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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001 나는 어려서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1/215)

  기계신과 함께 001 나는 어려서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고아라서 백일잔치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아마 돌잡이를 했다면 다른 건 다 던져 버리고 컴퓨터로 엉금엉금 기어가 마우스 같은 걸 잡지 않았을까.

  좋아한 만큼 성과도 있었다.

  학교 끝나고, 그리고 성인이 되어 일이 끝나고 즐기던 내 게임 아이디엔 어느새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가 각성자가 되어서도 게임과 관련된 능력을 얻은 것이.

  나는 내 능력을 활용하는 법을 알았다. 남들이 뒤바뀐 세상에 허둥거릴 때도 나는 바뀐 세상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왜냐하면 던전이 등장하고 사람들이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한 현실은 내게는 참 재미있는 게임이었으니까.

  그 이름을 붙인다면 '던전 앤 헌터' 정도 되지 않을까?

  ……놀리지 마라. 나도 네이밍 센스 없는 거 안다.

  어쨌든 나는 내 능력을 바탕으로 제법 알차게 명성을 쌓아갔다.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만든 무슨무슨 100인 에도 들고, 어떤어떤 50인 명단에도 들고 그랬다.

  그런데 30인 에는 못 들었다.

  그게 중요하냐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눈앞에서 벌어지는 저 싸움에 끼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쾅, 과쾅!!

  수많은 헌터들이 거대한 몬스터 하나에게 온갖 스킬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하늘을 뚫을 것같이 높은 체고.

  날카로운 금속의 발톱과 강철 날개.

  그 형상은 마치 서양의 '드래곤'을 닮아 있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온몸이 수많은 기계부품으로 이루어진 저놈을 우리는 '메카닉 드래곤' 혹은 '기계룡'이라 불렀다.

  재앙형 던전 사상 최악의 던전, [기계룡의 둥지]의 최종 보스.

  30인의 공격대는 놈을 잡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공격을 쏟아붓고 있었다.

  수 미터 두께의 강철도 종이처럼 찢어발길 공격들은 기계룡의 외피에서 뿜어진 방어막에, 마치 설탕이 물에 녹듯 스르르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졌다.

  -스킬 쿨타임 (Cool-Time: 재사용 대기 시간)이면 빨리 빠져, 이 병신 새끼야!!

  -아직 스킬 안 끝났소!! 보면 알 텐데 악마의 종자라 그런가, 머리가 많이 모자라군!

  -뭐야, 이 새끼야?

  기계룡에 대항해 함께 싸우면서도 서로 원수처럼 각을 세우는 저들은, 사실 원수가 맞았다.

  한쪽은 헌터 세력의 중 지하세계를 대표하는 수라마교(修羅魔敎)의 교주였으며, 한쪽은 정명(止明)함을 기치로 세우는 검가(劍家)인 이화정 검가(離火正劍家)의 가주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신없이 기계룡에게 공격을 퍼부으면서도 서로를 견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젠장, 지금이 서로 싸울 때냐고.'

  디스플레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한 편으로는 저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있어 서로의 가족과 교도들을 죽인 철천지원수였으니까.

  때문에 인류의 존망을 건 던전 공략에서조차 서로를 온전히 믿지 못했고, 그것은 곧 안 그래도 모자란 전력의 약화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인류의 존망씩이나 걸렸으면, 서로 한 수 접어주며 양보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여차하면 다 죽게 생겼구만. 윗대가리란 사람들이 고개만 뻣뻣해서는, 어휴.'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내 고유 스킬 [배틀 센스]가 발동 되어 있는 상태였다.

  수라마교의 교주가 메카닉 드래곤의 양 눈에서 뿜어진 광선 공격을 왼쪽으로 피해 달렸다.

  '나였다면 저기서 저렇게 안 움직 였는데.'

  나라면 광선 공격의 진행 경로를 타고 드래곤의 양다리 틈으로 찔러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놈의 발밑을 교란하는 동시에 방어막이 약한 놈의 밑동 쪽을 공략했을 것이다.

  그게 수라마교 교주의 능력치로는 가장 효율적인 공격법이었다.

  드래곤의 어깨 갑주가 열리며 쏟아져 나온 전투 드론들은 이화정검가의 가주가 상대하고 있었다. 그는 검의 화염을 넓게 퍼뜨려 공중을 벌 때처럼 날아다니는 드론들을 뭉텅이로 베어 넘기고 있었다.

  '나라면!'

  나는 또 다시 분함에 이를 악물었다.

  저 드론들은 특정한 패턴이 있다. 물론 배틀 센스를 얻은 내 눈에만 보이는 공략법이겠지만 나라면 저렇게 화염검기를 넓게 퍼뜨리는 대신 칼날에 집중시켜 바로 드론들을 내뱉는 어깨의 사출기를 폭격하러 갔을 것이다. 다른 드론들은 아군들에게 맡기고.

  사출기가 드론을 내뱉는 동안은 방어막이 약해지는 듯해 보이니 아마 효과적인 공격이 될 터였다.

  '날아오는 드론들은 하나하나 회피 하거나 어쩌면 검으로 경로를 바꾸어 자폭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내게는 저들이 가진 힘이 없지.'

  분하게도 저들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서 내 눈에 제대로 잡히지조차 않았다.

  저들의 근력, 저들의 민첩성.

  내게는 상대의 움직임을 포착하거나 저들만큼 빠르게 움직이며 적을 베어가를 힘이 없었다.

  사실 내가 저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던전의 지식으로 빠르게 발전한 현대 마도과학의 산물, '트리슈라' 덕분이었다.

  트리슈라는 내가 타고 있는 이족보행 마도과학병기, 통칭 [기간테스]의 시스템에고(Ego:자아)인 동시에 기체명이기도 했다.

  에이스 파일럿인 나를 위해 인류의 기술이 집대성되어 만들어진 최고의 기체.

  그녀가 시스템으로 저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포착해 내게 한 박자 느린 슬로모션으로 재생해 주는 덕분에 나는 저쪽 전장이 어떻게 돌아 가는지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기계룡을 공략하는 공격대에 들지 못한 이유였다.

  온전히 내 눈으로 적의 움직임을 포착하기는 커녕, 외물(外物)에 의존해서도 한 박자 느리게 적의 움직임을 파악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격 미달이었다.

  어느 적이 내가 제 움직임을 파악 할 동안 공격을 멈추고 자빠져 있겠는가. 당장에 목을 따버리고 다른 먹이를 찾아 나서지.

  결국 초(超)인지의 영역에 들어서지 못한 나로서는 보스 공략 일선 (─線)에서 제외되어, 나머지 졸개들의 접근을 막는 이선(二線)에 배치될 수밖에 없었다.

  키에에엑!!

  기계의 몸통으로 이루어진 괴물들이 기계룡을 중심으로 크게 둘러싼 방어선을 뚫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주로 늑대나 개의 형상을 한 사족 보행 기계종이었다.

  "가자고, 슈리."

  [네, 마스터.]

  그렇다고 내가 이 전장에서 쓸모없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나는 화면을 보며 집중했다. 온몸으로 에너지가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 고유 스킬 [디바이스 컨트롤]과 [배틀 센스]가 발동되는 감각.

  나는 한 손으로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기체 조종은 수동으로, 조준은 뇌파로.

  "록 온(Lock-On)."

  인류의 과학이 집약된 마도병기 기간테스, 트리슈라의 외장 여기저기가 철컥철컥 열리며 총열이 드러났다.

  "발사."

  슈웅- 수십 발의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어떤 것은 곡선을 그리며, 어떤 것을 직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직선을 그리며 가장 빨리 적에게 도달한 미사일들이 가장 앞에 달려 오던 놈들에게 명중됐다. 순식간에 적의 앞 열이 붕괴되며 뒤에서 달려 오던 놈들의 장애물이 되었다.

  뒤의 놈들이 장애물이 된 동족들을 뛰어넘는 순간!

  콰콰콰쾅!

  딜레이를 두고 날아간 미사일들이 놈들의 몸에 꽂혔다.

  놈들의 속도와 동선을 파악해 날린 수십 발의 예측샷.

  -크으, 오늘도 샷발 죽이십니다!

  -대장의 샷발은 언제나 예술이지!

  통신을 통해 호들갑 떠는 다른 헌터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선의 지휘권은 내게 맡겨져 있었으므로 저 30인 외에는 다 내 밑이었다.

  "아부해 봐야 아무것도 안 나습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저 30인보단 떨어지지만 나도 좀 한다 이거야.

  "슈리, 명중률은?"

  [85%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지 명중률이 괜찮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통신 채널을 활성화했다.

  "다들 작전 브리핑 때 졸진 않았겠죠?"

  -네!

  -두말하면 입 아프죠.

  "좋아……."

  나는 대답하며 목에 걸고 있던 날개 모양의 잿빛 펜던트를 꺼내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 클리어한 어떤 던전의 보상아이템 중 하나로, 어떤 기능도 없다고 판명된 것이었다.

  누구도 탐내지 않던 보잘것없는 목걸이.

  그러나 나는 어딘지 모르게 끌리는 점이 있어, 싼값에 구입한 후 항상 목에 걸고 다녔다.

  지금은 내 행운의 상징이었다.

  펜던트에 입을 맞춘 나는 설레는 긴장감이 온몸을 휘도는 것을 즐기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럼 즐겨보자고!"

  -옛썰!

  우리는 맹렬하게 달려오는 적들 무리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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