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의 장남(1) >
결국 아쉽게도 그 기괴한 강철 인간들을 쓰러뜨리는 건 미룰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두려운 건 아니었다. 만이 넘는 숫자가 갑자기 튀어나온 건 분명 기막힌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놈들을 다 쓰러뜨릴 수 없다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걱정하는 건 그 뒤의 일이었다.
눈앞의 놈들은 어떻게 다 쓰러뜨릴 수 있어도, 그 뒤로 얼마나 많은 강철의 괴물이 나타날지도 모르거니와, 무엇보다 내가 여기로 온 목적은 이놈들을 쓰러뜨리는 것도 아니었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자기를 신이라 부르는 과대망상 환자 놈을 쓰러뜨리는 일이었으니까.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오직 그 이유 때문이었다.
“무슨 생각 하십니까?”
“···아니.”
처음 나와 마주한 그 강철 인간은 본인이 처음 제안했던 대로 나를 그놈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고 있었다.
인간과 닮은 미소를 띤 채, 인간과 닮은 말투로, 인간과 닮은 움직임으로 나를 안내하는···괴물.
아무리 열심히 인간인 척을 하려고 해도, 군데군데 보이는 어색함 때문에 도저히 그것을 인간이라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런 꾸며낸 듯한 모습 그들을 더욱 추악하게만 만들 뿐이었다.
[···대체 이런 이상한 걸 만든 이유가 뭘까.]
그리고 그건 화순도 마찬가지였는지, 인상을 쓰며 그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의문을 품고 있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처음에는 그냥 쓸만한 부하 몇 만들려는 속셈인 줄 알았는데, 놈의 뒤를 따라 길을 걸으면서 어쩌면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르고 있었다.
첫 번째는 그 숫자.
처음 놈을 만난 곳에서 만났던 강철 인간들도 가히 만에 가까울 만큼 어마어마한 숫자였지만, 지금까지 놈의 뒤를 따르며 만난 강철 인간의 숫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정도였다.
천산의 무인을 대체한다는 이유로 만들었다 하기엔 이미 그 숫자는 내가 저 아래에서 봤던 천산의 무인들을 한참 넘어섰다.
그렇다면 대체 뭐를 위해서 이만한 숫자를 모았는가?
혹시나 천산의 무인들이 반란을 일으킬 걸 예상해서 그들까지 모두 쓰러뜨리려고?
하나하나가 그리 강하지 않아 그냥 물량으로 밀어붙이려고 그러나?
아니면 내가 감히 예상치 못한 목적이 존재하는 건가?
아무리 생각하고, 또 고민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을 만큼, 지금 이놈들의 등장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내 혼란과는 반대로 그와 나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쭉쭉 앞으로 나아갔고.
“다 왔습니다.”
드디어 당도했다.
“여기가 바로 그분이 계신 곳.”
그 미친놈이 있는 곳.
“모든 것이 시작된 바로 그 땅입니다.”
지금껏 쌓이고 쌓였던 악연이 끝날 그곳이었다.
일 가주의 설명대로 그곳은 정말 사당 그 자체였다. 중원의 마을 밖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지장보살이나 관우 신을 모시는 그런 사당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과 다른 점이라면···.
“···크네.”
“크지요.”
압도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그 크기.
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사당을 수백 배의 크기로 키워 놓은 듯한 그 사당은 지금껏 지나치면서 봤던 어떤 건물들보다도 크고 웅장했다.
마치 나 자신이 난쟁이가 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으리으리한 사당 앞.
만약 내가 종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무릎이라도 꿇고 기도라도 한 번 했을지 모르겠지만, 내게 신앙심이란 마교에 들어가고 정확히 사흘 만에 이미 사라진 감정이었던 지라 그럴 일은 없었다.
지금 내가 이 사당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혐오.
“그 새끼가, 여기 있다 이거지?”
그리고 분노뿐이었다.
“말씀을 좀 더 부드럽게, 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지만, 어차피 들어주실 생각은 없으시겠죠?”
싱글싱글. 자신의 주인을 바로 면전에서 욕했음에도 불구하고, 놈은 여전히 만면에 미소를 그리고 내게 말했다.
“···의외인데. 주인님을 욕하지 말라, 라고 하면서 바로 달려들 줄 알았는데.”
“그러고 싶은 심정은 굴뚝같습니다만, 아쉽게도 주인님께선 권능의 주인이 저와 제 형제에게 직접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공격은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놈의 설명을 듣고 있던 화순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아주 직접 처리하겠다고 사방에 알리고 난리네. 참 대단한 놈이야.]
뭐, 이해 못 할 건 아니지.
중원에서부터 알게 모르게 사사건건 놈의 일을 모두 방해하고 있었으니, 화를 내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리라.
자, 그럼.
“그 잘난 인간, 얼굴이나 좀 한 번 보러 가볼까.”
끼익.
내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천천히 열리는 사당의 문.
자신의 안내는 여기까지라는 듯 하나의 조각상처럼 그 자리에 멈춰선 놈을 지나쳐, 그곳으로 들어갔다.
“···어둡네.”
사당에는 야광주는커녕 흔한 등잔불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이 정도 어둠도 꿰뚫지 못할 경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음습한 분위기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곳이 불쾌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진짜 아무것도 없네.]
···그러게.
크고 넓은 사당은 방을 나누는 벽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그 자체로도 하나의 크고 거대한 방인 사당은 빛 한 점 없는 어둠에 더해져, 아무리 전후좌우를 둘러봐도 벽의 존재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분명 더없이 넓은 건물임에도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갑갑함이라.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홀로 여기 들어왔다면, 사당 한복판에서 길을 잃고 말라 죽었을지도 모를 그런 곳.
[취향 참···더럽구만.]
화순의 말대로 이런 곳을 설계한, 그리고 지으라 명령한 작자의 성격을 그대로 파악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
공간 감각도, 시간 감각도 흐릿해질 때 쯤.
[어이.]
내 옆에서 침묵한 채 걷고 있던 화순이 입을 열었다.
[저 앞에.]
화순의 짧은 한마디에 대답 없이 그가 가리킨 곳을 응시하자, 거기에 ‘그것’이 있었다.
옥좌라 하기엔 투박하지만, 그렇다고 의자라 하기엔 비싸 보이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이 오직 자신들만 믿는 신을 위해 지어놓은 그런 자신만을 위한 좌석에 몸을 맡긴 ‘그것’이 입을 열었다.
“왔군.”
너무나 익숙하지만, 또한 너무나 어색한 목소리.
벌써 몇 번이나 뇌리에 꽂힌 목소리였지만, 직접 그것을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
“안내는 어땠나? 불편한 점은 없었나?”
“내가 만나 본 안내자 중엔 제일 빨리 길을 안내해주긴 하더라고.”
씨익.
“그것 말곤 모조리 불편했지만.”
“그래, 여러모로 조정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
비꼬는 말투에도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하는 ‘그것’의 모습은 괴이했다.
마치 일렁거리는 검은 연기로 몸을 감싼 듯, 전신을 어둠으로 뒤덮고 있는 그것은 눈도, 입도, 피부도 보이지 않았다.
“곧 다시 제대로 만들 생각이네.”
하지만 그것은 분명 말을 하고 있었고.
“그러면 자네도 조금은 더 마음에 들겠지.”
나를 바라보고도 있었으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게야.”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놈을 보고 놀란 부분은 그런 게 아니었다.
“이봐, 너. 혹시···.”
기억 속 깊은 곳에 있던 하나의 광경.
본디 나의 기억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기억이었던 탓일까. 그것을 꺼내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광경의 강렬함은 내 뇌리 깊은 곳에 확실히 각인되어 있었기에, 다시 떠올린 그것이 선명해지는 건 길게 걸리지 않았다.
“···남만에 갔던 적, 있나?”
그것은 분명 나의 기억은 아니었지만, 동시에 나의 기억이기도 했다.
강제적으로 자신의 영역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 그 순간부터 광기와 분노, 그리고 폭력에 물들기 시작한 독정.
그것과 겨뤘던 나는 그것이 가진 기억의 일부, 가장 강렬했던 기억의 파편을 그때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왔던 암흑 일색의 존재.
이 땅 위에 존재하는 것 중 가장 위험하고, 지독한 독정의 기운을 간단히 이겨내고, 그것의 분노를 이끌어냈던 바로 그 정체불명의 괴물.
그것은 분명,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자와 몸서리쳐질 만큼 똑 닮아 있었다.
목소리가 떨리는 걸 참지 못했다. 물론 지금 내 단전 아래에도 독정은 존재하지만 여전히 독정의 힘은 내게 두려운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내 단전에 그 조각이나마 존재하고 있기에 더더욱 그 본체가 품고 있는 힘을 두려워하고 있다, 라는 게 더 옳은 말이리라.
내 질문에 놈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안개가 살짝 크게 일렁이더니, 곧 얼굴이 있을 만한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남만? 아···그래···확실히 한 번 간 적이 있었지. 사실, 별일은 아니었어.”
마치 동네 마실을 나갔다 왔다는 듯 가벼운 말투.
“그저 나무에 박혀있던 보기 싫은 돌멩이 하나를 빼놓고 왔을 뿐이니 말이야.”
“···하!”
하지만 그 이면엔 끔찍하리만치 참혹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남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온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질 뻔했는지는 알고 그리 말하냐?”
놈이 빼냈다고 말한 그 돌멩이, 독정으로 인해 남만은 몇 년을 고통받았고, 만약 내가 막아내지 못했다면 그로 인해 남만 전역은 물론 중원까지 멸망할 수도 있었다.
까딱 잘못했다면 세상 전부가 멸망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끔찍한 재난을 불러 일으켜놓고 저런 말투와 행동거지라니.
그 앞에서 고통받은 사람을 지켜봤고, 무엇보다 당장 그 힘에 죽을뻔했던 나는 당연히 놈의 말에 분노했지만.
놈이 그 이후에 내뱉은 말은.
“당연히 알지.”
그런 분노조차 순간 말을 잃을 만큼 기막힌 말이었다.
“···뭐?”
“당연히 알고 했다. 독정의 기운이, 그것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네놈, 무슨···!”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것’이 자신의 자리에서 강물이 흐르듯 나를 향해 내려왔다.
“황태자가 된 일 황자를 질투한 이 황자와 삼 황자가 그를 죽이고 황제의 자리를 두고 다투다가, 결국 내전을 일으키게 될 것이란 사실도.”
한 걸음.
“아버지도, 오라버니도 누명을 쓰고 죽은 공주가 북해로 넘어가 후대 빙궁의 아내가 되어 멸망한 빙궁 대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얻기 위해 중원을 침공할 것이란 사실도.”
한 걸음.
“오랫동안 참고 있던 빙정이 터져나가 북해가 누구도 살 수 없는 사지(死地)가 될 것이고, 그것이 북해빙궁주가 처리하지 못한 딸 하나가 만들어 낸 것이란 사실도.”
한 걸음.
그것은 끔찍한, 참혹한, 절망적인 미래를.
···내가 알고 있던 모든 미래를 읊으며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더니.
“결국 타락한 정파와 몰락이 눈앞에 다가온 마교가 거대한 전쟁을 벌이리란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지.”
“너, 대체, 어떻게···!”
“걱정할 필요 없다. 난 너처럼 미래에서 과거로 회귀한 존재는 아니니 말이다. 그저.”
“이, 괴물 놈이!”
촤악!
놈에게서 대답이 채 튀어나오기도 전에 나는 등에 메고 있던 창을 꺼내 바로 휘둘렀다.
말한 적 없던 나의 비밀을 아는 것도, 그 뒤에서 놈의 입에서 튀어나올 말도 도저히 감당할 수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루어진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손끝에서 확실히 느껴지는 이 감각. 직접 보지 않아도 내가 무언가 베었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만 내가 예상치 못했던 건.
“이런.”
그의 전신에 일렁이던 검은 안개가 그의 본체가 아니었다는 사실과.
“이건···또···.”
[뭔···.]
그 검은 기운 너머에 있는 놈의 진짜 모습.
“가능하면 마지막에 알려줄 생각이었다만···어쩔 수 없구나.”
놈의 얼굴에 있던 일렁이는 검은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고, 거기에 나타난 건 놀랍게도 내 또래 정도의 외견의 사내.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를 놀라게 했던 건 그 외견이.
“화···순?”
내가 과거로 회귀한 이후, 거의 항상 내 옆에 있었던 제일의 친우의 얼굴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틀렸다.”
하지만 내 경악 어린 목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화성(和成).”
스윽.
‘그것’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아니, 사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었다.
거기엔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유령, 화순이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초대 천마의 장남이자, 거기 있는 화순의 형이다.”
< 천마의 장남(1) > 끝
ⓒ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