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30 이 던전의 데이터베이스 정보에는, 사실 모순이 존재했다.
내공의 발전이 미약한 무림.
그리고 그곳에 등장한다고 한 뛰어난 내공심법.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가 한 던전 데이터베이스 내에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말은 곧 증기기관이 나오던 시대에 스마트폰이 등장했다는 말과 다름없는 진술이었다.
따라서 데이터베이스의 신뢰성에 의심이 간 나는 처음에는 이 던전은 선택에서 배제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냥 무시하기에는 이 던전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무공서의 가치가 굉장히 높았기 때문이다.
추후에 다른 던전을 통해 같은 이름의 무공이 등장했을 때 언커먼도, 래어도 아닌 '유니크' 등급의 판정을 받은 무공이었으니까.
희귀도가 무려 '유니크'인 무공서는 설령 던전시대 제3기라 해도 쉬이 얻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던전시대 초반에 유니크 무공을 얻었을 때의 기댓값은 상상을 초월하게 높았다.
데이터베이스의 정보가 사실이든 아니든 내가 이 던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다.
그런데 이 정도로 전체적인 내공의 수준이 낮으면 기록자의 말이 거짓 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무려 '유니크' 등급인 무공서가 내공 수준이 낮은 지금 시대에 만들어졌다?
의심이 갈 수밖에.
'이거이거, 슈리, 갈수록 확률이 낮아지네.'
[초기 기록일수록 검증이 안 된 내용들이 많으니 어쩔 수 없습니까. 어차피 이 근래 데이터베이스상 들어갈 던전은 여기밖에 없었잖아요?]
다른 들어가 볼 만한 던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시된 보상이 여기만큼 큰 곳은 찾기 힘들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일단 끝까지 가보자. 못 먹어도 고!'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공손 혁 장로가 적들을 모두 처치하고 돌아왔다.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우리 쪽에서 처음에 화살을 맞았던 호위무사가 죽은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추격자들이 피리를 불었다는 것이다.
곧 날파리들이 꼬일 터였다.
"이제 곧 추격망이 좁혀질 걸세. 길이 있나?"
공손혁 장로가 다급한 순간답지 않게 냉정한 눈으로 내게 물어왔다.
위급한 순간일수록 냉정을 잃지 않는 것.
말은 쉽지만 지키기 어려운 전장에서의 철칙이었다.
그런 의미에서나는 냉정하게 냉정 하지 않은 모습을 연기했다. 더 이상의 의심은 사양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제 곧 생로가 있습니다요."
"가세."
우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내가 생각한 생로(生路)가 눈앞에 드러났다.
'왔군. 붉은돌원숭이 군락지.'
앞서보다 높고 단단해 보이는 나무 들이 군집해 있는 숲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숲과 우리 사이로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곳을 건너서부터는 뛰면 안 됩니다. 기척을 죽이고 천천히 걸어가야 합니다요. 명심하십시오."
"왜지?"
"붉은돌원숭이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붉은돌원숭이.
장삼의 기억 속 괴생물이었다.
"붉은돌원숭이?"
공손혁 장로가 생소한 걸 들어본다는 듯 말했다.
"예, 이 나무들 위에 사는 놈들인데 아주 흉폭한 놈들입죠. 놈들의 영역부터는 기척을 죽이고 천천히 걸어가야 합니다."
"홍! 그까짓 원숭이들이 무서워서 말인가?"
"예, 장로님, 절 믿으셔야 합니다요. 여기서는 걸어야 합니다. 놈들은 그냥 원숭이들이 아닙니다. 설명은 가면서 하겠습니다요."
나는 말투와는 달리 흔들림 없는 눈으로 공손혁 장로를 마주 보았다.
"……이유가 하찮으면 각오하게."
허락의 표시였다.
일행 모두는 조심조심 강을 건녔다.
강물이 세서 성녀가 하마터면 넘어 질 뻔했으나, 호위무사 한 명이 무사히 잡아줘서 다행히 큰 사달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행이 무사히 강을 건너자, 나는 일행에게 말했다.
"지금부터는 제 뒤만 따라오십시오. 옆으로 조금이라도 길이 엇나갈 경우 봉변을 당할 겁니다."
일행은 내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잠시 동안 말없이 길을 걸었다.
내게 궁금함을 갖고 있을 이들조차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만큼 이 숲 속은 으스스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조금 걷자 그 으스스한 느낌의 정체가 드러났다.
붉은색 눈들이 나무 위에서 하나둘 씩 나타나 우리를 지켜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한시름 놓았다. 저놈들이 바로 달려들지 않는다는 건, 한고비를 넘겼다는 의미였으니까.
여유를 찾은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까 저놈들 이름이 붉은돌원숭이라고 말씀드렸지요?"
내 물음에 내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 공손혁 장로가 대답했다.
"……그랬지."
"왜 이름이 붉은돌원숭이인지 아십니까?"
"음, 서식지에 붉은색 돌들이 있나?"
내가 대답하려던 그때 뒤쪽에서 난데없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악!"
"뭐야, 이 돌들은!!"
"으악! 원숭이, 원숭이다!!"
우리를 추격해 온 정파인들이었다.
우리 일행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난 느긋한 태도로 일행을 제지했다.
"급히 움직이지 마십시오. 저 원숭이들을 자극하면 우리도 비명을 지르게 될 겁니다."
내 말에 일행이 살며시 굳힌 몸을 풀고 다시 조심조심 걷기 시작했다.
나는 공손혁 장로에게 하려던 말을 이어서 했다.
"저놈들의 이름이 붉은돌원숭이인 이유는, 저놈들이 돌을 사용해서입니다."
"돌을 사용한다고?"
"예, 그들의 사냥법입니다. 그들은 마음에 드는 크고 단단한 돌을 가지고 나무 위로 올라가 비축합니다. 그리고 사냥감이 나타나면 머리 위에 그 돌을 던져서 사냥감을 잡지요."
"그렇군. 그럼 붉은돌이라는 뜻은……."
"네, 추측하신 바가 맞습니다."
"……끔찍한 놈들이군."
[마스터, 전 모르겠습니다. 왜 붉은 돌이라는 건가요?]
가만히 듣고 있던 슈리가 궁금한지 물어왔다.
'슈리, 그건…… 돌에 피가 묻었기 때문이야.'
[피가요?]
'그래, 돌에 머리가 터진 사냥감들의 피가 묻어 붉은돌이된 것이지. 그래서 붉은돌원숭이야.'
[……으으, 흉악한 녀석들이군요.]
슈리가 진저리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일행을 안내하며 조용히 설명을 계속했다.
"놈들은 자신의 사냥감의 피가 묻은 돌을 모으길 좋아합니다요. 특히 돌이 핏빛을 띠어갈수록 더 좋아하죠"
"……."
"이놈들은 매우 호전적인 놈들이라 동족끼리도 영역을 구분 짓습니다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영역을 침범하면 전쟁이 벌어지죠. 제가 지금 안내하고 있는 길은 그 영역의 경계입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한 쪽으로 넘어가게 되면 우리는 놈들의 사냥감이 될 겁니다요. 그러니 절 잘 따라오십쇼."
"잘 알겠네만, 정파 놈들이 돌을 무시하고 달려서 우리를 추적하게 되면 어떡하나?"
공손혁 장로가 못내 걱정되는지 그렇게 물어왔다.
그런데 내가 직접 입으로 대답할 필요가 없어졌다.
뒤쪽에서 들리던 비명 소리가 어느 순간 거세어졌다.
"크아아아악!"
"이 원숭이 놈들이!!"
부스스스- 우리를 감시하던 붉은 눈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더니, 나무 위쪽이 흔들리며 놈들의 뒤쪽으로 이동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으아악!"
뒤쪽에서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가운데,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렇게 됩니다요."
"……어떻게 된 일인가?"
"장로님 말씀처럼 정파인들이 달려서 추적해 오기 시작한 겁지요. 저렇게 붉은돌원숭이들은 동족 전체의 위험으로 보고 힘을 모아 그들에게 총공격을 가합니다. 그땐 놈들이 돌을 던지는 동시에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육탄공격도 마다하지 않죠."
공손혁 장로와 호위무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이 보였다.
붉은돌원숭이들이 정파 무인들을 막아서지는 못할 테지만 한동안 시간을 벌어줄 터였다. 그사이 그들과의 거리를 벌려야 했다.
'내공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곳 무인들의 수준을 감안하면, 최소한 10분은 벌었어. 그사이 거리를 더벌려야 해.'
마물들이라 해도 고작 원숭이들이었다.
숙련된 다수의 무인을 상대로 그리 오랜 시간을 벌어주진 못할 터였다.
나는 지체 없이 기억 속에 있는 붉은돌원숭이들의 영역 경계 사이로 일행을 안내했다. 이 길은 내 머릿 속에 주입된 기억의 주인인 장삼 이외의 약초꾼은 전혀 모르는 길이었다. 아니, 장삼 외에는 그 누구도 모르는 길이었다.
애초에 이곳에 붉은돌원숭이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조차 극소수에 불과했다.
천마신교의 총단이 있는 이곳 천마봉은 일반인들은 천마신교라는 존재로 인해 발길을 들여놓지 않는 곳이었다. 특히 산 중턱에 있는 총단을 지나, 산 위까지 가본 자는 거의 없다시피했다.
그것은 천마신교의 교도들 또한 마찬가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천마 신교는 총단위쪽 산봉우리를 교도들에게조차 금지(禁地)로 지정하고 오직 장삼같이 허가받은 자들만이 출입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냥 그곳을 놀려두자니 천마봉에서는 영약으로 쓸 수 있는 온갖 기화이초(奇花異草)가 자생했다.
때문에 천마신교에서는 특별한 사람을 선별해서 그것들을 채취해 왔던 것이다.
장삼은 천마봉으로 발령받고 나서야 이곳이 왜 금지 구역인지 알 수 있었다.
양광(陽光)이 거셀수록 그림자가 짙어진다 했던가?
영험한 산기운 덕분인지 천마봉에는 각종 독물과 괴이한 짐승들이 가득했다.
저 붉은돌원숭이들은 약과라고 할 정도로 흉폭한 짐승들과 독을 품은 생물들이 많았는데, 보통은 그놈들을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치를 떨며 다시는 이곳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장삼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부여받은 임무를 너무나도 훌륭히 해냈다. 오히려 흥미를 느끼고 오랜 시간 동안 놈들의 습성을 파악, 마침내 천마봉에 사는 온갖 위험한 동물들의 영역을 지나는 방법을 알아내었던 것이다.
스무 살 초반에 유능한 약초꾼으로 인정받고 천마신교로부터 금지의 출입을 허가받은 장삼은, 조심스럽고 치밀한 연구를 통해 차츰차츰 독극물들의 영역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방법들을 마련해 나갔다.
그리고 삼십 세가 되어갈 즈음에는 천마봉을 비롯한 그 인근 모든 봉우리를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유일한 자가 되어 있었다.
던전에 들어을 때의 설명처럼 장삼은 천마신교의 말단 교도가 맞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유능하고 특별한 말단 교도였던 것이다.
나를 보는 우리 일행의 눈가에 신뢰가 깃드는 것이 보였다. 믿음을 얻은 것이다.
'됐어, 두 번째 단추도 잘 꿰었어.'
나는 성녀를 흘끗 보고 다시 안내를 이어갔다.
내 안내로 우리는 마침내 무사히 붉은돌원숭이의 영역을 빠져나왔다. 뒤쪽 숲에서는 여전히 비명과 고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붉은돌원숭이들과 정파인들이 사투를 벌이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산길을 십여 분간을 달려 올랐다.
'지금쯤 정파인들이 원숭이들의 영역을 벗어났겠군.'
그렇게 생각할 즈음 두 번째 목적지가 나타났다.
"잠시! 이곳부터는 이것을 품속에 넣고 달리십시오."
나는 짊어지고 있던 망태기 속에서 가죽으로 둘둘 감싼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 가죽을 펴보았다. 그곳에서 드러난 것은…….
"꽃……?"
하얗고 커다란 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