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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79화 (179/185)

< 그리고 천산으로(1) >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내 질문에 목소리가 들려왔던 방향으로 허심탄회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일 가주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리지?”

“놈은 천산에 있는 거 아니었어? 너희 본진에 그놈이 있는데, 어떻게 가려고? 도착하는 순간 죽는 거 아냐?”

내 질문에 오히려 일 가주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되물으려다가, 곧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그분···그가 있는 곳은···우리가 알고, 우리가 있는 이곳과는 다르니까.”

“그게···무슨 소리야?”

놈에 대한 호칭이 바뀌었다는 기쁨도 잠시, 영문을 알 수 없는 일 가주의 말에 그 말의 진의를 되묻자, 그는 눈에 띄게 인상을 쓰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이미 느꼈지만, 그는 이 땅의 존재가 아니야.”

“그건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끄덕.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일 가주의 모습에 나 또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땅의 존재가 아니다?

물론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강자라는 건 대충이나마 말고 있었지만, 그래도 인간이 아니라는 걸 넘어 이 땅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니.

“무슨 악령이니 뭐니 하는, 그런 존재인가?”

“그건 확실치 않아. 이 세상의 미련이 남아 있는 악령인지, 아니면 신은 신이지만 인간을 홀리는 악신인지. 하지만 정확한 건 본디 이 땅에 존재하는 것 자체를 허락받지 않은 존재라는 걸세.”

“으음···확실히···.”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짐작 가지 않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강자라 하더라도 그만한 거리를 점지하여 옥천의 육신에 빙의하는 것도 확실히 이상하고,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 가주 정도 되는 고수를 완전히 제압하는 것도 평범한 인간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들릴 때마다 느꼈던 그 소름 끼치는 감각까지.

지금에야 어느 정도 적응이 돼서 괜찮아지긴 했지만, 그건 인간의 것이라 하기엔 여러모로 이상한 부분이 많았다.

아니, 오히려 따지자면···.

[사후 세계의 그놈들이랑 비슷했었지.]

화순의 평에 나도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후 세계에선 나보다 강자라 할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목소리 하나만으로 떨림을 느끼진 않았지만, 기운의 근본 자체는 분명 비슷했다.

···혹시 그도 사후 세계의 존재인 게 아닐까?

순간 그런 의문을 던져봤지만, 곧 스스로 부정했다.

확실히 사후 세계의 존재랑 많은 부분에서 닮은 건 사실이지만, 그를 사후 세계의 존재라 확정하기엔 몇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가장 큰 건 역시나 시간.

그가 일 가주와 접촉한 건 짧게 잡아도 사십 년은 넘는다.

하지만 사후 세계의 존재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건 아무리 길게 잡아도 겨우 몇 개월.

시간대가 맞지 않아도 너무 맞지 않는다.

결국 조금이라도 더 쓸만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더 건넸다.

“그럼 그는 천산에 없다는 거야?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아니, 꼭 그런 건 아닐세. 천산에 뭔가 그를 묶고 있는 것이 있는지, 아니면 미련이 있는 건진 몰라도 그의 기운은 쭉 천산에 자리하고 있었네. 만약 자네의 말대로 그가 정말 어디로 떠나도 상관없다면, 애초부터 천산에 자리하고 있었을 이유가 없겠지.”

“그럼 놈의 거처···아니면 사당 같은 곳은 있어? 놈이 주로 출몰하는 곳 말이야.”

“아니, 사실상 천산 전체가 그의 영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네. 어디 한 군데에 오래 머무는 경우는···.”

내 질문에 고개를 젓던 그가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더니,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겠군.”

“응? 진짜?”

“그를 모시고 난 후 여러 곳에 그의 사당을 지어놓긴 했지만, 대부분 그의 기운을 거기서 느끼는 건 거의 불가능했네. 딱 한 곳.”

펄럭!

그렇게 말문을 튼 일 가주는 자신의 품 안에서 한 장의 지도를 꺼내더니, 그것을 펼쳐 내게 보였다.

천산의 열 가문의 위치와 그 규모. 그리고 그 외에 중요한 정보가 가득한 지도에는 놈의 사당이 위치한 장소도 모조리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일 가주가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곳을 제외하곤 말이야.”

“여긴···?”

그가 가리킨 장소는 의외로 천산의 다른 가문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대체 왜 여기에 사당을 지었던 걸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외진 장소.

“그의 명령으로 직접 지은 장소일세.”

“직접 지었다고?”

“그래. 다른 장소는 그저 충성심으로. 혹은 구색이나마 갖추려고 지어놓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곳은 다르네. 그가 직접 내게 명령하여 만든 사당이지.”

“흠. 그렇단 말이지?”

“보통 그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이곳으로 찾아오면 무조건 있었네. 그에게 있어서 무슨 중요한 장소인지, 아니면 힘을 모으기 좋은 장소인진 모르지만 대부분 거기에 머물러 있었지.”

“좋아. 그 정도라면 충분해. 아, 혹시 지도는 내가 가져가도 될까?”

“자네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그의 말에 바로 품에 지도를 챙겼다. 일단 머릿속에 넣어두긴 했지만, 그래도 확실한 정보는 언제나 필요한 법이니까.

“그럼 바로 천산으로 올라갈 생각인가?”

“아니, 그건 아니네. 지금 바로 천산으로 올라갔다간 그의 진노를 받을지도 모르거니와, 토번의 역습도 걱정스러우니 말이야.”

“아···하긴.”

나야 이번 전쟁이 그놈의 말도 안 되는 명령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라는 걸 알지만, 토번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니 말이다.

“그럼 지금이라도 항복 문서라도 보내는 건 어때? 상황이라도 설명하면서 말이야.”

“나쁘지는 않은 방법이네만···그렇다고 토번에서 순순히 우리의 말을 믿어줄 거라곤 확신할 수는 없네. 자네가 알진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우린···.”

“그래, 그래. 무슨 악마니 뭐니 잔뜩 욕하더라.”

토번과 관련된 신화 중 이들을 욕하는 부분만 간추려도 책 한 권은 나올 만큼 천산의 무인을 욕하는 부분은 꼭 존재했다.

하물며 지금은 천산이 먼저 침략한 상황인데, 지금 이쪽에서 항복 문서를 보낸다고 해서 허허 웃으며 그걸 받아줄 린 없었다.

오히려 기회다! 하면서 좋다꾸나 병력을 모아 반격할 가능성이 크면 컸지.

“···그럼 쭉 여기서 버티고 있어야 하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닐세. 전쟁의 장기화를 생각하여 버틸 장소는 갖춰뒀으니까. 거기서 버티면 될걸세. 설마 이런 용도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건 다행이네.”

내가 미소와 함께 그의 말에 대답하자, 그도 똑같이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정보를 얻고 난 뒤, 마지막으로 그를 향해 혹시나 하는 심정을 담아 질문을 던졌다.

“···직접 같이 싸우는 건 힘들겠지?”

“나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역시 그건 힘들 것 같네.”

역시나.

내가 먼저 질문을 던지긴 했지만, 사실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일 가주는 내 요청에 거절한 뒤,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를 저버리긴 했으나, 내 힘의 근본은 그의 가르침과 기운일세.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반대로 방해가 될 가능성이 더 클 것이야. 다른 천산의 무인이라 해서 다를 건 없고 말이야. 미안한 말이지만···.”

“아니, 그 이상 말할 필요 없어. 다 이해하고 있으니까.”

애초부터 거절을 들을 거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꺼낸 일이라, 그의 거절을 들었을 때도 딱히 아쉽다는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대답하는 그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그럼 당신과 다른 천산의 무인들은 그쪽으로 빨리 몸을 숨기도록 해.”

“자네는 바로 천산으로 갈 텐가?”

“아니, 그래도 일단 오해는 풀어야지.”

“···오해?”

“혹시 그쪽에 글 잘 쓰는 사람 있어?”

“글···? 몇몇 알고 있긴 하지만···그건 갑자기 왜?”

머리 위로 의문부호를 잔뜩 띄우는 그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그래도 사과할 땐 좀 글을 잘 써야 좋지 않겠어?”

*****

그리고 그 시각.

토번 제국의 수도를 수호하는 네 개의 성벽. 그중 가장 높고 튼튼한 성벽 위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인파가 몰려 있었다.

“싸, 싸움은 어떻게 되었나? 끝났나?”

그리고 그런 인파 중에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한 사람.

옷에 달린 장신구 무게만으로도 성인 남성 한 명에 맞먹을 정도로 금과 보석으로 전신을 장식한 젊은 사내가 주변의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대답을 꺼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격식을 차려 정갈한 관복을 입은 고위급 관원도, 마치 잘 갈린 한 자루의 검이 떠올리게 만드는 무인도.

그저 침묵한 채 그들의 건너편, 수도 옆 황무지를 바라보고 있을 뿐.

평소라면 대노하며 온갖 고함을 내지르고, 옆에 있는 호위병들에게 목을 자르라 외쳤겠지만, 그런 그도 지금만큼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으으으···.”

원하던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린 사내.

그는 조금 전 유현과 일 가주가 싸움을 벌인 그곳을 바라보며 원망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대체 왜 내 재위 기간에 저런 신화 속의 악마들이 튀어나오고, 또 저런 싸움을 벌이는 거냐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공포에 떨고 있는 사내는 다름 아닌 당대 토번 제국의 황제였다.

본디부터 방탕하고 자기 안전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그는 전쟁 선포 소식을 듣자마자 다른 도시에 분포해놨던 모든 병력을 수도로 들이는 동시에 수도의 성문을 걸어 잠근 후, 천산의 무인이 적당히 다른 도시를 침략하다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랬다간 다른 도시에서는 화를 내겠지만, 딱히 걱정은 없었다.

이미 난장판이 된 도시 따위 몇 개가 힘을 합치더라도 지금 수도에 있는 병력이라면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천산의 무인이 강하다고 해도 이 성벽을 뚫을 수 있을 리 없고, 설사 어찌어찌 성벽을 넘어온다 해도 그렇게 피로한 상태에선 이 병력을 어찌할 순 없을 것이다.

나라가 쑥대밭이 되건 말건 오직 자기 안전만을 생각하는 추악한 전법이었지만, 황제의 뜻을 거스를 간 큰 충신들은 이미 전쟁이 벌어지기 몇 년도 전에 황제가 다 목을 친 상황이었다.

그렇게 안전한 장소에서 천년만년 향락을 부리며 살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 전에 벌어졌던 그 싸움을 보기만 해도 말이다.

“대, 대장군! 대장군!”

“···예, 폐하.”

조금 전 싸움에서 느꼈던 감동과 경외.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에 몸서리치고 있던 대장군은 황제의 부름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 호, 혹시 대장군이라면 방금 그들처럼···싸울 수 있소이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 멍청아.

···그 말을 내뱉는 걸 참을 수 있었던 건 어마어마한 정신적 수련과 동시에 전대 황제에 대한 충성심 덕분이었다.

만약 둘 중 하나라도 없거나 부족했다면, 이미 황제의 목을 치고 자기가 황제라고 선포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무리일 듯 합니다.”

“그, 그럼 저들 중 하나가 쳐들어오면, 지금 성내의 병력으론 막을 수 있소이까?”

“그건···.”

대장군도 그 질문에는 조금 전과 다른 이유로 말이 막혔다.

그는 확실히 무공을 단련한 무인이긴 했지만, 수십 년간 전장을 전전했던 노련한 군인이기도 했다.

무공을 익힌 무인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숫자의 폭력 앞에는 얼마나 무력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저들은?

“가능하오이까?!”

“폐하는···제가 이 한 몸을 바쳐서라도 지키겠나이다.”

“오, 오오오! 역시 대장군이오! 믿고 있었다오!”

대장군의 대답에 황제는 기뻐하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의 대답을 들은 다른 이들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어수룩한 황제와 달리, 그 말에 숨은 속뜻을 그는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저들이 쳐들어오면 설사 수도의 전 병력을 동원해도 수도를 지키는 건 불가능하단 말이구나!’

‘모든 병력을 다 모아야 겨우 황제 하나를 지키는 게 전부라니···으으으···.’

기뻐 날뛰는 황제와 아랫입술을 꽉 문 장군. 그리고 절망한 대신과 궁녀들.

그리고.

“모두 구경은 잘들 하셨습니까?”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나타난 특이한 형색의 사내.

그의 등장에 대장군은 대경실색하며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가 놀란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다.

전혀 알지 못했다. 그의 등장도, 말을 내뱉는 것도, 무엇 하나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네, 네놈은 누구냐!”

그런 공포를 숨긴 채 어떻게든 입을 열어 본 대장군이었지만, 오히려 사내는 그 공포를 알고 있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조금 전까지 재밌게 구경들 다 하셔놓고 이제 와서 모른 척하십니까? 구경료라도 받을까봐 그래요?”

“구경이라니, 우리는···.”

우뚝.

사내의 말에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열었던 대장군은 무언가를 깨닫고 말을 멈췄다.

지금 언뜻 보인 그의 무력과 한창 구경 잘하고 있었냐는 그 말.

이 두 가지를 합쳐보면, 나오는 대답은···.

“호, 혹시···.”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 딱딱하게 굳어있던 대장군은 겨우겨우 입을 열며.

“방금 저기서 싸움을 벌였던 두 분 중 한 분···이십니까?”

씨익.

대장군의 질문에 대답 없이 그저 미소만 그리는 사내, 유현.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아차렸다.

“·········.”

자신들의 목숨이 이 사내의 손 위에 있다는 사실을.

< 그리고 천산으로(1) > 끝

ⓒ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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