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034 -의기활신유가선공(意氣活神論跡仙功) '찾았다!' (34/215)

  기계신과 함께 034 -의기활신유가선공(意氣活神論跡仙功) '찾았다!'

  내가 찾아다니던 유니크 무공이었다.

  나는 책을 집어 들고 흘낏 성녀의 살펴보았다.

  그녀는 동굴에 들어온 이후로 쭉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는데, 내가 책을 집어 들고 흘껏 자신을 쳐다보자 책에는 관심 없다는 듯 눈길을 동굴 내부로 돌렸다.

  나는 책을 펼쳐보았다.

  -구궁의 집에 모든 신들이 기거하면 그것은 곧 광명이니, 풍룡과 지통이 감궁과 건궁을 지나 태궁에 머물 때 곧 천지가 서로를 휘감고 땅의 텃밭에서 생명이 솟을지니…….

  보다 말고 책을 탁 덮었다.

  '이게 뭔 개소리야?'

  무공 기서들이 유독 마법서와 초능력 스킬북보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도 이상이었다.

  '유니크 무공이라서 그런가, 더 골치가 아프게 쓰여 있군.'

  나도 웬만큼 머리가 좋은 편인데 다 무공서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기 때문에, 웬만한 무공서 같은 경우는 아무리 뜬금없는 소리라 해도 최소한 뭘 말하고자 하는구나 정도는 쉽게 알아챘다.

  그런데 이 무공서의 경우는 당최 무슨 소리인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다.

  "됐고, 습득!"

  나는 바로 습득을 외쳐보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별 기대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쉽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 눈앞에 있는 이것은 단지 무공의 원리를 적은 '무공서'일 뿐, 스킬을 습득하게 해주는 '스킬북'은 아니었다. 스킬북이 아닌 무공서를 가지고 '습득!'을 외쳐봤자 별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용하는 즉시 스킬을 습득할 수 있게 해주는 '스킬북'은 오로지 던전 보상으로만 주며, 설혹 [최초의 던전]처럼 던전 내에서 스킬북을 발견했다 해도 던전 보상으로 그것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등장할 모든 던전의 공통된 사항이다.

  하지만 스킬북을 사용하지 않고도 스킬을 습득하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스킬의 원리를 체득(體得)하는 것.'

  무공서에 적힌 무공의 원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시스템으로 스킬화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물론 무공서만 보고 혼자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다. 책만 보고 운전을 배우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것보다 수십 배는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재능이 없는 자에게는 아예 불가능한 일이며, 재능이 있어 그것이 가능한 자에게도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이 무공을 스킬화하기 위해서는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 년이라는 시간을 던전 내에서만 보낼 수는 없는 노릇.

  나름 생각이 있었다.

  이 동굴 내에서나는 벽곡단이 가득 든 항아리와 물이 흐르는 구덩이를 발견했다. 벽곡단은 이 동굴의 주인으로 보였던 이 해골이 끼니 해결을 위해 마련해 둔 것으로 보였는데, 양으로 보아 아마 무공을 익히는 동안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응?'

  문득 이해골의 옆에 무공서 말고 다른 종이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집어 펼쳐보았다.

  글씨가 빽빽이 적힌 서신이었다.

  '이건…… 유서?'

  "뭔가요?"

  내가 무공서를 들었을 때는 힐긋 눈길만 주고 동굴을 둘러보던 성녀가, 유서에는 관심을 보였다.

  "유서인 것 같습니다."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묻고 있는 성녀와 함께, 우리는 그 유서를 읽어보았다.

  -이것을 읽고 있다면, 필시 운이 좋은 녀석이겠구나. 내 마지막 진전을 발견한 사람일 테니 말이다.

  '내가 좀 운이 좋긴 했지.'

  [무려 회귀까지 했으니 운이 하늘에 닿으신 거죠.]

  '그러니까 말이야. 하하하.'

  -나는 나를 아는 사람들로부터의 선(醫仙)이라 불리던 사람이다.

  "성녀님, 의선이란 사람 아십니까?"

  "잘 몰라요. 전 무림의 정세에 어두운 편이었거든요."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뭣하지만, 나는 소위 말하던 천재였다.

  나는 토문성 작은 고을에서 태어나, 불과 29살의 나이에 황실 어의가 되었다.

  29세에 어의라니, 엄청난 사람이었다.

  어의(御醫)라 함은 황제의 주치의를 말함이니, 이는 곧 그 시대 최고의 의원이라는 말과 동의어였다.

  의사라는 직업이 이론뿐만 아니라 경험이 많아야 함을 감안하면 불가사의할 정도로 빠른 출세가도를 달린 셈이었다.

  -여기에는 작은 비밀이 있었다.

  지금부터 그 이유가 나오려나 보다.

  -나는 어렸을 때 마을의 창고 안에서 '천축유가신공(天竺路跏神功)' 이라는 책자를 발견했다. 그때는 글 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던 상태라서 뭣도 모르고 그 내용을 탐독했지.

  그 책은 무공서였다.

  나는 그 책을 읽을수록 무공의 신비한 묘리에 빠져들어갔다.

  그 책은 자신의 근육, 골격을 바꿀 수 있게 해주는 무공으로, 나는 무공을 익혀갈수록 내 얼굴 모양과 키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어갈 수 있었다.

  세상에, 내 추한 얼굴과 작은 키를 마음대로 바꾸어줄 수 있는 무공이라니!

  그때는 이것을 익히고 나를 뻥 차 버린 아랫마을의 여자아이에게 달라진 얼굴로 다가가 유혹한 다음, 다시 차버리겠다는 일념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공에 열중했었다.

  어린 날의 치기였지.

  '쪼잔하군.'

  [쪼잔하네요.]

  -그렇게 무공을 탐닉하다 보니 난 어느새 인체(人體)에 관해서만은 여느 의원들보다도 자세히 알게 되었다.

  또한 무공을 발전시키고자 각종 의서들을 탐독한 나는, 어느새 명의라 불리던 의원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의술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그때쯤의 나는 이미 아랫마을 여자 아이 따위는 잊어버리고, 무공과 의술 그 자체의 신비에 매료되어 있었다.

  나는 20세가 넘어서는 자신의 근골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천축유가 신공을 발전시켜 타인의 근육과 골격까지 움직일 수 있는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나는 이 무공을 응용해 앉은뱅이를 서게 만들고, 다른 의원들이 고개를 내저었던 불치병의 환자를 살려내었다.

  내 명성은 순식간에 퍼졌고, 황실에서 사람이 나와 나를 모셔 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무공의 경지를 뛰어넘은 자구나.'

  천축유가신공은 의선이라는 이자의 말에 따르면 그 자신의 모습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무공이라 했다. 그러나 이자는 엄청난 연구를 통해 이를 타인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 정도까지 무공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던 것이다.

  천재적인 두뇌와 끈질긴 집념으로 무공과 의술 양측의 지평을 확장한 시대의 개척자라 할 수 있었다.

  -황실은 복마전(伏I後殿)이었다. 암투와 귀계가 난무하는 이곳에서 도태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지.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했고, 더욱더 의술에 매진했다.

  물론 약간의 암계(暗計)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지.

  아무래도 의선의 천재성은 무공과 의술뿐만 아니라 음모를 짜는데 있어서도 발휘되었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29세라는 이른 나이에 의료계의 정점에 올라서게 되었다.

  내게 있어서 그 자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지.

  내 진리에 대한 목마름은 내가 가진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서 세상의 온갖 무공서와 기서들을 내 앞으로 가지고 오게 했다.

  무공의 고수들이 모인 황실수호대 쪽에도 내가 살려준 목숨들이 제법 많았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

  나는 덕분에 무공 면에서도, 의술 면에서도 엄청난 진전을 이루었다.

  무공을 쓸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황실수호대의 수준을 보아 나를 이길 자가 세상에 많지 않으리라는 것을 유추 할 수 있었다.

  나는 뛰어난 외모와 높은 지위,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이 세상을 내 세상처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여자와 결혼하여 딸을 낳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지.

  하지만 이제까지의 행복을 신이 시기한 건지, 내게도 절망이 찾아왔다. 전염병이 찾아와 내 아내의 목숨을 앗아간 데 이어, 내 딸 또한 원인 모를 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의료계의 별이라 불리던 내게서 소중한 사람들을 앗아간 것이 모두 내가 평생을 두고 싸워온 병마(病魔) 라니!

  나는 그때부터 또 다시 미친 듯이 의술에 대해 연구해 왔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아직 내가 고치지 못한 병들, 그리고 원인조차 모르는 병들이 넘쳐났다.

  내가 한계를 느끼고 포기하려 할 때쯤, 내게 구세주 같은 자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정체는 알고 있었다. 그는 황실과는 다른 세계인 무림이란 곳을 피로써 제패한 천마(天魔) 라는 자였다.

  그는 내게 의술에도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말하며, 자신의 부탁을 들어 준다 약속하면 그 새로운 세계로 나를 데려다주겠노라 약속했다.

  나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서 내공이란 것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그의 장담대로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이제까지 세상에 기(氣)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림풋이 알아왔고, 실제로도 의술과 내공에 조금씩 적용해 왔다.

  하지만 그 기라는 것을 이토록 체계적으로 몸속에 축적하고 활용하는 방법은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마치 처음으로 무공을 접했을 때처럼 미친 듯이 내공이란 것에 탐닉 했다.

  천마라는 훌륭한 교사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처음 무공을 익힐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그것을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천마와 함께 오래도록 연구한 끝에, 결국 한 가지 무공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그대의 앞에 남긴 무공, 의기활신유가선공(意氣活神論a 仙功)이다.

  '천마와 의선이 함께 연구한 무공이라고?'

  두 명의 천재가 만나 만들어낸 한 가지 무공.

  나는 벌써부터 이 무공의 성능이 궁금해지고 있었다.

  [근데 그럼 천마가 의선에게 한 부탁은 뭘까요?]

  '좀 더 읽어보자.'

  -천마가 내게 부탁한 것은, 한 여자를 살리는 일이었다.

  그 여자는 불치병에 걸려 의식조차 없는 상태였지. 이미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어떤 신비한 힘이 그녀가 죽지 않도록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내 의술로는 그녀를 살릴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천마가 내게 내공을 가르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의기활신유가선공 (意氣活神論動仙功)을 탄생시킨 이유였다. 이 무공은 오로지 단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해내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었던 것이다.

  천마가 그녀를 위해 한 것은 비단 무공을 만든 것만이 아니었다.

  그가 중원 무림을 침공하는 전쟁을 일으켰던 것은 오로지 그녀를 살려 낼 재화와 재료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에 더해 그는 내게 자신이 가진 내공의 비밀과 모든 비술(松術)에 관한 지식을 제공했으며, 급기야는 자신의 생명력을 내놓았다.

  오로지, 오로지 그녀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그가 한 모든 행위는 단 한 사람 만을 위한 지고지순한 노력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그녀를 살리기 위해 미래에서 왔다는, 지금까지도 믿을 수 없는 소리를 했었는데, 아무리 나라도 이것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천마의 노력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우리는 성공했다. 대법과 동시에 내가 사용한 의기활신유가선공, 그리고 결정적으로 천마가 모든 생명력을 그녀에게 넘긴 덕분에 그녀는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천마는 모든 수명이 다하고 말았지.

  천마는 대법이 성공하자 미친 듯이 기뻐하며 그녀를 자신이 세워놓은 천마신교에 데려다 놓고, 교도들에게 그녀를 섬길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천마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천마신교에서 그 모습을 감추었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야, 그리고 그가 절대자로 기억 되어야 그녀가 안전해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와 천마는 멀찍이서 그녀가 깨어나는 것을 관찰했다.

  그녀는 과거의 기억이 없어진 듯했으나, 교도들이 천마의 지시대로 그녀를 극진하게 모신 덕분에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천마는 그것으로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무뚝뚝함 속에 조급함을 담고 있었던 그가, 그토록 편히 웃는 것은 보는 나까지도 뭉클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냐 물었으나, 천마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 내 천명을 완수했소. 나는 곧 죽을 사람이니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필요는 없지."

  그리 말한 천마는 자신이 교주전 내의 비밀 공간에서 마지막을 맞이 하리라 말하고는 나와 작별 인사를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천마를 볼 수 없었다.

  나는 천마의 배려로 천마신교 본단위쪽의 기화이초들을 마음껏 연구하며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

  간간이 멀리서 천마가 자신의 목숨을 다해 살린 그녀를 보고 있자니, 천마신교에서는 '성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더군. 행복한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