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26 쿠르르르- 쾅!!
우르르 떨리던 땅바닥이 마침내 터져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거대한 손이 빠져나왔다.
사람을 감아렬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손.
특이하게도 그 손은 온통 거무튀튀한 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수도로 흐르던 물이 몸에 스며들었는지, 그 손으로부터 지독한 악취가 퍼지기 시작했다.
손에 이어 어깨가 빠져나왔다.
물로 이루어진 괴물이 땅에 뚫린 구덩이에서 몸을 빼낼수록 구멍으로 부터 구정물이 범람하듯 흘러넘쳤다.
삽시간에 도로변에 악취로 가득한 물이 흘러넘쳤다.
그리고 마침내 건물 3층 높이에 달하는 놈의 상반신이 땅바닥을 빠져나왔다.
"꺄아아아악!"
"으아악, 뭐야!!"
"모, 몬스터?"
그 광경을 목도한 사람들이 사방팔 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몬스터는 사방팔방으로 손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잡아채려 버둥거렸다.
나는 [하늘의 눈]을 사용해 녀석을 살펴봤다.
-이름 : 엘리멘탈 골렘 -특징 : 수속성 골치 아픈 상대가 등장했다.
저놈, 마법에는 취약한 대신 물리 내성을 가진 놈이었다.
"으아아악!"
던전 재해에 익숙해진 덕인지 사람들은 대부분 비교적 잘 도망쳤다.
그러나 도망치는데 실패한 자들도 있었다. 바로 지척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그만 당황해 버린 한서후와 경찰관이었다.
그들을 발견한 엘리멘탈 골렘이 땅 바닥을 빠져나오다 말고 하수도 구정물로 이루어진 손을 들어 올렸다.
한서후는 그 모습을 멍하니 올려다 보다가 목검을 단단히 잡고 들어 올렸다.
놈에게 맞서려는 것이다.
'저 멍청이가!!'
나는 재빨리 땅을 박찼다.
* * * 민주일보 김태나 기자는 한숨을 쉬며 터덜터덜 걷는 중이었다.
그때 최초의 던전에서 나온 각성자를 추적하다가 그만 한계에 부딪치고 만 것이다. 뒷돈까지 뿌리며 CCTV를 확인해서 그가 움직인 경로를 추적했는데, 그만 흔적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그는 용의주도하게도 중간에 입고 있던 후드티를 쓰레기통에 버려 버렸다. 안에 다른 옷을 입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더 이상 CCTV로 추적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쉽다. 쩝.'
왠지 그에게서는 다른 최후의 4인 보다 더 강렬한 느낌이 왔는데, 이제는 포기할 때가 됐나 보다.
"비켜!!"
"아아악!!"
그렇게 터덜터덜 걷던 그녀의 눈앞에 마침 사건이 벌어졌다.
각성자인 듯 보이는 은행 강도가 사람들을 날려 버리며 도망가고 있었는데, 국민 스타 한서후가 그와 부딪친 것이다!
그녀는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 그 장면을 촬영했다.
과연 한서후는 요즘 주가를 올리는 그 명성답게 단숨에 은행 강도를 때려잡았다.
여기까지만 해도 요 며칠 허탕 친 것을 만회할 만큼의 특종거리였다.
그런데 더 큰 특종거리는 다음에 일어났다.
우르르르르- 쿵!
지축이 울리더니 거기에서 거대한 물로 이루어진 괴물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비명을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곳에 계속 있다간 저 괴물에 의해 비명횡 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발걸음을 멈췄다. 직업병이 발동한 것이다.
'저런 특종거리를 내버려 두고 도망갈 순 없어.'
그녀는 들고 있던 카메라를 꾸욱 움켜쥐었다.
'이러다 제명에 못 죽지.'
그리고 입술을 깨물며 뒤로 돌아섰다.
* * * 한서후는 내려쳐 오는 괴물의 손을, 굳게 쥔 손으로 맞받아쳐 갔다.
놈이 손을 내려치는 순간, 뒤에 경찰관이 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친 것이다. 자신은 피할 수 있으나 그렇게 되면 경찰관이 저 손에 곤죽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놈의 손이 다가올수록 잘못 된 판단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게 아닌데.'
차라리 저 경찰관을 들고 재빨리 자리를 이탈했어야 했다.
저 손에 담긴 힘은 지금 자신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내려쳐 오는 손을 보고야 알았다.
저 손을 맞받는 순간 목검이 부러지고 자신의 온몸이 박살 나는 장면이 그려졌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괴물의 손이 그림자처럼 머리 위로 드리워졌다.
쾅!!!
괴물의 손이 땅바닥에 닿으며 굉음이 울렸다.
가까운 건물의 유리창이 터져 나갔다.
"끄응……."
한서후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통증이 이는 옆구리를 짚었다.
괴물 놈의 손에 터져 나갔어야 할 몸이 멀쩡했다.
괴물과 목도를 부딪치려는 순간 누군가 자신의 옆구리를 엄청난 속도로 낚아채 괴물과 떨어진 위치에 내려다 놓은 것이다.
볼품없이 주저앉아 있는 자신의 옆에는 예의 경찰관도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기절해 있는 듯 보였다.
"야, 이 멍청아."
한서후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웬 마스크를 쓴 남자가 한심하단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다 놓은 자, 아니,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자였다.
"어떻게 저기에 맞설 생각을 하냐? 검기도 못 뽑는 애송이 주제에. 네가 불사신이냐?"
그는 혀를 쯧쯧 찼다.
"다음부터는 상대 좀 보고 덤벼라. 너 그러다 죽었었어, 인마."
'내가 죽었었다고?'
한서후가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괴한을 보며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사이, 괴한은 쓰러져 있는 경찰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기절한 경찰관의 품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 들었다.
"경찰 아저씨 총은 처음 써보는군."
그는 리볼버에서 총알을 빼내어 확인해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실탄이 다섯 발이라……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그가 중얼거리는 게 들려왔다.
"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해야지."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물로 이루어진 괴물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사이 물로 이루어진 괴물은 마침내 다리 끝까지 지상 위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도로에 올라선 괴물의 키는 6층 높이. 거대한 땅그림자가 도로변에 드리웠다.
"후, 어쩔 수 없지. 야, 넌 가까이 오지 말고 거기서 쉬고 있어라."
정체불명의 청년이 한서후에게 말했다.
한서후는 고작 권총 한 정을 들고 괴물에게 맞서는 그 모습이 무모해 보였다.
목검을 들고 괴물에 맞서려던 자신 보다 더.
그러나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뒤돌아서는 그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너무나도 든든해 보였다.
* * * [가자고, 슈리.]
'네, 마스터.'
한서후와 경찰관을 구해준 나는 엘리멘탈 골렘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일단 한 발을 놈에게 발사했다.
탕!!!
도망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던 골렘이 갑자기 울린 굉음에 이쪽을 돌아보는 것이 보였다.
경찰관의 총에 든 첫 발은 역시 공포탄이었다.
사람들에게 향한 놈의 주의를 내게 붙잡아두기 위해 쏜 것이다.
이제 앞으로 남은 실탄은 다섯 발.
'슈리, 총기 변신 쓸 수 있어?'
[부품이 제한적이라 힘듭니다. 미래의 총기를 로드(Load)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부품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뭐야? 그것만 믿었는데. 저 놈 일반 탄환은 안 통한단 말이다!'
최초의 던전에서 나오고 나와 슈리는 내 스킬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그러다 알아낸 것이 [마스터피스]로 가능한 총기 변신은 쿨타임이 24시간이란 것이었다.
지난 총기 변신 실험은 24시간 전에 했기 때문에 나는 그걸로 저 괴물 놈을 쓰러뜨리고자 한 건데, 그게 안 된단다.
'끄응, 그럼 좀 힘든데.'
놈은 방치된 던전에서 빠져나온 보스 몬스터로 보였다.
아마 지하수로 어딘가에 던전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발견되지 않고 있었는데, 그사이 일주일이 흘러버린 모양이었다.
엘리멘탈 골렘은 최초의 던전의 마더로 치면 약 3단계 마더쯤 되는 놈이었다.
즉 내겐 그리 강하지 않은 놈이라는 뜻이다.
강하지 않은 놈답게 속도는 느려서 -그건 어디까지나 민첩 40인 내 기준에서지만- 나는 어렵지 않게 놈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도망 다니고 있었다.
[꼭 톰과 제리 같네요, 마스터.]
'너 그건 또 어떻게 아냐?'
[인터넷 TV로 봤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불행하게도 이놈에게는 일반적인 총알이 안 통한단 것이다. 이놈은 마법에는 사정없이 약한 대신 물리 공격에는 꽤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가장 흔한 마법 중 하나인 파이어볼을 쓸 줄 아는 마법사만한 명 있었어도, 이놈을 잡기가 훨씬 수월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주위에는 안타깝게도 마법을 쓰는 각성자가 없었다.
마법으로 공략하면 고작 세 번째 네임드 정도의 난이도밖에 안 되는 녀석이, 물리 내성이란 속성을 가짐으로써 난이도가 두 단계는 올라 버렸다.
탕!!
나는 한 발의 총알을 녀석의 머리로 날렸다.
총알은 그냥 물에 총을 쏜 듯 놈의 머리를 통과해 버렸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진 않았다. 날파리처럼 도망 다니는 나에 대한 흥미를 잃고 다른 사람에게로 주의를 돌리려던 놈이 다시 나를 잡으려쫓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놈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버리면 엄청난 피해가 생길 터였다.
'그렇게 되기 전에 어떻게든 수를 내야 하는데.'
도망 다니며 놈을 상대할 수를 생각해 내는데, 계속 놈이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려 하길래 두 발의 총알을 더 사용했다.
이제 두 발의 총알이 남았다.
슬슬 조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놈이 풀려나면 나는 괜찮았지만 사람들이 다칠 터였다.
'끙, 저놈에게 타격을 주려면 총탄에 마력을 실어야 되는데, 무슨 방법이 없나?'
마력을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려면 반드시 마력 컨트롤에 특화된 스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마법이나 무공.
아무리 지금의 내 마력 컨트롤이 뛰어나다 해도 스킬의 도움 없이 탄환에 마력을 싣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슈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마스터.]
'응?'
[총기 변신은 안 되지만, 다른 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뭔데?'
[총의 속성을 변환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지금 슈리가, 이 평범한 총을 마총 (魔總)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 건가?
마총(嫌總)이란 마법의 힘이 담긴 총으로, 저 골렘에게 유효타를 날릴 수 있는 아티팩트였다!
'그걸 왜 지금 말해!'
[안 물어보셨잖아요. 그리고 사실 그게 가능하단 걸 저도 지금 알았습니다.]
슈리의 정체가 뭔지 또 궁금해진다.
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걸까?
'당장 해줘! 화속성으로 가능해?'
말을 꺼낸 순간 내가 든 총이 붉은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총을 든 오른손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됐습니다.]
'오케이, 땡큐!'
나는 붉은색으로 빛나는 리볼버의 탄환을 발사했다.
탕!
총알이 골렘의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골렘이 지금까지와 달리 크게 주춤 하는 것이 보였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타격을 받은 모양이다.
'오케이, 먹힌다!'
치명타는 아니었지만 유효타라는 게 확인된 이상 이 녀석은 이제 내밥이다.
나는 놈의 주위를 뱅뱅 돌며 놈의 공격을 피해만 다녔다.
놈의 약점인 '그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모든 골렘은 공통적으로 약점이 있었다. 체내 어딘가에 몸체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헌터들은 그것을 골렘의 핵(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찾았다!'
내 눈이 놈의 다리 부분의 살짝 튀어나온 그것을 포착한 순간 총알을 발사했다.
총탄이 간단하게 핵을 가르고 지나갔다.
픽!
자그마한 소리와 함께 이리저리 날 뛰던 엘리멘탈 골렘의 동작이 정지 하더니, 좌아악!
그대로 물줄기가 되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