술 다 꺼내 보이면 난리가 나겠다."
은하수가 마치 공개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린다는 듯이 양손을 징그럽게 꿈틀거렸다.
은하그룹은 최근에 몬스터 때문에 공포에 떠는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 기술을 공개했는데, 그 몇 가지 기술만으로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일단 이들은 인구가 밀집된 도시 인근을 높은 담장으로 감싸는 정부의 '도시방어권 형성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최근 개발한 합금 기술을 싼값에 제공했고, 일반인들이 주변에 발생한 몬스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몬스터 감지 장치를 만들어 배포했다.
던전이 열리기 시작한 지 3개월이 되어가는 현재는 던전에서 풀려난 몬스터가 확연하게 늘어난 상태였다.
던전이 생성되는 속도를 헌터들의 던전 클리어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서 이미 인구수가 적은 각국의 시골은 몬스터에 의해 장악된 곳이 많아 진 상태였다.
그 덕에 사람들은 시골의 집을 버리고 헌터들이 지키는 도시로 몰려 들었지만, 도시라고 마냥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도시 인근에서 생겨난 몬스터들이 때때로 도시의 사람들을 덮쳐서 사상자를 내기도 했으며, 도시라고 던전과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이 생겨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헌터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로 도심 속 던전이었지만, 그런 그들조차 놓치거나 클리어 하지 못하는 던전이 종종 생겨났다.
그 때문에 시민들에게 있어 은하그룹에서 판매하는 몬스터 감지 장치는 가뭄의 단비와 다름없었다.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은하그룹에의 몬스터 감지 장치를 사들였고, 은하 그룹은 그 덕에 천문학적인 수익을 벌어들였다.
"네가 구해다 준 원소측정장치가 대박이었지."
은하수가 내 등을 팡팡 치며 웃었다.
원소측정장치는 내가 외계인 침공이 테마였던 현대 던전인 [하늘에서 우주선이]라는 던전에서 얻어온 아이템으로, 은하수는 이 장치를 분석 하여 '현재 지구'에는 없는 원소 정보를 검색하여 경고를 보내는 몬스터 감지 장치를 만들어냈다.
'이거 얻으려고 고생 좀 했지.'
전생에서는 원소측정장치가 은하그룹이 아닌 다른 기업의 손에 들어갔었다.
그 결과 몬스터 감지 장치는 1년 후에야 개발됐었는데, 반면에 은하 그룹은 단 2주 만에 원소측정장치를 분석해서 몬스터 감지 장치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같은 기계라 해도 그것을 연구하는 곳의 역량에 따라 얼마나 큰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어쨌든 은하그룹이 시대를 앞서는 기술들을 계속해서 풀어주는 덕분에 전생과 비교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게 되었다. 은하그룹은 더욱 많은 돈을 벌었고.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어.'
내가 단지 이타심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 건 아니었다.
은하그룹은 이용가치가 높았다. [기계룡의 둥지]를 넘어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은하그룹의 기술력이 필요했다.
"자, 도착했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던 우리 앞에 굳건한 철문이 나타났다.
은하수는 철문 옆의 인식 장치에 손을 올려놓았다.
-은하수 님, 인증되었습니다.
덜컹.
눈앞의 철문이 열리며 그 속의 광경이 드러났다.
"어서 와, 여기가 내 연구실이야!"
약 100평이 넘어 보이는 공간에는 먹다 버린 각종 간식거리, 영어로 된 전공서적들과 논문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장치들과 그사이로 굴러다니고 있는
"내가 준 아이템들이잖아?"
아이템들이 있었다.
"오늘은 저것 때문에 불렀어."
은하수가 한쪽 벽면을 가리켜 보였다. 그곳엔 애니메이션 속의 여자 캐릭터 포스터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내가 포스터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은하수가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그쪽의 벽면이 열리며 단정하게 걸려 있는 옷이 한 벌 드러났다.
[와칸다 포에버!]
슈리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게 들렸다.
그 옷은 위아래 한 벌의 배틀 슈트였는데, 전체적으로 검은색 일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근데 옷의 재질 같지 않게 금속의 느낌이 났다.
"느낌이 어때?"
은하수가 물었다.
[느낌은, 고양이 모양의 투구가 아니라 아쉽군요.]
슈리가 여전히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걸 무시하고 은하수에게 감상을 말했다.
"멋진데? 튼튼해 보이고. 근데 금속이야?"
나는 슈트가 민첩성을 저해할까 봐 걱정되는 마음으로 은하수에게 말했다.
"블랙미슈릴이라는 형상기억합금이야. 마치 천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금속이지. 물론 부드럽게 움직인다고 해서 방어 기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야. 필요할 땐 강철보다 단단해지거든."
은하수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천 장에서 기관단총이 나오더니 슈트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투다다다다당!
슈우웅-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천장 속으로 되돌아갔다.
블랙미슈릴 슈트는 기스 하나 없이 건재했다.
"네 생체 정보, 특히 뇌파와 연동 되어 필요한 순간엔 부드럽고, 필요한 순간엔 단단해질 거야. 마치 내 ……처럼!"
듣기 싫은 걸 뇌가 알아서 걸러버렸다.
"이 슈트야말로 우리 연구 기술의 집약체라 할 수 있지! 2주일 동안 완성한 것치곤 쓸만할 거야."
그렇게 말하며 은하수가 걸쳐놓은 슈트를 꺼내 조작했다. 그러자 슈트가 스르륵 줄어들더니 아주 가느다란 검은색 팔찌로 변해버렸다.
"손목에 차도 되고, 목걸이처럼 하고 다녀도 되고, 아니면 벨트에 걸고 다니다가 필요한 순간에 활성화 하면 돼."
은하수가 내게 조작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팔찌를 팔에 걸고 시험 삼아 슈트를 활성화시켜 보았다.
스르륵- 온몸이 검은색 금속으로 순식간에 뒤덮였다. 그 상태에서 뛰어도 보고 빠르게 움직여도 보았으나, 마치 편한 천옷을 걸친 것처럼 움직임이 쉬웠다.
"좋군. 고마워, 잘 쓸게."
"뭘, 우리 회사 대주주이자 유일한 헌터인데 이 정도는 해드려야지."
은하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 그리고 이거."
은하수가 필통만한 크기의 철제 케이스를 하나 건넸다.
그가 그걸 열어보자 안에는 손톱만한 구슬들이 들어 있었다.
"요즘 개발 중인 에너지구슬인데, 이 슈트랑도 호환되니까 갖고 다녀. 나중엔 무기에도 쓸 수 있게 할 거야."
'호오, 이게 벌써 개발되었을 줄이야.'
이 에너지구슬은 전생에서도 써본 적이 있는 걸로, 당분간은 총화기 종류에도 이런 구슬이 쓰일 것이다.
"특히 이건 위급할 때만 써."
은하수가 케이스 안쪽 중앙에 다른 구슬들과는 다르게 한 겹 더 안전장치로 덮여 있는 구슬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잘못하면 방사능이 무지막지하게 나오니까, 웬만하면 쓰지 마. 어쩌면 핵반응이 일어나서 다 뒤지는 수도 있고."
그렇게 말한 그가 첨언을 덧붙였다.
"뭐, 그만큼 에너지는 가장 많이 들어 있지만."
"땡큐, 잘 쓸게."
나는 다시 슈트를 비활성화했다.
"그나저나 다른 연구들은 어때?"
"음, 대체로 괜찮긴 한데 몇 가지 막혀 있는 게 있어."
은하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작업로봇을 개발 하고 있긴 한데, 네가 말한 기능을 다 넣으려면 아직 표본이 부족해."
'슈리?'
[일주일 후 등장하는 던전에서 수급할 수 있습니다.]
"그거라면 곧 해결해 줄 수 있을거야."
"그리고 작업로봇이 완성되는 대로 천공요새 건설에 착수하려는데, 부지랑 금속 자재 공급에 한계가 있어."
[곧 등장할 베히모스를 처리하면 모두 해결됩니다.]
"그 문제도 곧 해결할 수 있어."
"너는 진짜……."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나를, 은하수가 감동한 눈빛으로 부담스럽게 쳐다보았다.
"역시 믿을 건 우리 대주주님밖에 없다니까! 정말 어디서 도깨비방망이라도 구한 거 아닌가 몰라!"
말할 때마다 필요한 물품들을 알아서 척척 구해주는 내가 신기해 보일 만도 하겠지.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도 제대로 받고 있었으니, 서로 윈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이건 새로 개발한 디바이스들. 그냥 오늘은 여기서 줄게. 잘 쓰도록 하고."
은하수가 커다란 금속제 트렁크가 방을 건네주었다.
고작 3개월이었지만 그동안 은하그룹은 무려 다섯 번이나 신제품 기계세트를 내게 내어주었다.
주무기는 내가 던전에서 직접 가장 좋은 것들로 수급하고 있었으니, 주로 트랩이나 추적 드론 같은 보조 장치들이었는데, 이것들 덕분에 현대 던전 클리어가 한결 수월해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모두 내가 건네준 아이템들의 최신기술이 반영된, 세계에서 가장 최첨단인 아이템들이다.
밖에 들고 나가면 각국의 산업스파 이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강탈하려 할 것들이었지만, 내게는 쓰고 버릴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어차피 은하그룹에서 조만간 더 좋은 것들을 개발해서 줄 테니까.
내가 이들에게 투자하는 만큼, 이들 또한 나를 지키고 돕기 위한 아이템 개발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었다.
"그럼 이제 끝?"
"어, 오늘은 끝."
"물건들 다 잘 쓸게. 땡큐."
"그래, 곧 또 부를 테니 잘 쓰고 있어라! 아이템 많이많이 보내주고!"
나는 그렇게 은하수와 인사하고 트렁크를 끌며 은하그룹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