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10 일행 모두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마더는 적어도 최소한 두 마리는 있어요. 1층만이 아니라 2층에도 마더가 있는 것 같아요."
아까 이들에게 마더에 대해 들었는데, 마더에 의해 강화된 좀비는 모두 그 능력치가 비슷하단다. 1층의 좀비들이 다 고만고만한 게 그래서다.
근데 사실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에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온 좀비 한 마리를 상대해 볼 기회가 있었다.
2층의 좀비는 1층의 좀비보다 월등하게 강해서 상당히 고전한 끝에 쓰러뜨릴 수 있었다.
즉 2층에는 좀비들을 더 강하게 강화시키는 다른 마더가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아마 모든 층에 마더가 한 마리씩 있겠지. 위충으로 갈수록 강력한 놈으로.'
수많은 던전을 경험한 내 촉이 그렇게 말해왔다.
아마 이 던전은 원래 이렇게 설계되었을 것이다.
1.1층에서 시작한 각성자는 처음에는 버거운 1층을 탈출해 약한 좀비가 있는 지하 1층으로 내려온다. 에스컬레이터가 곳곳에 있으니, 위 아래 층의 좀비가 어떻게 다른지는 금방 눈치챌 테니까.
2.지하 1층의 생존자 일행과 합류한 각성자는 좀비를 사냥하며 포인트를 벌어 능력치를 올리는 동시에 여기저기 떨어진, 혹은 좀비가 착용 하고 있는 무기들을 습득한다.
3.이곳의 좀비들은 좀비밀도가 높은 쪽에서 좀비밀도가 적은 쪽으로 이동한다는 습성이 있다. 그 말은 곧 지하 1층에서 사냥을 하면 할수록 위층의 좀비가 내려온다는 말. 지하 1층에서 번 포인트와 획득한 아이템으로 위에서 내려오는 더 강한 좀비들을 사냥해서 더욱 많은 포인트와 아이템을 얻는다.
4.또 다시 그걸 바탕으로 더 상위 층에서 내려오는 더욱 강한 좀비를 사냥해 더욱 많은 포인트를 번다.
5.그것을 24시간 내에 가능하면 많이 한다.
아마 지하 1층에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위층의 좀비들이 아래로 자동으로 내려올 것이다.
지하 1층을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으로 꾸미고 좀비들을 유인해 잡는 것이 바로 제대로 된 던전의 공략법.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단점이 있지.'
첫째는 지하 1층의 생존자들이 계속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각성자와 달리 이들은 좀비를 사냥 해도 강해지지 않는다. 1층의 좀비들은 몰라도 2층, 3층의 좀비가 내려올수록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
즉 추가 보상을 얻을 확률이 적어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둘째는 마더들도 내려올지는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아마 마더야말로 스킬북과 좋은 아이템을 주는 '네임드 몬스터'일 것.
그래서 득템을 하고 싶다면 마더를 사냥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마더들은 아마 각 층을 벗어나지 않는 터줏대감형 몬스터일 확률이 높았다.
마더들이 자기 층을 벗어날 수 있다면 한 층에 여러 마리의 마더가 있을 수도 있게 되는데, 내가 아는 던전의 습성상 그럴 확률은 높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이 내려올 거란 확신이 없는 이상 차라리 그들을 사냥하러 나서는 것이 나았다.
이렇게 기다리다간 아마 24시간 내에 가장 위층의 좀비까지는 사냥 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위층으로 치고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 전에 생존자들을 위해 이 주변에 좀비의 접근을 막으며 주변 물건들로 바리케이드를 쌓는 등의 방비를 시켰다.
내게는 시간이 곧 재산인 관계로 이들을 다그쳤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방비가 완성되었다.
"아셨죠? 절대로 위층으로 올라갈 생각일랑 마시고, 여기서 최대한 농성하세요. 무슨 일 생기면 무전으로 연락하고요."
나는 아까 남학생에게 건네준 무전기 말고도 다른 하나의 무전기를 중년인 남성에게 건네줬다.
대장 노릇은 나한테 화살을 쏜 덩치 큰 남자가 했을지 몰라도, 사람들을 다독이고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은 이 양반이 하는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그 덩치남이 뭔가로 화낼 때 이 양반이 가서 진정시키는 걸 보기도 했다.
다들 무서워해서 가까이 가기 싫어 하는 덩치남이 화낼 때 접근할 담력이 있다는 점에서 일단 점수를 좀 줬다.
"제발, 죽지 마세요."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동안의 행동으로 어느덧 믿음이 좀 생겼는지, 다들 감동한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하나도 안 찔렸다.
난 절대 보너스 때문에 이들더러 죽지 말라고 한 게 아니니까!
[거짓말의 경지가 자기 자신까지 속이시는군요.]
어디서 환청 같은 게 들려오지만 무시하도록 하자. 하핫.
"그럼 살아서 봅시다."
그 말을 마치고 나는 위층으로 향했다.
* * *
"후, 가볼까."
지상 1층에 올라온 이후로 좀비 사냥을 1시간쯤 더 해자 능력치가 많이 올랐다.
이제는 기억 속의 마더와도 겨룰 만한 상태라 판단한 나는 마더가 있는 1층 중앙 홀 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놈이 보였다.
가히 2.5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신장.
온몸이 마치 혈크처럼 울룩불룩한 근육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마더'라는 이름과는 안 어울려 보인다. 특이한 것이, 놈의 이마에는 알파벳 'W'를 닮은 글자가 문신처럼 박혀 있었다.
내가 오는 인기척을 느낀 놈이 날 돌아보았다. 그리고 곧장 1층이 떠나갈 듯한 포효를 내질렀다.
"크워어어어!!"
다른 좀비들과는 종 자체가 다르다고 말하는 듯 거대한 포효.
포효를 마친 놈은 마치 전차가 돌격하듯 내게 돌격해 왔다.
'살 떨리는군.'
드디어 회귀 후 첫 네임드 몬스터와의 전투가 시작됐다.
네임드 몬스터란 '마더'와 같이 특별한 명칭을 가진 몬스터를 나타내는 말로, 다른 몬스터들보다 훨씬 강력한 대신에 사냥 성공 시 좋은 보상을 주는 몬스터를 일컬었다.
난 가볍게 백스텝을 밟으며 BB탄 총으로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놈을 겨눴다.
첫 발은 인사차 미간에!
쾅!!
총을 맞은 자리에 폭연(爆煙)이 일었다.
그러나 곧 폭염이 걷히며 놈이 멀쩡하게 튀어나왔다.
놈은 양팔을 X자로 겹쳐서 머리를 방어하고 있었다. 내가 총을 겨누자 마자 자신의 머리를 팔로 보호한 것이다.
'거참, 인사도 안 받아주냐.'
[인사 한번 받아줬다가 골로 가겠지 말입니다.]
'그게 좋은 거야. 저렇게 좀비가 돼서 날뛰어봤자 무슨 영락을 보겠니.'
트리슈라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열심히 총을 갈겨댔다.
슈리 녀석, 이젠 제법 인간다운 농담을 할 줄 알아서 주고받는 맛이 있었다.
쾅광!!
놈의 몸 여기저기가 움푹움푹 패었다.
"크와아아아!"
맞은 부위가 폭발하던 다른 좀비들과는 달리 놈은 아프지도 않은지 터프하게 달려들었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질러대는 괴성에 귀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저것도 일종의 공격인가? 정신공격?
[마스터, 저 입 좀 막아주세요.]
트리슈라도 놈의 괴성이 듣기 싫었던지 내게 이런 부탁을 한다. 나는 계속해서 놈에게 총을 갈겨대며 내게 접근하려는 놈을 피해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놈은 총을 맞을 때마다 몸이 움푹 움푹 패었는데, 움푹 패었던 몸은 금세 다시 원상태로 복구되고 있었다.
재생력이 상당했다.
그래도 내 공격에 성과가 있다면, 공격이 맞을 때마다 저지력이 발동 해서 돌진 속도가 느려진다는 점. 그래서 내가 상당히 편하게 움직이며 놈을 관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나는 놈을 '관찰'하고 있었다.
일찍이 내게는 두 가지의 고유 스킬이 개방되었다.
하나는 내가 자체적으로 A+의 평가를 매긴 바 있는 고유 스킬 [디바이스 컨트롤]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바로 [배틀 센스]였다.
[배틀 센스]는 전투 상태의 내 감각을 극도로 끌어을린다. 그리고 그 감각은 관찰 대상의 공격 경로, 버릇, 심리 상태 등 관찰 대상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대기의 흐름, 주변 다른 적의 위치 등 관찰 대상을 중심으로 한 전장 정보를 실시간으로 섬세하게 캐치해낸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나는 저놈을 피해 다니며 놈에 대한 '정보'를 캐내고 있는 중이었다.
놈의 속도, 놈의 경도(硬度), 놈이 움직일 때의 버릇, 그리고 내 탄환 이 놈에게 맞았을 때 놈이 받는 충격량.
[배틀 센스]가 이 모든 것을 파악 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배틀 센스]의 능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받아들이는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적을 '분석'하고 최적의 공략법을 산출해낸다. 그리고 그 모든 게 머리를 쥐어짜 생각 해 내는 게 아닌, 순간의 '감각'으로 느껴진다.
한마디로 '킬각'이 보이는 것.
따라서 나는 어떤 적이든 몇 분만 상대해 보면 그 대상을 공략할 방법을 찾아낸다.
프로게이머로서의 내 피지컬 (physical)적인 부분이 발현되어 나타난 것이 [디바이스 컨트롤]이라면, [배틀 센스]는 로지컬 (logical)적인 부분을 대표하는 스킬이었다.
[배틀 센스]가 '설계'하면 [디바이스 컨트롤]이 '실행'한다. 그것이 이제껏 내 앞을 가로막는 모든 적을 분쇄해 왔던 나의 황금 콤보였다.
그리고 바로 지금, 설계도가 완성 되었다.
나는 돌진해 오는 놈의 발밑을 BB 탄 총으로 쏴 갈겼다.
쾅!!
뛰어오던 놈의 발 디딜 곳이 움푹 파이며 구덩이가 생겼다.
놈은 그곳에 헛발을 디디며 순간 휘청, 균형을 잃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쾅쾅!
두 발의 총알이 날아가 놈의 왼팔과 오른팔의 팔꿈치를 맞혔다. 자세가 흐트러진 놈의 양팔이 살짝 열리며 머리가 드러났다.
그리고 쾅!!
그 틈새를 뚫고 들어간 탄환이, 놈의 머리를 정통으로 맞혔다.
"크와아아아!!"
이마 한가운데가 움푹 파인 놈은 고통스럽다는 듯 몸부림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치명타는 아닌 듯 놈은 기성을 지르면서도 양팔을 들어올려 가드를 더 굳건히 했다.
저놈은 다른 좀비들과는 달리 지능이 꽤 있는 듯하니, 앞으로는 머리 쪽의 방어를 더 튼튼히 할 것이다.
머리가 약점인 좀비에게 저렇게 머리를 철벽같이 방어하도록 한 이상 오히려 놈의 약점을 없애준 셈.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는 품에서 나의 귀염둥이 2호를 꺼냈다.
이 녀석의 선배라 할 수 있는 1호는 처음 스타트 창고에서 탈출할 때 이미 11마리의 좀비를 끝장낸 바 있었다.
나는 곧바로 2호의 안전핀을 해제 한 후 놈을 향해 힘껏 던졌다.
머리를 가드한 놈의 양팔과 아직 걷히지 않은 BB탄의 폭연이 놈의 시야를 가린 틈을 타, 나의 귀염둥 이 2호가 놈의 가슴 언저리에 무사히 도달했다.
여기에 화룡점정!
탕!
나는 왼손으로 권총을 꺼내 쐈다.
팅- 총알은 놈의 가슴 언저리를 날고 있는 수류탄의 밑동을 스치듯이 맞혔다.
터뜨리지는 않고 방향만 약간 바꿀 정도의 충격량.
아까의 나는 불가능했지만, 스텟과 스킬 능력치가 오른 지금의 나는 가능한 절묘한 트릭 샷.
덕분에 나의 귀염둥이 2호는 끊이지 않고 기성을 질러대는 놈의 입속으로 쏙 들어갔다.
"크워어어…… 큼!"
덕분에 놈의 괴성이 멈췄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누군가 그랬다지?
좋은 흡혈귀는 죽은 흡혈귀뿐이라고.
그렇다면 좋은 좀비는 어떤 좀비일까.
쾅---!!
좋은 좀비는, 머리통이 없는 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