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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08 (8/215)

  기계신과 함께 008

  "잠깐! 사람입니다!!"

  나는 창고 밖의 코너로 몸을 숨기며 재빨리 목소리를 내어 내가 사람 임을 피력했다.

  잠시 그렇게 창고 안의 인기척을 살피자, 안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몸에 화살 구멍 나기 싫으면 빨리 모습을 드러내시지."

  창고 안에서 나온 사람이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놀랍게도 한국어였다.

  백화점 곳곳에 쓰인 글씨가 내가 쓰던 한글과는 조금 다르게 생겨서 생각도 못했는데, 한국어를 듣게 된 것이다.

  나는 양손을 올리고 코너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상대가 활을 무기로 하는 이상, 아니 설령 총기를 갖고 있더라도 쏘기 전에 피할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향상된 몸의 능력에 자신이 있었다.

  내게 활을 쏜 자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는데, 지구의 인간과 다른 점이 없었다.

  아마 이곳을 그냥 미래의 한국이라 생각해도 될 듯했다.

  그는 손에 든 활에 화살을 재고 있었는데, 기계적으로 개량된 활인 컴파운드 보우(Compound bow) 인 듯했다. 일반 활보다 위력이 훨씬 강력한 활이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생존자들을 찾아다니다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만난 게 굉장히 오랜만이라 반갑네요."

  그는 내가 살갑게 굴어도 활을 내리지 않았다.

  "어느 무리에 속한 놈이냐."

  "저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괜찮으시면……."

  "꺼져, 더는 받아줄 자리 없으니까."

  살짝 떠봤는데 역시나 바로 꺼지란다.

  좀비 아포칼립스에선 사람 또한 좀비만큼이나 위험한 존재이게 마련이 니, 오래 살아남아온 자들이라면 낯선 자에게 저렇게 날을 세우는 게 사실 당연했다.

  솔직히 나도 혼자 움직이는 게 편했지만, 목표는 나 혼자 살아남는 게 아니다.

  '이 자식아, 내가 합류해야 니들 생존율이 높아져요.'

  "후우……."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번개 같이 허리 뒤춤에서 총을 꺼내 놈에게 겨누었다.

  핑!!

  그러나 그사이 놈이 화살을 발사했다. 망설임이 없는 것을 보니 사람 깨나 죽여본 놈인 듯했다.

  하지만 나 또한 극도로 집중하고 있었고, 내 패시브 스킬인 [배틀 센스] 또한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민첩 스텟의 능력치가 벌써 20을 찍었다.

  민첩 스텟의 보정을 받은 왼손이 자연스러운 궤적을 그리며, 휙!

  날아오던 화살을 낚아채었다.

  어느새 난 왼손에 화살을 들고 오른손의 총으로 놈의 머리통을 겨누고 있었다.

  "무기 내려놔."

  내가 차갑게 말했다.

  그러나 놈은 순순히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슬금슬금 허리 뒤춤으로 손을 옮기는 게 숨겨놓은 총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동작 그만."

  내가 말하자 놈의 손이 멈추었다.

  나는 놈과 눈을 마주치고 천천히 놈에게 다가가 놈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찾아 꺼냈다. 그리고 컴파운드 보우도 빼앗아 한쪽으로 던져 버렸다.

  무모하게 덤벼들면 쓴맛을 보여주려 그랬는데, 화살을 낚아챈 내 움직임을 보고 쫄았는지 별 반항은 없었다.

  나는 놈에게 다른 무기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놈을 돌려세운 다음 등에 총을 갖다 댔다.

  이러니까 마치 내가 악당이된 것 같잖아.

  "너희 일행에게 안내해."

  "……빌어먹을."

  놈은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순순히 걸어갔다.

  그는 창고 안으로 날 안내했는데, 그곳에는 3남 3녀가 더 있었다.

  즉 이놈까지 합하면 총 7명의 사람이 모여 있는 셈이었다.

  그중 남학생 2명과 여학생 1명은 같은 학교 학생인지 교복으로 보이는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그리고 머리가 하얗게 센 중년의 남자 1명과 모녀로 보이는 여자와 꼬마가 있었다.

  나는 일단 그들의 무장부터 살폈다.

  총이나 컴파운드 보우 같은 원거리 무기는 안 보인다.

  "이보게, 그는 누군가?"

  중년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군이 생판 모르는 놈에게 무기도 다 뺏긴 채 잡혀 들어오는 꼴이 기가 막혔을 것이다.

  "나도 몰라, X발."

  내게 잡힌 녀석이 짜증을 부리며 말했다. 민망함을 짜증으로 덮어버리는 모양이었다.

  뒤에 총이 겨눠진 상태에서도 이런 짜증이라니, 배짱 하나는 알아줄만 했다.

  "시끄럽고, 저리로가 앉아라."

  나는 총구를 밀어 앞의 녀석을 일행 쪽으로 밀어버렸다. 놈은 얌전히 걸어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럼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관객들이 경청할 준비가 된 듯하자 난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살아남은 인간들에게 안전장소를 만들어주고자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오?"

  아니나 다를까, 다들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게 제 한 목숨 챙기기도 바쁜 세상에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따위 짓거리를 하겠는가. 나 같아도 못 믿을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다음 말을 이어갔다.

  "예, 저는 치료제가 개발되기까지 더 많은 사람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특별한 무술을 배웠기 때문에 남들을 도울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을 같은 인류에게 베푸는 것이니 너무 의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마스터, 거짓말이 청산유수시군요.]

  '시끄러. 어쩔 수 없잖아.'

  속으로 생각했으나 텔레파시가 가능한 트리슈라는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내 말을 믿는지 슬쩍 눈치를 살폈다.

  경계심이 조금 옅어진 게 느껴졌다.

  "이 주변을 청소하고 셸터를 건설 하는 걸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미 1층의 좀비 반은 제 손으로 처리했습니다. 아마당분간 이 근처 에스컬레이터에서 여기로 내려오는 놈들이 없을 겁니다."

  각 층을 잇는 에스컬레이터는 내가 본 것만도 5개가 넘었다. 그중에 적어도 이 근처 엘리베이터에서는 당분간 위층의 더 강한 좀비들이 내려 올 일은 없을 터였다.

  "아……."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으나, 지들이 안 믿으면 어쩔 건가.

  "이 근처 좀비도 빠르게 정리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안전기지를 구축하는데 힘을 좀 보태주셨으면 합니다."

  이왕이면 사람도 살리고, 좀비도 잡는 것이 좋지 않은가.

  [보너스 보상을 원하시는 건 아니고요?]

  그, 글쎄. 흠흠.

  "그리고 제게 이 백화점에 대한 정보를 좀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이 곳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왠지 위층의 좀비들이 더 강력한 것 같더군요. 혹시 이유를 아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내 말에 잠시 일행들 사이에 침묵이 돌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길지 않았다.

  머리가 센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우리도 이 백화점에 들어오는 중에 1층의 좀비들을 피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소. 아마 1층에 '마더'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오."

  "마더요?"

  나는 생소한 단어에 집중했다.

  "그, 유별나게 강한 좀비 있잖소. 동시에 다른 좀비들을 강화하는 특별한 놈. 모르시오?"

  그가 의심이 깃든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젠장, 아까 봤던 '그놈'의 인상이 '마더'란 단어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아서 매치를 못 시켰다.

  "알죠. 저는 놈들을 '강화 좀비'라고 불러서요. 헷갈렸습니다."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마더라는 명칭을 모두가 알 라는 법은 없지. 실례했소."

  십년감수했다.

  [방금 마스터가 마스터인 이유가 거짓말 마스터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시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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