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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12 [쟤 되게 똥폼 잡네요.] (12/215)

  기계신과 함께 012 [쟤 되게 똥폼 잡네요.]

  "너도 그렇게 생각했지?"

  내 눈앞의 좀비는 정강이까지 내려 오는 롱코트를 입고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는데, 문제는 놈이 손에 기다란 장총을 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놈은 좀비 주제에 창가에 한다리를 걸치고 앉은 채 얼핏 창밖으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다가가는 것을 느꼈는 지, 내 쪽을 홀깃 바라보고는 갑자기 총을 쥐지 않은 한 손을 들어 올려 나를 향해 내뻗었다.

  나는 놈이 뭔가 나를 향해 쏘려는 건 줄 알고 긴장했으나, 자세히 보니 빈손이었다.

  그런데 저놈이, 아니, 저 새끼가 내게 엄지를 척 세워 보이더니 천천히 꺾어 아래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명백한 도발이었다.

  [마스터, 죽여 버리죠.]

  "바라는 바다."

  안 그래도 똥폼 잡는 게 심히 거슬렸는데 도발까지 해오다니.

  분노가 타오르는 한편 나는 왠지 모르게 흥분과 설렘이 온몸을 휘도는 것을 느꼈다.

  왠지…… 저 좀비에게서 호적수의 냄새가 난다.

  나와 좀비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총을 발사 했다.

  탕!!

  서로의 총 끝에서 발사된 총알이 각자의 어깨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좀비도 발사와 동시에 이미 회피 동작을 하고 있었다.

  과연 저 녀석은 이제까지 만나왔던 어떤 좀비와도 달랐다.

  훨씬 빠르고, 훨씬 테크니컬했다. 풍! 풍!

  좀비가 빠르게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본 나는 견제사격으로 놈의 발걸음을 제지하며 엄폐물 뒤에 몸을 숨겼다.

  4층은 가구매장이었기 때문에 곳곳에 몸을 숨길만한 가구가 많았다.

  '공격력은 비등, 방어력은 저쪽이 한참 위, 민첩은 내가 약간 우위.'

  4층에서 얻어 사용 중인 소총인 '코일 건'은 아까 얻은 BB탄 총보다 폭발력이 적고 관통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반동과 소음이 거의 없다시피해서 은밀한 사격에 적합한 미래 무기였다.

  보아하니 놈도 비슷한 무기를 사용 하고 있는 듯한데, 나는 저걸 내 몸 어디든 한 방만 맞는다면 치명타인 반면, 저놈은 머리를 제외한 어느곳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 심지어 머리로 날아오는 총알도 팔로 막으면 그만.

  이처럼 불공평한 싸움이 어디 있는 가.

  한쪽은 온몸이 약점이고 한쪽은 약점이 없다시피 하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몸을 숨긴 반면 놈은 자신 있게 내게 돌진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근접전으로 가서 회피 반경이 적어 진다면 내 패배다.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간다. 지금 상황은, 명백한 위기였다.

  내 [디바이스 컨트롤]은 '총'의 본연의 기능인 '맞힌다'는 점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충실하지만, 내 회피 동작까지 신경 써주진 않는다.

  즉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는 건 오로지 내 몫인데, 내 늘어난 민첩 스 탯에 기댄다 해도 놈이 쏘는 모든 총알을 피하기란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빌어먹게도 지금은 도망 가는 것마저 불가능했다.

  놈이 나보다 느리다곤 하지만 그것도 그야말로 소소한 차이. 도망가는 걸 쫓아와 총알을 박아 넣을 정도는 된다.

  '후, 도박을 해야겠군.'

  고민하고 있어 봤자 승률은 시시각각으로 낮아진다.

  나는 품속에서 귀염둥이 3호를 꺼내 놈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날렸다. 내가 가진 마지막 수류탄이었다.

  쾅!!

  굉음이 울림과 동시에 나는 밖으로 뛰쳐나오며 놈에게 양손에 든 BB탄 총을 갈겼다.

  쾅쾅쾅쾅!

  BB탄 총은 4층에서는 꽤나 자주 발견되는 무기였기 때문에 총탄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역시 제대로 된 타격을 받지 않았는지, 놈은 터프하게 폭연을 뚫고 뛰쳐나왔다. 그리고 내게 총을 겨누었다.

  나는 급히 뒤쪽의 엄폐물로 몸을 날렸다.

  탕!

  엄폐물에 몸을 숨기기도 전에 놈의 총알이 발사되었다.

  피하기는 이미 늦은 상황.

  탕!!

  두 개의 총알이 공중에서 맞아 튕겨 나갔다.

  '다행이다.'

  피하기는 이미 늦었음을 직감한 나는 재빨리 나를 향한 총구를 겨냥해 총을 쏘았다. 그리고 같은 타이밍에 발사된 총알을 공중에서 맞혀 버린 것.

  약간 도박성의 움직임이었지만, 늘어난 능력치들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틈을 타 나는 무사히 엄폐물 뒤로 몸을 감출 수 있었다.

  뚜벅뚜벅.

  놈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후우."

  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타이밍을 쟀다.

  그리고, '지금!'

  양손에 든 두 개의 권총을 하늘로 던져 올렸다.

  권총 두 정이 빙그르르 회전하면 허공으로 떠올랐다.

  두 권총의 총구가 좀비를 향하는 순간, [디바이스 컨트롤].

  탕탕!

  놀랍게도 저절로 방아쇠가 당겨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총 두 정이 모두 좀비의 총알에 맞아 부서졌다.

  그러나 내 몸은 이미 땅바닥에 닿듯 엄폐물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어느새 꺼내든 다른 총에서, 탕!!

  총탄이 놈의 얼굴을 향해 발사되었다.

  소총으로 두 정의 권총을 파괴하느라 정신이 팔린 놈의 얼굴은 무방비였다.

  팟- 그러나 놈은 가까스로 고개를 틀며 총탄을 피해냈다.

  실로 아쉬운 한 발.

  하지만.

  '각 나왔어!'

  [디바이스 컨트롤].

  다시 고유 스킬이 발동했다.

  풍!

  미세한 총음이 울렸다.

  코일 건.

  반동과 소음이 거의 없다시피해서 은밀한 사격에 적합한 미래무기. 그리고 폭발력은 적은 대신, 퍽!

  관통력이 뛰어나다.

  털썩.

  뇌가 사라진 좀비가 무릎을 꿇는 것이 보였다.

  나의 승리였다.

  * * * 터프한 좀비를 쓰러뜨린 방법은, 말하자면 '스킬빨'이었다.

  [디바이스 컨트롤]의 능력치가 30을 넘으면서부터 내 시야에 닿는 내 무기는 원격으로 작동시킬 수 있게된 것이다.

  나는 놈의 머리를 꿰뚫을 위력을 가진 코일 건을 처음의 엄폐물 뒤에 알맞은 각도로 세워두고, 엄폐물 밖으로 나와 놈을 코일 건의 사선(射線)으로 유인했다.

  마지막에는 놈의 머리가 총의 사선으로부터 조금 비껴 있길래 총탄 한 발을 쏴서 놈의 대가리 위치를 좀 조정해줬다.

  그리고 사선과 놈의 뒤통수가 만나는 순간, [디바이스 컨트롤]로 원격으로 코일 건 발사!

  사실 코일 건을 제외한 총은 위력이 약해서 머리에 맞아도 놈에게 치명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놈은 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놈은 내가 쏜 총을 정말 무심코 피해버렸다. 우리도 맞으면 간지러울 만큼 작은 돌멩이가 날아 오면 무심코 피하지 않던가.

  하지만 놈은 피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결과 코일 건의 탄알에 머리가 터지고 말았으니.

  이 작전을 실행하는 한순간한순간 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도박이었다.

  다행히 작전대로 실행이 되어서 내 승리가 되었지만, 조금만 삐끗했어도 4층을 통과하지 못하고 던전에서 퇴장당할 뻔했다.

  그러나.

  '역시 재밌어.'

  목숨 걸고 하는 짜릿한 게임은, 마약과도 같아서 끊을 수가 없다.

  시간을 두고 접근했으면 더 안전하게 놈을 사냥할 수도 있있겠지만 지금 이 던전은 24시간이라는 제한 시간이 주어진 던전이었기 때문어그냥 몸으로 부딪쳐 버렸다.

  겨우 4층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사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내 자신이 이 도박 같은 싸움에서 승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조금만 삐끗해도 죽는 도박이라면, 삐끗하지 않으면 될 것이 아닌가?

  나는 온몸을 휘감아도는 승리감을 만끽하며 놈의 옷을 벗겼다.

  나한테 어떤 변태적인 취향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떤 알파벳을 찾기 위함이었다.

  '역시 있군.'

  놈의 팔뚝에는 'A'라는 알파벳이 새겨져 있었다.

  이제까지 지나온 층의 모든 좀비에게는 알파벳이 하나씩 새겨져 있었다.

  1층의 폭주기관 좀비의 이마에는 W.

  3층의 뚱뚱보 좀비의 배에는 G.

  그리고 지금 처치한 터프 좀비의 팔뚝에는 A.

  안타깝게도 2층의 마더는 알파벳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그때는 알파벳이 모든 마더에게 새겨져 있을 거란 사실을 모른 채 시간이 지나버려 놈의 시체가 사라지고 말았으니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슈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상의해 봐도 알파벳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2층의 마더에 새겨져 있던 알파벳을 알았으면 좀 달랐을까?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놈에게 마저 옷을 입혀줬다. 그리고 놈의 품에서 나온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인 다음, 녀석의 입에 물려줬다.

  "덕분에 즐거웠다."

  날 즐겁게 해준 호적수에 대한 나만의 호의 표시였다.

  담배를 입에 물려주고 얼마 안 있어 놈이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담배는 맛있게 피웠는지 모르겠다.

  나는 놈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스킬북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스킬을 확인하려는 찰나.

  -형, 형, 도와주세요.

  생존자 무리의 남학생으로부터 다급한 무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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