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11 [1, 0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메시지들이 내 눈앞에 떠올랐다.
내가 1층과 지하 1층에서 좀비를 잡아 얻은 포인트를 합하면 1, 000포인트가 조금 넘었는데, 거의 그만큼의 포인트가 한 번에 들어와 버렸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스텟과 스킬에 포인트를 배분하고, 쓰러진 좀비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나는 놈의 시체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머리의 'W' 글씨 말고 특별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잠시 그렇게 놈의 시체를 살피고 있자, 어느 순간 놈의 몸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팟!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던전의 네임드 몬스터들은 죽었을 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진다.
그리고 그 사라진 자리에는,
"역시 있군."
보상이 남는다.
놈이 사라진 자리에는 붉은색의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스킬북이었다.
나는 스킬북을 들어 표지를 확인했다.
[아드레날린 러시]
"아드레날린 러시?"
처음 보는 스킬이었다.
나는 스킬북을 열어 내용을 살펴봤다.
-특수한 아드레날린이 체내에서 생성되어 판단 능력이 저하되는 대신 신체 능력이 급격히 상승한다.
나는 페이지를 조금 더 넘겨봤다.
「
"크윽, 카인마저 당하다니! 그렇다면 할 수 없군. 아드레날린 러시!!"
제럴드의 온몸이 붉은색을 띠며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크워어어! 죽어어어!!"
제럴드가 마치 카인을 쓰러뜨린 고릴라를 향해 기관차처럼 달려들어 손을 맞잡았다.
"크우어어어!"
"으우우어어어어!!"
제럴드와 고릴라가 양손을 맞잡은 채 기합을 내질렀다.
놀랍게도 제럴드가 고릴라를 상대로 힘겨루기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흰자위가 붉은색에 잠식되기 시작한 것이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의 부신 수질에서 분비된 호르몬이 그의 이성을 앗아가는 모양이었다.」 스킬 사용 예시가 상당히 스펙터클 했다.
나는 그대로 책을 더 읽어봤다.
「
"쿠오오오!"
제럴드는 고릴라가 방심한 틈에 놈의 가랑이를 걷어찼다.
고릴라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제럴드는 곧바로 달려들어 엎드린 채로 껑껑거리는 고릴라의 목을 꺾어 그대로 숨통을 끊어버렸다.
"크와아아아!!"
제럴드는 양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승리의 포효를 내뱉었다.
잠시 후 그의 근육은 풍선 빠지듯 그 부피가 줄어들었다.
온몸의 근육에 무리가 간 그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하루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유전자 변형 인간 '제럴드' 연구 일지 중」 아무래도 이 연구 일지란 걸 쓴 사람은 뭔가…… 상당히 특이했을 것 같다. 연구 일지 묘사가 참 드라마틱 하다.
아무튼 '아드레날린 러시'의 대강의 스킬 효과는 확인할 수 있었다.
내게 있어 별로 매력적인 스킬은 아니었다.
'안 익혀!'
[하지만 스킬 효과 자체는 괜찮아 보이는데요?]
트리슈라의 말대로 스킬 자체의 효과는 상당히 좋았다.
일시적이라고는 해도, 고릴라와 맨 손으로 힘겨루기를 할 만큼의 신체 능력을 부여해 준다는 건 위기 상황에서 구명줄이 될 수 있는 스킬이란 뜻이니까.
'하지만 뇌 없는 근육돼지가 되긴 싫다고.'
스킬 사용도중 이성을 잃는다는 건 내게 있어 상당한 디메리트 (demerit)였다.
정말이지 이 시대 최고의 뇌섹시 가이인 내게 이성이 사라지면 대체 뭐가 남는단 말인가!
[본능만이 남겠지요. 마스터의 '직박구리 폴더'에 따르면 아마 발가벗고 연상의 여성에게 달려가지…….]
'아악, 그만!!'
내가 어쩌다 내 폴더를 들켜서!
어쨌든 농담이 아니라 [아드레날린 러시]를 사용한 나는 오히려 전력이 약화될 것이다.
스킬이란 상성이 상당히 중요해서 같이 쓰면 오히려 서로에게 방해가 되는 스킬이 있는데, [아드레날린 러시]와 [배틀 센스]가 그러했다.
분명 냉철한 관찰을 필요로 하는 [배틀 센스]에 냉철함을 없애는 [아드레날린 러시]는 독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드레날린 러시]는 육체파 각성자가 사용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어차피 지금은 못 익히므로 익힐 지 말지 고민하는 건 쓸데없는 고민 이지만.'
스킬북은 던전 밖을 나가서야 사용 할 수 있다. 던전 내에서는 사용하려 해도 [스킬을 습득할 수 없습니다] 따위의 메시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아마 각성자가 던전 내에서 스킬을 무한으로 익히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초월자-던전 메이커-들의 장치일 것이다.
어쨌든 '아드레날린 러시' 정도면 내 평가에는 B급 스킬인데, B급 정도면 초반에는 부르는 게 값이다.
"후후, 첫 네임드가 바로 B급 스킬 북을 주네. 역시 최초의 던전답게 보상이 후한데?"
나는 쾌재를 불렀다.
역시 승리 후에 얻는 보상은 꿀같이 달콤한 법!
빨리 다음 사냥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 * * 나는 열심히 좀비를 사냥해 포인트를 번 끝에, 2, 3층의 마더를 비교적 쉽게 처치할 수 있었다.
2층의 마더는 특이하게도 머리가 두 개 달린 좀비였는데, 각각의 머리는 남자와 여자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왼쪽에 달린 남자의 머리는 독액을 뿜고, 오른쪽에 달린 여자의 머리는 엄청난 고성을 지르며 음파 공격을 해대는 통에 처음에는 상당히 애를 먹었다. 특히 여자 머리의 음파 공격에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결국 작전상 후퇴를 한 나는 원거리 저격을 통해 여자 머리통을 먼저 날려 버린 다음, 남은 남자의 머리 통은 접근전을 통해 몸통에서 지워 버렸다.
원거리 저격에는 딱히 저격 총이 아니라 내가 주운 것 중 가장 위력이 강한 소총이 사용되었다.
저격 정도야 소총이면 충분하잖아?
놈들(?)은 죽은 후에 상당히 유용한 스킬인 [듀플텍스 링크]를 토해 냈다.
스킬을 익힌 사람이 한 사람을 지정해 스킬을 걸면, 그 사람과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텔레파시가 가능하게 된다. 나중에는 여러 명의 각성자가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던전도 등장하기 때문에 익혀두면 상당히 도움이 되는 스킬이라 하겠다.
3층의 마더는 엄청난 뚱뚱이에 키도 3미터는 넘어 보이는 산 같은 놈이었다.
놈은 끔찍하게도 제 살덩이를 떼어내 나에게 던지는 방식으로 공격해 왔는데, 그 위력이 무슨 대포알 같아서 내가 피한 자리에는 거의 머리 통만한 구덩이들이 생겼다.
놈은 그렇게 사라진 제 살덩이를, 주위의 다른 좀비를 통째로 들어 씹어 먹음으로써 보충했다.
이성이 없는 다른 좀비들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놈의 입속으로 들어가 놈의 양분이 되었다.
나는 이번에도 물러나 원거리에서 놈의 머리통을 저격했으나, 소총의 탄알로는 놈의 머리에 작은 흠집만 남는 것을 보고는 조금 더 3층을 돌며 사냥을 하고 왔다.
그리고 다시 저격을 해 기어이 놈을 쓰러뜨렸다.
사냥을 하고 온 이유는, [디바이스 컨트롤]의 스킬 능력치를 조금 더 올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작은데 살에 파묻혀 바늘구멍만 해진 놈의 '눈'을 저격하기 위해서는 저격의 정밀도를 높일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 [디바이스 컨트롤]의 능력치를 높이고 온 것이다.
결국 눈을 통해 놈의 뇌를 헤집은 나의 승리였다.
이 녀석이 뱉어낸 것은 [섭식회복 (攝食回役)]이라는 회복 스킬의 스킬북이었다.
성능은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이 스킬도 생존력을 올려준다는 면에서 높은 값어치가 있는 스킬이었다.
[마스터, 어째서 어떤 스킬은 [아드레날린 러시]처럼 영어고, 어떤 스킬은 [섭식회복] 같은 한자어입니까?]
스킬북을 갈무리하는데 트리슈라가 갑자기 물어왔다.
"와, 일종의 컴퓨터였던 너도 모르는 게 있어?"
[저는 기간테스의 관제인격이었기 때문에 전투나 던전 클리어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만 입력되어 있었습니다. 시사 상식 관련 부분에서는 데이터가 모자랍니다.]
"그렇구만. 일단 헌터들 사이에서 몇 가지 가설이 있었어."
이전 생의 각성자들 사이에도 스킬 이름이 다른 언어로 쓰이는 것에 궁금해하는 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몇 가지 가설을 세워두고 연구를 해나갔는데, 일단 가장 유력한 가설은 '그 스킬이 처음 등장한 세계의 인물이 정한 대로 스킬명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드레날린 러시]의 경우는 책에서 봤던 그 '연구원'이라는 자가 그 스킬 이름을 정한 거지. 또는 그 스킬을 사용하던 '제럴드' 라는 자가 이름 붙인 걸 수도 있고. 그 스킬의 기원이 되는 존재들이 정한 이름올 그대로 따라간다는 거지."
[근데 이세계의 존재들이니만큼 언어가 다르지 않았을까요?]
"맞아, 깊게 들어가면 좀 복잡해지는데, 아마 가장 비슷한 언어로 번역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가 있어."
나도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 참 흥미로워했던 기억이 있었다. 이는 곧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 즉 이세계(異tit界)에 대한 연구와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다른 가설은요?]
"또 다른 가설은 '신이나 악마로 대표되는 초월적인 존재들이 직접 이름을 정했다'는 거야. 이 경우는 신들이 특정 문명권의 언어를 선호 해서 각 스킬의 이름이 달라지게 되지."
[그 경우는 초월적인 존재들이 특정 문명에 영향을 받는다는 가설로도 이어지는군요.]
"오, 맞아. 역시 똑똑한걸? 그리고 반대로 초월적인 존재들의 영향력이 다른 존재의 무의식에까지 미친다는 가설이 되기도 하고."
예를 들면 [아드레날린 러시]의 연구원이나 그 스킬을 사용하던 '제럴 드'라는 자가 무의식중에 [아드레날린 러시]라는 이름을 떠올렸지만, 그게 실은 초월자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이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복잡하군요.]
"그래, 사실 뭐 하나 제대로 밝혀진 건 없지."
사실 이런 의문들이 밝혀지려면 초월자들 또는 이세계에 관한 진실이 어느 하나라도 밝혀져야 하지만, 이 전생에서는 그런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세상이 멸망했다.
그러나 잘하면 이번 생에서는 의문을 풀 수 있으리라.
"그러니까 그게 궁금하면 열심히 날 도우란 말이야, 슈리!"
[네에, 네에.]
나는 히죽 웃으며 다음 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4층에서도 나는 좀비들을 때려잡으며 열심히 포인트를 벌어들였다. 과연 4층쯤 오니 벌어들이는 포인트의 양이 1층에서와는 단위가 달랐다.
나는 연신입으로 '꿀던전'을 연발하며 즐겁게 좀비를 때려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4층의 마더를 마주 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층의 마더는…… 입에 담배를 문 좀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