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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25 세상의 흐름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25/215)

  기계신과 함께 025 세상의 흐름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던전들이 세계 각지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었으며, 그만큼 많은 각성자들이 탄생하고 있었다.

  던전이 등장한 초기에 세상은 마치 당장에라도 멸망할 것처럼 극도의 혼란으로 치달았다.

  특히 던전에서 몬스터들이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로, 던전이 등장하면 그 근방은 큰 혼란이 일었다.

  실제로 코볼트나 오크, 좀비나 요괴 같은 괴물들이 세계 곳곳에서 출몰해 사람들을 죽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혹여 몬스터가 등장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그런 일이 반복되자 국가 기능은 마비될 지경에 이르렸다.

  그러나 사회안전망이 던전 재해를 막는 것에 중점을 두고 빠르게 재편 되어가며 그 혼란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국가는 몬스터와 몬스터를 뱉어내는 던전을 없애는 것에 모든 총력을 기울였으며, 특히 각성자들이 점점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거리를 떠도는 몬스터들은 사라지고 치안이 안정되어 갔다.

  세계의 기업들은 앞다투어 각성자들을 영입했고, 뜻있는 각성자들은 힘을 모아 클랜과 길드를 결성해 나갔다. 그리고 각성자들이 모여 조직을 갖추어가며 사회는 더욱 빠르게 던전 시대에 익숙해져 갔다.

  인간들은 어느새 던전이 등장하는 일상에 적응했고, 사람들은 다시 자신들의 일터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뭐든 그렇듯,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몬스터, 그리고 각성자와 관련된 사건 사고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비켜!!!"

  "꺄아아악!"

  "으아아악!"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근처에 볼일을 보러 가던 내 앞 저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녀석은 유도깨나 한 것 같은 우람한 덩치로 마치 코뿔소처럼 돌진하며 사람들을 어깨와 팔 등으로 밀쳐서 '날려' 버렸다.

  각성자였다.

  지금 세상을 혼란으로 물들이고 있는 것은 두 가지 부류가 있었다.

  던전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

  그리고 저놈처럼 갑자기 책임 없는 힘을 얻어버린 각성자들.

  "아악!!"

  "으아아악!!"

  놈의 어깨와 팔 등에 부딪쳐 사람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저 멀리 보이는 은행의 문이 통째로 부서져 있는 것을 보니 무슨 일 인지 알 것 같았다.

  불행하게도 놈은 내가 걸어가는 정면에서 날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전력을 다해 달려오는 놈이 눈을 부릅뜨고 날 노려보았다.

  정면에서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며 여유롭게 걸어오는 내가 심히 눈에 거슬렸나 보다.

  나도 놈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고 걸으면서 슬슬 다리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이 지척으로 다가선 순간!

  폴짝!

  옆의 건물 입구로 뛰어 길을 비켜 주었다.

  녀석이 지나가며 얼빠진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녀석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픽!!

  그런데 잘 달려가던 놈은 갑자기 옆에서 날아온 목도(木刀)에 무릎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말았다.

  "크윽!!"

  무릎을 맞고 넘어진 그가, 달리던 속도를 못 이기고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어떤 새끼야!!"

  놈이 일어서며 자신에게 목도를 휘둘러댄 상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런, 고양이에게 생선이 맡겨져 버렸군요. 자격 없는 자가 힘을 가지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죠."

  놈의 무릎에 일격을 선사한 것은 금발 머리의 주위를 환하게 만드는 미남이었다.

  180이 넘는 키에 팔다리가 길어얼핏 보면 마른 것 같은 체형이었지만 티셔츠 밖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근육의 결이, 그가 극한으로 신체를 단련한 자임을 짐작케 했다.

  "어머!"

  "저거 한서후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와, 대박이다!"

  곳곳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꽤나 잘 알려진 유명인이었기 때문이다.

  '한서후였어?'

  한서후.

  세계검도선수권대회 4년 연속 우승자이자 본국검의 달인.

  각성자가 되기 이전에도 타고난 외모와 깔끔한 성격에 더해 실력까지 갖춘 대한민국의 엄친아, 온 국민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국민스타였다.

  게다가 각성자가 됐다고 알려진 지금은 국민들로부터 한층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나는 던전을 나와 습득한 [하늘의 눈]으로 한서후를 살펴봤다.

  -이름 : 한서후 -특징 : 각성자 '아직은 이 정도밖에 안 보이네.'

  쩝 하고 입맛을 다신 나는 아쉬움을 달랬다.

  스킬 능력치가 낮다 보니 그의 이름과 그가 각성자란 것을 확인시켜 주는 정보밖에 안 보였다.

  '뒤에서 지금 기준으로 꽤나 강렬한 각성자의 기운이 느껴진다 했는데, 알고 보니 꽤나 거물이었잖아?'

  걸어오면서도 계속 신경 쓰였는데 정체를 알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거물입니까? 잘 모르겠습니다만.]

  '응, 넌 모르겠지만 내 전생에는 헌터로서 꽤 잘나가던 녀석이었어. 안타깝게도 죽었지만.'

  [거물이라기에는 기운이 너무 약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 시기에 저 정도면 되게 센 거지.'

  [그럼 마스터는 엄청나게 강한 거 군요.]

  모든 각성자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 정도의 아우라를 퍼뜨리게 마련이었다.

  이는 '마력'이란 스텟을 얻음으로 써 몸에서 흘러나오는 일종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었는데, 마력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들은 대체로 이 아우라를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아직은 힘을 통제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기운을 느끼는 것이 주변의 각성자의 존재를 감지하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 되고는 했다.

  그래서 한서후 같은 각성자를 미리 탐지하는 게 가능했던 거고.

  반대로 한서후는 날 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마력을 통제할 줄 알거든.

  어쨌든 안 그래도 뒤쪽에 초반치고는 상당히 강렬한 아우라를 가진 녀석이 있어서 신경 쓰이던 참이었는데, 마침 앞에서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뛰어오는 것을 보고는 옳다구나 하고 떠넘겨 버렸다.

  남들 앞에 얼굴 팔리기 싫기도 했고.

  "X 발!"

  넘어져 있던 은행 강도는 그가 한 서후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욕설을 내뱉으며 일어섰다.

  그렇게 굴렀음에도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해 보였다.

  육체가 상당히 튼튼해진 걸로 보아 어쩌면 [최초의 던전]에서 얻었던 스킬인 [아드레날린 러시] 같은 종류의 스킬을 익히고 있는지도 몰랐다.

  "네가 X발, 한서후라 이거지?"

  놈도 상대가 누군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평소에 그 잘난 면상 한번 긁어주고 싶었는데 마침 잘됐다니 으라앗!!"

  우지직- 열이 받을 대로 받은 놈은 아예 도로변의 철제 펜스를 통째로 뜯어 내 그것을 한서후에게 휘둘러 갔다.

  "죽어!!!"

  일반인이라면 한 방에 뼈가 바스라질 만한 위력.

  그러나 한서후의 대응은 간단했다.

  손에 든 목검으로 그것을 맞받아쳐 간 것이다.

  "꺄악!"

  그 모습을 보던 일반인들은 그만 눈을 가려 버렸다.

  거대한 데다 강제로 뜯겨 날카로운 철근에 한서후가 찢겨 나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서후는 철근을 목검으로 막았고, 카카카칵!

  그것을 놀라운 기교로 흘려내 버렸다.

  네 량의 힘으로 천 근의 힘을 흘려내는 수법.

  '사량발천근(四 兩換千斤)?'

  놀라웠다.

  아무리 각성자라고 해도 벌써부터 저 무공의 묘리(妙理)를 터득한 이가 있다니.

  '천재는 천재야.'

  철근을 간단히 홀려내 버린 한서후는 번개 같은 속도로 검을 휘둘러 은행 강도의 머리를 노렸다.

  은행 강도는 황급히 철근을 던져 버리고는 팔을 강철같이 강화하며 목검을 맞받아쳐 갔다.

  우득우득- 놈의 팔이 무슨 철근처럼 딱딱해지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한서후의 목검이라도 저 가드에는 막힐 수밖에 없을 터.

  그러나 목검 공격은 한서후의 페이 크였다.

  놈의 팔을 향해 가던 목검이 돌연 사라져 버렸다.

  대신 은행 강도의 턱밑으로 한서후의 발차기가 날카롭게 쑤셔박혔다.

  은행 강도는 시야가 가려져 있었던데다, 설마 검도 선수가 발기술을 걸어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미처 그것을 피하지 못했다.

  퍽!!

  턱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녀석은 훨훨 날아 바닥에 큰대자로 뻗고 말았다.

  단 일격으로 통쾌하게 은행 강도를 때려잡은 것이다.

  "와아!!!"

  "꺄악!! 오빠, 멋있어요!!"

  "이야, 역시 국민스타!"

  주위에서 그 모습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박수를 치며 그를 연호했다.

  "감사합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쑥스럽네요."

  한서후는 멋쩍은 듯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놈에게 다가갔다.

  "음, 기절했네."

  놈이 기절한 것까지 확인한 그는 다가온 경찰들에게 놈을 인도했다.

  경찰들은 수갑으로는 어림도 없겠다 싶었는지 무슨 쇠줄 같은 것으로 그의 온몸을 칭칭 감아 묶더니 경찰 차트렁크에 짐짝처럼 처넣어 버렸다.

  "도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서까지는 저희가 인도하겠습니다."

  "각성자들이 너무 무분별하게 날뛰고 있죠? 고생이 정말 많으십니다."

  "각성자이신 한서후 씨를 앞에 두고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후우, 사실 정말 힘듭니다. 이 일을 그만둬야 하나 싶을 정도로 위험하고요. 오늘만 해도 한서후 씨가 안 계셨으면 얼마나 많은 피해가 더 생겼을 지, 후……."

  경찰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장난감 칼을 얻은 아이처럼 힘에 취해 날뛰는 각성자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들을 일선에서 대하는 경찰들은 그만큼 많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눈 없는 힘만큼 위험한 게 없죠. 사람들이 자신의 힘에 책임이 따른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백번 동감합니다."

  한서후의 말에 경찰이 거의 감격에 찬 얼굴로 동조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조만간 정부도 무슨 발표를 할 것 같습니다. 사태가 이 정도가 됐는데 정부로서도 두고 보지는 않을 겁니다. 아는 사람에게 듣기로 아마 각성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뭔가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때가 되면 저도 앞장서서 협조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세상에 한서후 씨 같은 각성자들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한서후와 경찰 사이에 훈훈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쿠쿠쿠쿠-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아래에서 올라오는 흉폭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오싹한 느낌이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지금 등장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군.'

  난데없는 사건으로 구경꾼들이 몰려 있는 도심의 한복판.

  던전을 뛰쳐나온 몬스터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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