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28 -던전 이름 : 몰락하는 천마신교 -장르 : 무협 내 [하늘의 눈]의 능력치가 낮기 때문인지 고작 이 정도 정보밖에 표시되지 않았다.
'그래도 20까지는 올려놨는데도 이 정도군.'
남아 있는 카르마 포인트로 스킬의 능력치를 조금 더 올릴까 고민했지만, 그러지는 않기로 했다.
이제까지 포인트를 아껴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따가 이 던전 내에서 무언가를 구매하는데 막대한 포인트를 사용 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얻고 싶다, 그 아이템! 머스트 해브 잇!'
솔직히 여기서 내가 노리는 '그 무공'을 얻을 수 있으리란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도전조차 해보지 않으면 과실은 손에 들어오지 않는 법.
나는 던전으로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 * * [던전 '몰락하는 천마신교'에 입장 하셨습니다.]
[스테이지 설명을 시작합니다.]
[천마신교는 한때 무림 최고의 세력이었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강자인 천마와 그를 추종하는 교도들은 오직 힘을 추구하는 패도적인 성향을 바탕으로 천마신교는 중원 무림을 휩쓸었습니다. 그에 위기를 느낀 정파 무림의 최강자들이 모여 천마를 합공했으나, 천마는 너무나 손쉽게 그들의 합공을 막아내고 그들을 도륙했습니다. 정파인들은 너무도 강력한 천마의 무공 아래 숨을 죽이고 웅크렸고, 천마신교는 무림을 통일 직전까지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천마는 무림에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천마가 사라진 천마신교는 분열을 거듭해가 다 예전의 성세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몰락하기에 이르렸습니다. 정파 무림인들은 너무나 커다란 적인 천마신교를 멸망시킬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파무림맹'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힘을 모아 천마신교의 본산을 침공했습니다.]
[던전의 첫 입장자로서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두 가지 역할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1.천마신교의 말단 교도 2.정파의 후기지수 멸망해 가는 천마신교의, 그것도 말단 교도.
그리고 떡고물 가득할 천마신교로 쳐들어가는 정파의, 그것도 후기지수、 후기지수라 하면 유망주를 말한다.
아무리 봐도 선택지가 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보인다.
이 선택지만 보아서는 누구라도 2 번을 고를 것이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1번 고를게."
[1 번 천마신교의 말단 교도를 선택 하셨습니다. 맞습니까?]
"응."
던전에서는 항상 하이 리스크를 짊어지면, 그에 맞는 하이 리턴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을.
또 한 가지.
천마신교는 한때 전 무림을 휩쓸었던 만큼, 중원에 존재하는 많은 보물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천마신교가 몰락하는 이때라면, 눈 앞에 눈먼 보물들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라면 밖에서 쳐들어오는 정파 무림인보다 천마신교 내부의 교도가 되는 것이 그 보물들을 차지할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안정적인 리턴을 얻을 것 같은 2 번에 비해 1번도 결코 손해 보는 선택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막연한 가능성을 믿고 1번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보다 훨씬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
[천마신교의 성녀(聖女)를 그녀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호위하십시오.]
[성공 보상 : 성녀의 보답. 성녀의 만족도가 높을수록 좋은 보답을 받습니다.]
[실패 조건 : 모험가님 혹은 성녀의 사망]
[주의 사항 : 사망 시 현실 세계에서도 사망합니다. 주의하십시오. 다만 '던전 탈출'을 외치면 즉시던전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이번 던전의 퀘스트가 등장했다. 성녀 호위.
이것 역시 이미 숙지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데이터베이스에서 읽고 왔던 것이다.
하지만 성녀에게는 미안하게 되었다.
내 이번 목표는 떡보다는 떡고물에 있었으니.
나는 퀘스트 보상보다는 전생에서 이 던전을 경험한 각성자가 얻었다는 '기연'을 얻을 예정이었다.
이 던전을 경험했던 헌터는 임무 실패의 위기에서 기연으로 한 가지 무공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의 경험은 데이터베이스에 그대로 기록되었고, 이제 그 무공을 얻기 위한 도전은 내 차지가 되었다.
[스테이지의 배경과 맞지 않는 스킬과 아이템을 배제합니다. 해당 스킬과 아이템은 던전 퇴장 시 다시 습득할 수 있습니다.]
['디바이스 컨트롤' 스킬이 배제되었습니다.]
[던전 특전으로 '초마권법(初魔聲 法)'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해당 스킬은 던전 퇴장 시 사라집니다.]
예상대로 [디바이스 컨트롤]의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오리지널 무협 던전에 기계를 다루는 스킬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겠지.
[육체와 기억이 보정됩니다.]
[모험가님의 행운을 빕니다.]
기나긴 스테이지 설명이 끝났다.
그리고, '으 , 온몸이 뒤틀리는 감각.
[육체 보정]이었다.
그와 동시에 약간의 두통이 일며 어떤 기억이 내게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억 보정]이었다.
[육체 보정]과 [기억 보정]은 롤플레잉 요소가 있는 던전에서 종종 등장하는 시스템 보정으로, 내가 아닌 어떤 특정 '캐릭터'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육체 와 기억이 그에 맞게 보정되는 것이다.
낯선 기억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형제들과 쌀 한 톨을 다투었던 굶주린 어린 시절의 기억.
돈 몇 푼에 낯선 자들에게 팔려 천마신교로 들어온 기억.
그들에게 교화(敎化)된 충실한 교도로서 매일 기도를 올리던 기억.
무공을 배웠으나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기억.
천마신교의 총단 근처 산속에서 생활하며 신교에 약초를 캐 바치고, 때때로 마을로 내려가 생필품을 조달하던 기억.
어느 날 갑자기 총단으로 소집되어 간 기억.
그리고 무서운 정파인들이 천마신교의 본산으로 침공해 오는 기억. 이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장삼.
기억의 주인의 이름이었다.
그는 말단 교도라는 직책답게 무공이라고는 천마신교에 입문한 자라면 누구나 배우는 '초마권법(初嫌準法)' 밖에 배우지 못한 평범한 교도였다.
초마권법을 배우며 무공에는 재능이 없다고 판단되어 약초를 캐 바치는 한미한 직책으로 밀려난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전 생애에 걸친 모든 기억이 머릿속으로 빨려듦과 동시에 나는 눈을 떴다.
약간 어질한 가운데 초점이 잡혀갔다.
누군가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차갑고 완고해 보이는 눈동자였다.
"자네가 장삼인가?"
나를 노려보는 눈동자처럼 차가운 목소리였다.
최초의 던전 때와 마찬가지로 생소한 언어가 저절로 통역이 되어 들려온다.
중국어와 비슷한 언어였다.
심지어 '천마신교'라는 키워드를 떠올리자 그와 관련된 교리나 인물 지식 등이 저절로 떠오른다.
장삼의 기억 덕이었다.
눈앞의 인물이 누군인지도 알 수 있었다.
호법장로 냉혈검마(冷血劍魔) 공손혁.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천마신교 최고수 중 한 명이었다.
"……예."
나는 머릿속에 폭풍처럼 몰아치는 기억을 수습하며 공손혁 장로의 물음에 대답했다.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내색할 필요는 없었다.
나를 탐색하듯 이리저리 살펴보던 호법장로 공손혁이 말했다.
"자네가 이 주변 지리에 달통했다 듣긴 했네. 길안내를 해줄 수 있나?"
그렇게 듣긴 했는데 과연 너를 믿고 길안내를 맡겨도 되나 의심스럽다는 말투였다.
상당히 꼬장꼬장한 늙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부탁을 하면서 이런 고압적인 자세 라니.
어쨌든 나는 공손혁 장로의 말에 이 주변 지리를 떠올려 보았다.
약초를 캐러 다니며 익힌 주변의 모든 산의 지리는 손바닥의 손금 보듯 훤히 떠오르며, 마을로 가는 최적의 경로 또한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정말 빈말이 아니라, 이곳 주변은 장삼, 아니, 나보다 나은 안내자는 찾기 힘들 것이었다.
"왜 대답이 없지? 길안내에 자신이 없나? 자네 말고도 사람이 있으니 자신 없으면 빨리 말하게나."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잠시 시간을 지체했더니 더욱 냉혹한 목소리가 되돌아온다.
살짝 짜증마저 뒤섞인 목소리.
그러나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섣부르게 대답해서 첫 단추가 꼬이면 오히려 더 피곤해진다.
한 단계가 더 필요했다.
내게 견고한 가면을 씌우는 작업.
나는 장삼의 기억을 떠올리는 동시에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장삼이다, 나는 장삼이다.'
그리고 장삼의 미소를 지었다.
"헤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로님. 이 주변은 지도보다 제가 훨씬 나을 겁니다요."
내 목에서 생소한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장삼의 몸짓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손은 어느새 파리처럼 양손을 샤샤삭 비비고 있었다.
"흐음, 그래?"
대답이 느린 게 마음이 안 들었던 지 공손혁 장로로부터 조금 미심쩍다는 반응이 되돌아왔다.
"예, 혹시라도 제대로 길안내를 못한다면 그 자리에서 목을 치셔도 달게 받겠습니다요."
어차피 길안내를 잘못하면 던전 탈출을 하면 되니 그냥 마구 던졌다.
이 정도로 저 노인네의 환심을 살 수 있다면 매우 값싼 거래였다.
굽신굽신.
연신 허리를 숙이면서도 손을 잽싸 게 비비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스터, 손에 불나겠습니다.]
'그래? 조금 더 비벼서 불 좀 내볼까? 아부의 극의에 이르렸다며 저노인네가 감동할 거 같은데.'
"흠, 알겠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한번 믿어보지."
옛말에 오가는 아부 속에 정이 싹 튼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었다.
특히 상사에게 하는 아부는 아무리 많이해도 결코 넘치지 않는 법이라 했다.
"그러믄요,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요! 헤헤헤."
나는 첫 단추를 잘 끼운 이 순간에도 메소드 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게 길안내를 부탁한 공손혁 장로에게 물었다.
"한데 어디까지 가십니까요?"
내 질문에 공손혁 장로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화련성 비밀 분타가 어떻습니까, 성녀님?"
공손혁 장로가 내게서 시선을 떼고 나서야 내 시선도 마침내 여유를 얻었다. 지금까지는 눈앞의 공손혁 장로라는 난관에 집중하는 바람에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공손혁 장로를 따라 이동한 내 시선에는 새하얀 면사를 얼굴 앞에 두른 횐옷의 여인이 있었다.
그녀가 입은 횐색 경장은 차디찬 천마봉의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하늘하늘하고 얇은 재질이었다.
특히 팔 부분의 천은 반투명하여 그녀의 눈꽃처럼 새하얀 살결이 반 투명한 천 너머로 비쳐 보였다.
움직이기 쉬운 경장(輕裝)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신분을 나타내듯 재질 좋은 비단으로 명인이 만들어 낸 듯 기품이 묻어나는 옷이었다.
아니, 기품은 그녀의 옷이 아니라 그녀라는 존재 자체에서 묻어나고 있었다.
공손혁 장로의 물음에 조용히 끄덕여지는 고갯짓 하나에도 범접할 수 없는 기품과 단아함이 배어 있었다.
'와, 예쁘다.'
나는 저절로 벌어지려는 입을 의식적으로 다물었다.
얼굴을 보지는 못했으나 행동 하나 만으로도 이토록 아름다움을 주는 여인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성녀의 뒤에는 세 명의 호위무사가 그녀를 호위하듯 시립해 있었다.
성녀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던전지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퀘스트 목적지가 '천마신교 화련성 비밀 분타'로 설정되었습니다.]
"그럼 화련성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어떤가, 가능하겠나?"
공손혁 장로가 다시 내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가 말한 화련성은 이곳, 산속에 위치한 천마신교의 총단에서 가장 가까운 성이었다.
"예예, 물론입지요! 맡겨만 주십시오!"
나는 성녀에게서 눈을 떼며 다시 공손혁 장로에게 굽신거렸다.
당장 화련성으로 향하는 길이 열 개도 넘게 떠올랐다.
"대답 하나는 자신만만해서 좋군. 근데 자네도 알아둬야 할게 있네. 정파 놈들이 산 전체에 걸쳐 천라지망(天羅地網)이 펼쳐놨을 걸세. 따라서 다들 알 만한 길로 가면 안 되네."
천라지망은 정파에서 자랑하는 포위망이다.
오죽하면 하늘과 땅으로 그물을 짰다고 하겠는가.
나는 장로의 말에 고민하는 척 하다 대답했다.
"그럼 한 가지 길만 남는군요. 천마봉을 올라 절벽 뒤의 길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요."
"절벽…… 뒤에도 길이 있나?"
장로가 처음 들어본다는 듯 물었다.
당연하다. 그곳은 장삼, 아니, 나밖에 모르는 길이었으니까.
"예, 그쪽으로 가는 길은 포위망이 쳐져 있지 않을 겁니다. 확신합니다요."
"좋아, 길안내는 전적으로 자네에게 맡기기로 하겠네."
공손혁 장로가 재빠르게 움직여 창 문을 열어 밖을 살펴보았다.
그가 연 창문 틈 사이로 바깥의 광경이 보였다.
"크악!"
"으아악!!"
바깥의 광경은 참혹했다.
거기에는 총단 내로 들어온 정파인들과 마교인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곳은 성녀가 기거하는 천마성전 (天魔聖殿)이었는데, 지대가 상당히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총단의 전투 상황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덕분에 마교 측의 전선이 형편없이 밀리고 있는 모습을 훤하게 볼 수 있었다.
"찢어 죽일 것들. 벌써 여기까지 밀렸군."
근엄해 보이기만 하던 공손혁 장로의 입에서 쌍소리가 흘러나왔다.
"빨리 출발하지."
그 말을 하며 공손혁 장로가 근처에 있던 그림을 옆으로 젖힌 다음 그 뒤의 벽을 몇 군데 두드렸다.
기관이 발동되는 소리와 함께 벽에 어두컴컴한 통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비밀통로였다.
"시간이 없네. 빨리! 성녀님, 죄송 하지만 제게 업히셔야겠습니다."
"알겠어요."
성녀가 제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조용하지만 은구슬 굴러가듯 청아 한 목소리였다.
이쯤 되니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다.
[마스터, 총각 티 그만 내고 어서 뒤따르시죠. 다들 이미 통로로 들어 섰습니다.]
'그래.'
나도 슈리의 말대로 부랴부랴 일어서 비밀통로로 향했다.
나와 공손혁 장로, 성녀와 호위무사 셋, 총 여섯이 들어서자 비밀통로의 문이 드드득 소리를 내며 다시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