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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21 나는 흰머리 중년인에게 고개를 돌리는 동시에 재빨리 품속의 총을 꺼내 그를 겨누었다. (21/215)

  기계신과 함께 021 나는 흰머리 중년인에게 고개를 돌리는 동시에 재빨리 품속의 총을 꺼내 그를 겨누었다.

  "뭐, 뭐요!"

  그가 당황하며 뒷걸음질 치는 게 보였다.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연기라면 일품.

  그리고, 나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떻게…… 알았지?"

  흰머리 중년 아저씨는 화등잔만 해진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내가 총으로 쓴 건 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분명…… 눈치 못 챈 것 같았는데."

  나에게 총을 맞고 비틀대는 것은 방금까지 내 옆에 있던 그녀, 서은이 엄마였다.

  그녀는 방금 나를 물어뜯어 죽이려 했다.

  "눈치야 아까부터 채고 있었지."

  서은이 엄마는 가슴에 총을 맞고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대신 온몸의 혈관들이 검은색으로 물들고, 눈자위가 빨갛게 변해 있었다.

  "다만 네가 스스로 본색을 드러내 길 기다리고 있었어. 내가 죽이기 쉽게."

  내가 꺼낸 말대로, 나는 이 녀석이 접근할 때부터 이 녀석이 마더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나는 드자 문신을 한 사람을 알고 있다는 강간마 사내가 쓰러지는 순간, 연결이 아직 끊이지 않은 [듀플렉스 링크]로 서은이의 시야를 살펴 봤다.

  그가 드자 문신을 봤다고 하는 순간, 그가 서은이 엄마와 함께 사라졌다 왔다고 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관찰력이 뛰어난 난 분명 기억한다.

  다른 이들의,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피부에는 문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강간마 녀석은 누군가의 옷 속에 감춰진 문신을 보았다는 얘기인데, 문득 녀석이 서은이 엄마와 몸을 섞었다는 이야기가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아직 서은이와 연결이 끊기지 않은 [듀플렉스 링크]를 활성화 해, 서은이의 시야를 확인해 봤다.

  내심 일행 중에 마더일 가능성이 가장 낮은 게 이 모녀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이내 충격을 받았다.

  서은이 엄마가 멀리서 강간마 사내를 똑바로 노려보며 그를 향해 한 손을 뻗고 있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강간마 사내가 쓰러진 직후인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

  그녀를 마더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

  그러나 나는 내 눈앞에 나타난 그녀를 바로 공격하는 대신 신중하기로 했다. 그냥 우연히 그녀가 그 순간에 팔운동을 하던 걸 내가 오해한 걸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녀를 아직 어머니로 믿고 있는 서은이가 보고 있었다.

  그래서 서은이도 떼어낼 겸 테스트를 통해 그녀가 본색을 드러내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일단 다른 사람을 마더로 생각하는 듯 위장하고, 그녀를 믿는 척한다. 그리고 그녀 앞에서 허점을 드러냄으로써 나를 죽일 기회를 준다.

  이 두 가지만으로,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내게 드러내고 말았다.

  "눈치가…… 빠르군. 쿡쿡."

  눈앞에 있는 지하 1층의 마더는 1층의 마더보다도 약했다.

  "아쉽……게 되었어. 싱싱한 인간들 맛을 더 보고 싶었는데."

  "그래서 일부러 다 죽이지 않고 데리고 다닌 거군."

  "그, 그래……. 나는…… 이상하게 죽은 인간들은 맛이…… 없더라고. 하나씩 아껴 먹으려고... 저 두놈…… 조종하는데 애를…… 많이 썼는데. 큭큭."

  마더가 강간마 사내와 흰머리 중년인을 보며 큭큭 웃고 있었다. 약해서인지 내 총탄 한 방에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고 있었다.

  물론 그 총탄 한 방에 가슴 한 가운데가 뻥 뚫리긴 했지만.

  "아아…… 서, 서은…… 내 아이…… 서은아……."

  돌연 마더가 서은이의 이름을 불러 대기 시작했다.

  좀비가 된 주제에 자식인 서은이만은 아직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녀석의 머리에 총구를 가져다 댔다.

  "서은…… 서은……"

  탕!!

  * * * 기분이 우울했다.

  아이 엄마가 어째서 좀비가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서은이가 이 사실을 알면 슬퍼할 것 같았다.

  "후우……."

  나는 한숨을 쉬며 서은이에게 다가갔다.

  총소리를 듣고 예상이라도 한 걸까.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은이는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죽은 거군요."

  "……?"

  이렇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다.

  "너희 엄마…… 좀비라는 걸 알고 있었니?"

  "……아뇨."

  서은이가 내게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흐르는 얼굴.

  "하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건 느끼고 있었어요. 어렴풋이."

  "……그랬구나."

  늘 옆에서 함께해 왔던 아이니까. 그리고 총명한 아이니까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다.

  "미안하구나, 너희 엄마를 죽이게 돼서."

  그 말에 서은이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엄마 아니에요."

  "응?"

  "우리 엄마 아니라, 옆집 사는 아줌마였어요."

  "……."

  이건 또 갑자기 무슨 말인가.

  그런데 그러고 보니 서은이가 '엄마'라고 부르는 걸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실은 우리 엄마 아빠는, 좀비들이 나타나고 얼마 안돼서 좀비가 돼서 죽었어요. 그런데 옆집 아줌마는 아이가 좀비가 돼서 죽었나 봐요. 아이가 죽었는데, 어느 날부터는 나한테 '우리 아이, 우리 아이' 하더라구요.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것 같아도, 저만은 아껴줘서……. 절 아껴주는 사람이라고는 이제는 아줌마 하나라서…… 그래서……."

  아이가 눈물을 훔쳤다.

  "그래서 이상한 걸 느꼈어도, 아줌마가 사람들을 해치는 것 같았어도, 입 꾹 닫고 모른 척했어요. 저 나쁘죠?"

  서은이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유일하게 자기를 무조건적으로 지켜주는 존재가 조금 의심스럽다 해서, 그걸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은 이 소녀의 행동을 과연 잘못되었다 비난할 수 있을까?

  "이제는 절 아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요……. 아저씨도 떠날 거죠?"

  "……그래."

  나는 이곳을 곧 떠난다. 떠나기 싫어도 떠나게 된다.

  이 아이를 지켜줄 수는 없었다.

  "아저씨, 그럼 부탁이 하나 있어요."

  서은이가 내 손을 잡았다.

  총을 쥔 손이었다.

  "아저씨, 이곳의 밤은 너무 힘들고 외로워요. 근데…… 저한텐 이곳이 계속 밤일 것 같아요."

  서은이는 그 손을 들어 올려……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갖다 댔다.

  "저 좀 죽여주실래요?"

  그 말을 들은 난 총구를 뒤로 빼려 했다.

  근데 문득 서은이의 손등이 보였다.

  그 위에 새겨져 있는 선명한 S라는 알파벳 또한.

  "……이 문신, 방금 전에 생겼어요.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마더들은 이런 문신이 있다고. 그러니까 저는 죽어야 해요. 아무래도 아줌마가 나한테 '우리 아이'라고 했던 게, 이런 거였었나 봐요."

  "후우……."

  담배가 물고 싶어졌다.

  "던전지기, 이 아이, 인간이야, 좀비야?"

  [인간입니다. 마더가 되려면 표식이 생성되고 24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따라서 보너스 보상을 획득하시려면 죽여서는 안 됩니다.]

  "……."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이래서 캐릭터에 몰입하지 않으려 그랬는데.

  나는 마른세수를 하고는 머리를 쓸어 올렸다.

  "……서은아."

  "……네, 아저씨."

  "미안, 아저씨가 거짓말을 했어."

  "누구나 어디서든 행복을 찾을 수 있어."

  아까 6층의 마더를 죽이러 가는 길에, 내가 서은이에게 했던 말이었다.

  거짓말이었다.

  뼈가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행복 할 수 있다고?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인정한다.

  사지가 없는 불구라도 행복할 수 있다고?

  주변 환경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있다.

  하지만 사방에 좀비만이 남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에 시달리며 갇혀 살아가는 아이에게, 너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자기기만이었다.

  내 기준에서, 서은이는 행복할 수 없었다.

  위로랍시고 어디선가 들은 그럴듯 한 말을 지껄였을 뿐.

  "……알아요."

  내 거짓말을 이 영특한 아이도 눈치채고 있었나 보다.

  "그래, 다음 생에선 꼭 행복하거라."

  더 이상의 기만은 서은이에 대한 모독이 되리라.

  나는 가만히, 그리고 경건하게 총을 들어 올렸다.

  "고마워요."

  서은이가 미소 짓는 것이 보였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미소였다.

  나는 그 미소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 * *

  "후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연기가 긴 꼬리를 그리며 하늘로 올라갔다.

  4층의 터프가이 마더에게서 얻은 담배였다.

  담배하고는 별로 안 친한데, 오랜만에 피우는 담배라 그런지 맛이 각별했다.

  한 개비를 모두 태운 나는 한 개비를 더 집었다.

  [마스터, 지나친 흡연은 몸에 해롭습니다.]

  "알아."

  나는 트리슈라의 걱정에도 아랑곳 없이 새로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살짝 빨아들인 다음 내 앞의 땅바닥에 수직으로 세워놓았다.

  죽은 꼬마의 앞이기도 했다.

  "이건 너를 위한 거다."

  담배는 소녀의 시체 앞에 꼿꼿이 서서 연기를 피워 올렸다.

  소녀의 넋을 위로 하는 것처럼.

  "잘 가거라."

  나는 소녀가 아닌, 담배를 바라보며 마지막 인사를 내뱉었다.

  담배는 대답 없이, 그저 조용히 타오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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