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40 두근- 심장소리가 들렸다. 두근- 그 박동이 느껴졌다.
가슴이 아닌, 배에서.
나는 손을 들어 올려 내 가슴을 꿰뚫은 팔을 잡았다. 그리고 곧장 그의 기혈을 틀어막았다.
"뭐, 뭐냐!!"
교주가 내 가슴에서 자신의 팔을 빼내고자 안간힘을 썼지만, 내 온몸의 근육이 조여들며 그의 오른손을 봉쇄했다.
거기에 더해 그의 모든 내공이 모인 오른팔은 내 통제하에 들어와 있어서 교주는 힘을 낼 수가 없었다.
나는 왼손으로 그의 오른팔을 잡은 채 왼손을 들어 장심 (掌心)으로 그의 가슴 부위를 짚었다.
"잘 가라."
1, 2, 3, 4, 5.
속으로 5초를 세었다.
푸왁- 교주가 입으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즉사(卽死)였다.
"……."
나는 조심스럽게 교주의 팔을 내 가슴에서 빼내었다. 그리고 천천히 가부좌를 틀었다.
[유가선공]의 힘으로 미리 심장을 배 쪽으로 옮겨둔 덕분에 목숨을 구했으나, 그래도 중상이었다.
나는 운공을 시작했다.
입으로부터 피가 흘러나왔다.
피를 토해내고 싶었으나 악착같이 참았다. 지금 피를 토하면 기혈이 뒤틀릴 우려가 있었다.
악착같이 고통을 참으며 내공을 운용한 덕에 내 가슴에서 흐르던 피가 몇고, 천천히 상처가 아물어갔다. 그러나 느리기 그지없는 속도.
'역시 아직 좀 무리였나.'
이대로라면 대충 죽지 않을 정도로 만 상처를 메꾼 다음 '던전 탈출'을 외치고 구급차를 불러야 할 듯했다. 도저히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치료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임무 실패인가.'
쓴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나에게 실패는 없다고 성녀에게 말한 지가 얼마나 됐다고.
'뭐, 그래도 장애물은 사라졌으니 성녀 혼자 찾을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던전 탈출'을 말하려 할 때였다.
내 몸속으로 기이한 기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포근하기도 하고, 청량 하기도 한 신비한 기운. 그 기운은 내 [유가선공]의 내기와 합쳐져 내 몸을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유가선공]이 마치 물 만난 물고기 처럼 엄청난 기세로 내 가슴을 치유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내 두 눈을 뜨고 내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판타지 장르의 던전에서 나오는 '트롤'의 것처럼 엄청난 재생력이 작용하고 있었다.
뻥 뚫린 상처가 눈에 보일 속도로 아물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심장은 다시 제 위치로 무사히 돌아갔다.
팔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아무런 통증도 느낄 수 없었다.
"……."
나는 할 말을 잃고 내 등 뒤에서 내게 손을 대고 있는 성녀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성녀가 싱긋 웃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녀에게 치유 능력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역시 괜히 천마신교의 성녀라 불리며 교도들로부터 떠받들어진 것은 아닌 듯했다.
"밝히지 않아서 미안해요. 제 능력은 극비 사항이거든요."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이익보단 불이익이 많죠."
특히 성녀처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력이 없는 이상 더욱 그랬다.
"아, 그럼 혹시……?"
아까 한서후의 사숙을 속이느라 등을 찢은 상처, 그것을 나는 완벽히 치유하지 않은 채로 교주전까지 왔었다.
그러나 교주전에을 때쯤 이미 내 몸은 만전의 상태였다.
나는 내 몸이 완벽히 치유된 것이 [유가선공]의 효능인 줄만 알았는데…….
성녀가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내 등에 업혀 나를 치유한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마주 웃으며 그녀의 미소를 맞받았다.
* * * 비밀통로는 우려와 달리 꽤나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교주가 앉아 있던 화려한 의자.
그 의자를 [하늘의 눈]으로 보자 다음과 같은 정보가 떠올랐던 것이다.
-이름 : 교주좌 -희귀도 : 커먼 -상태 : 의자 뒤쪽 용의 눈과 꼬리, 그리고 여의주를 동시에 누르면 비밀통로가 드러난다.
"……."
역시 [하늘의 눈]!
나는 감탄을 하며 바로 비밀통로를 열었다.
성녀 또한 내 능력에 적잖이 감탄하며, 내 공을 치하했다.
우리는 함께 비밀통로로 들어섰다. 우리가 들어서자 의자가 저절로 움직여 통로가 다시 닫혔다.
비밀통로는 생각보다 길었다.
한 10분의 시간 동안 걸은 끝에 우리 마침내 통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통로를 빠져나온 우리의 눈앞에는 강이 흐르고 풀이 자라는 평화로운 동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정갈하게 지어진 모옥(芽屋)이었다.
나는 그 모옥으로 다가가려다 말고 성녀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에서는 맑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저 모옥…… 기억나요."
그녀가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다 기억나요. 내 잃어버렸던 시간들이."
의선의 유서에 있던 내용대로, 성녀는 과거의 기억을 잃었었다. 그러다가 저 모옥을 봄으로써 과거를 되찾게된 것이다.
그녀는 천천히 모옥을 향해 다가갔다.
나 또한 그녀의 뒤를 따라 천천히 모옥으로 다가갔다.
모옥의 대청마루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미려한 얼굴의 중년인.
그가 바로 시대를 뒤흔들었던 풍운아 천마(天魔)였다.
성녀가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비틀대다가 내 어깨를 짚었다.
천마는, 예상대로 죽은 상태였다.
그러나 무슨 조화인지 그의 시체는 한 점 부패하지 않은 채로, 생전의 형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귀천의 순간, 자신의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해 둔 것 같았다.
다만 그는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성녀를 부축해 모옥의 한편에 앉혔다. 성녀는 한참 동안 천마와 그가 들고 있는 꽃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옛 기억을 회상하는 듯, 그녀의 눈빛은 천마를 바라보는 동시에 과거를 향해 있었다.
한참을 눈물을 흘리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모옥의 기등을 쓰다듬었다.
"이 모옥은, 내가 살던 곳이었죠."
그리고 성녀의 과거 이야기가 시작 되었다.
이 모옥과 똑같은 모양의 모옥에 살고 있던 그녀는, 어느 날 강에서 떠내려온 사내를 건져내었다. 사내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었는데, 성녀는 그를 최선을 다해 간호했다.
다행히 그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성녀는 정신을 차린 그를 극진히 보살폈고, 그녀의 보살핌을 받은 그는 성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성녀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성녀는 그의 사랑을 거부했다.
"저를 사랑하지 마세요."
"왜입니까? 당신도 저를 사랑하지 않습니까."
성녀 또한 이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을 서툰 사내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저는 죽을 사람인걸요."
그러나 그녀는 천음절맥(天陰絶脈) 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려 있는 상태였다.
20살을 넘기 전에 온몸의 기혈이 차갑게 굳어 죽는다는 병.
그녀는 이미 18살이었다. 그녀가 이곳에 모옥을 짓고 살아가는 이유는, 때때로 차갑게 굳어가는 몸을 잠시나마 따뜻하게 해주는 화령초(火靈革)라 하는 풀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방법을 찾아보겠소."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정확히 1년 후에 다시 그녀에게 돌아왔다.
"미안하오, 방법을 찾지 못했소."
그는 천하 방방곡곡을 돌며 방도를 찾아다녔지만, 그의 엄청난 신분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그녀의 병을 치유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대신 이것을 갖고 있으시오."
그는 성녀에게 목걸이 하나를 건넸다.
그 목걸이를 목에 거는 순간 그녀는 따뜻하고도 청량한 기운이 온몸을 감도는 것을 느꼈다.
"이게……?"
성녀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그는 말했다.
"이게 당분간 그대의 목숨을 지탱 해 줄 것이오. 언제든 꼭 목에 걸고 다니시오."
그러고서 그는 또 다시 방법을 찾겠다는 말과 함께 훌쩍 떠나갔다.
목걸이의 힘 덕분인지 그녀는 그 뒤로 5년을 더 살아남았다. 그녀를 만난 모든 의원이 그것이 기적 같은 일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러나 5년을 지나 24살이 되자, 그녀는 마침내 자신이 죽을 때가 되어감을 알 수 있었다. 기혈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굳어갔던 것이다.
간간이 소식만 전하던 그가 다시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방법을 찾았소."
그는 이제는 굳어 스스로 움직일 수도 성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성녀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물었다. 그 방법이 무엇이냐고. 옳지 않은 방법이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그가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는 그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소. 그래서 다른 세상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내었소."
성녀는 아픈 와중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다른 세상으로 가는 방법이라니?
"그대를 치유할 만한 방법이 다른 세상에는 있다 하오. 그곳을 특정해 찾아가는 방법을 알아내었지. 그대와 둘이 그곳에 가서 치료를 받게 할 생각이오. 다만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는 없소. 그대도 이건 알아두어야 할 것 같아서 말해주는 것이오."
그가 그답지 않게 길게 말해주었다.
그 모습에서 그의 염려와 각오를 느낄 수 있어서, 성녀는 기어코 눈물을 흘렸다.
"그곳에서…… 나와 평생 함께해 주겠소?"
자신의 두 손을 잡고 그렇게 묻는 그에게, 성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대는, 한숨 자고 일어나면 끝나 있을 것이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성녀는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그녀는 천마신교라는 낯선 장소에서, 기억을 잃은 채로 다시 깨어났다.
천마는 그녀의 곁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