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31 일행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꽃을 하나씩 꺼내 일행에게 건넸다.
일행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으나, 순순히 꽃을 받아들었다.
"이곳을 지나는 동안 이 꽃이 목숨을 지켜줄 것입니다. 절대 놓치지 말고 갖고 계십시오."
일행은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꽃을 들고 내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위잉- 조금 달려가자 모기 소리 같은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일행이 바짝 긴장했다.
"벌?"
공손혁 장로의 작은 외침이 들려왔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거의 손바닥만큼 큰 기형 벌이었다. 그런 벌이 수백 마리도 더 넘게 사방에서 다가왔다.
일행은 크게 놀라 뒤로 도망갈 태세를 취했으나, 나는 웃으며 꽃을 벌들을 향해 내밀었다.
그러자, 위임~ 신기하게도 벌들이 꽃으로부터 멀어졌다.
"이 꽃은 이 벌들의 천적이 좋아하는 꽃입니다요. 그 때문에 품에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벌들은 겁을 먹고 공격해 오지 않습니다. 그럼 가시지요!"
나는 그 말을 내뱉고 벌들 사이로 발을 내디였다.
마치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신기하게 우리가 가는 길의 벌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이 꽃은 이 벌들의 천적인 대왕말 벌들이 좋아하는 꽃이었다.
장삼은 항상 이 꽃을 가죽으로 밀봉한 뒤 몸에 지니고 다녔다.
이 꽃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지니고 있는 이 망태기 속에는 이 산길을 무사히 지나칠 열쇠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금방 기형 벌들의 영역을 빠져나와 발길을 재촉했다.
정파인들이 돌에 맞고, 벌에 쏘이고, 독사에 물리고 맹수들에게 쫓기는 동안 우리 일행은 나의 안내로 유유히 산 위를 올랐다.
사달은 독충들의 영역을 지날 때 일어났다.
성녀를 업고 따라오는 과정에서 상당히 지친 호위무사 한 명이 그만 밟아서는 안 될 곳을 밟아버린 것이다.
그 대가는 죽음이었다.
마침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던 독 지네가 그의 다리를 물어버렸고, 그는 세 걸음을 넘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이런!'
그에게 업혀 있던 성녀가 독충들이 우글거리는 길가로 떨어지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 성녀를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깍!"
작은 비명과 함께 성녀가 풀썩 내 품에 기댔다.
달콤한 배꽃 향기가 났다.
"괜찮으십니까? 어디 물린 곳은 없으신지요?"
나는 굳은 얼굴로 성녀에게 물으며 그녀가 발 디렸던 곳의 흔적을 살폈다.
여기서 그녀가 죽으면 끝장이었다.
"없는 것 같아요."
다행히 성녀는 무사했다.
그녀는 자신을 지키던 호위무사가 또 죽었음에도 생각보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성녀님, 제게 업히시지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 동안 마지막 남은 호위무사가 성녀에게 등을 보였다.
어느새 세 명이 한 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지체할 틈이 없다. 어서 가자."
공손혁 장로가 쓰러져 죽은 호위무사를 흘깃 살펴보고는 바로 우리를 재촉했다.
하지만 한 마디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는지, 그는 성녀를 업은 마지막 호위무사에게 말했다.
"진성 호법."
"예!"
성녀를 업고 있던 호위무사가 공손하게 대꾸했다.
"자네는 죽지 말게."
"예!"
우리는 벌써 독물들이 들러붙기 시작한 호위무사의 시체를 남겨두고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 * * 절벽이 가까워져 간다.
이제는 팔부능선을 넘었다고 봐도 된다.
그때 절벽에 다다르기 전의 마지막 위기가 찾아왔다.
퓨퓨풋!!
부지불식간에 십수 대의 화살이 날아든 것이다. 평범한 화살이 아닌, 화살 전체가 쇠로 이루어진 강전(强 節)이었다.
공손혁 장로와 호위무사진성이 순식간에 검을 뽑아 화살들을 쳐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검의 그물을 뚫고 화살 몇 대가 나와 성녀를 향해 날아왔다.
"이런!"
공손혁 장로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다소간 긴장이 풀려 있던데다 화살이 너무 무겁고 강력했기 때문에 성녀에게 향하는 화살을 그만 놓쳐 버리고 만 것이다.
그가 다급하게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하는 수 없군.'
이런 상황이 오지 않길 바랐지만, 이대로라면 성녀가 죽을 것 같은 상황.
[배틀 센스]가 알려왔다. 지금은 실력을 드러내야 할 때라고.
나는 옆에서 있던 성녀의 손을 잡아채 내 뒤로 보내는 동시에 [초마권법]을 발동시켰다. 내 몸이 자연스럽게 초마권법의 기수식을 취했다.
초마권법은 천마신교의 교도라면 누구나 배우는 기초적인 권법으로, 장삼이 잠깐이라도 익혔던 유일한 무공이자 내가 스테이지에 들어오며 특전으로 받은 무공이었다.
거기에 내 고유 스킬인 [배틀 센스]가 어우러졌다.
기이한 기운이 몸을 돌며 화살이 날아오는 속도와 각도를 순식간에 읽어 들였다.
그리고, '지금!'
정확한 타이밍에 왼손이 난폭한 움직임을 그리며 번개처럼 움직였다.
투툭!
성녀와 나를 향해 날아오던 화살 두 대가 왼손에 튕겨 나가며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직후에 이번에는 오른손이 공간을 할퀴었다.
타다닥!
세 대의 화살이 역시 내 양쪽으로 흘러갔다.
그대로 뒀다면 내 심장과 배에 틀어박혔올 화살들이었다.
나는 화살을 쳐내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얼핏 보면 난폭을 넘어 난잡해 보이는 움직임이었지만, 무림을 뒤흔 든 천마신교의 기초 무공답게 [초마 권법]은 공방(攻防)의 밸런스가 잘 갖춰진 무공이었다.
거기에 해법을 찾아내는 [배틀 센스]가 더해져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흐름을 읽어내는 눈과 미숙하나마 그 상황을 타파할 기술, 둘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부족했다면 화살들은 지금쯤 피맛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화살을 쳐내자마자 대략 열다 섯 명쯤 되는 정파인들이 우리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와아아!! 악적들! 죽어라!!"
정파인들이 벌써 따라왔다.
내가 화살을 쳐냄으로써 성녀의 안전을 확인한 공손혁 장로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놈들-!!!"
분노한 그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두 명의 정파인을 순식간에 불귀의 객으로 만들어 버렸다.
"으악!"
"크억!!"
하지만 정파인들의 반격도 만만치않았다.
"저 둘부터 인질로 잡아라!!"
그들은 우리 중에 공손혁 장로가 지키려는 자가 있음을 알아채고는 공손혁 장로가 아닌 우리에게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오히려 공손혁 장로가 당황 해 버렸다.
"이, 이런!"
공손혁 장로와 호위무사 진성이 필사적으로 움직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두 명만으로는 열 명이 넘는 인원을 막기는 벅찼던 것이다.
결국 나와 성녀에게 도달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나는 차가운 눈으로 심호흡을 했다.
이제 장삼의 탈을 쓰는 것은 반쯤 글렀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빠르게 저들을 없애는 쪽을 택했다.
'집중.'
기초지공인 초마권법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익힌 장삼에 비해 지금 우리에게 달려드는 정파인들은 무공을 전문적으로 익힌 무인들이었다.
그 격차를 경험과 [배를 센스]로 메워야 했다.
저들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들의 검이 그릴 검로가 느껴진다.
저 검로, 저 검이 그리는 선들은 죽음의 선이다.
저 선들이 내게 문을 열어주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
나는 [초마권법]의 기수식을 취한 채 때를 기다렸다.
아직은 아니다.
아직 아니다.
아직.
'지금.'
때가 오자마자 나는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진각을 밟았다.
쿵!
내 몸이 빠르게 쏘아져 나가 달려 오던 정파인들 둘의 검세(劍勢) 사이로 뛰어들었다.
"어멋!"
뒤에서 성녀의 놀람에 가득 찬 소리가 들려왔다.
무공이라고는 제대로 모르는 말단 교도이자 약초꾼인 내가 당장이라도 저들의 칼에 난도질을 당할 것처럼 보였으리라.
하지만 내게는 날아드는 칼날의 경로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내 몸은 유유히 칼날들 사이를 흘러들어 그들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헛!"
"이런?"
정파인들이 헛숨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경악한 그들이 몸을 빼려 했다.
'어딜.'
하지만 한번 잡은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나는 번개처럼 그들의 급소에 주먹을 날렸다.
퍼퍽!
놈들은 빳빳하게 굳은 채 신음도 지르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털썩털썩.
"후우."
나는 그들이 쓰러지고 나서야 마침내 날숨을 토해냈다.
"괜찮아요?"
성녀가 서둘러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괜찮습니다."
정확한 순간에 파고든 덕분에 옷깃하나 베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성녀가 살짝 감탄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소인, 그래도 틈틈이 무공연습을 했습죠."
얼마나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둘러대었다.
"장삼은 약초도 지리도 잘 아는데 무공까지 뛰어나군요. 장삼이야말로 우리 교의 숨겨진 보물이었네요."
무공을 잘 모르는 성녀는 내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제 진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둘을 처치한 사이에 공손혁 장로와 호위무사진성도 다른 정파인들을 모두 정리하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벌써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독한 놈들."
공손혁 장로가 다가오며 혀를 내둘렸다.
"놈들 중에 독물과 짐승들의 습성을 잘 아는 자가 있는 모양입니다요."
이건 나로서도 정말 의외인 상황이었다.
이곳에는 안내자인 내가 없으면 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정파인들이 이렇게나 빨리 추적해 오다니.
"정파 놈들이 준비를 단단히 했어. 그건 그렇고…… 자네."
올 것이 왔군.
"예?"
"자네의 움직임을 봤네."
나는 바짝 긴장했다.
"자네…… 그 움직임은 뭐지?"
그가 실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잠시 그의 눈을 말없이 마주 보았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머릿속을 팽팽 돌리며.
최후의 방법이었지만 그가 살수를 쓰려 한다면 '던전 탈출'을 외칠 의향도 있었다.
"그게……."
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을 이으려는데, 갑자기 공손혁 장로의 입가가 호선을 그리는 것이 아닌가?
"하하하! 대단하군!"
……뭥미?
"확실히 무공은 별 볼 일 없었어. 그런데 그 움직임은…… 순식간에 적들의 허실을 파악하는 눈썰미, 그리고 휘둘러지는 검로 속으로 뛰어 드는 대담함. 고작 초마권법으로 둘이나 쓰러뜨리다니. 무공을 계속했다면 뛰어난 무인이 되었겠어. 아깝군, 아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