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15 그리고 동시에 왼손의 BB탄 총을 마더의 머리에 대고 발사했다.
쾅!!
그러나 마더는 식칼을 들지 않은 팔로 머리를 가드해 총알을 방어했다.
역시나 BB탄 총 정도로는 팔에 별 타격이 없는 듯, 마더는 가드 모션 중에도 화려하게 식칼을 놀려 내 왼손을 잘라내려 했다.
그러나 건블레이드를 물 흐르듯 움직여 식칼을 위쪽으로 흘려내며, 쾅!!
식칼을 든 마더의 손목과 총구가 맞닿자마자 총알을 갈겨 버렸다.
마더의 손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마더라고 하더라도 초근거리에서 BB탄 총을 맞게 되니 타격이 온 모양.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식칼은 다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최대한 마더의 칼을 받아치며 타이밍을 쟀다.
'지금!'
건블레이드의 두 개의 방아쇠 중 하나를 당기며 식칼을 받아쳐 갔다. 위잉-건블레이드의 칼날 부분이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칼과 건블레이드가 마주치는 순간!
건블레어드가 식칼을 마치 두부처럼 가르고 들어갔다. 건블레이드의 칼날이 초진동(超振動)하며 그에 닿는 모든 것을 절삭하기 시작한 것이다.
놀란 마더는 엄청난 속도로 식칼을 빼내며 뒤로 몸을 날렸다.
'아쉽군.'
이번 기회에 식칼과 팔을 동시에 날려 버리려 그랬는데, 마더가 이제 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몸을 빼버린 것이다.
'아직 힘에 여력이 있었어.'
마더는 물러난 직후에 다시 내게 돌진해 왔는데, 빌어먹게도 식칼에는 방금까지와는 달리 옅은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마나 소드라니.'
판타지 용어로는 마나 소드(Mana Sword), 무협 용어로는 검기(劍氣).
경지에 이른 검사들이 쓴다는 초절 기예 (超絶技藝)였다.
나는 초진동 블레이드로 검기를 받아쳐 갔다.
캉! 쾅! 캉! 탕!!
나와 마더는 초근접 전투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전투가 이어질수록 건블레이드의 이가 나가고 있었다.
초진동 칼날이라 해도 내구력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라서 마나를 두른 검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대로라면 얼마 안가 건블레이드가 박살 나게 생겼다.
'미치겠군.'
코일 건이 내 등 뒤에 메여 있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근접 박투를 벌이고 있는 와중에는 코일 건으로 함정을 설계할 수도 없었다.
[배틀 센스]가 마더의 패턴을 읽어 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여기 까지 상대할 수 있었지, 신체 능력으로 보자면 사실 진작에 끝났어도 이상하지 않은 싸움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쾅! 쾅!!
숨겨두었던 스킬을 꺼내기 시작한 듯 갑자기 마더의 힘이 급격하게 세졌다.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숨겨둔 힘이 더 있었어?'
손에 실리는 일격 일격이 방금까지 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그 탓에 결국…… 뼈아픈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쾅!!
건블레이드가 내 손에서 박살 나며, 캉!
마더의 식칼이 내 왼손의 스마트 워치, 즉 트리슈라를 가르고 지나가 버렸다.
'안돼!! 슈리!!!'
스마트 워치는 내 눈앞에서 산산조각이 나 비산했다.
그 모든 게 마치 슬로모션처럼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중 가장 큰 조각을 왼손으로 낚아챘다. 스마트워치, 아니, 슈리의 파편을 이대로 모두 땅바닥에 흩뿌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뒤로 점프했다.
마더가 바로 나를 추격해 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내 신경은 온통 슈리에게로 향해 있었다.
나는 이 던전에서 죽는다 해도 던전의 규칙에 의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러나 소모품에 해당하는 스마트 워치는 던전 밖으로 나간다 해도 다시 재생되지 않는다.
즉 그 안에 있는 슈리가 어찌 될지는 불분명한 상황.
'슈리, 살아 있으면 대답해!!'
나는 속으로 제발, 제발을 외치며 슈리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슈리가 죽은 것이다.
슈리는 내게 있어 단지 AI가 아니었다. 그녀는 회귀 전의 나를 아는 유일한 존재이며, 회귀하고 나서 나의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준 존재였다. 그녀가 있음으로써 나는 고독 하지 않을 수 있었으며, 빠른 시간 안에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 그녀를 이렇게 허무하게 잃고 만 것이다.
'미안하다, 슈리.'
너를 더 소중히 해줬어야 하는데, 손목이 아니라 품 안에 넣고 보호 했어야 하는데.
내 부주의함에 파트너를 잃고 말았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나 자신을 자책하는 일은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를 지경이었다.
'복수는 하고 간다.'
절대적인 열세임을 알았지만, 나는 마더를 노려보며 각오를 다졌다. 뒷 일 생각은 하지 않고 내가 지닌 모든 패를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위이잉- 갑자기 옅은 빛이 일었다.
에메랄드빛 사이로 흐르는 은은한 황금빛.
그 빛은 왼손에 든 스마트워치의 파편과 그와 맞닿아 있는 BB탄 총에서 일고 있었다.
'뭐지?'
결코 찬란하지는 않지만, 눈을 은은히 적실 정도의 작은 빛.
어딘지 익숙하기도 한 빛.
그리고 두 개의 광원(光源)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마치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서로에게 녹아든 스마트 워치의 파편과 BB탄 총.
두 가지 물체가 합쳐지자마자 빛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소리 없이 여러 개의 홀로그램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홀로그램들이 취하고 있는 모양은, 지금 수준의 던전에서 등장 할 리가 없는 미래 병기들.
6개의 홀로그램은 모두 내가 겪어 본 바 있는 미래 무기들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마스터,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세요.]
갑자기 들려온 슈리의 목소리에 나는 반가워할 새도 없이 홀린 듯이 홀로그램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철컥철컥.
BB탄 총이 마치 재조립되듯 그 형태가 변화했다. 동시에 등 뒤에 메어 있던 코일건이 해체되며 일부가 날아와 BB탄 총과 합체되었다.
눈 깜짝할 새에 내 손에는 방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총이 들려 있었다.
'이건……'
핸드건 형태의 전자기력 가속 발사 무기, 레일 건 (Railgun)이었다.
절대 지금 이 순간에 등장할 리가 없는 오버테크놀로지.
나는 홀린 듯이 레일 건을 들어올려, 마더를 향해 겨누었다.
마더가 위기감을 느낀 듯 피하려 했으나, 내 손가락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탄알이 마더의 식칼을 산산조각으로 부숴 버리고, 퍼영!
머리를 가드한 마더의 왼팔과 머리를 동시에 날려 버렸다.
털썩.
머리와 팔 한쪽이 사라진 마더가 땅바닥에 쓰러졌다.
"……."
나는 할 말을 잃고 왼손에 든 총을 내려다봤다.
이해되지 않는 현상과 이해되지 않는 과정.
이 모든 과정이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한 가지 현실을 찾아내었다.
"이거 참. 슈리, 화려한 귀환이구나."
슈리를 잃지 않았다는 것.
짧은 시간 내게 상실감을 느끼게 해줬던 그녀의 대답이 들려왔다.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마스터.]
이 담담한 말투가 그 짧은 시간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래, 다시 봐서 좋다. 우리 평생 헤어지지 말자."
[그런 말씀은 애인한테나 하시죠.]
"있어야 하지."
나는 씨익 웃었다.
슈리가 어떤 대답을 해도 그저 슈리가 돌아온 것이 기쁠 따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분을 남아 있는 좀비들을 향해 내뿜었다.
콰아앙! 콰아아앙!
닥치는 대로 레일 건을 쏴 좀비들을 화려하게 날려 버렸다.
고작 몇 발로 남아 있던 수십 마리의 좀비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시원한 기분.
그리고 짙은 안도감.
나는 총의 변신이 풀리는 걸 바라보며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의 마나가 고갈되며 생기는 탈진감과 슈리를 되찾았다는 안도감이 섞여나를 주저앉힌 것이다.
마나가 고갈되자 총은 다시 평범한 (?) BB탄 총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후우~"
계속 앉아 있고 싶었으나, 나는 움직이기 힘든 몸을 끌고 마더의 시체로 향했다. 마더의 시체가 사라지기 전에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 던전에서는 한시도 쉴 새가 없었다.
어쨌거나…….
'다시 잘해보자고, 파트너.'
슈리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그녀가 웃고 있는 기분이었다.
* * * 이번 마더는 옆구리 부분에 알파벳E가 새겨져 있었다.
알파벳을 확인하자마자 마더의 시체가 빛에 휩싸여 사라지고, 스킬북이 그 자리에 남았다.
"헐…… 이게 여기서 나온다고?"
나는 내 손에 들린 스킬북을 보며 황당해했다.
이것은 5층의 마더가 남긴 스킬북이었다.
이 책의 표지에 적힌 스킬은 그 이름만으로도 누구나 탐낼 만한, 활용도가 어마어마하게 높은 스킬북.
책의 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