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의 마지막 >
내가 틀렸다.
“내가.”
눈앞의 이것은 괴물이 아니다.
“그걸.”
눈앞의 이것은 악당도 아니다.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으리라고 생각해?”
악(惡).
그렇게 태어나 버린 것도 아니고, 악을 행하려 하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가 그것이 잘못된 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오직 자신의 아버지, 초대 천마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것을 실제로 벌이려고 하고 있다.
아니, 그것도 틀렸다.
“넌 지금까지 쭉 내 앞을 막아왔지.”
“그래, 그건 잘 알고 있네.”
화성의 진짜 목적을 알기 전부터 이미 놈의 모든 악행을 막아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여전히 막아서겠다면.”
스윽. 그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아무런 의지도, 의미도 없어 보이는 그런 평범한 발걸음.
하지만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는 순간.
“더이상 자네를 내버려 둘 순 없지.”
“흡!”
고고고고!!!
가공할만한 압박감이 내 전신을 덮쳐왔다.
“끄으윽···!”
피부를 찢고, 근육을 파열시키며, 뼈를 파괴하는 압력.
어떻게든 내부의 내공으로 그 압력을 이겨내 보려 했지만, 역시나 무리다.
“으아악!”
파앙!
몸을 계속 맴돌며 육신을 상하게 만드는 놈의 기를 고함과 함께 모두 뿜어냈다.
고오오오!
[크윽!]
사당 전체에 휘몰아치는 놈과 나의 기운에 웬만한 기운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화순조차 침음성을 흘리며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그리고 그 순간.
“넌 잠깐 사라져 있거라.”
[뭐, 뭇?!]
고오오!
놈이 화순이 있는 방향으로 손을 뻗더니, 화순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 끝에서 엄청난 기운을 발산했다.
[끄아아아악!!!]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당장 그만둬!”
아까 나를 덮쳤던 것과 비슷한, 혹은 더욱 강대한 기운이 화순을 덮쳤다.
아무리 화순이 육신 없는 영혼이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놈의 기운을 아무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그랬다간 화순이 정말로 죽는다고! 네 동생까지 죽이면서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는 거냐!”
“내 동생은 이미 죽었다. 여기 남아있는 건 초대 천마의 아집과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
“안 돼! 그만둬!”
[끄아아아악!!!]
지금껏 단 한 번도, 나의 회복력이 약하다는 생각은 한 적 없었다.
권능의 힘은 간단한 상처는 눈 깜짝할 새에 치유해줬고, 설사 보통 상황이라면 죽음에 이르는 상처조차 시간과 의지만 있다면 치료를 가능케 했다.
하지만.
[아아악!]
“그만둬!”
그런 회복 속도조차 충분치 못했다.
“그만 쉬어라.”
내 최고의 친우.
새로운 삶을 받은 뒤 만나게 된 내 친우를 구하기엔.
“안 돼!”
부족해도 너무나 부족했다.
[유···.]
나를 향해 뻗은 화순의 손과, 그를 향해 뻗은 나의 손이 채 닿기 직전.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화순은 사라졌다.
“화순···.”
“이제야 됐군.”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권능을 얻은 이후, 단 한 번도 끊긴 적 없던 화순과의 연결이 사라진 이 기분.
그것은 팔이나 다리 하나가 사라진 것 이상으로 나에게 크나큰 공허감을 일으켰다.
“이제 방해꾼은 사라졌군.”
“···방해꾼?”
지금 이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아직도 삐걱거리는 육신을 분노가 억지로 일으켰다.
“네 형제고, 네 아버지의 자식이었으며.”
근육의 비명과 뼈의 한탄을 무시한 채, 등에 메고 있던 두 자루의 창을 모두 꺼냈다.
“나의 친구가, 방해꾼이라고?”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내 동생이 아니다. 그저 나의 아비가 권능에 심어 놓은 노예일 뿐이지.”
“개소리하지마.”
쿵.
한 걸음 나아가며, 발끝에 강대한 기운을 싣는다.
천마보법(天魔步法) 오의(奧義).
군림(君臨).
하지만 거기에 담긴 힘에 비해, 사당에 울려 퍼지는 소리와 기세는 너무나 가볍다.
아니, 오히려 평범히 걷는 것 이하일 정도로 조용한 발걸음.
그 기운을 발산한 게 아니라, 내부에 담았기 때문에 이리 조용했던 것이다.
끼긱!
끼기긱!
아까 놈의 공격에 채 치유되지 못한 육신이 비명을 내지르지만 상관없다.
내 육신은 그저 통로일 뿐이니까.
천마금나수(天魔擒拿手) 오의(奧義)
불파(不破).
군림을 통해 만들어진 기운이 모두 양팔에 몰려든다.
다른 부위라면 주머니에 억지로 물건을 집어넣듯 물건이 빠져나오거나, 그 전에 주머니가 먼저 찢어지겠지만 양팔은 그럴 걱정도 없다.
아무리 강한 힘을 담아도, 불파가 깨질 린 없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차곡차곡 모인 강대한 힘을.
“내 친구를!”
한꺼번에 찔러 넣는다!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천마창법(天魔槍法) 극의(極意). 폭우(暴雨).
천마창법(天魔槍法) 오의(奧義). 와류(渦流).
총 네 개의 오의와 극의가 합쳐진 최강의 공격!
설사 수천, 수만 년 동안 힘을 모아놨던 노 괴라 해도, 이 앞에선 절대 버틸 수 없다!
콰과과과!!!
그 넓이를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크기의 사당이 조금 전 일격에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어둠에 물들어 있던 사당 안에 찬란한 빛이 비치고, 그 앞에는 광활한 하늘과 넓은 대지.
“말도···안 돼···.”
그리고 사지 멀쩡히 서 있는 화성이 거기에 서 있었다.
“그래. 인정하마.”
아니, 완전히 멀쩡한 건 아니다.
머리에서는 한 줄기의 피가 눈가를 가로지른 채 흐르고 있고, 오른팔은 거의 헤집어놨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엉망진창이다.
하체는 상대적으로 나아 보이지만, 그래도 잔 상처와 함께 피가 흐르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네가 내 아버지의 힘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뿐이다.
내가 원하던 죽음도, 아무리 못해도 그에 이르는 상흔 정도는 남길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놈은 원래 서 있던 그 장소에서 당당히 서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더 강하다는 사실도.”
그의 입가가 처음으로 말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움직였다.
···미소.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고, 원망했던 바로 그자보다 강해졌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 미소였다.
“아하하하하!”
쾅!
“크억!”
광소와 함께 내질러진 보이지 않는 일격.
화경이라는 경지에 오르며 극도로 발달한 기감에도 잡히지 않는 무음, 무형의 공격이 놈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주먹을 뻗거나, 다리를 움직이는 것도 아님에도 쏟아지는 공격, 공격, 공격.
이미 망가진 육신에 억지로 네 개의 오의까지 더한 일격까지 뽑아내느라 한계의 한계까지 몰린 육신.
그거론 이놈의 공격을 도저히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보이느냐! 천마여!”
하지만 정작 나에게 그렇게 끊임없이 연격을 날리는 와중에도 녀석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네놈을 위해서 만든 무공과 일족! 그 모든 걸 지금 오직 나 한 사람의 육신에 몰아넣었다!”
권능의 창조주이자, 원래 주인인 초대 천마.
그가 죽이려 하는 건, 이기려 하는 건 바로 그 자였다.
“수만의 목숨을, 천 개의 가문을 여기 갈아 넣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힘이 바로 여기서! 네놈을 쓰러뜨리는 것이다!”
아, 그래.
기억났어.
이제는 기억에 사라졌던 바로 그 감각, 영혼과 육신의 연결이 끊기고, 이곳에서 떠나려는 그 느낌.
심장에 검이 꽂히던 바로 그때 느꼈던 기분 나쁘고 서늘한 그때 그 순간의 느낌이 다시금 떠올랐다.
이렇게 죽는 건가?
···죽음을 각오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놈의 강함은 이미 중원을 떠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그저 슬플 뿐이다.
중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버지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나와 쭉 함께 일하고 싶어 했던 기정이와 부하들이 원하던 대로 해줄 수 없었던 것이.
그리고 꼭 돌아오겠다 약속했던 그녀에게 그 약속을 이뤄줄 수 없었던 것이.
그리고 무엇보다.
‘미안해.’
바로 눈앞에서 잃어버린 내 최고의 친우.
첫 만남은 조금 괴상했을지 몰라도, 그 이후에는 누구보다도 나를 많이 생각했고, 도와줬던 친구의 복수조차 하지 못하고 이렇게 끝나버린다는 그 사실이.
이 현실이 너무나 슬프고, 또 미안해서.
‘그쪽으로 가면, 내가 꼭 사과할게.’
한 방울의 눈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바로 그때.
‘사과는 무슨 사과냐.’
‘···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
하지만 분명 잘 알고 있는 목소리임에도 순간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너···어떻게···?”
그건 분명 조금 전, 화성의 공격에 의해 존재 자체가 지워졌던 화순이었으니까.
“아니, 그보다 너 왜···그런 모습으로···.”
하지만 그 형태는 내가 익히 알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물론 전에도 영혼에 가까운 모습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흔히 듣던 귀신의 모습과는 달리 생기가 있었다.
괜히 처음에 봤을 때 귀신이 아니라 사람으로 착각했던 게 아니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화순은···.
‘글쎄다. 나도 왜 이런 모습, 이런 형태로 있는진 모르겠지만, 뭐, 그래도 상관없잖아?’
씨익.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까 말이지.’
아무리 내가 알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지만, 그 웃음만큼은 내가 알던 화순의 웃음이었다.
“···하, 그래.”
화순의 말에 나도 그와 똑같은 미소를 짓자, 화순은 잠깐 미소를 짓더니 바로 나를 공격하던 화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형.’
“야, 그렇게 말 걸어봐야 이 인간은 네 말은···어?”
헛고생하지 말라고 화순에게 말을 걸려는 그 순간 깨달았다.
조금 전만 해도 비처럼 쏟아져 내리던 놈의 공격이 더이상 나를 향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화순?”
그는 나를 향한 공격은 멈춘 채, 화순이 있는 방향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정말, 정말 너냐? 내가 알던 그 화순이란 말이더냐? 대체 어떻게···?”
아까 화순을 그저 아비의 아집과 욕망으로 이루어진 존재라 말했던 그는 거기에 없었다.
오래전 잃었던 자신의 형제를 다시 한번 만나게 된 형이 있을 뿐.
‘나도 잘은 모르겠어. 형이 나를 없애는 그 순간, 갑자기 세상의 불이 꺼졌다가 다시 켜졌고···정신을 차리니까 이런 모습이더라고.’
“그럼···이제 권능에서는 완전히 벗어난 것이더냐? 그자의 저주에서 드디어 빠져나온 것이냐?!”
‘아마도. 더 이상 유현이 녀석이랑 뭔가 엮여 있는 것 같진 않으니까.’
“하, 하하하! 그래, 그거면 됐다! 그거면 됐어!”
처음으로 화성이 광소도, 조소도 아닌 진심 어린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거라. 네가 해방된 이상, 이제 마지막 일만 끝내면 되니까.”
‘마지막 일?’
“너를, 그리고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그 작자에게 복수하는 것! 이 모든 일이 끝나면, 나도 그와 같은 자리에 서게 된다! 그럼 이제 우리 두 사람이 원했던 대로 그에게 복수할 수 있게 돼! 그를 죽일 수 있게 된다고!”
기쁨과 광기가 섞인 고함을 내지르며 화성이 다시금 화순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가장 높은 곳, 가장 잘 보이는 장소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마. 자! 내 손을 잡아라! 그럼 그땐···!”
‘아, 그거 말인데.’
긁적긁적. 화성의 제안에도 화순은 별 감흥 없다는 듯 뒤통수만 조용히 긁더니,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괜찮은데?’
“···뭐라?”
‘처음 그 말 들었을 땐 좀 화도 나고, 이 작자가 진짜 미친놈이구나, 이런 생각도 좀 하긴 했지만···지금은 뭐, 괜찮았다고 생각해. 천마들의 몸속에서 세상을 구경하는 것도 썩 재밌었고, 무엇보다.’
툭툭. 화순이 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 녀석이랑 같이 다니는 것도, 꽤 재밌었거든.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이제 형도 형의 인생을···.’
“···아아, 그랬구나.”
화순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화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직 세뇌가 다 풀리지 않았던 거로구나?”
‘···응?’
“그 작자가 내가 너를 권능에서 해방해 준 뒤를 예상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그랬군. 내가 널 해방시켜준 뒤에도 계속 세뇌가 걸리도록 해둔 거야. 그래, 분명히 그러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거겠지. 그러니까.”
화성이 다시금 광증에 물든 눈으로 화순을 바라보았다.
이제 더 보지 못할 이유도 없었기에 더욱 똑바로, 더욱 분명하게 화순을 응시하는 그 눈.
자신의 말과 생각이 바르다는 걸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아집이 거기에 깃들어 있었다.
‘역시 그런가.’
하지만 화순은 그것에 압도되지도, 놀라지도 않으며 그저 짧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너, 이런 대답이 나올 걸 알고 있었어?”
‘형은 내가 권능에 묶인 그 순간, 완전히 망가졌으니까. 혹시나 했던 마음에 말해봤지만, 역시 그렇네.’
“아니, 그거 그렇게 가볍게 말할 게 아닌 것 같은데.”
이제는 목적 또한 분명해진 탓일까.
아까도 끔찍하리만치 강력하던 그 기세는 이제 껍질을 한 꺼풀 벗어던지기라도 한 듯(그것이 가능한지도 몰랐지만) 더욱 강하고, 또 거세게 퍼져나갔다.
“···이거 어쩌냐? 이 상태로 나가면 분명히 세상도 멸망시킬 것 같은데.”
‘형의 강함이면 진짜로 가능하긴 할걸. 지금도 강하지만 사람들을 죽이면서 그들을 흡수하면 지금보다도 더 강해질 테니까. 괜히 신이 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니까?’
“아니! 지금 그렇게 가볍게 말할 게 아니잖아! 나 저거 못 막는다고!”
화순과의 대화에 빠져 있는 사이, 어느 정도 회복하긴 했지만 그건 진짜 어느 정도일 뿐이다.
아직 완전히 나았다, 라고 말하기엔 역시나 부족했다.
그런데 내가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최고, 최강의 공격을 맞고도 멀쩡하게 서 있던 인간을 한참 처맞고 있던 상태로 쓰러뜨리라고?
‘걱정하지마.’
불가능을 외치려 하던 나를 향해 화순이 씩,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말했잖아? 권능은 최강이라고.’
“아니, 아무리 권능이 최강이라지만 불가능한 건 불가능···.”
‘온다. 앞을 봐.’
“뭐?”
휙! 화순의 한 마디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무시무시한 기세로 나와 화순을 향해 기세를 뿜어내는 화성이 보였다.
“이런 미친···!”
‘괜찮아. 앞으로 손을 뻗어.’
“뭐? 너, 무슨 소리야?!”
‘날 믿어. 괜찮을 거야. 권능을, 그리고 그 힘을 믿어.’
조금의 떨림도 없는 화순의 눈동자. 그것은 권능을, 그것을 만든 아버지를.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믿는 눈빛이었다.
“···좋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무수한 공격이 나를 찌르려고 다가오고 있는 그 순간.
나는 그저 내 친구의 말을 믿고 주먹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앙!
“···어?”
파앙! 파앙! 파앙!
깨진다.
그 형태도, 속도도, 하물며 개수도 알지 못했던 화성의 공격이 겨우 내 주먹 한 방에 모두 사라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천마권법(天魔拳法). 극의. 선권(禪拳). 한 번의 일격에 모든 것을 막아서니, 그 무엇도 범접할 수 없으랴.’
“천마권법, 극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화순의 말. 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려던 그때.
‘날 보지마! 앞을 봐!’
“큭! 너, 나중에 다 설명해라!”
‘걱정하지마.’
씨익. 화순의 미소를 보며, 이번에는 발을 뻗었다.
딱히 생각하고 뻗은 건 아니었다. 그저 내 몸이, 기운이, 그리고 권능이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거라고 말했을 뿐.
서걱!
그리고 그 순간, 날카롭게 뿜어져 나왔던 화성의 기운이 갈라졌다.
맞으면 몇십, 몇백 장 밖으로 쫓겨났을 정도로 길고 긴 공격.
하지만 그것도 나의 발 앞에서는 무력했다.
‘천마각법(天魔脚法). 극의. 섬각(閃脚). 극도로 단련한 다리는 빛조차 이겨내리.’
후웅! 창의 끝을 잡고, 마치 도처럼 휘두른다.
‘천마도법(天魔刀法) 극의. 파도(波刀). 진정한 도란, 베는 것을 넘어서 깨뜨릴지니.’
쾅! 팔꿈치와 어깨, 무릎으로 부서뜨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천마투법(天魔鬪法) 극의. 귀투(歸鬪). 싸움이란 맞고 때리는 게 아니라 나아가는 것이다.’
한 걸음이 곧 극의요, 한 주먹이 곧 극의다.
하나로도 시대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극의가 일보, 일보 나아갈 때마다 뿜어져 나왔다.
그 사실에 나도 물론 놀랐지만, 진심으로 경악한 건 다름 아닌 그 극의를 모두 맞닥뜨린 화성이었다.
“아니, 그럴 리가, 이럴 순 없어!”
그가 밀려난다.
언제나 밀려나지도, 가까이 가지도 않고 그 자리에 올곧이 서 있던 그가 처음으로 뒤로 밀려나갔다.
“그의 무공으로 나를 쓰러뜨릴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천 개의 가문이, 서로 다른 천 개의 무공이 내 육신에 있거늘!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이냐아아아!!!”
‘그거야 당연하지.’
천천히 화성을 향해 다가가는 나의 위에서 화순이 입을 열었다.
‘형이 천 개의 무공을 합쳐 형의 무공을 만들었다면.’
“천마의 무공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세월, 많은 무공을 흡수하였으니까.”
아까 화순이 설명해준다고 했지만,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내 단전 깊은 저변에 있는 진짜 나의 힘.
권능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네가 천의 무공을 흡수하여 새로운 무공을 창조했다면, 천마의 무공은 거기에 천을 곱하여 백만의 무공을 흡수하여 창조했으니까.”
긴 세월, 수많은 천마가 권능을 통해 천마의 무공을 단련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천마의 무공은 이미 하나, 하나가 수천, 수만의 무공을 흡수하여 완성된 무공이니.
“그리고.”
키이잉!
한 손에 들고 있던 창에서 거대한 와류가 일어났다.
한 점도 되지 않는 힘만 더해도 가볍게 나타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와류.
권능의 진짜 힘을 깨달은 그 순간, 내게는 더 이상 내공도, 경지도 아무런 상관없었다.
“이것이 바로, 진짜 천마의 무공이다.”
천마창법 오의. 와류.
“그, 그럴 리, 그럴 리 없···!!!”
‘형.’
스윽.
하늘을 뒤덮는 와류 앞에서 마지막 발악을 하려던 화성.
그런 그의 손을 화순이 조용히 감싼다.
‘이제 그만 쉬어도 돼. 이젠 떠날 때가 된 거야. 모든 걸 잊고, 조용히.’
“난, 난 그럴 수 없다! 난 해야 할 일이 있어!!!”
‘아니. 그럴 필요 없었어. 그런 건 누구도 원하지 않았으니까. 나도, 아버지도. 그리고 무엇보다 형 본인도.’
꾸욱.
화성의 두 손을 꽉 맞붙잡은 화순.
화성은 그것을 원한다면 풀 수 있음에도, 풀지 못한 채 멍하니 화순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행동이 멈춘 그 순간.
‘···유현아.’
“···응.”
고요히 전장에 울려퍼지는 화순의 한 마디.
‘지금까지, 고마웠어.’
“그래.”
쿵!
앞으로 한 발자국, 크게 진각을 일으키며.
“나도.”
창을 잡고 있던 손을 뻗었다.
“쭉 고마웠어.”
콰과과과과!!!
그리고 와류가 지나간 그 자리에는.
이제 더 이상 아무도 남지 않았다.
< 형제의 마지막 > 끝
ⓒ (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