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36 어느새 5일이 지났다.
나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이틀 동안 모든 서책을 백 번이 넘도록 읽어낸 나는, 3일째에 이르러 2천 포인트로 구매했던 영단을 먹고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부터 물도 마시지 않고 운기조식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우득우득- 마침내 전신의 근육과 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윽.'
지금까지도 고통스러웠지만, 지금 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고통이 몰아쳐 왔다. 근육과 뼈가 움직이는 것이니 살을 찢는 고통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유가선공]의 내용 중 통증을 줄이는 방법도 있었으나, 그 방법을 온전히 쓰려면 다소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쇼크가 오지 않을 정도로만 고통을 조절하며 [유가선공]을 운용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시도하고 있는 것은, 체질의 개선이었다.
나는 애초에 무공을 익히는데 있어서 좋은 체질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과 비슷한 몸은 좋은 무공을 익히는데 있어서 너무나 부족했다.
그래서 [무황성의 축복]을 받은 김에 일단 내 체질을 무공에 적합하게 변화시키기로 결심했다.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급증한 지금이 지나면 기회가 없었다.
지금이 지나면 나는 '무공을 익히는데 적절한 몸'이 뭔지 그 자체를 알지 못하게 될 때니까.
[무황성의 축복]이 지속되고 있는 지금 이때가, 내 몸을 무공에 맞게 커스텀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크윽.'
나는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는 신음을 집어삼켰다.
지금 신음을 흘린다면 내기(內氣)가 빠져나가며 기가 흐트러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애써왔던게 도로 아미타불이 된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스킬을 습득하고 몸을 커스터마이징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욕심을 부린 결과, [무황성의 축복]이 끝나기까지 30분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간 안에 몸을 변화시키고, [유가선공]을 성공적으로 운용했다는 판정을 받음으로써 스킬화에 성공해야 했다.
우득우득.
갈수록 몸을 쥐어짜고 뼈를 깎아내는 느낌이 심해져 갔다.
'끄으으으윽!'
나는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집중 하면서도, 온몸의 기를 [유가선공]의 원리에 맞게 운용해 나갔다. 근육이 뒤틀리고 뼈가 이동할 때마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온몸이 마치 찐빵처럼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살과 근육이 찢기는 과정에서 온몸의 조직이 손상되었고, 그 때문에 몸이 붓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고통을 끝내고 싶었다. 포기하고 편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하면 죽음뿐. 이대로 '던전 탈출'을 외쳐도 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죽을 수는 없어!'
지금 내가 죽으면 인류는 끝장이다.
인간들은 서로 반목하고 세력을 갉아먹으며, 결국은 기계룡에게 패했던 옛날과 같은 전철을 밟을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싫었다. 다시 찾아온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또 다시 죽는다는 것이!!
'나는…… 끄으으으윽!! 살아, 남는다!'
나는 정신을 날려 버리려는 고통과 자살 충동 속에서 초인적인 의지로 다시 생을 불살랐다.
그리고 고통이 임계점을 넘어버리기 직전에!
두두둑, 두둑!
근육과 뼈의 뒤틀림이 멈추었다.
콰아아아─ 그러면서 단전에서부터 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기는 온몸의 혈도를 타고 돌다가 세맥 곳곳으로 퍼져 나가며 뒤틀리고 찢긴 뼈와 근육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고통이 빠르게 가라앉으며 거의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았던 몸이 줄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없이 운공에 몰두해 갔다.
그리고 마침내, [스킬 의기활신유가선공 (法氣活神路跡|仙功)을 습득하셨습니다.]
성공했다.
나는 운기조식을 이어가며 미소 지었다.
이후 한 시간을 더 운기조식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틀- 일어서는 순간 주저앉을 뻔했다. 거의 삼 일을 아무것도 먹지 않아 힘이 없었다.
살펴보니 몸 또한 엄청나게 마르고 푸석푸석해서 마치 미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나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동굴 한 쪽에 숨죽이고 있던 성녀가 비틀거리는 나를 보고 놀라며 다가와 부축 했다.
"무, 물…… 좀……."
성녀가 내 말을 듣더니 물을 가져다줬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 모금을 먹어보고, 몸이 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 켜기 시작했다.
곧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푸석푸석했던 피부가 눈에 보일 정도로 윤기를 되찾아 갔다. 말랐던 몸 또한 조금이나마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수분을 보충하자 어느 정도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번에는 벽곡단을 집어 입에 넣어보았다. 벽곡단 역시 몸이 잘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여러 개의 벽곡단을 꺼내 우걱우걱 씹기 시작했다. 벽곡단을 씹어 삼키기가 무섭게 몸이 탄력과 부피를 되찾기 시작했다.
영양분을 섭취하는 즉시 몸이 그 영양분을 필요한 곳에 사용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가뭄에 갈라진 땅에 비가 내리는 동시에 새싹이 돋아나는 듯한 청량한 느낌!
벽곡단을 모두 먹어치운 나는 더는 빼빼 마른 미라가 아닌, 어느새 적당한 근육질의 몸을 갖고 있었다.
성녀가 바로 옆에서 내 극적인 변화를 바라보며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두고 적당히 몸을 살펴보았다.
'오오.'
몸이 변해 있었다.
별로 운동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원래의 내 몸은 그다지 근육도 없고, 오히려 배를 비롯한 몸통 부분에는 군살이 조금 있는 편이었다. 말하자면 똥배가 조금 있었다.
그러나 그런 필요 없는 군살은 쏙 빠지고 대신 적당한 근육이 몸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다이어트 기공!
나는 몸을 움직여 보았다. 가볍게 점프해 봤다가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그 상태로 팔굽혀펴기를 해보았다.
이전보다 훨씬 가벼운 느낌으로 모든 동작을 해내었다.
근력, 유연성, 민첩성 할 것 없이 모든 신체 능력치가 상승한 느낌이었다.
'좋아.'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한 가지 더 확인해 봐야 할 것이 있었다.
나는 의선의 유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내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아직 좀 안 익숙하네.'
단전에서부터 꿈틀거리며 흘러나온 내공은 아직은 서투른 내 인도에 따라 종이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종이 속의 글자가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곳에서의 언어와는 전혀 다른 언어를 이룬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름 : 신무결 스테이터스 : (체력 22/100), (근력 14/100), (민첩성 23/100), (마력 12/100)
고유 스킬 : [디바이스 컨트롤 44/100], [배틀 센스 43/100], [마스터피스 3/100]
습득 스킬 : [하늘의 눈 12/100], [의기활신유가선공 15/100]
카르마 포인트 : 1, 003 현대 장르의 던전에서는 엡으로써 상태창을 알 수 있었다면, 무협 던전에서는 글자가 적힌 종이에 내공을 불어넣음으로써 나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히든 피스가 있었다. 스테이터스 수치가 '장삼'에 맞게 조정되어 있었고, 고유 스킬인 [디바이스 컨트롤]은 지금 사용 불가라서 취소선이 그어져 있었다.
[근데 '유가선공'의 능력치가 벌써 15 네요?]
슈리가 같이 능력치를 확인하며 물어 왔다.
'끽해야 12 정도로 생성될 줄 알았더니. 내 시도가 조금 무모하긴 했군.'
무공 또는 마법을 스킬화하려면 무공의 경우는 1성의 경지를 이루어야 하고, 마법의 경우에는 1클래스의 경지를 이루어야 저절로 생성된다.
[유가선공]은 처음 생성 시 1성 중 반에 해당하는 15의 능력치를 가지게 됨으로써 스킬화에 성공한 것이다.
'좋아. 자, 그럼…….'
나는 모든 카르마 포인트를 [유가선공]에 투자했다.
이름 : 신무결 스테이터스 : (체력 22/100), (근력 14/100), (민첩성 23/100), (마력 12/100) 고유 스킬 : [디바이스 컨트롤44/100], [배틀 센스 43/100], [마스터피스 3/100]
습득 스킬 : [하늘의 눈 12/100], [의기활신유가선공 25/100]
카르마 포인트 : 0 단숨에 능력치가 25가 되었다.
나는 내공을 운용해 봤다.
아까보다 내공이 한층 부드럽게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내공을 온몸에 퍼뜨린 다음, 아까보다 훨씬 꼼꼼히 몸의 감각을 파악해 나갔다.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신체 능력치를 '수치'로서가 아니라 '감각'으로서 정확하게 익혀두는 것은 전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빠르게 발전해 가는 몸의 기능을 감각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반푼이 헌터가 되는 것이다.
몬스터의 턱주가리에 주먹을 박아 넣기 위해 점프했는데, 너무 많이 점프해 그만 입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않는가?
"좋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몸의 감각을 익혔으니, 나머지는 이동 중에 세밀하게 체크해 보면 될 것이다.
"성녀님, 그럼 가보실까요?"
나는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전과 같이 성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성녀는 또 다시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 * * 나는 성녀를 업고 절벽을 올랐다.
다행히 내 향상된 육체 능력에 내공의 힘까지 합쳐지니 성녀를 업고도 절벽을 오르는 것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떨어져도 바람으로 인해 다시 동굴로 되돌아 갈 뿐이니 그렇게 위험한 모험도 아니었다.
나는 성녀를 업고 올라와 천마신교 본단으로 향했다.
도망쳐 나온 길과 달리 되돌아가는 길은 비교적 쉬웠다. 곳곳에 정파의 경계인들이 있었지만 나는, 아니, 장삼은 그들이 없을 만한 곳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성녀와 함께 흉폭한 육식 흰 쥐들의 영역과 동물을 옥죄어 죽이는 구렁이 덩굴들의 영역을 지났다.
둘 다 통과 방법은 비슷했다. 그들이 좋아하는 먹이를 던져주면 거기에만 정신이 팔린다는 점이었다.
나는 육식 흰쥐가 좋아하는 사슴을 사냥해 육식 횐쥐 영역 바로 옆에 위치한 큰눈도마뱀들의 영역에 던져 버렸다.
평소 육식 흰쥐와 큰눈도마뱀들은 소 닭 보듯 하는 사이였지만 육식 횐쥐가 먹이에 정신이 팔려 큰눈도마뱀들의 영역을 침범한 순간, 깜짝 놀란 큰눈도마뱀들이 육식 횐쥐 한 마리를 물어 죽이며 두 동물 간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육식 횐쥐는 생긴 것답지 않게 동료애가 강해서 한 마리가 공격당하면 모든 개체가 우르르 몰려들어 공격한 놈을 조지는 습성이 있었다.
놈들에게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 리는 이유였지만 덕분에 나는 손쉽게 놈들의 영역을 통과할 수 있었다.
구렁이 덩굴들의 경우는 더 간단했다.
나는 주먹만한 돌멩이들을 한가득 챙겨 망태기에 넣었다. 그리고 구렁이 덩굴들의 영역에 들어서며 돌을 앞으로 던졌다.
스스슥- 마치 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바닥의 나뭇잎들이 들썩이며 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구렁이 덩굴이 돌을 가져 간 것이다.
돌을 가져간 녀석은 당분간 몸으로 돌을 감싸 부수느라 안간힘을 쓸 것이다. 물론 돌이 놈들에게 영양분이 되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우리가 지나는 길에 있는 구렁이 덩굴들에게 돌을 던져주며 구렁이 덩굴들의 영역을 통과했다.
본단을 빠져나올 때보다는 멀리 빙돌아서 오는 길이었지만, 덕분에 나와 성녀는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본단 근처에 당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