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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77화 (177/185)

< 천산의 일 가주(3) >

쾅!

마치 유현이 자세를 잡기라도 기다렸다는 양 두 자루의 창을 양손에 쥔 유현을 향해 일 가주가 달려들었다.

아까보다도 훨씬 빠르고, 강맹한 공격.

꽉 쥔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양손에 깃든 어마어마한 기세에 공간이 크게 일그러졌다.

지잉!

그 힘 앞에선 속도는 이제 상관없었다. 팔을 뻗는다, 라고 생각한 순간 이미 주먹은 목적지에 도달해 있었고, 막힌 주먹을 다시 거둔다, 싶었더니 어느새 다음 공격이 날아온다.

마치 주먹을 뻗는데 필요한 공간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만 같은 연격.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세가 거기서 느껴졌지만, 정작 그 공격을 막아내는 당사자인 유현의 표정은 아까보다 훨씬 여유로웠다.

표정만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한 자루만으로 막을 땐 휘어질 듯, 부서질 듯 휘청거리던 창도 지금은 수천 년을 묵은 아름드리나무마냥 흔들림 없이 일 가주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크윽!’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아는 건 공격을 날리고 있는 일 가주였다.

아무리 기세를 더하고, 공격에 박차를 가해도 도저히 저 사내를, 저 벽을 뚫을 수 없다.

그 사실에 화가 난 것일까, 아니면 아까 유현의 그 한마디 말 때문일까.

“으아아아아!!!”

유현과 마주한 후, 처음으로 일 가주는 자신의 감정대로 소리를 내지르며 주먹을 뻗었다.

두웅!

그런 그의 공격을 두 자루의 창을 가위 자로 겹쳐 막아내는 유현.

거기서 들려온 소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손과 창이 부딪히는 것치고는 물론 이상하기 그지 없는 소리였지만, 그래도 최소한 물체와 물체가 맞부딪히는 소리였던 전과 달리 이제는 그것도 아니다.

마치 공기와 공기가, 물과 물이 맞부딪힐 때나 나는 자연의 소리.

각자의 무기가 맞닿기 전에, 서로의 기세가 먼저 맞닿으며 거기서 일어난 파장이 낸 소리였다.

순수한 기세와 기세의 싸움으로 인한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마치 진천뢰 수백 개가 한 번에 터져나간 듯한 엄청난 충격!

“웃!”

“으윽!”

그것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미처 방어도 하지 못한 채 직격으로 맞은 두 사람이 가벼운 신음만 흘리는 것에 반해 주변은 완전히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도, 도망쳐라! 모두 도망쳐!”

“하지만 아직 천막을 미처 거두지도 못했는데···!”

“지금 천막이 대수냐! 죽고 싶지 않다면 얼른 도망치란 말이다!”

두 사람의 기세로 인해 만들어진 충격파가 퍼지는 속도는 둔하고 느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위험성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

느리지만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는 그 파장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탓에 혼란만 가중되어갈 뿐이었다.

그나마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던 건 전투가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싸움에 방해될까 싶어 멀리 떨어져 있었던 덕이요, 지금 싸우고 있는 둘보다야 한참 모자라지만 그들 또한 절정 이상의 고수인 덕이었다.

그렇게 잠시 소강상태에 이른 전투.

“전투에···.”

그 짧은 순간에 일 가주의 얼굴은 유현의 또래로 보이던 모습에서 이마와 눈가에 몇 줄의 주름이진 늙은 모습으로,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본 연령에 걸맞은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즐거움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그의 삶에서 나온 대답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근 육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련에 단련을 거듭하면서 그는 단 한 번도 즐거움 따윈 느끼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서 강함이란 처음에는 운명이었고, 그 후에는 목적이었으며, 종래에는 숭배였다.

거기에 기쁨과 행복이 자리할 장소는 전혀 존재치 않았다.

그것을 그는 자신이 옳았다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 자신이 올라 있는 것이 그 증거라고 지금까지 여겨왔다.

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는 그런 자신의 신념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것을 그는 용납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단련은 승리를 위한 준비요, 전투는 그 결과를 알아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거기에 즐거움은 없다.”

두근!

분명히 그러할 진데.

“이 싸움 또한 마찬가지다. 오직 나의 주인에게 나의 신에게 바치기 위한 제물의 준비일 뿐.”

두근! 두근!

분명히 그 마음은 변치 않았을 진데.

“그러니, 나는 이번에도 승리를 얻고야 말 것이다.”

두근두근두근!

왜 이리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마구 끓어오르느냔 말이다.

초절정의 경지에만 이르러도 자신의 육신을 관조하고, 지배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런 초절정보다 훨씬,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있는 자신이 맥박조차 관리하지 못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일 가주가 유현을 노려보았지만, 유현은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래?”

그저 한 마디 내던진 뒤, 마치 다음 싸움을 준비하듯 창만 빙글빙글 돌릴 뿐이었다.

···일 가주는 당연히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분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호적수.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비등한 수준의 무인과 겨룸이거늘, 정작 그 당사자는 어찌 저리 가볍단 말인가!

일 가주는 속으로 탄식하며 양 주먹을 더욱 꽉 쥐었다.

저자가 계속해서 저렇게 가볍게 굴 생각이라면.

“하압!”

진심을 꺼내도록 만들어주마!

다시 유현에게 달려드는 일 가주의 몸놀림은 아까와 전혀 달랐다.

아까가 장인이 묵묵히 내려치는 망치질이었다면, 지금은 조각사가 작업 중인 조각칼과 같다.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롭고, 날렵하면서도 묵직하다.

서로 함께하는 것이 불가능 한 두 가지의 개념이 그의 손에서, 발에서, 그리고 전신에서 발휘되고 있었다.

유현이 뻗은 창과 주먹이 맞닿으려는 그 순간, 손이 부드럽게 풀려나가더니, 마치 뱀이 나무를 타고 오르듯 스윽 타고 올라 창대의 중간 부분을 잡아 겨드랑이로 꽉 잡는다.

후웅!

그로 인해 만들어진 빈틈으로 쾌속하게 날아가는 왼발. 발바닥 전체로 유현의 명치를 노리고 날아갔지만, 유현이 그걸 순순히 맞아주는 일은 없었다.

퍽!

어느새 반대편 창을 내려놓고, 빈손이 된 오른팔로 그의 왼발을 간단히 막아낸 것이다.

유현의 내장을 터뜨려버릴 기세로 날린 공격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유현의 팔을 감싼 불파를 뚫을 순 없었다.

“흡!”

완벽한 방어 뒤엔 완벽한 반격이 있다.

오른팔로 막아낸 왼발의 발목을 잡아, 그대로 반대편으로 넘겨버리는 유현.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 마구 발을 흔드는 일 가주였지만, 유현의 손길에서 벗어날 방법은 요원했다.

천마금나수의 묘리에 더해 불파로 인해 높아진 강도는 균형조차 잡지 못한 공격으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쾅!

그대로 땅으로 꽂혀버리는 일 가주. 아슬아슬하게 양손으로 머리는 막았지만, 전신을 뒤흔드는 충격을 전부 막을 순 없었다.

“하압!”

그리고 당연히 유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반격의 태세를 미처 갖추지 못한 일 가주를 향해 날아가는 공격.

창대로 후려치고, 발꿈치로 찍어누르고, 창날로 찌른다.

지금처럼 제대로 균형조차 잡지 못한 상황에서 일 가주가 유현의 쏟아지는 공격에 대한 대처는 오직 둘밖에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피하거나, 혹은 아슬아슬하게 맞거나.

어느 쪽이건 상관없이 그의 육신에는 차곡차곡 그 피해가 쌓여가고 있었다.

“으아아아!!!”

그리고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을 일 가주가 아니었다.

파앗!

강렬한 외침과 함께 전신에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내공!

전혀 무(武)로서 가공되지 않은 날것과 같은 내공이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큭!”

차라리 어디 한 부분을 노리고 들어왔다면 막기 어렵지도 않겠지만, 지금 그의 공격은 그런 류의 공격이 아니었다.

단 한 방울이라도 맞으면 뼛속까지 중독되는 독의 비처럼 무조건 피할 수밖에 없는 공격.

덕분에 일 가주는 조금 무리하긴 했지만, 다시금 제대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까딱 잘못하면 패배하고,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었던 위협에서 벗어난 일 가주였지만, 지금 그는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후후후.”

정작 싸움을 끝낼 기회를 놓친 유현이 그를 바라보며 웃음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르륵.

“뭐냐.”

이마에서 흐르는 한줄기의 땀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유현을 노려보는 일 가주.

“음?”

“그 웃음, 그 기분 나쁜 미소는 무슨 뜻이냔 말이다.”

“아? 이거? 별건 아냐.”

여전히 입가에 진한 미소를 그리며, 유현은 일 가주를 향해 대답했다.

“그냥 남이 웃으면 나도 따라 웃는 버릇이 있어서 말이야.”

“···뭐?”

유현의 말에 일 가주는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부하들은 싸움의 여파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만한 고수에게 이 정도 거리는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 누가 웃고 있단 말이냐.”

그들 중 웃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싸움.

과장도, 비유도 아닌, 정말로 눈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싸움 앞에서 대체 어느 누가 웃을 수 있단 말인가.

두려움과 경외, 공포와 선망.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 채 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지만, 그중 단 하나도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의 시선은 없었다.

“네놈은 대체 누굴 보고 웃고 있다고 말한 거냔 말이다!”

“아직도 모르겠냐?”

일 가주의 호령에도 유현은 여전히 흔들림 없는 미소를 지은 채 스윽, 손가락을 들어 그 미소를 띤 자를 가리켰다.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그 사내.

“당신, 지금 웃고 있다고.”

일 가주를 향해서.

“···뭐라?”

유현의 말에 일 가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가로 손을 가져갔다가 알아차렸다.

···올라갔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올라간 적 없던 입꼬리가 분명히 올라가 있었다.

자각하지도 못한 사이, 그는 정말로 웃고 있었던 것이다.

“네놈···대체 내게 무슨 짓을···?”

입가의 미소를 지우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유현을 향해 일 가주가 질문을 던졌다.

그의 그런 모습에 유현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나는 아무 짓도 한 적 없어.”

“거짓말하지 마라! 그렇다면 내가 대체 왜, 대체 왜···.”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 있다는 말이냐!’

“기쁘니까 그렇지.”

채 완성도 되지 않은 일 가주의 질문에 바로 대답을 날리는 유현.

그리고 당사자인 일 가주는 그의 대답에 충격을 받은 듯, 툭,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내가, 내가 기쁘다고?”

“당신, 단 한 번도 당신과 비슷한 고수를 만난 적 없지?”

움찔.

유현의 질문에 일 가주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유현의 말은 사실이었다.

압도적인 재능과 가문의 전폭적인 지지로 이미 젊은 시절부터 천산 내 제일의 고수가 된 그에게 적은 없었다.

더 높은 경지를 갈구하던 그때 등장한 ‘그분’도 그를 가르치기만 할 뿐, 한 번도 제대로 싸워본 적은 없었다.

천산의 내전 당시 자신의 앞을 막았던 이들과 싸움에서도 애를 먹었던 기억은 없다.

자신과 똑같이 그분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삼 가주와 칠 가주도 자신에 비하면 한, 두수 손색이 있었다.

지금껏 자신과 동등한 존재는 만나본 적 없던 일 가주.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이 사내는.

“당신은 그저 한 번 전력으로 싸워보고 싶었을 뿐이잖아? 패배도, 승리도 알 수 없는 그런 싸움을.”

분명, 자신이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던 대등한 상대.

“그래서 웃고 있는 거잖아. 이 싸움이, 자신이 전력을 다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뻐서.”

···사실인가?

내가 진정으로 갈구하고 있던 건 더 강한 무공이 아니라 원 없이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었나?

참을 수 없는 혼백의 허기는 더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게 아니라, 호적수와의 싸움으로만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었나?

자신이 지금껏 옳다고 믿었던 것과, 눈앞에 벌어진 현실의 충돌.

둘 중 무엇이 정답인지 일 가주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 감정이 대체 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미소가 사라진 입가를 손바닥으로 가리고 있던 일 가주는 그 순간 생각했다.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다면, 차라리.

“한 번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보겠다.”

그 말과 함께 손을 치운 입가에는 아까보다도 더욱 진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어느 누구의 강요도 없이, 오직 자신만의 감정대로 싸워보겠다 마음먹은 사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하하하! 좋아, 좋아!”

일 가주의 그런 변화에 가장 기뻐하는 건 물론 유현이었다.

누군가의 명령으로 인한 싸움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의지로 싸우는 걸 유현 또한 바라고 있었으니까.

“자, 와라!”

“간···!”

우뚝!

유현의 말에 화답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던 일 가주.

하지만 그의 행동이 현실로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한 발을 뻗는 그 모습 그대로 갑자기 모든 움직임을 멈춘 일 가주.

처음에는 무슨 특이한 무공을 사용하려 하는 건가, 하고 대책을 준비하던 유현도 정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전투 태세를 풀고 그를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하다.

“어이? 뭐야, 대체 뭘···.”

[어리석구나.]

오싹!

갑자기 전장에 울려 퍼지는 누군가의 목소리와 그것을 듣는 순간 몸에 우수수 올라오는 소름.

또다.

또 그 목소리다.

옥천의 몸을 지배했던, 그리고 자신을 이곳으로 불렀던 그 목소리.

[네 감정대로, 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겠다 하였느냐?]

하지만 이 목소리가 향한 방향은 유현 쪽이 아니었다.

[다른 놈들에 비해 그래도 덜 우둔하다 생각했거늘, 그저 내 착각이었나 보군.]

“시, 시, 신이시여···.”

그 목소리에 일 가주의 전신에서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새끼줄로 전신이 묶인 듯, 목 아래부터는 움찔거리는 것조차 할 수 없는 공포보다도, 아무런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그의 목소리가 더욱더 두려웠다.

“제, 제발 용서를···.”

[아, 마지막까지 이토록 어리석다니.]

콰득!

“끄어어.”

보이지 않는 새끼줄이 턱 아래까지 올라왔다.

[너는 그저 내 인형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몰랐느냐? 아무런 감정도, 생각도, 이상도 품지 않은 채, 그저 내가 말하는 대로 따를 뿐인 인형.]

“읍, 읍, 읍.”

그리고 그것이 코 아래까지 올라왔다.

[너는 주인의 뜻과 다르게 움직이는 인형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아느냐?]

“으, 으스를···.”

[간단하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새끼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감싸진 일 가주.

그런 그의 귓가에 속삭이듯, 그것의 목소리가 아련히 울려 퍼졌다.

[산산이 조각내서 버리는 것이지.]

< 천산의 일 가주(3) > 끝

ⓒ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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