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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19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19/215)

  기계신과 함께 019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일단 생존자들에게 물어본 결과 알파벳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어. 그 말은 곧 이 세계에는 영어가 없고, 좀비에게서 발견된 알파벳들은 오로지 던전 입장자인 나한테 전달 하는 메시지라는 뜻이야.'

  [마더들이 알파벳 모양 문신을 갖고 있는 게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군요.]

  '그래, 그냥 아무렇게나 새긴 문신이 전부 알파벳 모양이었다? 그런 우연이 있을 리는 없겠지.'

  골머리가 아프긴 했지만 뭔가 퍼즐을 푸는 기분이었다.

  '재미있군.'

  내가 던전 생활을 게임처럼 느낀 것은 이런 게임과 같은 요소가 가끔 씩 한 번씩 튀어나와 줬기 때문이다.

  '수수께끼는 좀 약한 편이지만, 내가 또 이런 이스터에그 (Easter Egg:제작자가 자신의 작품에 장난으로 숨겨놓은 요소)는 그냥 못 넘어가지.'

  나는 트리슈라와 함께 숨겨진 뜻을 찾기 시작했다.

  '슈리, 스마트폰의 사전 기능 있지?'

  [네, 있습니다.]

  '다행이군. 영어에는 좀 약한데 말이지. 자, 그럼 하나하나 생각해 보자고.'

  나와 트리슈라는 열심히 추리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음, 일단 방위나 방향 이런 걸 나타내는 건 아닐 것 같은데.'

  [영어 사전 검색 결과 방향, 방위 등과는 연관성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알파벳 순서…… 이런 것도 아니겠지?'

  [w, G, A, E, P 순으로 각각 알파 벳 23, 7, 1, 5, 16번째 글자입니다 만, 저는 어떤 규칙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나도 그래.'

  한 10분간 열심히 생각해 봤으나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음… 역시 의미로 따져봐야 하나?'

  영어에 약해서 별로 자신은 없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일단 알파벳과 그것을 발견한 마더를 연결지어 스마트 워치의 화면에 띄워봤다.

  1층의 전차처럼 시끄럽게 소리지르며 내게 돌격해 대던 폭주기관 좀비는 W.

  2층의 머리 두 개에서 독액이랑 음파를 뿜어대던 반남반녀좀비는 알파벳 불명.

  3층의 자기 살 먹어서 던져대던 뚱뚱보 좀비는 G.

  4층의 총 들고 설치던 터프가이 좀비는 A.

  5층의 식칼 들고 달려들던 그 구역의 미친 좀비는 E.

  6층의 제자리에 고정되어 구속복 입고 염력 쓰던 촉수 좀비는 P.

  '뭔가 좀비와 알파벳이 상관이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슈리와 머리를 쥐어짜던 중에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나 배고프다고. 그냥 묶어놓고 굶겨 죽일 셈이야?"

  강간마 녀석이 양손이 묶인 채로 배고프다고 투덜대고 있었다.

  정말 깡 하나는 난놈이었다.

  "후우, 그냥 밥 달라고 하면 줄 텐데 꼭 말을 그렇게 해야 하나."

  흰머리 중년인이 일어나서 음식을 들고 왔다.

  에너지바로 보이는 간편한 음식이었는데, 그는 포장을 뜯어 그것을 강간마 사내의 입에 넣어주었다.

  "쳇, 노인네 말고 여자가 주는 걸 받아먹고 싶은데."

  "그러게 평소에 잘하지 그랬나."

  "X발,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다들 내 밑에서 빌빌거리던 것들이 저새…… 하나 들어왔다고 기고만장하기는."

  강간마 놈은 슬쩍 내 눈치를 보면서도 툴툴대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열심히 수수께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지만.

  "에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맛깔스러운 것들이 내가 시키면 죽는 시늉도 했는데. 그년들은 다 어디서 죽어 자빠진 거야."

  "다 자네가 죽여놓고 무슨 소리인가?"

  "X발, 내가 안 죽였다고! 몇 번을 말해야 돼!!"

  "아, 알아들었으니까 이거나 먹게."

  전혀 알아듣지 않은 말투로 흰머리 중년인이 강간마 녀석에게 계속 에너지바를 물려주었다.

  그런데 강간마에게 에너지바를 먹여주던 중년인이 돌연 윽!하며 에너지바를 떨어뜨렸다.

  "왜, 왜 그래?"

  "윽, 소, 소변 좀 보러 갔다 오겠네."

  그 말을 한 흰머리 중년인은 영거 주춤한 자세로 걸어 한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또 요실금이 재발한 모양이었다.

  강간마 사내는 바닥에 떨어진 에너지바를 입맛을 쩝쩝 다시며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도 멍하니 생각했다.

  소변, 에너지바, 강간마, 흰머리, 먹는다.

  '먹는다, 먹는다, 먹는다…… 먹는다?

  , 그러고 보니 3층의 좀비가 제 살을 먹어치웠지.

  '슈리, '먹다'라는 뜻과 관련된 단어 중에 G로 시작하는 것들 한번 검색해 볼래?'

  [Get, Gluttony 등이 있습니다.]

  흠…… 이 방향으로 파볼까?

  각 층 마더의 성향과 특징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1층의 좀비는 굉장히 화가 나서 내게 달려들던 놈이었다.

  시종일관 분노에 찬 포효도 질러대지 않았던가.

  '슈리, '분노'와 관련된 단어 중에 W로 시작하는 거.'

  [Wrath가 있습니다.]

  '흠, 먹는 것과 분노에 대한 건 일단 있단 거지?'

  나머지 좀비들의 특징들도 생각해 봤다.

  '2층은 반인반녀였는데 알파벳이 없었으니 패스하고, 4층은 총을 든 터프가이, 5층은 미친년. 흠, 분노와 섭식과 같이 특징을 뽑아야 하는데.'

  더 생각을 이어가려던 찰나, 잠깐 생각을 멈췄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보니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천주교인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7개의 대죄에 분노랑…… 폭식? 이 두 개가 들어갔었는데.'

  이걸 모티브로 삼은 영화나 애니메이션 작품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기억한다.

  한때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빠져 지냈던 나는 7대 죄악이 나오는 작품의 이름을 대라면 몇 개나 댈 수 있을 정도였다.

  '슈리, 칠죄 중에 해당하는 알파벳 한번 검색해 볼래?'

  [분노 Wrath, 호색 Lechery, 폭식Gluttony, 탐욕 Avarice, 시기 Envy, 교만 Pride, 나태 Sloth입니다.]

  '음... 4층은 A니까 Avarice, 5층의 E는 Envy, 6층의 P는 Pride. 하하, 딱 맞는군.'

  빙고! 이건가 보다!

  '오, 이미지도 얼추 들어맞는…… 데?'

  나는 순간 소름이 오싹 돋는 걸 느꼈다.

  마더들이 남긴 알파벳들은 놀랍게도 7대 죄악의 알파벳들과 모두 들어 맞았다.

  그런데 내가 처치한 마더의 수는 여섯.

  7대 죄악의 죄악은 일곱.

  숫자가 하나 부족했다. 나태 (Sloth)가 없었다.

  * * * '……이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혹시나 싶어서 다시 마더 별로 알파벳을 매치해 봤다.

  분노(Wrath) - 1층 폭주기관 좀비 호색(Lechery) - 2층 반남반녀 좀비 폭식(Gluttony) - 3층 뚱뚱보 좀비 탐욕(Avarice) - 4층 무기를 쓰고 담배를 태우던 좀비 시기(Envy) - 5층 춤추다가 식칼 들고 쫓아온 좀비 교만(Pride) - 6층 한자리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공격해 대던 좀비 나태 (Sloth) - ?

  역시 단어는 제시된 알파벳은 물론 각 마더의 성격과도 얼추 들어맞는다.

  '그렇다는 말은…….'

  [아직 마더 한 마리가 남았다는 거 군요.]

  '그래, 그리고 마더가 나오지 않은 층은 바로 여기뿐이고.'

  지하 1층, 층 전체에서 마더가 발견되지 않은 유일한 곳.

  '그럼 마더는 대체 어디 있는 걸까? 창고도 대부분 수색해서 숨을 만한 곳이 없을 텐데.'

  백화점의 대부분의 좀비들은 포인트를 모으는 과정에서 대부분 청소 했다. 지하 1층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내가 못 가본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의외의 가정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나는 곁눈으로 힐끗 남은 생존자들을 바라봤다.

  [음…… 설마요.]

  내 생각을 읽은 트리슈라가 침음을 흘렸다.

  '…….'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마더들은 하나같이 일반 좀비라 하기엔 규격 외였지 않은가?

  그렇다면 꼭 없으리란 법도 없었다.

  인간의 말을 하고, 인간의 사고를 하는, 인간 흉내를 내는 마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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