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18 -하늘의 눈 지난 생의 최후의 4인, 대현자이자 아크메이지였던 '아케우스'가 얻은 바 있는 최강의 정보계 스킬 중 하나.
내 자체적인 평가에 따르면 이 스킬의 가치는 무려 S급이었다.
일찍이, 나는 던전 시대의 강자가 갖추어야 할 스킬로 세 가지 종류의 스킬을 꼽은 바 있었다.
첫 번째는 정보스킬.
전투의 첫 번째는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 즉, 정보의 수집이다.
눈앞에 생판 모르는 몬스터가 있을 때, 그 몬스터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알 수 없을 때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전초전을 통해 그 몬스터의 습성을 파악한다.
전초전 없이 그 몬스터를 상대했다 가는, 그 몬스터가 시전한 듣도 보도 못한 공격 한 방에 요단강을 건 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적을 파악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정보스킬은 이 과정을 대폭적으로 단축시켜 준다. 스킬로 적을 파악함으로써 시간적, 물적 자원의 소모를 엄청나게 줄여주고, 나아가 공략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내 [배틀 센스]도 전투에서만큼은 이 분야 최고의 스킬 중 하나라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그를 바탕으로 수립한 전략을 실행해 낼 전투 스킬.
사실 이 두 번째가 강자의 조건에서 가장 중요하다. 첫 번째와 세 번 째가 없더라도 강함은 그 자체로 그를 완성시킨다. 압도적인 무력은 모든 불가능한 계획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함에는 한계가 있어,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존재는 없다. 그런 존재가 있었다면 지난 생에서 지구가 멸망하는 지경까지 가지도 않았겠지.
지난 생의 내게 가장 부족했던 부분이라 할 수 있었다. 아니, 보다 강한 무력은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가 부족을 느끼고, 또 갈망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방어 스킬.
방어라는 게 전투 스킬에 포함될 수도 있다 하겠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전투에서의 방어가 아니었다. 바로 이능으로부터의 방어.
본격적으로 던전들이 등장하면서 세상에는 상대를 매혹하고 이용하는 방법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마법이나 초능력을 통해 상대의 육체나 의지를 조종하거나 억압하는 능력들이 등장한다. 그럼으로써 단순히 뛰어난 전투 기술만을 지닌 자들은 누군가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세 번째 스킬 또한 던전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유해야 하는 스킬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하늘의 눈]을 얻음으로 써 이 중에 첫 번째와 세 번째, 즉 정보수집과 이능 방어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하늘의 눈]에는 대표적으로 다음 과 같은 두 가지 기능이 있음을, 스킬북을 읽음으로써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정 대상에 대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신체와 정신에 직접적으로 간섭 하는 모든 이능을 파악하고, 방어할 수 있다.
'대박이다.'
내가 알고 있던 [하늘의 눈]에는 오직 '특정 대상에 대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라는 기능 하나밖에 없었다.
즉 대현자 아케우스가 [하늘의 눈]의 두 번째 기능을 말하지 않았거나, 이게 그가 익힌 [하늘의 눈]보다 좋은 것이라는 뜻이었다.
같은 이름의 스킬북이라 해도 스킬북이 담고 있는 능력은 조금씩 다르니까.
어쨌든 나는 기존의 스킬 평가를 S급에서 S+급으로 상향시키며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지난 생에서 우리를 멸망시켰던 기계룡을 공략할 때도, 전투 시작 직전에 대현자 아케우스는 [하늘의 눈]을 통해 기계룡의 대략적인 능력을 파악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바탕으로 기계룡과 싸워 나갈 수 있었는데, 만약 그의 정보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훨씬 더 일찍 놈에게 몰살되었을 것이다.
내가 놈에게 자폭하는 지경까지 가지도 못했겠지.
그런데 그가 던전 시대 말미에나 얻었을 스킬을, 나는 무려 던전이 시작된 직후에, 더 좋은 것으로 얻은 것이다.
나는 흥얼거리며 스킬북을 품에 갈 무리했다.
공간이동을 비롯한 모든 스킬북을 투자한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은 스킬을 얻은 것이다.
게다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6층의 마더가 죽고 나서 6층 전체를 뒤덮은 점막들이 마치 증발하듯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점막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곧 명품관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명품관은 그 이름답고 고풍스러운 명화들이 벽에 걸려 있었고, 도자기와 보석 같은 장식물들이 그 사이사 이를 장식하고 있었다.
홀 중앙을 장식한 샹들리에의 조명이 도자기와 보석, 명화들을 은은하게 비치며 그 아름다움을 품격 있게 끌어올리고 있었다.
6층 명품관의 전체적인 형태는 둥그런 돔형이었는데, 커다란 중앙 홀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명품관의 매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매장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니 보석, 여성복, 남성복, 액세서리 등을 테마로 한 부스들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로 특이한 부스가 하나 보였다.
아무 이름도 없이 오로지 기다란 통로만 존재하는 부스.
그곳은 입구 전체가 점액으로 뒤덮여 있다가, 점액이 사라지며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나는 그곳으로 깊숙이 들어간 후에야 그곳이 어떤 곳인 지 알 수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명품관의 다른 물건들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비싸 보이는 물건들.
명품을 찾는 이들 중에서도 특별한 이들을 위한 장소인 듯했다.
말하자면 VVIP룸 정도?
그리고 VVIP룸의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선 나는 특별한 아이템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간단한 그림 설명이 옆에 없었더라면 아름다운 반지나 팔찌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물건들.
하지만 옆에 비치된 그림 설명서를 보니, 반지에는 레이저 빔이, 팔찌에는 에너지 실드와 펄스 건이 내장되어 있는 듯했다.
부자들은 보통 일반인보다 많은 위험에 노출되게 마련이다. 가진 게 많으니 노리는 자들이 많은 것이다.
그렇다고 부자들이 평소에 방탄조끼를 입고 다니거나 하진 않는다.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자신들의 품위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아이템들은 그런 그들의 요구에 딱 맞는 아이템들이라 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몸을 치장하는 동시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아이템.
그냥 봤을 때는 액세서리로밖에 보이지 않는 호신 도구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비치된 물건들을 죽 둘러보았다.
그중 하나의 물건이 나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음? 이건?"
간단하지만 유려한 디자인의 목걸이와 팔찌 세트였다.
목걸이 한 개와 팔찌 두 피스로 된 세트로, 디자인이 워낙 심플해 남자가 해도 꽤 어울릴 것 같았다.
그 목걸이와 팔찌 옆의 설명용 그림을 본 나는 대번에 눈빛이 바뀌었다.
"던전지기, 이 목걸이와 팔찌 아이템 하나로 쳐서 갖고 나갈 수 있어?"
나는 대뜸 허공에 대고 물었다.
[각각 독립적으로는 기능할 수 없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한 아이템으로 취급합니다. 따라서 모두 갖고 나가시는 것이 가능합니다.]
'좋아!'
나는 진열장을 부수고 목걸이와 팔찌들을 챙겼다.
"이거 예상보다 수확이 너무 좋잖아?"
[마스터, 입꼬리 찢어지겠습니다.]
"이럴 땐 좀 찢어져도 괜찮아. 원래 이 맛에 던전 도는 거지. 카~"
나는 득템에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되돌아왔다.
서은이는 에스컬레이터 근처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아이다운 호기심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릴 법도 한데, 가만히 앉아서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이 참 얌전한 아이다 싶었다.
"서은아, 고마워. 덕분에 해냈다!"
나는 서은이를 번쩍 안아든 다음에 내려놨다.
얌전한 서은이는 내 포옹이 의외였던지 잠시 놀란 눈을 떴다가 살며시 웃었다.
"도움이 되어서 기뻐요."
서은이가 웃는 모습을 처음 본 나도 덩달아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웃는 모습이 참 예쁜 아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서은이를 한 번 더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 * 던전이 준 24시간 중 약 22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나는 서은이와 지하 1층의 생존자 무리에게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직 남은 좀비들이 백화점 곳곳에 조금 있을 테지만, 그들을 처리하는 대신 나는 생존자 무리에 합류해서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택했다.
그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쉴 새 없이 움직였더니 무척 피곤해서 몸을 조금 쉬어줄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포인트도 모을 만큼 모은 상황에서 무리하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2시간 동안 남은 생존자 무리를 지켜 보너스 보상을 얻는 것 까지 무사히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리고 또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기도 했다.
'흠.'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수수께끼가 있었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내 머릿속에는 알파벳들이 떠다니 고 있었다.
'W, G, A, E, P'
그것은 차례대로 1, 3, 4, 5, 6층의 마더들이 남긴 알파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