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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17 고민은 길지 않았다. (17/215)

  기계신과 함께 017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바로 지하 1층으로 내려가서 생존자 가운데 나를 도와줄 지원자를 모집했다.

  "맨 꼭대기의 마더를 잡기 위해 한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혹시 도와 주실 분?"

  하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당연하다. 마더란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지 아는 이들이니까.

  잠시 침묵 속에서 시간이 지나갔다.

  '결국 강간마 녀석을 데려가야 하나?'

  지원자가 없으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터였다.

  좀 믿음이 안 가긴 했지만, 적당히 협박해서 써먹기 좋은 강간마 녀석을 데려가기로 마음을 굳히던 찰나.

  조용히 손을 드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꼬마아이, 서은이였다.

  "서은아!"

  서은이 엄마가 깜짝 놀라며 아이를 바라봤다.

  "거기가 어디라고 가려고 그래!!"

  엄마가 역정을 냈지만 서은이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자, 엄마의 표정이 움찔하더니 조용히 굳었다.

  "……갈래요."

  서은이가 엄마를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로서는 처음 듣는 서은이의 목소리였다.

  엄마는 입술을 깨물면서 안절부절 못하더니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따라가도 되죠?"

  나는 된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혼자 갈래요."

  서은이가 조용한, 하지만 어딘지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서은이 엄마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술을 질끈 물고는 읊조리듯 말했다.

  "……그래."

  그러고는 나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려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정말 가만 안 놔둘 거야."

  그 서슬 퍼런 독기에도, 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은이에게는 별일 없을 겁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요."

  '다만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일은 어렵지 않은 대신 어지간한 담력으로는 힘든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침착하고 조용한 아이라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서은이의 손을 잡고 위층으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의 계단을 올라가는 내내 서은이는 별말이 없었다. 나는 내 계획을 간단하게 아이에게 설명 해줬는데, 서은이는 그저 공허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이가 참 슬퍼 보이네요.]

  트리슈라의 말대로, 말수 없고 침착한 이 아이는 어딘지 슬퍼 보이는 눈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몰랐지만, 지켜볼수록 아이가 할 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허한 눈.

  '하긴, 아이가 살아가기는 힘든 세상이지.'

  사방이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 돌아다니는 좀비들.

  매일 보는 사람만 보는 폐쇄적인 인간관계.

  그중 대부분이 극한 환경에 처해 난폭하고 히스테릭한 성향을 보이는 자들.

  가혹한 환경에서 인간의 온갖 추한 면을 보며 큰 이 아이가, 과연 제대로 된 정신 건강을 지키고 있을 것 같냐 물어보면, 당연히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이가 가엾어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아이가 나를 올려다봤다.

  "아저씨."

  "응?"

  "사람은 왜 살아가는 걸까요?"

  [위험한 질문이네요.]

  '그러게.'

  아이가 하고 있는 고민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질문이었다.

  위험한 냄새가 나는.

  나는 잠시 말을 골랐다.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거지."

  서은이가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요?"

  나는 가만히 자세를 낮춰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그건 각자가 찾아야 할 인생의 난제란다. 서은이뿐만 아니라 많은 어른들도 그 문제의 답을 찾지 못했어. 인생이라는 게 그걸 찾고 추구하기 위한 고행길이지."

  "……저도 행복이란 걸 찾을 수 있을까요?"

  "응, 누구나 어디서든 행복을 찾을 수 있어."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거짓말을 했다.

  * * *

  "후우, 가볼까."

  마더를 잡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서은이는 작전을 충분히 숙지했고 내 주도하에 연습까지 해봤다.

  이젠 실행만이 남은 상황.

  마지막 점검을 꼼꼼하게 마친 나는 심호흡을 하고 혼자서 에스컬레이터를 올랐다.

  서은이는 5층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태.

  6층을 올라온 나를 보자마자 마더가 눈을 떴다.

  촉수가 꿈틀거리며 일어나기 시작 한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에스컬레이터 입구가 닫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신경 쓰는 대신 마더를 똑바로 직시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사방에서 촉수가 날아온다.

  쾅쾅!

  촉수들을 맞혀 터뜨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빠르기로 마더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마더에게서 멀어질수록 놈이 쓰는 염력이 약해진다는 걸, 저번의 총격으로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견제샷으로 마더를 쐈다. 쾅쾅쾅!

  역시 총알들은 날아가다 어느 지점에서 멈춰 떨어지고 만다. 그나마 촉수를 향해 날아가는 총알은 안 멈춰서 다행이었다. 그것마저 멈추었으면 촉수를 막을 방도가 없었을 테니.

  나는 이를 악물고 최대한 촉수를 터뜨리고 피하며 도망 다녔다.

  이미 퇴로는 차단된 상태.

  나 아니면 마더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한다.

  나는 마더를 정신없이 피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마더를 노려보고 있었다.

  [5초 지나고 있습니다.]

  트리슈라가 내게 시간을 알려왔다.

  들어오기 전에 트리슈라에게 시간을 카운트해 달라고 일러뒀기 때문이다.

  촉수들이 사방을 메워온다.

  빠르기도 어찌나 빠른지 피할 공간이 별로 없다.

  7초쯤, 촉수에 발이 걸려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이를 악물고 다리를 격렬하게 흔들어 떨쳐내려 했지만, 촉수는 미동도 하지 않고 마치 뱀이 다리를 감아오듯 스르륵 내 다리를 감아온다.

  그러나 여전히 내 눈은 마더를 향해 있었다.

  8초. 촉수가 내 양팔을 감아오기 시작했다.

  다리에 이어 양팔마저 구속되니 사지를 움직일 수가 없다.

  9초. 촉수들이 내 온몸을 뒤덮어온다.

  구렁이가 먹잇감을 몸통으로 조이 듯, 촉수가 점점 내 몸을 압박해 들어온다.

  숨이 막혀온다.

  이대로 3초만 지나더라도 온몸의 뼈가 으스러질 터.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시선만으로 마더를 죽일 듯, 뚫어지게 놈을 노려본다.

  눈앞이 노래지며 시야가 사라지려 한다.

  그리고, 10초.

  스윽- 한순간 모든 촉수의 움직임이 멎었다.

  촉수들은 이내 모든 힘을 잃고 축 늘어져 버렸다.

  '휴, 하마터면 늦을 뻔했군.'

  나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건블레이드로 초진동을 일으켜 내 몸을 휘감은 촉수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오른손, 왼손, 양다리가 차례로 촉수에서 풀려났다.

  촉수의 구속에서 벗어난 난 마더를 향해 걸어갔다.

  구속복을 입은 마더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서은이가 그의 머리에 손을 대고 함께 눈을 감고 있었다.

  '성공이군.'

  이 아이가 내가 시킨 임무를 무사히 완수해낸 것이다.

  나는 미소 지으며, 마더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 * * 1시간 30분 정도 전.

  나는 [듀플텍스 링크]와 [꿈의 손길], 그리고 [공간이동] 스킬북까지, 내가 갖고 있던 스킬북을 모조리 서은이에게 건넸다.

  "이제 저 초능력자 되는 거예요?"

  서은이가 조용히 물었다.

  "그래, 너를 초능력자로 만들어줄 책들이야. 넌 이제 앞으로 공간이동 능력이랑 손만 대면 누구든 재워 버릴 수 있는 능력, 그리고 텔레파시 능력이 생길 거야."

  내 인도에 따라서은이는 스킬들을 모조리 습득했다.

  이로써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어졌다.

  던전 보상으로 가지고 나갈 1개의 스킬북은 오로지 6층의 마더가 떨굴 스킬북뿐이다.

  6층 마더의 공략에 실패한다면 스킬북 획득에는 실패하는 것이다.

  '뭐 어차피 실패하면 죽을 테니 아이템만 챙기면 되는 거고.'

  [사망할 경우, 사망 시까지 습득한 아이템과 스킬북을 통틀어 1개만을 보상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던전 입장 시 봤던 이 문구대로라면, 어차피 죽으면 스킬북과 아이템 중 하나는 포기해야 했다.

  그러니 그때는 여기서 얻은 아이템 이라도 들고 나가면 된다.

  나는 내 눈앞의 꼬마를 내려다봤다.

  내가 나가더라도 이 세상이 존속된다는 가정하의 이야기지만, 좀비로 부터 도망다니는데에 앞으로 내가 준 스킬 중 특히 [공간이동] 스킬이 큰 도움 될 것이다.

  [공간이동]은 스킬 쿨타임이 1시간에, 이동 거리는 시야가 닿는 곳까지. 그리고 시전까지 10초의 정신 집중을 필요로 했다.

  정신 집중 10초를 요구한다는 단점이 좀 아쉬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로 좋은 스킬이었다.

  '게다가 스킬 능력치가 높아질수록 그 단점도 보완되니까.'

  구하기도 정말 힘든 데다 아주 유용한 스킬이라 포기하는 게 조금 아쉽기는 했다.

  [그래도 역시 포기하셨겠죠?]

  트리슈라의 물음에 나는 속으로 웃었다.

  '당연하지.'

  6층 괴물의 공략법이 이것밖에 없다고 판단한 이상, 나는 만약 이 공간이동 스킬이 최상급이었다 해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게이머인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행복이자 쾌감은 게임의 클리어, 즉 던전 공략이었으니까.

  나는 마더를 공략할 수 있어서 좋고, 나를 도와준 서은이는 스킬을 익혀 초능력을 얻어서 좋고.

  이것이야말로 상부상조, 윈윈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6층의 마더와 내가 가진 스킬북들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스킬들을 '모조리' 활용해야만 6층 보스를 없앨 수 있다. 그리고 그 핵심적인 스킬은 [공간이동]과 [꿈의 손길]이었다.

  물리적으로 다가가기 힘든 놈에게 다가가는 스킬인 [공간이동]. 그리고 다가간 놈을 일시에 무력화시킬 스킬인 [꿈의 손길].

  [꿈의 손길]은 4층의 터프가이 마더가 준 스킬로, 스킬 시전자의 손에 닿는 대상의 의식은 시전자가 만들어낸 꿈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대신 스킬 시전자의 의식 또한 꿈의 세계로 함께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마더를 무력화시키기엔 이만한 스킬이 없었다.

  그래서 생존자 중 하나에게 이 스킬을 익히게 해, 6층의 최종 보스를 상대할 조커 카드로 활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듀플텍스 링크]로 서은이와 정신을 연결해, 서은이가 마더에게 다가갈 시야를 제공했다.

  그 결과 서은이는 마더를 직접 눈에 담지 않고도 10초 동안 마더를 보며 정신 집중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더의 곁으로 순간이동, 그 직후 재빨리 마더에게 손을 대 [꿈의 손길]로 놈을 재워 버린 것이다.

  서은이는 정말이지 아이답지 않은 침착함으로 내 요구를 완벽하게 해 냈다.

  덕분에 예상보다 쉽게 6층의 공략을 완료할 수 있었다.

  비록 죽을 뻔하긴 했지만.

  "서은아, 일어나."

  나는 서은이를 가만히 흔들어 깨웠다.

  * * * 트리슈라의 던전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정보에 따르면, 처음 [최초의 던전]에 들어간 각성자들 중, 5단계 네임드를 클리어한 건 고작 세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스킬들을 얻어 지구로 귀환했으며, 그 스킬들을 바탕으로 다른 어떤 각성자들보다 앞서나가게 된다.

  그러나 6단계를 클리어한 자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그래서 6단계에서는 어떤 보상이 나올지 참 궁금했는데, 이제 나는 그 결과물을 보게 되었다.

  "심봤다니!"

  나는 마지막 보스가 뱉은 스킬북을 읽으며 탄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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