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023 기사에는 큼지막한 사진이 실려 있었다. (23/215)

  기계신과 함께 023 기사에는 큼지막한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사진에는 깊게 눌러쓴 후드티와 마스크를 쓴 인물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였다.

  '오, 괜찮게 잘 나왔네.'

  후드티와 마스크에 가려져 얼굴이 하나도 안 보였으니, 그게 괜찮은 거였다.

  -이른바 '최후의 5인' 중 한 명. 그는 '비켜'라는 한 마디와 함께 종적을 감췄다.

  기사는 사진 기사로, 이런 짤막한 코멘트가 다였다.

  그 밑으로는 네티즌들의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최후의 5인이라면 이 사람도 강하겠네요?

  -그야 모르죠. 그중에 1명이 알고 보니 중도포기자였으니.

  -이 형 좀 세 보이는데!

  -와, 우리나라에서만 최후의 각성자가 2명이네?

  -국뽕이 차오른다 크~ 대체로 댓글들은 나한테 긍정적인 쪽이었다.

  최후의 5인 중 3명이 5단계 네임드를 클리어했다고 밝혔다.

  그중 1명인 '강하나'가 우리나라 사람이었으니, 다른 한 한국인은 그저 최후의 5인 중 한 명이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럽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클리어한 게 6단계란 사실을 밝히면 역시 피곤해질 것 같았다.

  나는 댓글들을 읽다가 이런 댓글을 발견했다.

  -제가 아는 각성자가 있는데, 이분 움직임이 장난 아니었대요. 5단계까지 간 건 맞는 듯.

  그 댓글 밑에는 그게 정말이냐느니, 내가 아는 각성자도 그러더라느 니 하는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각성자들 사이에도 실력 차가 있는 만큼, 내 움직임이 다른 각성자들보다 빠르다는 걸 눈치첸 자들이 많은 것 같았다.

  다른 각성자들 또한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해.'

  다가오는 재앙형 던전들을 생각한다면, 각성자들은 더 빨리, 강하게 자랄 필요가 있었다.

  준비는 아무리 많아도 절대 넘치지 않는 법이니.

  나는 그 밖에도 다른 기사들을 두루두루 살펴본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나는 강남의 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지금 내가 슈리를 데리고 향하는 곳은 국내 유수의 그룹인 '은하그룹'의 본사였다.

  회귀 전에 [기간테스]를 만들어낸 이곳은, 커스텀 기체 [트리슈라]를 만들어 내게 제공한 곳이기도 했다.

  내 미래 계획은 이곳에서부터 시작 한다. 이곳이야말로 내 능력을 제대로 살려줄 곳임을, 나는 믿어 의심 치 않았다.

  다음 무림 장르의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이곳에서 몇 가지 준비를 끝내 놓아야 했다.

  나는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가 데스크 안내원에게 말했다.

  "회장님을 뵙고 싶습니다."

  "혹시 약속이 되어 있으십니까?"

  "아니요."

  너무도 당당한 내 대답에 안내원이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이걸 보여드리면 회장님 쪽에서 먼저 약속을 잡으려 하실 겁니다."

  나는 오른손 손목에 차고 있던 은빛 팔찌를 빼내 손바닥에 올리고 안내원의 눈앞에 들이댔다.

  물론 안내원은 나를 미친놈 바라보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흠칫 눈을 치켜 떴다.

  팔찌가 두둥실 허공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프로펠러 소리라도 들릴 법하건만 은빛 팔찌는 어떤 소음도 없이, 마치 유령처럼 내 손바닥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안내원의 주위를 마치 작은 UFO처럼 날아 돌아다녔다.

  "이런 기능도 있죠."

  나는 팔찌를 조종해 안내데스크의 팔찌를 하나 들어 올려 내 손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팔찌가 가져온 펜을 손가락으로 집어 안내원의 눈앞에 들어 보였다.

  스윽- 내게 펜을 가져다준 팔찌가 다시 UFO처럼 주위를 날아다니다가 자연스럽게 펜을 '지나갔다.'

  툭.

  펜이 중간부터 잘리며 떨어졌다.

  그러나 잉크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단면이 초고열로 지져진 덕분이었다.

  "호, 혹시 각성자이십니까?"

  안내원이 더듬더듬 물어왔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내원이 급히 전화기를 들었다.

  잠시 후, 나는 곧 어디론가 안내되었다.

  -자네가 그 각성자인가 각성제인가 하는 청년인가?

  회의실 비슷한 곳으로 안내된 나는 황당하게도 TV에서 나오는 노인의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해야 했다.

  "저기, 직접 마주할 수는 없는 겁니까?"

  -내 뉴스에서 듣기로 자네 같은 족속들은 일반인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세다더군. 특히나 저 던전인가 하는 곳에 들어갔다 온 사람들은 더욱더.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 날 납치라도 하려고 한다면 내가 어떻게 도망가겠나?

  화면상으로만 봐도 풍채가 어마어마하게 큰 저 노인네가 바로 한국 재계 서열 17위의 은하그룹을 이끌어온 한국의 호랑이, 은대호였다.

  그는 화면 속에서 익살스럽게 하하 웃었다.

  덩치가 호랑이만한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꼭 엄살떠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 그렇기는 했다.

  당장 5단계 네임드를 클리어하고 나온 각성자가 마음먹고 그를 납치하려 든다면 무장 경비원들이 한 트럭 있다 하더라도 못 막을 게 틀림 없었다.

  물론 5단계 네임드 각성자는 지금 수준으로 치면 규격 외이긴 했다. [최초의 던전]이 어마어마한 포인트 노다지였던 덕분에 다른 각성자들이 족히 몇 개월은 던전에서 랭이치며 벌어야 할 만큼의 포인트를 한 번에 벌어들였을 것이다.

  그 말은 곧 무지막지하게 강해졌다는 말이었다.

  때문에 생각이 있는 자라면 저렇게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성자 앞에서는 신중하게 몸을 사리는 게 당연한 처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일단 이걸 봐주시죠."

  나는 데스크 안내원에게 했던 것처럼 팔찌를 날게 해서 회의실의 탁자 모서리를 잘라버렸다.

  -호오, 그게 던전에서 들고 나온 '아이템'이란 건가? 확실히 지금 현재는 구현이 불가능한 기술들이 들어가 있군. 보이는 것만 해도…… 반중력 장치에, 음, 뇌파 조종인가? 거기에 모서리를 어떻게 자른 건지는 모르겠군. 대단하군, 대단해.

  노인네는 우리나라 최대의 방위산업체인 '은하디펜스'를 가진 노인답게 기술들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보며 내 팔찌를 탐욕스럽게 바라봤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뭔가? 단순히 노인네 눈호강이나 시켜주려고 온 것 같지는 않네만.

  "은하그룹에게 이 아이템을 대여해 드리겠습니다."

  -음?

  내 뜬금없는 말에 회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선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면 물론 원하는 게 있겠지?

  "네, 있습니다."

  물론 원하는 게 있었다. 그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일단은 은하그룹이 무럭무럭 커야 한다.

  전생에서 헌터들이, 아니, 인류가 그만큼 오래 살아남아 [기계룡의 둥지]까지라도 갈 수 있었던 것은 은하그룹의 공이 컸다.

  헌터들이 편을 갈라 전쟁을 벌일 때도 묵묵히 중립을 지키며 마도과학 기술의 발전에만 힘을 쏟던 곳.

  그리고 인류가 위험해지자 가장 먼저 조건 없이 가진 기술과 자원들을 내놓아 모든 인류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곳.

  그게 바로 은하그룹이 전생에서 전 세계 5위의 그룹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은하그룹이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마도과학의 산물을 내놓을수록 내 고유 스킬 [디바이스 컨트롤]을 더 다양한 방면에서 써먹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일단, 이 은하그룹으로부터 활동비를 지원받고 싶습니다. 저를 전속 헌터로 고용하고 지원을 해주시죠."

  -어렵지 않지. 그리고?

  '어렵지 않기는. 능구렁이 같은 노인네.'

  어렵지 않기는 커녕 오히려 이것도 은하그룹에 좋은 조건이었다.

  세계 각지에서는 이미 각성자들을 포섭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었다.

  스킬북과 아이템으로 대표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닌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각성자란 자원을 얼마만큼 포섭할 수 있는지.

  그것이 미래시대로의 도약을 위한 열쇠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때문에 이 며칠간 세계 대기업들, 특히 은하디펜스 같은 방위산업체들 같은 경우는 지닌 자본을 총동원해서 각성자들을 포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각성자들이 가져오는 아이템이 곧 어마어마한 돈이 되리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꼭 방위산업체가 아니라도 미래기술에 관심을 보이는 곳은 굉장히 많았다. 아니, 이름 있는 기업이라면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때문에 내가 이렇게 자진해서 어떤 그룹의 밑에 들어가겠다는 건 그들 입장에서는 사실 호박이 넝쿨째 들어오는 일이었다.

  내 실력이 검증되지 않기는 했지만 이 정도의 아티팩트를 가져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능력의 증명이었다.

  설령 내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 하더라도 계약 조건에 따라 그 정도 리스크는 얼마든지 상쇄할 수 있었고.

  지금 저쪽의 입장에서는 일단 무조건 나랑 계약하는 게 유리했다. 그러나 내가 호구냐.

  "단, 몇 가지 사소한 조건이 있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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