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022 민주일보기자 김태나는 광화문의 던전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22/215)

  기계신과 함께 022 민주일보기자 김태나는 광화문의 던전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아오, 이 사람은 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광화문에 생긴 던전에 들어간 각성자를 취재하러 나온 그녀는 무려 이 던전 앞에서 21시간이나 대기하는 중이었다.

  처음 던전으로부터 각성자가 나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3시간 전이었다.

  저 이상한 구조물이 던전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그곳으로부터 나온 자들, 소위 특별한 힘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각성자들에 의해서였다.

  맨 처음에 그곳에서 나온 자들은 빈손이었던데 비해 좀 더 늦게 나온 자들은 아이템이나 스킬북이라는 이상한 걸 들고 오더니, 얼마 안가 그것이 엄청난 보물들이라는 것이 밝혀진 게 기자들이 24시간 대기를 하며 이곳에 상주하고 있는 이유였다.

  더군다나 이 던전에 들어간 각성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버티고 있는 각성자 중 하나였다.

  이 던전이란 곳이 죄다 사람이 많은 도시에 생겨난 덕분에 그 수가 100개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중에 아직까지 각성자가 나오지 않은 던전은 오직 5개에 불과했다.

  그 때문에 이곳에는 갈수록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지금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나저나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지. 말세네.'

  그녀는 갑작스럽게 급변한 세계에 대해 깊이 걱정하고 있었다.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현재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이변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다.

  각성자라는 초능력자들이 생겨나고, 소위 '던전'이라는 이상한 구조물이 생겨났다.

  각성자들이 그곳에 들어가면서 던전이 없어지기는 했지만-그들의 말로는 클리어되었다고 한다- 그런 초현실적인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었다.

  앞으로도 던전이라는 그런 구조물이 또 생겨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거니와, 그게 지금처럼 큰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사라지리라 생각하는 것도 지나친 낙관이었으니까.

  종교에서는 종말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마트에서는 각종 생필품이 동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히 이런 이변을 초래한 각성자와 던전, 그리고 나아가 그 부산물인 스킬과 아이템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 각성자가 나오기만 한다면 그 모두를 한꺼번에 기사에 담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니 나오기만 하면 그냥 특종 인데, 왜 이리 안 나오냐.'

  김태나는 지친 얼굴로 김밥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던전 입구로부터 한 사람이 걸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헉."

  김태나는 먹던 김밥을 던지듯이 내려놓고 재빨리 스마트폰을 들어을 리고 녹화 기능을 켰다.

  "나왔다!!"

  누군가의 비명 같은 고함 소리를 시작으로 사방에서 플래시 라이트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자들의 그의 앞으로 우르르 몰려 들었다.

  "던전 밖으로 나온 걸 환영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본인이 가장 마지막에 나오신 7인 중 한 명이란 사실을 아십니까?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어떤 스킬북과 아이템을 얻으셨습니까?"

  "어떤 장르의 스테이지를 플레이하셨나요?"

  "네임드 몬스터는요? 몇 단계까지 잡으셨습니까?"

  "한 마디만 해주세요."

  폭풍 같은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져 나갔다.

  김태나 기자 또한 질문을 내뱉으며 그에게 스마트폰을 가져다 댔지만, 눈치 빠른 그녀는 뭔가 특별한 촉이 왔다.

  보통 던전에서 나온 각성자들은 이쯤 되면 당황하며 얼굴을 가리게 마련이었지만, 지금 걸어나온 각성자는 뭔가 좀 달랐다.

  다른 자들에게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어떤 아우라가, 저 사람의 행동거지에서 느껴졌던 것이다. 마치 이런 일을 예상했다는 듯 후드티의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한 저 각성자는, 이런 혼란 속에서도 조용하게 말했다.

  "비켜."

  뚝- 그 작은 한 마디에 소란이 일시에 멎어버렸다.

  김태나 기자는 마치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남자가 한 말이 알 수 없는 주문이 되어 몸을 구속하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짧게 경직되어 있던 그 찰나의 순간.

  탓- 남자가 땅을 박차고 기자들의 진을 뛰어넘어 버렸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훌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 모두들 닭 쫓던 개처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으으, 이게 뭐야!!"

  "내가 여기서 몇 시간을 기다렸는데!"

  사방에서 기자들의 절규가 들려왔지만, 특종을 감지하는 안테나라고 하여 동료들로부터 이름 대신 '안테나'로 불리는 김태나 기자는 반대로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 * * 나는 기분이 몹시 더러웠다.

  애초에 기자들은 피할 생각이었으니 기자들 때문은 아니었다.

  그것은 던전에서 나오기 전에 들은 던전지기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축하합니다. 던전을 완전 정복하셨습니다.]

  [던전의 트루 엔딩을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으로 '황금고블린 상점 열쇠'를 획득하셨습니다.]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아이템 한 개, 스킬북 한 개를 선택하십시오.]

  이와 같은 메시지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중에 바로 이 멘트.

  [던전의 트루 엔딩을 달성하셨습니다.]

  이 멘트가 나를 미치도록 짜증 나게 했다.

  '이게 트루 엔딩이라고?'

  당장 던전 제작자가 눈앞에 있다면 머리통을 박살 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꼬마아이가 좀비가 돼서 죽음을 갈구하다가 죽게 되는 게 트루 엔딩?

  아마 그 세상에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린 존재가 있다면 그게 바로 던전 제작자이리라.

  '후우…… 진정하자.'

  지금 이렇게 갈 곳 없는 곳에 화를 내봤자 달라질 건 없었다.

  단지 새로운 각오 하나만 다졌다.

  '던전 제작자…… 아니, 제작자들 인가? 면상은 꼭 보겠다.'

  던전에 있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되살아난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할 지.

  그리고 결정했다.

  '제1 목표는 이 게임의 끝을 보는 것.'

  던전이 등장한 세상, 앞서 말했듯 내게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의 엔딩을 보는 것이 내 최우선적인 목표.

  '그러려면 최고가 되어도 부족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무력을 손에 넣은 후에야 비로소 이 게임의 끝자락이라도 넘볼 자격이 주어지리라.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가능성과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꼭 클리어할 것이다.

  이 지옥 같은데스 게임을.

  '해야 할 일이 많군.'

  그러기 위해선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았다.

  만나야 할 사람들도 있었고, 얻어야 할 스킬북과 아이템도 있었다.

  계획을 세워두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얻어가야 했다.

  나는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집으로 향하는 발길을 재촉 했다.

  * * *

  "후욱-"

  느슨하던 복부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처음에는 굵은 근육부터, 마지막엔 가장 가느다란 근육까지.

  이윽고 다시 온몸의 근육을 이완시킨 나는 일어나 땀을 닦았다.

  드래곤플라이 (Dragonfly).

  몸이 강화된 지금 그나마 그의 몸에 부하를 줄 수 있는 고강도 복근 운동이었다.

  던전에 갔다 오기 전의 몸이라면 어림도 없있겠지만, 근력 스텟이 강화된 지금은 그저 몸풀기 운동에 지나지 않았다.

  '트레이닝장이라도 하나 만들고 싶군.'

  지금이야 이 정도로도 땀이 나지만, 스텟이 더 강화된다면 이 정도로는 근육에 기별도 안 갈 것이다.

  내가 이렇게 운동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온몸을 혹사하면 할수록 스텟이 오르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포인트로 스텟을 올리면 되지 않느냐고.

  그 말도 맞는 말이다.

  다만 포인트로 올리는 스텟과 운동으로 올리는 스텟은 조금 종류가 달랐다.

  지금 갓 각성자가 된 자들은 갑자기 주어진 힘에 취해 운동을 등한시하겠지만, 금방 그 한계에 봉착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포인트로만 올릴 수 있는 스텟은 50이라는 일정 수치를 기점으로 정말 더럽게 안 오르기 때문이었다.

  반면 운동을 통해 올린 스탯은 그 와는 별개로 취급되어가산된다.

  포인트로만 스텟을 올린다면 50에서부터 정체를 맞이하지만, 운동을 병행한다면 그 정체선이 60, 70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나중에는 오히려 포인트를 때려박아 스텟을 올리는 것보다 운동을 통해 올리는 게 더 스텟이 잘 오르는 지경이 올 테니, 틈틈이 몸을 단련 해 두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물론 이것도 꽤 나중에 밝혀지는 사실이지.'

  지금이야 스텟 한계선이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니 운동으로 스텟이 늘어난다 해도 쉽게 버는 포인트보다 효율이 안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좋았다.

  '이래저래 앞서 나갈 여건은 많단 말이지.'

  새 시대의 개척자는 그만큼 많은것을 손에 쓸어담을 수 있다. 다른 자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 나갈 수 있는 여건이 하나라도 많을수록, 내가 손아귀에 쥘 수 있는 패 또한 많아질 것이다.

  이 던전시대를 헤쳐 나갈 패들이.

  나는 던전에서 얻은 보상들을 떠올렸다.

  [24시간이 지날 때까지 생존에 성공하면, 습득한 아이템 1종류와 스킬북 1종류를 성공 보상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던전 입장 당시 내게 떠오른 메시지.

  즉 나는 아이템 1종류와 스킬북 1 종류를 [최초의 던전]에서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S+급 스킬인 [하늘의 눈]과 목걸이/팔찌로 이루어진 아이템 세트.

  그리고 나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스킬북, 아이템과 함께 던전에서 가져나온 마지막 보상.

  주머니를 빠져나오자마자 사방을 환한 금빛으로 물들인 그것은 하나의 열쇠였는데, 찬란한 황금으로 만들어진 열쇠의 끝에는 엄지손톱만한 거대한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

  휘황찬란한 재료로 만들어져 열쇠 자체만으로도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이것이 바로 트루 엔딩 보상으로 얻은 '황금고블린 상점 열쇠'였다.

  어떤 자들은 '기연을 부르는 열쇠' 라고도 부르던 것.

  이 열쇠를 볼 때면 마음 아프게도 서은이가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서 은이를 죽임으로써 얻은 아이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던전에서 약속한 스킬 한 개, 아이템 한 개와는 별개로 마지막 마더 나태 (Sloth)는 나에게 7, 000 카르마 포인트라는 어마어마한 포인트를, 서은이는 내게 이 황금 열쇠를 남겼다.

  하지만 서은이는 서은이고, 아이템은 아이템.

  내가 이걸 내 욕심으로 사용한다 해서 서은이가 서운해하지는 않으리라.

  이 열쇠는 내가 들어가기로 예정한 던전인 무협 장르의 던전에서 아주 요긴하게 쓸 작정이었다.

  나는 열쇠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조금 착잡한 상념에 잠겨 있는데, 그런 상념을 날려 버리는 시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아악!]

  머릿속을 울리는 슈리의 비명 소리였다.

  소파 위에는 슈리가 들어 있는 스마트폰이 올려져 있었는데, 그 앞의 TV에서는 한 영화가 재생되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귀신에 씐 한 소녀가 화면을 바라보며 기괴하게 웃고 있었다.

  -날 봐.

  그것은 내가 슈리를 위해(?) 틀어 준 건<검은신부들>이라는 퇴마 공포 영화로, 나름 약한 것부터 보여준다고 고른 거였는데…….

  -내가 보고 싶었잖아.

  [으…… 으으……!]

  슈리한테는 전혀 약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잘 버티면서 보더니 클라이막스로 갈수록 비명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영화를 꺼달라고 하지 않는 게 한편으로는 대단하달까.

  나도 슈리가 사정사정하면 못 이기는 척 꺼주려 그랬는데, 의외로 그런 소리 없이 생각보다 잘 보고 있었다.

  -오빠, 오빠……! 낄낄낄낄……!

  [허억!]

  나는 영화에 빠져 있는 슈리에게서 신경을 끄고 인터넷으로 한 기업을 찾아보았다.

  은하그룹.

  현 한국 재계 서열 17위의 그룹.

  그리고 회귀 전 한국 재계 서열 1 위, 세계 재계 서열 5위의 그룹.

  가장 중요한 건, 이곳이 이족보행 마도과학병기 [기간테스]를 만들어 낸 던전 과학의 첨병이라는 점이었다.

  "슈리, 영화 다 보면 갈 데 있으니까……."

  [마스터, 죄송하지만 급한 일이 아니라면 영화 보는 걸 방해하지 말아주십시오. 중요한 장면입니다.]

  "그, 그래."

  그렇게 말한 슈리는 심지어 내가 말 거느라 지나간 장면을 뒤로 돌려서 보기까지 했다.

  '아니, 잠깐, 슈리 스스로 리모컨을 작동시킬 수도 있었어?'

  잠시 황당함에 소파 위의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인터넷 검색을 계속했다. 기사들을 보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회귀를 한 나라고 해도 전생의 모든 사건을 기억할 수는 없는 만큼, 세상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 확인만큼은 꾸준히 해줘야 했다.

  [최초의 던전 최후의 5인, 그 정체는?]

  [

  "24시간 버티기는 했지만 세 번째 네임드가 한계였어요"

  ]

  [다섯 번째 네임드를 돌파한 것은 그중 세 명으로 밝혀져!]

  역시 대부분이 던전과 각성자들에 대한 정보들이었다.

  전생에서처럼 5번째를 돌파한 것은 세 명이었다.

  근데 그중에 시선을 끄는 제목의 기사가 하나 있었다.

  [최후의 5인, 카리스마 넘치는 수수께끼의 각성자]

  나는 그 기사를 클릭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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