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14 나는 덩치 사내를 한 군데에 묶어 둔 다음 일행에게 엄포를 놓았다.
"절대 이 사내를 죽이지는 마시길. 제가 돌아왔을 때 죽어 있으면 여러분도 죽습니다."
이 녀석이 분란의 소지가 있다고는 해도 나는 웬만하면 이 녀석까지 살려야 했다. 모든 생존자를 살리는 것이 던전이 지정해 준 또 다른 목표였으니까.
물론 가장 중요한 목표가 던전에서 단 한 개씩만 가지고 나갈 수 있다는 스킬북과 아이템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근데 그럼 좀비는 어떡합니까?"
이쪽으로는 슬슬 2~3층의 강력한 좀비가 내려오고 있어서 애를 먹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저 덩치 사내마저 빠진다면 전력에 큰 손실이 생길 터.
나는 대답 대신 남학생에게 손짓했다.
내가 무전기를 건네줬던 쪽이었다.
"받아."
나는 [아드레날린 러시]와 [섭식회복] 스킬북을 그에게 건넸다.
"이게 뭔데요?"
"따라 해봐, 습득."
"습득."
남학생이 양손에 스킬북을 쥐고 말하자, 그의 온몸이 환한 빛에 휩싸였다.
스킬북을 익히지 못하는 건 던전에 입장한 각성자일뿐, 던전 내의 등장 인물은 스킬을 습득하는 것이 가능 했다.
환한 빛이 사라지고 남학생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넌 이제 '아드레날린 러시'라고 외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야. 그걸로 좀비들을 처리해. 부작용이 좀 있을 텐데 음식을 먹으면 금방 회복될 거야. 앞으로 네가 일행을 지켜라. 좀비한테 안다치게 조심하고."
이걸로 당분간은 문제가 없으리라.
[24시간이 지날 때까지 생존에 성공하면, 습득한 아이템 1종류와 스킬북 1종류를 성공 보상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던전 입장 시던전은 내게 이 같은 문구를 보여줬다.
이처럼 어차피 던전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스킬북은 하나뿐이었고, 나는 이 스킬북들을 가지고 나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준 스킬북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위층으로 향했다.
* * * 나는 위층을 오르며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덩치 사내의 불의를 보고도 다른 일행이 입을 열지 못했듯, 폭력이 주가 된 세계에서는 불의에 함부로 항거하지 못한다.
당장 살아남는데에 치이게 되면 인간적인 존엄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아포칼립스적인 환경이 회귀 전의 세계를 떠올리게 했다.
'그때도 이랬지.'
힘이 곧 법인 세계.
힘과 힘이 충돌하고 그것으로써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던 곳.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회귀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지냈 지만 내게 그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는 이상, 또 다시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게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물론 던전이라는 것의 특성상 나 혼자 모든 것을 해낼 수는 없다.
제거해야 할 자들과 포섭해야 할 자들.
나는 머릿속으로 밖에 나가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두었다.
* * * 나는 한동안 5층에서 좀비들을 사냥했다.
그렇게 5층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5층의 한 구역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둠칫둠칫.
마치 클럽에서나 들려올 법한 흥겨운 음악 소리.
'뭐지?'
나는 조심스럽게 음악이 들리는 쪽으로 접근했다. 아마도 무대 행사 따위에 쓰이는 이벤트홀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하고야 말았다. 좀비들이 음악 소리에 맞춰서 신나게 온몸을 흔들고 있는 광경을.
'……내가 헛것을 보나?'
그러나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좀비들이,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있다.
둠칫둠칫.
심지어 몸을 흔드는 좀비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흥겨워 보인다.
십 년이 넘는 헌터 생활을 한 내게도 그 모습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뭐냐, 저 녀석들."
나는 황당해하며 중얼거렸다.
[마스터, 저 모습을 보면 좀비들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거 아닐까요?]
트리슈라가 내게 물어왔다.
1층의 마더를 잡을 때 나는 좀비가 무슨 영락(榮樂)을 누리겠냐느니 하는 말을 했다.
그 말을 염두에 두고 묻는 게 틀림 없었다.
[퇴근하고 온 아빠 좀비가 '우리 아들, 선물 가지고 왔어!'라고 외치는 가운데, 엄마 좀비가 '어서 와요 여보, 식사 준비해 놨어요'라고 미소 짓는 행복한 좀비 가족이 있으면요?]
나는 피식 웃었다.
슈리의 질문은 초보 헌터가 가지기 쉬운 의문이었던 것이다.
이 질문 하나만 봐도 지금의 슈리가 지난 생의 AI와는 차원이 다른 사고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가장 외곽에서 몸을 흔들던 좀비 하나가 나를 발견했다. 놈은 춤을 추는 것을 멈추더니 으어어~하며 내게 접근해 왔다.
"내가 이대로 식사가 되어주면 저 좀비는 정말로 행복해할 것 같은데?"
내가 웃으며 슈리에게 좀비를 가리켜 보였다.
[……네, 제가 어리석은 질문을 했군요. 그렇다고 마스터가 놈들의 식사가 될 순 없으니까요.]
슈리가 말한 대로 좀비들 또한 행복을 느끼고 문명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엄마 좀비가 준비한 식사 나, 아빠 좀비가 가져온 선물이 내 오장육부나 팔다리가 될 수도 있다.
저놈들과 내가 서로 죽고 죽여야만 살아남는 천적 관계라면, 망설임 없이 죽이는 쪽을 택하겠다.
그것이 헌터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몬스터들을 대할 때 명심해야 할 마음가짐이었다.
난 으어어하며 다가오는 좀비를 슬쩍 이벤트홀 밖으로 유인해서 처리 했다.
잠시 멀찍이 물러서며 이벤트홀 쪽을 살폈으나, 다른 좀비들이 나오는 기색은 없었다. 홀 안쪽이 무척 시끄러웠기 때문에 다른 좀비들은 총소리를 듣지 못한 듯했다.
이벤트홀 안에는 무척 많은 수의 좀비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좀비들을 소수단위로 이벤트홀 밖으로 유인해서 처리해 나갔다.
그 과정은 무척 은밀하게 진행되었는데, 특히 나는 이벤트홀의 중앙 무대에서 춤추고 있는, 마더로 추정 되는 좀비에게 내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 매우 조심했다.
그 좀비는 여성체였는데, 좀비가 되기 전에는 클럽깨나 다녀본 듯 긴 머리를 찰랑찰랑 휘날리며 웨이브를 타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가히 이 구역의 여왕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댄스 실력!
심지어 사이키 조명까지 설치된 스테이지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으며 광란의 댄스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다행히 댄스에 정신이 팔린 마더는 좀비들을 처리하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게 내가 이벤트홀의 좀비를 반 쯤 처리하고, 다른 좀비를 유인하러 다시 이벤트홀 안으로 발을 들이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홀 안의 음악이 딱 멎었다.
동시에 사이키 조명도 꺼지며 좀비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시끄럽기 그지없던 이벤트홀 안에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뭐지?'
불길함을 느낀 나는 반사적으로 마더가 있던 쪽으로 눈길을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싹한 느낌이 든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 이벤트홀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리고 발견하고 말았다.
쿵!
이벤트홀의 문을 닫아 잠그는 마더를.
마더가 내 쪽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야 말았다. 마더는 길고 검은 머리를 치렁치렁 얼굴 앞으로 늘어뜨린 채, 식칼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명이 꺼져 어두컴컴한 가운데 식칼을 들고 다가오는, 머리가 길고 살점이 썩어 문드러진 미친 여자.
'조합 참 심장 덜컥하게 만드는군.'
그러나 난 숙련된 베테랑 헌터!
저런 몬스터 따위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마더 좀비가 마치 미친년처럼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총을 꾹 붙잡았다.
[까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깜짝이야!! 왜 네가 비명을 지르는데!!"
트리슈라의 비명에 함께 비명을 지르며, 나는 마더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타탕!!
두 발의 총이 날아갔으나, 팅팅!
마더는 무려 식칼로 그 총알들을 튕겨 냈다.
나는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면서도 그 모습을 보고 기함했다.
'무슨 소드 마스터냐?!'
4, 5층의 마더들은 확실히 1, 2, 3 층의 마더들과는 그 격이 달랐다. 육체적인 강인함은 물론 육체를 활용하는 방법조차 굉장히 지능적이고 기술적이었다.
이쯤 되자 마지막 층인 6층에 있을 녀석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걱정보다는 눈 앞의 마더부터 어떻게든 처리해야 할 터.
이 녀석은 총 대신 칼을 들었기 때문인지 4층의 마더보다 훨씬 빨랐다.
나는 뒤돌아서 도망치고 있었음에도 무섭게 나를 추격하는 이 녀석을 도저히 따돌릴 수가 없어서, 결국에는 몸을 돌렸다.
'이판사판이다.'
나는 5층에서 얻은 무기들 중에서도 특별한 총을 꺼내 들었다.
총구 부분이 날카롭게 변형되어 베고 찌를 수 있게 만들어진 총!
이름하여 총검, 또는 건블레이드 (Gun-blade)라 불리는 무기였다.
나는 오른손에 든 BB탄 총을 왼손으로 옮기고, 오른손으로 건블레이드를 잡았다. 그리고 다가오는 마더를 맞이했다.
건블레이드를 얻고 틈틈이 [디바이스 컨트롤]로 숙련도를 높이긴 했지만, 긴장감에 등이 축축해졌다.
[디바이스 컨트롤]을 믿기는 했지만, 총검이라는 무기의 한계가 있어서 저 식칼을 든 미친년을 얼마나 상대할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드디어 이 구역의 미친년이 내게 근접했다. 그리고 식칼을 냅다 내려 쳐 왔다.
그 모습이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서워 보였다.
[까아아아아악!]
아무래도 던전을 나가면 공포영화로 슈리를 좀 단련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내려쳐 오는 식칼을 건블레이드로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