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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32 의외였다. (32/215)

  기계신과 함께 032 의외였다.

  실력을 드러내 꼼짝없이 의심받을 줄 알았건만 오히려 감탄 깃든 칭찬을 듣고 말았다.

  '다행이군. 제대로 파악했잖아?'

  둘을 처치하며 내가 사용한 것은 마교의 무공인 [초마권법]이긴 했는데, [배틀 센스]의 계산에 따라 중간중간 초마권법이 아닌 동작을 섞어서 사용했다.

  그걸 보고 다른 무공을 익힌 거라고 추궁받을 줄 알았는데, 내가 사용한 무공이 [초마권법]뿐인데다 내가 이긴 게 무공 덕이 아니란 걸 공손혁 장로가 제대로 캐치한 것이다.

  내가 정파인 둘을 쓰러뜨린 것은 무공보단 전적으로 [배틀 센스] 덕 이라 할 수 있었으니.

  어쨌든 안목이 없는 사람에게 제대로 설명하기도 곤란한 일이었는데, 범상치 않은 그의 눈썰미 덕분에의 심받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신 다른 피곤한 상황이 나를 찾아오고 있었다.

  나는 공손혁 장로의 눈에 욕심이 깃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공손혁 장로는 내 [배틀 센스]를 육감으로 생각한 듯했다.

  "자네 정도의 육감이면 나이는 들었지만 내 제자로 들일 수도 있겠어."

  그가 스리슬쩍 다가와서 팔과 등을 여기저기 만져보았다.

  근골을 재보는 것이다.

  그러나 곧 그의 눈이 미미하게 찌푸려지는 것이 보였다.

  "허어…… 감각은 야수의 그것 못지않으나…… 근골이 뒤따라주지 않는구나. 안타깝군, 안타까워."

  공손혁 장로의 말이 아픈 기억을 일깨웠다.

  "자네는 무공에 별로 소질이 없어."

  "무공을 익힐 바에는 그냥 가진 스킬이나 갈고닦는 게 어때?"

  전생에서 들었던 말이 공손혁의 말에 오버랩되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아니, 평범한 사람들보다 조금 더 무공에 소질이 없었다.

  특히 처음부터 무공 관련 재능을 각성한 자들에 비하면 따라갈 수 없는 격차가 있었다.

  무공은 같은 종류라 해도 그것을 익히는 자와의 상성, 그리고 익히는 자의 자질에 따라 습득 속도가 천지 차이였다.

  그러나 나는 나와 맞는 종류의 무공을 찾지도 못했거니와 어떤 무공을 익혀도 평균 이하의 습득 속도가 나왔다.

  어쩌면 내 체질에 맞는 무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비싼 돈을 처들여가며 여러가지 무공을 익혀봤으나 모두 맞지 않는 옷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던전시대가 끝나갈 때까지 내게 맞는 무공을 찾지 못한 것이다.

  결국 나는 내가 무공과는 거리가 먼 체질이란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손혁 장로는 내가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하지 체질이란 것을 한눈에 꿰뚫어 보았다.

  '역시 천마신교 장로는 화투로 딴 게 아니네.'

  여러모로 눈썰미가 참 좋은 노인네였다.

  내 야수적인 감각-배틀 센스로 인한-을 보고 욕심으로 일렁거리던 그의 눈에 냉정이 되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쳇, 저 못생긴 할아버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뭐 하는 겁니까?]

  공손혁 장로가 하는 양을 지켜본 슈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투덜거렸다.

  나는 속으로 씨익 웃었다.

  '괜찮아, 슈리.'

  [하지만 저 장로가 기분 나쁘게 하잖습니까!]

  슈리는 나를 대신해 화를 내주고 있었다.

  내 과거의 상념을 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괜찮았다.

  '진짜 괜찮아. 이 던전에서 방법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정말 '그 무공'이 이 던전에 있다면, 이런 내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 무공은 그런 쪽으로 특화된 무공이었으니까.

  그것만 익히면 되니까.

  * * * 우리는 잠시 쉬었다가 길을 다시 나서기로 했다. 공손혁 장로도 그렇고 호위무사 진성도 자잘한 상처를 많이 입었기 때문에 그것을 수습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일행이 상처를 수습하는 동안 다음 관문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저기 저 나무 보이십니까?"

  내가 손가락으로 한 나무를 가리켜 보였다. 30장(약 9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커다란 나무였다.

  "저 나무를 지나서부터 살을 파고 드는 벌레들이 있습니다. 녀석들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간단히 설명을 끝내고, 잠시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자 십여 분간의 짧은 휴식이 끝났다.

  "자, 그럼 다시 가볼까?"

  공손혁이 일어서며 말했다. 절벽이 코앞이었기 때문에 의욕이 실린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런 그를 내가 멈춰 세웠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뭔가?"

  내가 뜸을 들이자 공손혁 장로가 재촉했다.

  나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용은 평온하지 않았다.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습니다요."

  "뭐?"

  내 폭탄 발언에 공손혁 장로뿐 아니라 일행 모두가 깜짝 놀랐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말인가?"

  공손혁 장로가 인상을 썼다.

  "예."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이곳에 있던 사람 중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성녀의 곁에 남은 유일한 호위무사. 진성 호법이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지금 성녀는 그의 곁을 벗어나 내 뒤에 있었다.

  내가 폭탄 발언을 하기 전에 슬쩍 성녀를 내 등 뒤로 빼냈기 때문이다.

  모두의 시선이 호위무사에게 향하자 그자가 움찔하는 게 보였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배신자라는 말입니까?"

  그는 갑자기 오해를 받아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자네, 지금 이 발언은 각오해야 할 거네. 호법원의 호법은 그 신분이 증명된 자만 들어올 수 있는 곳. 평소라면 자네 목을 쳤어도 될 만한 발언이란 점, 명심해 두게."

  공손혁이 엄포를 놓으며 나를 차갑게 쏘아봤다.

  나는 그의 눈을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법장로인 공손혁이 호법이자 부하인 그를 두둔할 것이라는 것은 애초에 예상했던 바였다.

  그 말은?

  증거가 준비되었단 소리.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요. 장로님, 일단 진성 호법을 주시해 주십쇼."

  나는 장로가 그를 감시하게 하고는 뒤를 돌아 땅 주변을 훑었다.

  '여기 있군.'

  나는 나뭇잎 하나를 주워 들었다.

  아까 호위무사진성이 몰래 땅에 흘린 나뭇잎이었다.

  흙을 탈탈 털어내자 나뭇잎에는 정교하게 새겨져 있던 글귀들이 드러 났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공손혁 장로에게 다가갔다.

  공손혁 장로를 비롯한 모두의 눈이 나뭇잎으로 모였다.

  진성 호법의 눈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나뭇잎을 공손혁 장로의 손에 넘기려 했다.

  이변이 일어난 건 그 순간이었다.

  "에잇!"

  호위무사 진성이 순식간에 칼을 빼 들고 공손혁 장로를 향해 쏜살같이 칼을 찔러 들어간 것이다. 모르는 척 잡아떼기에는 글렀다고 판단하고, 가장 강한 공손혁 장로부터 처치하려는 것.

  "어딜!"

  팅- 그러나 내 주의를 들은 공손혁 장로는 기습적인 그의 공격을 단지 한 손만으로 튕겨냈다. 그리고 그의 검이 저 멀리 날아가 땅을 뒹구는 사이 그의 목을 간단하게 움켜쥐었다. 공손혁 장로와 진성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실력 차이가 존재했던 것이다.

  "네놈…… 배신자였구나."

  공손혁 장로가 탄식했다.

  "상상도 못했다. 네놈이 배신자일 줄은."

  그 말에 호위무사 진성이 큭큭 웃었다.

  "큭, 일이 이렇게 틀어질 줄은 몰랐군. 부모님을 죽인원수들의 씨를 말려 버리고자 했는데, 하늘이 날 버리시는구나! 하하하!"

  쯧.

  공손혁이 혀를 차며 앙천광소를 터뜨리는 진성의 목에서 손을 떼더니, 순식간에 그의 가슴을 짚었다.

  타타탓!

  마혈(麻穴)이 짚여 움직일 수 없게 된 진성의 가슴 위로 공손혁의 손이 얹어졌다.

  "끄아아아아악!"

  진성이 온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렀다.

  생기가 넘치던 그의 피부가 푸석푸석 말라가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몸의 혈관들이 검게 물들며 마치 문신처럼 돋아났다.

  "끕!"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는 결국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후우……."

  공손혁 장로가 진성의 시체에서 손을 떼고는 땅에 떨어졌던 나뭇잎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적힌 내용을 읽어보았다.

  대충 내용이 짐작되었다.

  저 나뭇잎에는 이곳에서 이 다음 관문인 '살을 파고드는 벌레'들에 관해 적혀 있을 것이다. 정파인들에게 정보를 넘기기 위한 간이 보고서인 것이다.

  공손혁은 말없이 진성의 품을 뒤져 그 나뭇잎과 같은 나뭇잎을 찾아내었다.

  두 나뭇잎을 대조해 보던 그는 일어서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고맙네."

  "아닙니다요."

  "자네는 어떻게 이자가 배신자인 걸 알았는가?"

  "이상했습니다."

  "무엇이?"

  "정파인들이 저희를 너무 빨리 따라온 것 말입니다요. 마치 따라오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배신자의 존재를 예상했다?"

  "예, 그리고 함정을 팠습니다."

  "함정?"

  "실은 이다음에 식인 벌레 따위는 없습죠. 그 정보를 말해야만 배신자가 정보를 남기기 위한 행동을 취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요. 그래서 거짓 정보를 말하고,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역시나 진성 호법이 수상한 나뭇잎을 떨어뜨리더군요."

  "허, 참. 그럼 저 나무 너머서부터 식인 벌레들이 있다고 한 것은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겠군?"

  "바로 보셨습니다요."

  "자네 여러모로 대단하군."

  공손혁 장로가 감탄의 눈길을 보내는 것이 보였다.

  "자네의 활약, 절대 잊지 않겠네."

  공손혁 장로의 눈에 깃든 신뢰가 보였다.

  "정말 고마워요. 그대의 공로에 대한 보상,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성녀 또한 내 공로를 치하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요."

  '그럼 그럼, 잊지 말아야지.'

  이제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된다.

  "출발하세."

  공손혁의 목소리와 함께 나는 코앞으로 다가온 과실을 향해 발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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