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04
"슈리?"
[네, 마스터. 왜 부르시는지요.]
환청은 아닌 것 같은데??
"슈리…"
[마스터, 어디 아프십니까?]
"어, 그래, 내가 좀 아픈가 보다. 너 근데 어딨니?"
[땅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습니다.]
나는 급히 일어나 바닥을 살펴보았다.
소리가 들려온 게 아니라, 텔레파시로 말을 걸어와서 소리로 트리슈라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금세 한 가지 물건을 발견 할 수 있었다.
10년 전 그때라면 없어야 할 물건.
그것은 목에 부적처럼 하고 다니던 날개 모양의 펜던트였다.
잠결에 떨어뜨린 모양인지 슈리의 말대로 펜던트는 침대 옆에 널브러져 있었다.
금속성이었던 펜던트는 재질이 달라진 모양인지 보석처럼 속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였다. 색 또한 내가 알고 있던 빛바랜 잿빛이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풀잎을 닮은 은은한에 메랄드빛이었는데, 속에 신비로운 황금빛이 언뜻언뜻 스쳐 보였다.
근데 그럼 트리슈라는 어디 있다는 거야?
"설마 이 펜던트 속에 있는 거야, 슈리?"
[네, 맞습니다.]
머릿속에 텔레파시가 들려왔다.
나는 황당해져서 펜던트를 내려다 보았다.
아니, 기간테스 속에 있어야 할 관제인격이 왜 거기 있어?
먼저 쓰던 몸이 지겨워진 거냐?
어쨌거나 이로써 명쾌하게 정리되는 사실도 있었다.
나는 과거로 왔다.
과거에는 있을 리 없는 이 펜던트가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지 않은 가?
나는 펜던트를 노려보다가 퍼뜩 한 가지를 떠올렸다.
기계룡과 자폭하고 나서 이 펜던트와 닮은 빛을 본 것 같았다.
그리고…… 뭐랬더라?
-……성공 ……도약.
'성공, 도약?'
분명 낯선 목소리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았다.
'뭔가가 이 상황과 상관이 있는 건 틀림없는데.'
정황으로 보아 '도약'은 아마 지금 내가 겪은 상황, 즉시간 도약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성공은 내가 뭘 성공했다는거지?
기계룡과 자폭한 걸 두고 성공했다고 하는 건 아닐 테고.
모르겠다.
단서가 너무 부족했다.
나는 그에 대해 생각하는 걸 포기 하고 슈리와 대화를 나누어봤다.
"이봐, 슈리."
[네, 마스터.]
"넌 어쩌다 거기 들어가게 됐냐?"
[전들 알겠습니까, 마스터.]
응?
"……너 요상하게 말투가 바뀐 것 같다?"
[그렇습니까? 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 착각인가? 아무튼 너 뭐 할 수 있는 거 없냐?"
[모르겠는데요.]
분명하다. 이 자식, 말투가 바뀌었다!
전 같으면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조금 더 기계적인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심지어 '모르겠는데요'라는 말투에서 느껴지는 퉁명스러움이라니.
나의 슈리는 이렇지 않았어! 조금 더 딱딱하고, 차분하고, 이지적인 아이였다고!
조금 더 대화를 나눠보니 트리슈라 또한 지금의 상황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다.
기계룡과 자폭한 이후 정신이 드니 펜던트 안이었다나.
"그래, 그럼 이만 내 목에 걸려 있어라."
나는 트리슈라를 목에 걸었다.
트리슈라에 대해 조금 더 조사해 볼까 하다가 나중에 하기로 했다.
그보다 일단…… 기뻐해야겠다.
"살아……났구나."
당황스러운 감정이 가라앉자 비로소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시간이 지나니 상황이 점점 명확해 진다.
나는, 돌아왔다.
과거로.
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환호를 질렀다.
"하하하하하!! 살아났어!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게 있어서 과거로의 회귀는 단지 회귀가 아닌, 부활이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기계룡과 자폭했는데 새로운 삶을 다시 얻었다.
다시 얻은 삶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했다.
지나간 삶이 죽음과 싸우는 힘겨운 삶이었다고는 하지만, 내게는 그 삶이 흥미진진한 모험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던전은 단지 시련이고 고난일 뿐이었지만, 내게 있어서 던전은 목숨을 건 모험과 탐험의 장소였다.
나는 헌터들 중에서도 흔치 않던, 던전과 위험을 '즐기는 자'였다. 그즐거움의 기회를 다시 얻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기뻤다.
게다가 이번 생에서는 과거에는 얻을 수 없었던 온갖기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는 미래에 대한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정보는 나의 앞으로의 성장에 있어 아주 중요한 양분이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 일어날 큼직한 사건들과 중요한 분기점 등의 특이 사항을 빠르게 스마트폰에 기록해 나갔다.
근데 그때 내 가슴 언저리에 걸려 있던 트리슈라가 말을 걸어왔다.
[마스터, 도와드릴까요?]
"응? 뭘?"
[미래에 일어날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 중이시지 않습니까?]
내가 뭘 하는지 다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신기한 마음으로 트리슈라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번 해봐."
뭘 어떡하나 보자는 심경이었다.
[저를 그 기기 위에 얹은 다음 손을 얹어주십시오.]
나는 트리슈라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날개 모양의 펜던트가 스마트폰으로 스르르 녹아 들어갔다.
[마스터, 손목시계 좋아하십니까?]
슈리가 스마트폰이 되어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근사한 손목시계는 모든 남자의 로망이야, 슈리."
그 말과 동시에 스마트폰이 마치 영화 '트랜스포머'의 로봇처럼 순식간에 형태가 변형되며 내 손목에 감겨왔다.
나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내 손목에는 스마트폰의 색과 유사한 메탈 보디의 스마트워치가 장착 되어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내가 좋아하던 디자인의 손목시계 모양에, 디스플레이 또한 전혀 어색하지 않게 시계의 디자인을 모방하고 있었다.
"뭐야 슈리,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어쩐지 갑자기 그냥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끝내주는데? 내 취향은 어떻게 알았어?"
[스마트폰과 연동된 모든 기기의 저장 기록과 검색 기록을 살펴봤습니다. 좋아하시는 브랜드가 있더군요.]
그 말에 갑자기 나는 표정이 굳었다.
"너…… 봤어?"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내…… 직박…… 폴더."
[아, 그 또한 좋아하시는 브랜드가 있으시더군요.]
"젠장, 젠장."
회귀 전에 죽을 때는 어차피 인류가 멸망할 거라 걱정 않고 죽었건만, 회귀하자마자 그 폴더를 누군가에게 들키고 말다니.
더군다나 슈리는 인공지능이라고는 해도 여성 인격인데.
"슈리, 이건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면 당연한 일인 거 알지?"
[늬예늬예.]
젠장, 이 자식, 이젠 사람을 놀리기까지 한다. 치욕스럽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야?"
나는 내 위엄이 더 이상 망가지는 걸 막고자 급히 화제를 돌렸다.
[기간테스의 관제인격으로서 갖고 있던 모든 데이터가 남아 있습니다. 필요할 때 말씀하시면 열람하실수 있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야?"
대박이었다.
기본적으로 기간테스는 파일럿에게 원활한 전투 정보를 제공하고자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특히 내게는 앞으로 등장할 던전에 대한 정보가 중요했는데, 트리슈라에는 기존에 클리어된 던전들의 유형, 생태, 클리어 조건, 보상 등등이 기록되어 있어 그 가치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슈리."
[네, 마스터.]
"사랑한다."
[이상 성애라도 생기신 겁니까. 죄송하지만 거절합니다.]
그냥 기특해서 한 말이건만 이상 성애라니!!
게다가 단칼에 거절당했다!
"이거 원, 농담도 못하겠구만."
[저도 농담이었습니다.]
이럴 수가. 이 녀석, 강하다.
"그럼 슈리, 소위 말하는 '꿀던전'에 대한 정보도 있어?"
[난이도에 비해 보상이 좋은 던전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있습니다.]
내 입가가 저절로 위로 휘었다.
"앞으로 좀 바빠지겠구만."
말하다 보니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런, 그러고 보니 오늘이 그날이었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네."
오늘은 2020년 4월 9일.
바로 각성자들이 처음으로 생겨난 날이자…….
바로 꿀던전 중의 꿀던전, [최초의 던전]이 등장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