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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09 나는 '마더'에 대해 생각해 봤다. (9/215)

  기계신과 함께 009 나는 '마더'에 대해 생각해 봤다.

  아마 내가 1층에서 발견한 '그놈' 이 마더인 듯했다.

  처음 놈을 마주했을 때는 죽는 줄 알았다.

  다른 좀비보다 압도적으로 덩치가 크고 강한 좀비. 결정적으로 총알이 통하지 않아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압도적인 덩치를 가진 주제에 빠르기도 엄청나게 빨라서 하마 터면 따라잡힐 뻔했다.

  내 민첩이 당시 조금만 낮았어도 게임 오버였을 것이다.

  놈이 다른 좀비들을 강화하고 있단 말이지?

  "우리는 놈이 내려오지 않기를 노심초사하며 바라고 있소. 하지만 이대로라면 언젠가 놈이 이곳으로 내려오는 순간 우리는 끝장날 것이오."

  그가 두려움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흠, 1층과 이어지는에스컬레이터외에 이곳으로 좀비가 들어올 통로가 또 있습니까?

  "

  "없소. 이 아래 주차장으로 통하는 통로는 철문으로 봉쇄되었소. 위충의 좀비들만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적어도 몇 년은 지낼 수 있을 것이오. 이곳에는 우리 모두가 몇 년 동안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식량이 보관되어 있거든."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내 눈치를 살폈다.

  내가 식량 강도로 돌변할 것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꼬르르륵.

  때마침 내 뱃속에서 아우성이 들려왔다.

  나는 멋쩍게 웃었다.

  "목숨이 아깝다면 한 끼만 주시죠"

  * * * 나는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무려 이세계(異世界)의 컵라면이다.

  신기하게도 이곳의 라면은 컵라면 옆에 달린 작은 줄만 잡아당기면 알아서 물이 채워지고 라면이 익는다. 덕분에 정말 간편하게 따뜻한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맛도 꽤 좋았다.

  "이거 같이 드세요. 궁합이 쥑이거든요."

  옆을 돌아보니 호의 어린 눈빛으로 웃고 있는 남학생 하나가 뭔가를 내 밀고 있었다.

  받아서 살펴보니 우리나라의 포장 김치 비슷한 반찬이었다.

  "그래, 역시 라면엔 김치지."

  "라면? 김치? 그게 뭔데요?"

  ……아무래도 여기서는 그냥 입을 열면 안 되겠다.

  "있어, 그런게."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이 '김치를 닮은 무언가'를 뜯어 '라면을 닮은 뭔가'와 함께 먹었다.

  제길, 라면을 라면이라고, 김치를 김치라고 부르면 안 되는 서글픔이라니!

  호부호형(呼父呼兄)을 못하는 누군가의 심경이 이해가 된다.

  과연 이 학생이 추천한 대로 둘은 환상의 궁합이었다.

  음~ 그래, 역시 라면엔 김치지!

  내가 호의를 받아들이고 맛있게 라면과 김치를 먹자 잠시 눈치를 보던 그 남학생이 말했다.

  "저…… 아저씨, 혹시 여길 떠날 거면 우리도 데려가 줄 수 있어요?"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어 후루룩 라면을 먹으며 바라보니, 그 남학생은 처음에 내게 석궁을 쐈던 남자를 슬쩍 쳐다보고는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실은…… 저희 모두 저 사람이랑 있기 싫어요. 저 사람보단 아저씨랑있는 게 더 안전해 보여서요."

  나는 라면을 삼키고 그 녀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내 어디가 안전해 보이는데?"

  "네?"

  "내가 안전해 보여? 단지 무기를 들고 너희를 죽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런 걸로 사람 쉽게 믿다간 금세 골로 간다, 너."

  실제로 나도 말하자면 일종의 사기를 치고 있는 셈 아닌가. 나 말고 다른 악질적인 놈이 나타나서 꾀어 낸다면 죽기 딱 좋은 놈이었다.

  "죄송해요, 정정할게요. 딱히 아저씨가 믿음직해 보여서가 아니라 저 사람이 너무 위험해서 그래요."

  음? 아무래도 내 생각과는 다른 뭔가가 있나 보다.

  "저 사람이 왜?"

  "그게…… 실은 저랑 제 친구들은 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죽였을 거라 생각해요."

  "……자세히 말해봐."

  남학생의 입에서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이들도 이 백화점에 들어온 지는 며칠 안 됐는데, 백화점에 들어오고 며칠 동안 12명이었던 일행이 지금의 7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자기들은, 특히 자기들 쪽의 여학생은 저 사람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어이쿠 두야.'

  이미 분란의 씨앗이 있던 무리였던 셈이다.

  "……미안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어."

  이 학생의 말이 사실이라면 일단 저 사내는 죽이고 시작하는 게 나은 놈이었다.

  보너스 보상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것에 연연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던전에서 얼마든지 다른 좋은 보상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저놈이 만약 아군을 해치는 놈이라면 같이 미션을 수행할 때 오히려 피해가 커질 우려가 있었다. 단합을 망치고 도리어 아군에게 해를 끼칠 놈이라면 지금 죽이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 될 터.

  그러나 솔직히 이 학생의 말을 다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학생 말만 믿고 저 남자를 죽여 버렸는데, 그게 단지 누명이었다면?

  '뭐, 이 녀석도 저 사람을 죽여달란 건 아니니까.'

  "일단 좀비들부터 청소해서 안전하게 만들고, 그 뒤에 생각해 보자."

  결국 나는 이렇게 일단 남학생을 달래두는 수밖에 없었다.

  대신 나는 한 가지를 그에게 내밀었다.

  "받아둬."

  "어? 이건 무전기잖아요? 어디서 나셨어요?"

  "위의 좀비들 처리하면서 얻었다."

  무기와 마찬가지로 위층에 떨어져있던 도구들 중 하나였다.

  아마 경비들이 사용하던 것 같은데, 아직 잘 작동된다는 걸 확인하고 사람들을 만날 걸 대비해 챙겨뒀다.

  나는 학생에게 무전기 작동법을 알려 줬다.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 생기거든 연락해라. 최대한 빨리 올 테니까."

  "네, 고맙습니다."

  이 정도로도 흡족했는지 웃으며 학생은 무전기를 가지고 물러났다.

  나는 라면을 마저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들이 있는 창고를 살펴봤다.

  '음…… 애매한데.'

  먹을 건 아직 많았지만 7명이 머물기에는 굉장히 좁았다. 게다가 좀비가 오는 걸 방어하기에도 여의치 않아 보였다.

  '그래도 22시간 정도는…….'

  내가 그렇게 생각할 때 누군가가 머뭇거리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 이곳 말고 더 넓고 좋은 창고가 있는데……."

  9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와 함께 있던 여인이었다. 엄마로 생각되는.

  추정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

  "근데 왜 그 창고로 안 가고 여기 있었던 거예요?"

  "창고가 넓은 만큼 좀비가 많아서요."

  "어디 있는 창고인데요?"

  나는 일행을 잠시 대기시켜 두고 아이 엄마가 가르쳐 준 창고로 가봤다.

  과연 좀비가 우글거렸다.

  '음, 그래도 여긴 아까 거기보다 문도 튼튼해 보이고 좀비가 몰려오는 걸 지켜보기에도 좋다. 여차하면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버틸 수도 있겠어.'

  확실히 이곳이 아까 그곳보다 좋았다.

  나는 일행에게로 돌아와서 일행을 그쪽 창고로 데리고 갔다.

  창고로 가는 도중에 좀비가 좀 나타났지만 내가 간단하게 슥삭 하는 걸 보고 일행도 슬슬 나를 믿게 되는 눈치였다.

  "자, 이제 전 위층의 좀비들을 사냥하러 나갈 겁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다가오는 좀비들을 막으셔야 해요."

  "그냥 여기서 저희랑 같이 오는 좀비들만 막아주시면 안돼요?"

  여학생이 약간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말했다시피 전 이 백화점의 좀비들을 처리해서 여기를 안전구역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제게는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어요. 그리고 제 예상대로라면…… 위쪽의 좀비들을 처리 하지 않으면 어차피 여러분은 위험 해지게 돼 있어요."

  "왜요?"

  "여러분도 여기 온 지 얼마 안돼서 모르겠지만, 위층의 좀비가 점차 아래층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마더는 한 마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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