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06 나중에 가면 공공연하게 알려질 기능이지만 어쨌거나 굉장히 유용한 히든 피스였다.
지금 내가 있는 현대 배경뿐만 아니라 판타지, 무협, 현대 어느 배경에서든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방법이 하나씩은 있었다.
나는 내가 지닌 최대의 무기인 '스킬'들을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내 고유 스킬인 [디바이스 컨트롤]과 [배틀 센스] 스킬은 그대로 있었다. 다만 능력치들이 모두 초기 상태로 떨어진 게 쓰라리게 아까웠다.
'내가 스킬 능력치 올리기 위해 어떤 개고생을 했는데.'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 외에 내가 나중에 습득했던 스킬인 [기기 친화력]과 내가 익혔던 무수히 많은 일반 스킬은 모조리 사라져 있었다.
개인이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의 수는 무한인 만큼, 나 또한 닥치는 대로 스킬들을 주워 익혔기 때문에 갖고 있던 스킬은 십수 개가 넘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내 상태창은 4월 9일 날의,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되돌아가 있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고유 스킬에 [마스터피스]?'
처음 보는 스킬이다.
흥미로웠다.
고유 스킬이란 것은 얻고 싶다고 해도 쉬이 얻을 수가 없는 것. 그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따라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가장 막강하고 중요한 스킬이었다.
보통 각성자들은 고유 스킬을 1개만 가지고 있고, 나처럼 운이 좋은 사람은 2개를 가지기도 한다. 3개를 가진 사람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했다.
물론 스킬의 질도 중요했지만 일단 고유 스킬이라면 다다익선, 많을수록 좋았다.
'이것도 회귀와 관련이 있는 걸까?'
나는 바로 '마스터피스'를 터치해서 상세 설명을 보려 했다.
그러나.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응?'
다시 한번 터치해 보았다.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같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스킬 정보 확인 불가라니.
'뭐 이런 스킬이 다 있대?'
나는 쩝, 입맛을 다시고 [마스터피스]라는 스킬은 당분간 없는 스킬로 취급하기로 했다.
사용법을 모르는 무기는 전력에서 제외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떤 오발사고를 낼지 알고.
지금 내 능력에 대해 정확히 파악 할 수 없다는 게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스킬이 해가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으니 별문제 없을 것이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무기를 고를 차례였다.
나는 내가 서 있는 창고를 한 차례 둘러봤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총기류 쪽을 향해 걸어갔다.
'가장 편한 건 역시 샷건이지만.'
좀비를 상대할 때 있어서 조준도 쉽고 강력한 파괴력을 보이는 샷건은 좋은 무기였다.
다만 휴대가 불편하고, 특히 장탄 수가 적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서 선택에서 제외했다.
대신 나는 권총들을 꼼꼼히 살펴본 후, 가벼우면서도 장탄수가 가장 많은 자동권총 두 정을 골랐다.
나는 대용량 총알 팩, 수류탄 몇 개를 더 집어 챙겨온 백팩에 잘 담았다.
아쉽게도 소음기는 없었다.
"던전지기, 준비 끝났어."
[모든 장비를 선택하셨습니까?]
"응."
[스테이지를 설명을 시작합니다.]
그 말과 함께 다시 배경이 바뀌었다.
[반년 전부터 세계에는 원인 모를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지금, 세계 인구의 약 99%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좀비가 되었습니다. 살아 남은 1%의 인류는 두려움에 떨며 누군가가 치료제를 개발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거참…… 정말 암담한 상황이군.'
좀비 아포칼립스의 배경 설명은 회귀 전의 암울한 인류의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아니, 꿈도 희망도 없이 목숨만 부지하고 있단 점에서 어쩌면 더 절망적인 것 같다.
[당신이 있는 백화점에는 살아남은 몇 명의 인류가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24시간 동안 백화점 내의 좀비와 맞서십시오.]
-24시간이 지날 때까지 생존에 성공하면, 습득한 아이템 1종류와 스킬북 1종류를 성공 보상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백화점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이 살아남는다면 보너스 보상을 받습니다.
-사망할 경우, 사망 시까지 습득한 아이템과 스킬북을 통틀어 1개만을 보상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꽤나 알기 쉬운 조건이었다.
즉 24시간 동안 열심히 사냥해서 보상으로 받을 좋은 스킬과 아이템을 얻어두라는 말이었다. 가능하면 사람도 살려가면서.
죽으면 두 개 받을 보상이 한 개로 줄어드니까 죽지는 말고.
'다만 생략된 말도 많군.'
"알았어, 진행해 줘."
[모험가님의 행운을 법니다.]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내가 택하지 않은 창고의 무기들이 스르르 연기 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닫혀 있던 창고 문의 문고리가 저절로 돌아갔다.
철컥.
저 문을 열고 나가라는 뜻 같았다. 나는 문고리를 잡았다.
"자, 그럼 가볼까."
꿀 한 번 제대로 빨러.
나는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크어어어어!"
그리고 문을 닫았다.
"젠장, 심장 멎는 줄 알았네."
문고리를 조용히 돌려 열었음에도 재수 없게 이쪽을 보고 있던 좀비 한 마리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당연히 놈은 득달같이 달려왔고 나는 재빨리 문을 닫았다.
쿵쿵!
철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쿵쿵쿵쿵!!
그 소음에 다른 좀비들도 몰려와 같이 문을 두드리는지, 소음이 점점 커져갔다.
"아깝긴 하지만."
나는 아쉬운 눈빛으로 세 개의 수류탄 중 하나를 꺼냈다.
이렇게 된 거 문 앞에 좀비들이 몰려들었을 때 한 방에 날려 버리는 게 편했다.
문 위쪽에는 다행히 환풍구가 뚫려 있었다. 나는 환풍구를 조심스럽게 떼어낸 다음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 그 사이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재빨리 창고 구석에 몸을 숨겼다.
콰아아앙!!!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오고 바깥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야 한쪽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11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그러나 그걸 제대로 확인할 정신은 없었다.
와장창 부스스스- 창고 여기저기에서 비품들이 떨어지고 먼지가 흩날렸다. 나는 재빨리 먼지와 연기를 헤치고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큰 소음이 들려왔으니 이 쪽으로 좀비들이 몰려들 터였다.
안 그래도 이미 오고 있군.
초보 각성자들이라면 이미 여기서 부터 허둥거렸겠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오른손을 들어가장 앞에서 다가오는 좀비의 몸통에 대고 총을 겨눴다.
탕!!
심장 부근을 노리고 쐈지만 총알이 맞은 곳은 놈의 어깨였다. 아쉬워하지 않고 이번에는 왼손의 총을 들어 놈의 심장을 겨냥했다.
탕!!
또 빗나갔다. 총알은 놈의 심장 약간 아래쪽을 맞혔다.
좀비는 끄떡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양팔을 들어나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음, 그렇군."
대충 영점은 맞췄다.
나는 다시 양손의 총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고유 스킬 [디바이스 컨트롤]이 발동되었다.
대저 고유 스킬이란 무엇일까?
각성자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장 특별한 능력과 경험이 스킬로 화 (化)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양궁 선수 출신의 각성자는 [활쏘기], 회계사 출신의 각성자는 [속산(速算)] 같은 고유 스킬이 생겨날 확률이 높다.
나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음지에서 나름 유명한 게이머였던 내게는 [디바이스 컨트롤]과 [배틀 센스]라는 두 가지 고유 스킬이 생겨 났다.
그중 등급으로 분류했을 때, A+라는 점수를 주기에 아깝지 않은 스킬이 바로 [디바이스 컨트롤]이었다.
초일류의 프로게이머들은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어떻게 그게 가능했냐는 질문에는 종종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저절로 손이 움직였어요."
나 또한 그런 상황을 수도 없이 경험한 베테랑 게이머였다.
질 게 분명한 상황인데도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은 손이 어느 순간 저절로 움직여나를 승리로 인도 하는 짜릿한 경험.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생겨난 스킬이 바로 [디바이스 컨트롤]이었다.
[디바이스 컨트롤]은, 내가 '기계 (機城)'라고 인식한 물건을 잡는 순간부터 단순히 능력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퍼포먼스를 선사한다.
익숙지 않은 기계라도, 손에 쥐는 그 순간부터 그 기계에 대한 숙련도가 급속도로 높아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기계를 잡고 나타낼 수 있는 최적의 동선을 그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기계'에 한해서지만, 끝내주는 스킬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현대 배경의 스테이지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총'은 기계에 속할까, 아닐까?
영점을 맞춘 나는 오른손의 총으로 좀비의 머리를 겨누었다. 총구의 사선(射線)과 좀비의 미간이 겹치는 순간 자연스럽게 검지가 움직였다.
탕!
좀비의 미간에 까만 점이 생겨났다.
당연하게도, 총 또한 기계였다.
왼손, 오른손의 총구가 차례로 불을 뿜었다. 다시 두 마리의 좀비가 뒤통수에 구멍이 뚫리며 쓰러졌다. 나는 앞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다가오는 좀비들의 대가리에 침착하게 총알을 하나씩 먹여주었다.
일보일살(一步一殺).
걸음걸음마다 좀비들이 차가운 땅에 몸을 누인다.
샷건이 좀비를 상대할 때 최고라지만, 그건 무기를 다루는데 미숙한 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
나는 천천히 걸어가며, 계속해서 양손의 총을 번갈아 쏘았다.
탕! 탕! 탕!
아직은 아기가 걸음마 하듯 총을 다루는 것이 익숙지 않다.
그러나 소모한 총알의 개수가 많아 질수록 아이가 걸음마를 떼고 걷듯, 그리고 훗날 달리기를 하듯 급속도로 양손의 총에 익숙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