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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24 -뭔가? 가능하면 맞춰주겠네 (2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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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계신과 함께 024 -뭔가? 가능하면 맞춰주겠네

  "일단, 들어갈 던전은 제가 택합니다."

  -음…… 이렇게 하지. 세 번 중 두 번은 자네가 들어갈 던전을 택하고, 한 번은 우리가 제시하는 곳을 클리어해 주게.

  던전에 따라 나온 아이템이 달랐다는 소식은 이 할아버지도 들었을 것이다. 이 호랑이 같은 할아버지가 원하는 곳이라면 당연히 '현대' 장르의 던전일 터.

  나도 현대 장르의 던전을 자주 갈 것이므로 나쁜 조건은 아니었지만, 싫었다.

  던전 선택에 관한 주도권은 내게 있어야 한다.

  "싫습니다. 던전은 무조건 제가 정합니다."

  -……생각해 보겠네.

  생각은 무슨. 문 앞까지 들어온 호박이 걸어나갈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거절하겠나.

  "두 번째로, 제가 가져오는 아이템의 가치에 따라 일정 비율은 은하디펜스의 주식으로 계산해 주세요."

  내가 있는 한, 은하디펜스는 앞으로 무한하게 성장할 것이다.

  그러니 그 성장의 과실이 내게 돌아오는 구조로, 나는 협상안을 제시 해 나갔다.

  나와 회장은 한참 동안 조건에 관해 씨름했다.

  과연 한국 재계 17위기업의 회장 답게 만만잖은 협상 상대였다.

  그러나 까다로운 협상 과정과는 달리 이 할아버지가 조건은 꽤 후하게 쳐줬다.

  이상했다.

  '이 노인네가 그렇게 만만한 노인네가 아닌데.'

  왜 이렇게 조건을 좋게 해줬냐는 내 물음에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테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회장은 말없이 웃다가 입을 열었다.

  -이거, 자네지?

  그러면서 화면에 사진 하나를 띄웠다.

  후드티와 마스크를 뒤집어쓴 모습.

  던전에서 나온 직후 기자들에게 찍힌 내 모습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속으로는 꽤나 놀랐지만, 나는 일단 모른 척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이 회장님은 이미 내가 사진 속의 저 인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후후, 우리를 얕보지 말게. 아직 세상에 공표되지 않은 무수히 많은 기술들이 우리의 손에서 태어났고, 또 태어나고 있다네.

  그는 마치 만화 속의 흑막처럼 후후,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과연 은하그룹. 던전시대 이전부터 숨겨진 저력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자네가 5단계 이상의 네임드를 처리한 각성자라는 게 유력시되는 이상, 사실 이 정도 조건은 우리로서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네. 다른 기업들과 경쟁해서 자네 정도 되는 각성자를 잡으려면 오히려 이 이상의 출혈을 각오해야 했을지도 몰라.

  5단계 네임드를 처리한 각성자를 호구로 취급하다가 놓치느니 처음부터 후한 인상을 남겨 마음을 산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리고 지금 보여준 이 아이템으로 보아, 내 생각에 자네는 어쩌면 5단계를 넘어섰을지도 모르겠군.

  [역시 만만치 않군요.]

  '그러게.'

  슈리의 말대로 정말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불시에 들이닥쳤는데도 그 짧은 시간 동안내 정체에 대해 모조리 파악해 내는 정보력.

  그리고 조금 무리하다 싶은 내 요구조차 흔쾌히 수용하는 담대함.

  어느 게 더 나은지 그 짧은 시간에 정답에 가까운 결론을 도출해 내는 빠른 상황 판단.

  역시라는 말이 나을 수밖에 없는 할아범이었다.

  "마지막 조건이 있습니다."

  -뭔가?

  "회장님의 손주님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으, 응?

  대화 내내 한껏 여유로운 표정을 짓던 회장의 표정이 일순 흐트러졌다.

  -아니, 내 손주는 봐서 뭐 하려고?

  회장은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왜요, 안 됩니까?"

  내 물음에 회장은 고민하는 모습이었는데, 뜻밖에도 대답은 다른 데서 들려왔다.

  "당연히 되지! 되고말고."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앳된 목소리에 나는 그쪽을 돌아보았다.

  회의실 입구에는 초등학생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 남자아이가 흥분한 얼굴로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 건물 안에 있었구나?'

  이 녀석이 바로 내가 마지막 조건으로 보자고 한 사람이었다.

  '오랜만이다, 은하수.'

  나는 솟아오르는 반가음올 애써 감추며 인사했다.

  "만나서 반갑……."

  "응, 반가워! 그 팔찌 보여줘, 팔찌!"

  그러나 내 말을 중간에서 잘라먹은 이 꼬마, 은하수는 팔찌부터 찾았다. 이마에 살짝 혈관이 돋아나는 걸 느꼈다.

  '그래, 이 자식은 이런 놈이었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나는 팔찌를 벗어 순순히 그에게 건넸다.

  이 녀석이 이러는 게 사람을 무시 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갈망이 너무 심해서 그러는 거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 목걸이는 안 줘?"

  ……아닐 수도 있고.

  어쨌든 한눈에 이 팔찌를 조종하는 게 목걸이라는 걸 알아첸 게 그답다면 그다웠다.

  나는 미련 없이 목걸이마저 벗어서 녀석에게 건넸다.

  녀석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목걸이와 팔찌를 들고 연신 중얼거렸다.

  "화면으로 봤을 땐 반중력, 뇌파 조종에 책상을 절단한 건 분명 플라스마였어. 이런 선명한 플라스마 형태 고정이라니. 게다가 그걸 감당할 정도의 에너지가 이 작은 팔찌에 들어 있다고? 유지 시간은 얼마나 되는 거지? 에너지원은? 충전 방식은?"

  중얼중얼중얼중얼…….

  난데없이 회의실로 쳐들어와 내 목걸이와 팔찌를 미친 듯이 탐닉하고 있는 이 꼬마 녀석이 바로 은하그룹 은대호 회장의 하나뿐인 손자 은하수였다.

  그리고 그는 전생에서의 내 절친한 친구이자, [기간테스]를 비롯한 온갖 마도공학의 아버지였다.

  내가 은하그룹을 택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이놈의 자식! 손님께 그게 무슨 무례한 짓이냐!!

  은대호가 은하수의 무례에 호랑이 처럼 호통을 쳤다. 나이답지 않게 기차 화통 삶아 먹은 것 같은 목소리였다.

  "아, 뭐 어때요. 나보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일명 '피터팬병'이라고도 불리는 희귀병 '하이랜더 증후군'에 걸려 초등학생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은하수는 사실 30대 초반에 들어선 청년이었다.

  은하수는 불같이 호통치는 할아버지는 본체만체하며 계속 목걸이와 팔찌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휴, 이래서 내가 망설인 것이라네. 이놈이 오냐오냐 키워서 버릇이 많이 없다네.

  꼭 그래서만은 아닐 것이다.

  은대호가 은하수를 보이기 망설인 것은, 이 녀석이 사실 회장이 꼭꼭 숨겨둔 은하그룹의 비밀 병기이기 때문이겠지.

  "괜찮습니다."

  익히 이 녀석의 성격을 알고 있던 난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하수야. 너 연구실에 있는 것 아니었냐?

  화면에 떠 있던 은대호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당연히 연구실에 있었죠. 근데 이물건들을 보고도 내가 안 달려오게 생겼어요?"

  -아니, 이 화면은 회의실과 내 사무실의 직통 화면인데?

  은하수가 살짝 움찔하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뭐 그런 사소한 건 넘어가죠, 할배."

  해킹이라도 했나 보다.

  -어이쿠 두야.

  회장님이 또 머리를 부여잡으신다.

  하나뿐인 후계자가 이런 또라이라니, 나 같아도 뒷목을 부여잡을 일이었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건 이 녀석이 바로 은하그룹을 세계 5위까지 만들어 놓은 주역이란 사실.

  성격은 이상할지 몰라도 능력과 기술에 대한 열정만큼은 정말 대단한 녀석이었다.

  "근데 이거 뭐 다른 기능은 없어? 있으면 더 보여줘 봐!"

  은하수가 날 보며 부탁 비슷한 걸 했다.

  나는 히죽 웃으며 왼손에 끼워져 있던 다른 팔찌를 날아오르게 했다. 왼손의 팔찌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둥둥 떠오르더니, 파직.

  허공에 넓은 막을 펼쳐냈다.

  "헐…… 플라스마 방어막?!"

  발사된 탄환조차 녹여버리는 초고열의 플라스마 방어막이었다.

  "헉헉."

  은하수는 이제는 숫제 침까지 흘릴 기세였다.

  나는 방어막을 펼친 팔찌를 다시 회수해 그것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은하수에게 넘겨주고는 회의실 입구로 걸어갔다.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제가 돌아올 동안 이걸 바탕으로 기술 개발 잘해주세요."

  은하수도 봤으니 이곳에 온 목적은 다 달성했다.

  -계약서는 작성되는 대로 집으로 사람을 보내겠네.

  "……저희 집도 아세요?"

  -난 모르지만 내 부하 직원들은 알겠지.

  사람의 뒤를 캐도 이렇게 잘 캘 수가 없다.

  계약을 잘한 건지 잘못한 건지 원.

  "잘 가! 다음에도 잘 부탁해~ 흐흐."

  은하수가 마치 절대반지를 얻은 골 름처럼 팔찌를 쓰다듬으며 회의실을 나서는 나를 배웅했다.

  -아, 다음에 만날 때는 선물을 하나 주겠네. 첫 계약 기념 선물이라 해두지.

  "역시 대기업 회장님답게 화통하시군요. 감사합니다."

  나는 웃으며 인사하고는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나는 앞으로 내 뒤를 받쳐 줄 든든한 배후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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