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003 나는 숨도 쉬지 않고 조종에 몰두 했다.
내가 누구인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잊었다. 오로지 '회피'와 '접근'이라는 키워드만이 내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까 투여한 스팀팩의 약발과 온몸을 폭풍처럼 몰아치는 아드레날린의 향연이 내 의식을 더욱더 높은 곳까지 끌어올렸다.
나는 모든 것을 잊고 무아지경에서 트리슈라를 조종했다.
큐웅- 덕분에 갑작스럽게 날아온 레이저 공격 또한 자연스럽게 피해낼 수 있었다.
빛의 속도로 날아오는 레이저를 무슨 수로 피했냐 하면…… 보였다. 기계룡의 눈이 향하는 경로, 그리고 레이저를 쁨기 직전에 변한 놈의 눈빛이.
미사일을 피하면서도 계속해서 놈을 관찰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조금 전 그 기술을 보지 못했더라면 아무리 지금의 나라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퀴이이잉- 놈이 계속해서 레이저를 발사해 댔다. 주변에서 그를 성가시게 하는 결사대 4인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가장 큰 위협으로 느꼈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어렵지 않게 그 공격을 피해가며 놈에게 접근했다.
그런데 그렇게 놈에게 접근하던 어느 한순간.
지잉- 나는 놈의 '의도'를 포착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기계룡이 내 주위에 위치한 미사일들을 원격으로 폭파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놈에게 가까워질수록 기계에 대한 놈의 지배력이 급속히 커지고 있었다.
나는 내 [디바이스 컨트롤]의 힘을 트리슈라의 재밍 (Jamming)에 섞어 발산했다.
우웅- 미사일은 폭발하지 않았다.
기계룡이 흠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것에 놀라는 듯했다.
기계룡의 감정이 이토록 세세히 느껴지다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러나 조금 있으면 기계룡의 코 앞. 그런 걸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놈이 더욱더 많은 미사일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사일에 대한 놈의 지배력 또한 확고해져 갔다.
나는 모든 경로가 막힌 것을 느끼고 마지막 필살기 버튼을 눌렀다.
두웅--- 트리슈라로부터 거대한 울림이 퍼져 나가며 주위의 모든 미사일이 추진력을 잃었다.
이제 놈에게 접근해 자폭하기만 하면!
"뭣?!"
나는 갑자기 기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추진력을 잃었던 모든 미사일이 다시 두둥실 떠오르더니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계룡의 온몸에서 빛이 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놈으로서도 온 힘을 쥐어짜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도저히 피할 구석이 없었다.
"여기까지인가 보다, 트리슈라."
[수고하셨습니다, 마스터.]
분함에 이를 악물었다.
코앞에 놈이 있는데 고작 이 거리를 못 가서 실패라니.
그러나 그때.
쿠오오오오- 거대한 불로 만들어진 용(龍)이 날아들며 눈앞의 미사일 화망을 찢어 발겼다. 마치 고래가 물고기 떼를 삼키듯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산을 뒤덮을 만큼 거대한 흙의 손아귀가 땅으로부터 솟아올라내 앞의 미사일을 파리 잡듯이 쓸어 버렸다.
나는 이토록 거대한 화염룡(火迫龍)과 토사(土砂)의 거인을 부리는 이들을 알고 있었다.
이화정검가의 가주와 수라마교주.
그들이 나를 돕고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엔 도움이 되는군.'
나는 웃으며 다시 트리슈라를 발진시켰다.
"슈리, 모든 동력!"
[집결시켰습니다.]
"좋아, 그럼, 바로 2단계 부스터 온."
콰아앙- 실드의 에너지마저 부스터로 돌린 덕분에 기체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말았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눈앞에서 뒤를 돌아 날아가는 기계룡이 보였다.
덩치답지 않게 꽤나 빠른 속도였지만, 최후의 4인이 악착같이 방해하고 있어서 제 속도를 못 내는 모양이었다.
모든 것을 부스터에만 쏟아붓고 있는 트리슈라는 놈을 급속도로 따라잡았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놈이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
최후의 발악을 하듯, 놈이 돌아서 서 초음속으로 꼬리와 양손을 휘둘러 왔다.
초음속의 속도라면 나는 반응할 수 없다.
하지만!
'네놈 패턴은 진작에 파악해 두었다!!'
마치 미래가 그려지듯 놈이 움직일 경로가 속속들이 예측되었다.
나는 예술처럼 그 틈새로 파고들었다.
"살고 싶냐!!"
나는 희열에 차서 웃었다.
기계룡이 발악하듯 손톱에서 검은 광선이 뿜어냈으나, 우리를 스치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사라져 갔다.
"그럼 물구나무서기라도 해봐!!!"
살려줄 테니까!!
물론 저 자식은 티라노사우루스처럼 팔이 짧아서 물구나무서기 따위 못한다.
"못하면 뒈져야지."
나는 놈의 명치끝에 망설임 없이 트리슈라를 들이박았다.
처음 능력자로 각성했을 때부터 무수한 던전들을 클리어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수많은 기억이 주마등으로 스쳐 갔다.
즐거웠던 기억도 있었지만 힘든 기억도 많았다.
하지만 결코 어느 한순간도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 녀석을 향해, 나는 분노를 터뜨리며 외쳤다.
"인류 최후의 명존쎄다, 이 자식아 --!!!"
…….!!!
굉음도 없이 하얀 세계가 펼쳐졌다.
온 누리를 집어삼키는 빛.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반물 질과 물질의 쌍소멸 반응.
그리고 그것으로 나의 세계는 끝났다.
[……성……공…… 도약.]
끝났을 줄 알았다.
* * * 틱─ 틱─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
번쩍!
나는 이질적인 감각에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온몸이 찌뿌둥하다.
각성자가 된 이래로 느껴본 적 없는 무딘 감각이었다.
"끄응……."
나는 신음을 내며 몸을 일으켰다.
"뭐야, 이거."
"뭐야, 이거."
나는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기시 감에 흠칫했다.
이 광경, 이 대사.
데자뷔가 느껴졌다. 분명 어디선가 경험한 적이 있는…….
"아."
떠올랐다.
그때랑 똑같았다.
내가 처음 각성자가 되었을 때.
그러고 보니 이 침대, 이 가구들.
모든 것이 10년 전 그날의 기억 그대로였다.
그때의 나는 내 몸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느낌, 세상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기운인 '마나'의 느낌에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낯익지만 낯선 집안의 모습과 몸에서 느껴지는 '약한' 마나의 느낌에 혼란스러웠다.
나는 명한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확인했다. 10년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나를.
'뭐야, 이게…… 어떻게 된…….'
나는 분명 트리슈라를 타고 기계룡과 자폭했는데.
혼란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몰래카메라인가?
그럼 지금 이렇게 된 내 모습은?
기계룡과 싸웠던 건 꿈이었나?
다른 헌터들은?
30인의 결사대는?
나는 비틀거리며 다시 침대로 되돌아왔다.
옛날에 썼던 스마트폰이 보였다.
그것을 집어 들고 슬라이드해서 켰다.
다행히 암호는 안 걸려 있었다. 걸려 있었다면 한참을 씨름할 뻔했는데.
2020년 4월 9일.
날짜를 확인하자 확실해졌다.
내가 각성했던 날, 혹은 각성했다고 '생각했던' 날이었다.
즉 내가 과거로 왔거나, 모든 것이 꿈이었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생각을 흘려보냈다.
그러자 혼란스러운 감정이 점점 가라앉아 갔다.
……정신병원이라도 가보는 게 좋을까?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조금만 지내다 보면 결론이 나오겠지.
문득 트리슈라가 그리워졌다. 그녀의 목소리라도 들으면 한결 안심이 되었을 텐데.
이게 꿈이든 과거로 온 것이든, 이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일은 영영 없겠지.
"……트리슈라."
나도 모르게 그리운 이름을 불러보았다.
[네, 마스터.]
……내가 환청을 들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