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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78화 (178/185)

< 천산의 일 가주(4) >

우드득!

“끄, 끄아악!”

전장에서 울려 퍼지는 뼈 부서지는 소리와 통렬한 일 가주의 비명.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누구 하나 그에게 다가오는 이는 없었다.

“저, 저거 괜찮은 건가?”

“아니···나도 모르겠어.”

“가보는 게 좋을까?”

“무슨 멍청한 소리야?! 방금 그 싸움 못 봤어? 저것도 지금 저쪽이 공격하는 거라면, 다가가기만 해도 죽는다고!”

저들 중 태반은 아까 전 싸움의 두려움에 감히 가까이 다가갈 생각을 못 했고.

“저거···저쪽에서 공격하는 건 아닌 것 같지?”

“그런 것 같긴 한데···혹시 신벌(神罰) 아닐까?”

“신벌이라고? 설마, 대체 왜 그분께서 일 가주님을 벌한다는 거야?”

“모르지. 저놈이랑 뭔가 이야기가 있었던 걸지 누가 알아?”

그나마 진실을 알아차린 몇몇 또한 신벌이 자신에게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며 감히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컥! 커억!”

그들이 외면하는 사이, 일 가주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허리가 활처럼 꺾여나가더니 입에서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내장이 터져나가느냐, 척추가 꺾여나가느냐 둘 중 하나뿐.

어느 쪽이건,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젠장!”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마음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 죽느냐 사느냐 하며 싸우던 상대긴 하지만,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해도 절대 피할 수 없는 죽음.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직접 경험해 봤기에 눈앞에서 그런 식으로 사람이 죽는 건, 설사 적이라고 해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쿵!

천마보법 오의.

군림.

발바닥에서 시작된 힘은 곧 대지를 타고 일 가주에게 몰려갔고, 그것은 곧 그의 몸을 타고 올라가 그의 저변에 엮여 있던 기운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큭!”

겨우 다리 끝만 타고 올랐을 뿐인데도 느껴지는 강력한 반탄력.

절대로 놈이 호락호락하게 일 가주를 엮고 있는 힘을 풀어주지 않겠다는 생각임을 알 수 있는 동시에.

“어이! 당신 그냥 그대로 죽을 생각이야?!”

일 가주 또한 이 힘을 전혀 거스르지 않고 있다는 소리였다.

“내공을 끌어 올려! 어떻게든 저항하라고!”

분명 일 가주를 엮고 있는 힘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 되는 고수가 조금이라도 저항해준다면 어떻게든 못 할 힘은 아니다.

하지만 겨우 발에서부터 군림이 멈출 정도라면, 그가 정말로 아무런 힘도 내고 있지 않다는 소리였다.

내 외침에 고통 어린 신음을 흘리고 있던 일 가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나는···신의 뜻을···거슬렀다···.”

“···뭐?”

“신께선 내게···오직 당신의 뜻으로만···칼을 휘두르라 하셨는데···내 욕심으로···그리한 탓에···.”

“진심이냐? 지금, 바로 여기서, 그놈한테 죽어가고 있는데도 아직 그 소리야?!”

주르륵.

입가로 흐르는 한 줄기의 핏물.

거기엔 내장인지, 아니면 뼛조각인지 몰라도 무언가 군데군데 섞여 있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조차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딱 하나.

“신의 뜻은···이뤄져야만 한다···.”

“이 멍청한 새끼가!”

쿵!

다시 군림을 일으킨다. 막힌다.

“신이란 작자가 네게 뭘 해줬는데!”

또다시 군림을 일으킨다. 또 막힌다.

“아니, 뭘 해줬다고 해도, 지금은 뭘 하고 있는데!”

네 번째 군림. 다시 한번 막힌다.

“나도 그랬던 적 있어. 뭐든 해주겠다 하고, 결국엔 망하고,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에 결국은 나락으로 떨어졌지!”

다섯 번째 군림. 여전히 바뀌는 건 없다.

“하지만 넌 아직 기회가 있어!”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여덟 번째.

대지가 떨리다 못해 갈라질 정도로 군림을 일으켜도, 일 가주의 입가에서는 여전히 피가 넘쳐 흐른다.

“최소한 그에 맞설 기회는 남아 있잖아! 힘을 일으켜! 살아남으라고!”

쿵!

아홉 번째.

“놈에게 당당히 맞서란 말이야!”

파직.

···흐름이 바뀌었다.

아주 미세하지만, 일 가주의 몸을 감싸고 있던 놈의 기운에 틈이 생겼다.

“당당히 맞서면···.”

그가 날 응시했다. 입가에 흐르던 피를 삼키고, 천천히 입을 열어 나를 향해 물었다.

“···내겐 뭐가 남지? 신의 뜻도, 그분의 의지도 잃은 내게,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자유.”

내가 마교를 최악이라고 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네가 원하는 모든 걸,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지.”

거긴 억압뿐이었다.

자유란 더욱 높은 자리에 있는 자만을 위한 자리였고, 나는 그런 마교에서도 제일 최악의 자리에 있었다.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온 이후, 강해지려고 한 이유가, 높은 자리에 올라서려 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내가 꿈꾸던 걸, 내가 바라던 걸, 내가 원하던 걸 할 수 있는, 그런 자유.

그리고 나는 여기까지 왔다.

내가 원하던 대로.

“그러니까 일어서.”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싸워서 이겨내란 말이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강력한 기세를 품은 군림이 외부에서 그를 억압하는 힘을 공격하는 동시에, 내부에서도 그에 비할 기세가 함께 뿜어져 나왔다.

쩌적!

파지직!

그러자 땅에 번개가 내리꽂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의 전신을 옭아매고 있던 놈의 기운이 산산이 조각났다.

쿠오오!

화경 중에서도 손꼽힐 경지에 오른 두 사람과, 그만한 고수를 옭아맬 정도의 내공.

이 세 가지 서로 다른 기운이 한데 합쳐졌다 동시에 터져나가자, 엄청난 충격이 전장을 덮쳤다.

“우웃!”

“크윽!”

우리 두 사람은 물론, 저 멀리서 구경하고 있던 이들까지 비명을 내지를 정도의 강력한 힘.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건 그중 두 개와 하나가 서로 맞붙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셋 다 한 쪽 방향으로만 기운을 퍼뜨렸더라면, 이미 저들의 목숨은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방금 맞부딪혔던 세 개의 기운은 어마어마했다.

그가 만약 이 정도의 고수가 아니라면 이만큼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고, 설사 대적하려고 했다고 해도 내 힘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정도로 말이다.

강렬한 충격파가 휩쓸고 지나간 전장.

먼저 몸을 일으킨 건 내 쪽이었다. 나야 권능을 사용한 것 말곤 아무런 손해도 없었고, 그것도 이미 권능으로 모두 회복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일 가주는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조금 전 놈의 공격에 잔뜩 외상과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거기서 빠져나가려고 힘까지 일으켰으니 정상이라면 그게 더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만.

하늘을 향해 대자로 쓰러진 일 가주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목숨을 잃었나 싶어 피로한 몸을 이끌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자, 그의 시선이 하늘에서 내 쪽으로 향해왔다.

“그래도 안 죽었네.”

“아직은.”

힘없는 목소리에 맥을 잡아볼 필요도 없이 알 수 있는 심각한 내상. 그리고 입가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피까지.

하지만 아무리 크게 다쳐도 고수는 고수라고 어떻게든 말을 꺼내는 그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나를 보며 그는 입가에 슬쩍 미소를 그리더니, 곧 이마에 깊은 주름을 만들며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옳은 선택을 한 걸까?”

“뭐가?”

“사십 년···내 인생의 삼분지 이 이상의 시간 동안 그분을 따라왔다. 그분의 가르침, 그분의 명령, 그분의 뜻. 무엇 하나 어긴 적 없었지. ···오늘, 처음으로 그분의 명령에 반기를 들 때 말곤.”

“사십 년···길기도 하네.”

회귀 전의 인생을 다 합해도 모자랄 시간이고, 거기에 내 회귀 후 시간을 다 더해야 겨우 도달할 시간이다.

그만한 시간 동안 오직 한 사람만을 따라왔다고 생각하니, 대단한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설사 하늘의 아들이라는 황제의 신하들조차 그들의 의지와 뜻은 가지고 있거늘, 지금 일 가주는 그런 것조차 꿈꾸지 못한 채 이만한 세월을 그에게 엮여 있었던 것이니.

“그래서, 어때?”

“···무엇이 말이냐?”

“근 사십 년 만에 느끼는 자유는.”

“모르겠군. 그 전의 이십 년도 딱히 자유로웠다는 느낌은 없어서 말이지. 하지만···.”

흐읍, 후우. 여러 복잡한 심경이 담긴 한숨을 내쉰 그가 조용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거긴 아까까지 그가 바라보고 있던 높고 넓은 하늘이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마음이 편하다는 감각을 알 것 같군.”

“역시 그렇지?”

그와 다를 바 없는 억압과 고생을 십 년간 해왔던 나였기에 그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픔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야 당연했다.

[어리석구나.]

긴 시간 그를 고통스럽게 한 괴물이 아직도 옆에 있었으니까.

[겨우 그런 이유로 나에게서 떠나가겠다는 것이더냐?]

“아직도 있었냐? 기운이 다 사라져서 없어진 줄 알았더만.”

이제 더는 놈의 목소리에 오싹함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몇 번이나 그의 기세와 맞부딪혔기 때문인지, 아니면 조금 전 그 기세를 이겨냈기 때문인진 모르지만, 어느 쪽이건 그의 기세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게 된 건 사실이었다.

[이곳에 보낸 기운을 대부분 사용하긴 했지만, 아직 내 목소리를 전달할 힘은 남아있지. 다시 한번 묻겠다. 일 가주, 넌 정말로 나의 뜻을 거스를 생각이냐?]

놈의 목소리. 아니, 경고나 다를 바 없는 그 말에 일 가주는 누운 상태 그대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스윽.

조용히 상체를 일으키며, 그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만약 당신의 뜻을 거스른다는 게 이 편안함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힘없는 목소리에 흐릿한 눈동자.

“네, 저는 당신의 뜻을 거스를 겁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굳건한 신념과 의지가 거기에 있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의외로 자신을 배신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일 가주의 말에도 놈의 목소리에는 전혀 분노나 증오 등, 부정적인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것을 포함하여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라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겠지만.

···신인지 아닌진 모르겠지만, 절대 인간은 아니다.

겨우 자신의 명령을 한 번 어겼다는 이유로 제 일 부하의 목숨을 직접 거둬 가려 할 때도 느꼈지만, 지금 이 순간 다시 확신했다.

이건, 진짜 괴물이라고.

[이제는 돌아올 곳도 없이, 평생을 떠다니겠구나. 그것을 자유라 생각하며 살아가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목숨을 잃어가거라.]

“···설사 그렇더라도, 그 모든 건 온전히 나의 의지로 행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넌 그걸 후회하겠지.]

“아뇨, 그러지 않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일 가주는 똑똑히 응시하며 대답했다.

“그래도 그땐 처음으로 제가 진정으로 원하던 걸 하다가 떠나는 것일 테니까요.”

그의 대답에 처음으로 놈이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너는 어찌할 것이지?]

너무나 긴 침묵에 드디어 이놈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나,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했다.

말하는 대상을 바꾼 듯, 이번에는 나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놈을 향해 되물었다.

“···뭘?”

[네가 여기 온 이유,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들었는데, 개중 네 어미의 복수도 있지 않더냐?]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네 어미의 목숨을 거두어간 자가 네 바로 옆에 있는데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말이다. 혹시 모르는 건 아니겠지?]

“걱정하지 마라. 아주 똑똑히 알고 있으니까.”

스윽.

마치 부처를 유혹하던 마라(魔羅)처럼 은밀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놈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매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놈이 그 잘난 도구로 우리 어머니의 육신을 갉아먹은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한다, 이거군?]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진실이란 거다.”

[그렇다면 오거라.]

더 이상 놈의 목소리에서 오싹함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해서 목소리에 담긴 기세가 사라졌다, 라는 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반대.

놈의 목소리에 담긴 힘과 무게는 오히려 아까보다 더욱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너에게, 그리고 네 운명과 엮인 모든 진실이 바로 이곳에서 밝혀질 터이니.]

“주인이 직접 건네주는 초대장인가?”

물론 그렇다고 굴복한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기다리고 있겠다.]

내 질문에 대답 없이, 드디어 사라진 놈의 목소리.

그것의 기척이 더 느껴지지 않음을 깨닫고, 나와 일 가주, 둘 다 힘을 빼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나와 일 가주. 그리고 놈의 싸움이 그렇게 끝났다.

< 천산의 일 가주(4) > 끝

ⓒ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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