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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02 전투는 치열했다. (2/215)

  기계신과 함께 002 전투는 치열했다.

  지잉- 키에에엑!

  나는 트리슈라의 손에 쥐여진 광검으로 메카닉 울프의 대가리를 날려 버리며 회피 기동을 했다. 오른쪽으로 날카로운 발톱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들어온 '기계룡의 둥지'는 재앙형 던전.

  재앙형 던전에서 공략 실패란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재앙형 던전의 실패는 곧 던전의 재앙이 지구에 풀려난단 뜻이고, 그 말은 즉 지구가 망한단 소리였다.

  여기 있는 놈들이 풀려나면 일반인들은 절대로, 죽었다 깨어나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재앙형 던전의 규모라면 짧은 시간에 온 지구를 멸망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그것이 모든 헌터가 적아를 떠나 힘을 합쳐 이곳에 들어온 이유였다. 그런데…….

  "크아아악!"

  나는 적들을 상대하면서도 기계룡 쪽 화면으로 힐끗 시선을 돌렸다.

  훅- 펑!

  기계룡이 초음속의 속도로 손을 휘둘러 가르자 소닉 붐이 일었다. 그리고 공중에서 공격을 퍼붓던 헌터들이 그 소닉 붐에 휘말려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위험한 것은 소닉 붐이 아니었다. 검은 힘을 휘감은 놈의 손톱이었다.

  "크아악!"

  날카로운 손톱의 표적이 된 헌터가 앞에 방어막을 둘렀지만, 손톱은 검은빛을 뿜으며 간단하게 찢어발기고는 그의 몸을 절단 내버렸다.

  30인의 결사대중 26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이제 남은 것은 4명뿐.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구는 망했다. 완전 망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네 명이 기계룡을 끝장낸다고 하더라도 다음 단계의 재앙형 던전을 막을 수가 없다.

  기계룡의 둥지가 사상 최악의 던전 이라지만, 빌어먹게도 사상 최악은 언제나 경신되게 마련이었다.

  인류 문명의 끝이 내 눈앞에 어른거렸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슈리, 그동안 즐거웠다."

  [마스터, 저도 함께하여 영광이었습니다.]

  이른 작별 인사에 슈리도 대답했다.

  비록 인공지능이었지만 그녀 역시 지금의 상황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나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입을 열었다.

  "……슈리."

  [네, 마스터.]

  "자폭 코드 입력한다. R35K499."

  [코드 확인했습니다. 봉인 해제 시퀀스 작동. 완료.]

  트리슈라의 심장인 엔진 코어의 폭발 억제 장치가 해제되었다.

  "좋아, 그럼 마지막을 화려하게 불태워 볼까."

  나는 통신으로 남은 결사대에게 자폭 코드 발동에 대해 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오싹한 느낌에 휘감겼다. 거대한 살의(殺意)가 나를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디스플레이를 살펴봤다.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기계룡이 보였다.

  구름마저 찢고 높게 솟아오른 기계룡의 머리는, 그 수십 킬로미터의 거리를 격하고 정확하게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내가 놈의 최후의 위기가 될 것임을, 놈도 직감한 것이리라.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모든 반물질을 긁어모아 담아낸 트리슈라의 엔진 코어.

  이게 폭발한다면 어쩌면 이 던전뿐만 아니라 던전 밖의 지구까지 폭발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트리슈라가 분석해 본 결과, 이조차도 놈의 턱밑에서 터뜨리지 않는다면 놈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한단 계산이 나왔다.

  고로, 놈의 코앞까지 트리슈라를 안전 배송해야 한다는 것.

  "찾아가는 서비스, 고갱님의 감동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실없는 소리를 지껄이면서도 정신 없이 손을 놀려 트리슈라의 모드를 바꾸었다.

  속도를 위해 무거운 외장갑을 떨궈 버리고.

  몸체를 비행에 최적화된 형태로 변신시키고.

  광선검과 미사일 등 필요 없는 무장은 모조리 해제하고.

  에너지는 전부 부스터로 몰빵한다. 준비 완료.

  나는 아드레날린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

  기계룡도 나를 막을 준비를 마친 듯했다. 디스플레이로 놈의 전신에서 수만 개의 미사일이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어디다 그 많은 미사일을 숨겨두고 있었던 건지, 질릴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하늘을 회색으로 물들인 미사일이, 놈에게 폭탄을 배송하려는 나를가 두기 위해 하늘에 그물을 치고 있었다.

  빠져나갈 길이 없어 보이는 촘촘한 미사일의 그물.

  기판을 조작하자 트리슈라가 소리 없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좋아."

  나는 다시 한번 펜던트에 입을 맞추고는, 미소 지으며 조종간을 붙잡았다.

  그래도…… 죽는 순간까지 웃을 수 있는 삶이었다.

  "그럼 마지막 게임을 시작해 보자고. 발진!"

  콰앙- 내 인생 마지막 게임의 장르는, 슈팅 게임이었다.

  눈앞으로 펼쳐진 아음속의 세계.

  수십 km 떨어진 기계룡에게서 발사된 미사일들이 이제 눈앞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놈은 계속해서 미사일을 내뿜고 있었다.

  '아니, 저게 가능해?'

  지금껏 토해낸 미사일의 부피를 생각하면, 저놈 몸이 미사일로만 이뤄 졌어도 이미 몸뚱이가 사라졌을 만한 양이었다.

  '아공간 주머니라도 있나, 젠장.'

  속으로 '도라에몽 같은 새끼'라고 욕하며 회피기동을 시작했다.

  첫 미사일이 트리슈라를 스쳐 지나갔다.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듯 점점 미사일의 양이 늘어나더니, 어느 순간부터 폭우가 쏟아지듯 사방에서 빗발쳐 왔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 내가 조종하는 트리슈라의 몸을 적시지 못했다.

  나는 신들린 듯이 조종간을 조작했다.

  '피하고, 피하고.'

  기체를 살짝 기울여 한꺼번에 네 발의 미사일을 피해냈다.

  '피하고, 피해주고! 젠장, 저건 못 피한다.'

  한 번의 조작으로 날아드는 다섯 발의 미사일을 피해내는 동시에 뇌파로 미사일 하나를 조준한다.

  쾅!

  경로상 도저히 못 피하는 놈은 레이저로 요격하면 된다.

  트리슈라가 마치 내 몸처럼 느껴진다.

  [디바이스 컨트롤]과 [배틀 센스] 스킬이 극도로 발휘되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희망적이지 않았다.

  더 이상 늘어날 수 없을 것 같은데도 주변의 미사일의 양이 계속해서 늘어난다.

  허공이 미사일로 가득했다.

  종류도 다양했다.

  직선으로 오는 놈, 곡선으로 오는 놈.

  에너지 구체로 이뤄진 놈, 벌레처럼 생긴 놈.

  심지어 별 모양 레이저도 있었다.

  '진짜 슈팅 게임이냐.'

  이번에는 그물 모양의 미사일이다.

  추진기가 덕지덕지 달린 게 사방을 점하고 덮쳐온다.

  사면초가.

  전후좌우 사방을 둘러봐도 미사일 뿐이었다. 몇 개를 요격한다 해도 피할 곳이 없다.

  나는 결국 내게 주어진 두 번의 기회 중 하나를 사용하기로 했다.

  꾸욱- 기판에 있는 빨간 버튼을 눌렀다.

  두웅-- 강력한 파동이 트리슈라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슈우우우…….

  그러자 반경 1km 내의 미사일들이 모조리 추진력을 잃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방금 터뜨린 폭탄은 전자 동력원뿐아니라 마나 동력원의 기기까지 무력화시키는 EMP의 일종으로 회심의 한 발, 즉 필살기였다.

  물론 트리슈라에는 파동 중화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잠시 사방의 미사일이 사라지며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나는 갑자기 머리가 펑-해지는 걸 느꼈다.

  그와 동시에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스터, 맥박수가 떨어집니다. 신체 반응이 이상합니다.]

  제길, 괜찮을 리가. 스팀팩도 가장 센 놈으로 두드려 맞은데다 무리했으니까.

  나는 쓰게 웃으면서도 다시 조종간을 잡았다.

  후유증이 엄청나겠지만 지금은 후유증 걱정할 때가 아니다.

  "어차피 버린 목숨, 이렇게라도 성공률을 높여야지. 슈리, 지금 작전 성공률은?"

  [……대략 2%로 계산됩니다.]

  트리슈라가 그녀답지 않게 뜸을 들이며 대답했다.

  물론 성공률을 계산하느라 그런 거 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쩐지 그녀가 날 걱정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말대로 사실 자폭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일단 기계의 화신인 저 기계룡에게 '기계로' 다가간다는 것 자체가 사실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놈에게서 멀 때는 몰랐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트리슈라에 대한 통제가 힘들어진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내 [디바이스 컨트롤]과 [기기 친화력] 스킬, 그리고 트리슈라에 탑재된 재밍 기술로 놈의 간섭을 간신히 막고 있었지만 여차하면 트리슈라의 통제권을 빼앗길 우려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빨리 접근해야 한다.

  "슈리, 2단계 부스터 온."

  두 번째 부스터가 켜지며 아음속의 세계에 있던 나는 마침내 음속을 초월했다.

  콰앙- 소닉 붐이 일며 주변의 미사일 잔재들을 날려 버렸다.

  이제부터는 한 대도 맞으면 안 된다.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로 추락한 전투기들의 예에서 볼 수 있 듯, 초음속의 세계에 들어선 지금은 어떤 미사일도 치명타가 된다.

  잔량이 부족한 실드로 버틸 수준이 아니었다.

  이게 슈팅 게임이라면 마땅히 '헬 모드'라고 불러줘야 하리라.

  '그러나 내가 누구냐.'

  모든 전쟁의 기술에 통달했다는 게임의 나라, 세계 최고의 게임대국 대한민국에서도 한 끗발 화려하게 날린 게임 천재란 말씀이시다.

  * * *

  "세상에……."

  "신무결, 대단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전투 중에도 틈틈이 트리슈라의 움직임을 보고 있던 헌터들이 감탄했다.

  미사일 속으로 파고드는 트리슈라의 모습은 파도에 삼켜지는 나뭇잎 처럼 위태위태하게 느껴졌지만, 놀랍게도 나뭇잎은 결코 바닷물에 닿지 않았다.

  이미 다들 여기서 살아 나갈 생각 따윈 포기해서 그런지, 트리슈라의 묘기에 대해 순수하게 감탄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기계룡에게 다가갈 수 없어 멀찍이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기간 테스 파일럿들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지금 저거 봤어? 비행체 형태로는 미사일을 피할 수 없으니까 잠시 기체 일부를 기간테스 폼(form)으로 바꾸면서 피했어.

  -봤어! 저 회피 기동은 또 어떻고? 단지 회피 기동만으로 유도 미사일들의 경로를 겹쳐서 자폭시켜 버렸어!!

  -저게 사람이냐, 괴물이냐.

  -대장, 죽을 때 죽더라도 그 새끼 한데 빅엿 한 방 먹여주라고!!

  국가와 세력, 적아를 떠나 그를 지켜보는 모든 헌터가 한마음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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