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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74화 (174/185)

< 라우렌의 이름으로(3) >

그놈이다.

그놈이 아니라면 절대 그리 불릴 리가 없다.

눈앞의 사내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부터 이미 그것을 직감. 아니, 확신했다.

그만한 자가 아니라면 절대 신이라 불리며 숭배받을 대상이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확했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내 희망 사항이기도 했다.

그놈보다 더욱 강한 자가, 더욱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런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처음에는 당연히 누구도 믿지 않았어.”

긴 시간 침묵하며 공포와 절망을 겨우 죽여낸 사내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신이라 칭한다? 미친놈도 그런 미친놈이 없었지. 더군다나 우리는 엄청난 현실주의자였거든. 신 같은 건 단 한 번도 믿어본 적 없었으니까.”

“···본인들은 산 아래에서 악마라고 불리면서?”

“이봐, 우리가 아래에서 어떻게 불리고 있는지 어떻게 알았겠어? 산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는데.”

어깨를 으쓱거리는 사내를 바라보며 화순은 피식, 입가에 웃음을 그렸다.

[모순적이구만. 본인들은 신화 속의 괴물 취급인데, 정작 그 당사자들은 자신을 현실주의자라 칭하다니.]

···이들의 조상도 본인들이 악마라 불리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았나 보지.

자기 자식한테 본인의 좋지 않은 과거를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던가.

뭐···그게 신화 속의 악마로까지 확장되는 경우는 거의, 아니, 절대로 없겠지만.

“···하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그의 위용을 본 뒤에는 믿을 수밖에 없었지. 끝이 없는 내공과 우리의 무공은 어린아이 장난처럼 보이게 만드는 독특하고도 고절한 무공.”

거기까지 말하고 대답을 잠시 멈춘 그는 놈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악의까지. 그것은 이미 존재만으로도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지.”

“그래서 그를 따른 거야?”

“따라? 말도 안 되는 소리.”

피식, 입가에 미소를 그린 그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가 대체 어떻게 놈의 내공이 그만큼 크고, 무공이 대단하다는 걸 알았겠어?”

“···싸웠구나.”

“어마어마하게 싸웠지. 특히 네 어머니를 포함한 여러 가주가 가장 앞에 서서 싸웠지. 정말 대단한 전쟁이었어.”

“···하지만 졌고?”

“그것도 처참하게 패배했지. 가주 대부분이 죽거나 도망쳤고, 남은 이들은 놈의 아래에 고개를 숙이며 들어갔지. 가주라는 구심점을 잃은 가문의 사람들은 강제로 그의 휘하에 흡수당할 수밖에 없었고 말이야.”

패배를 이야기하는 것 치곤 담담한 듯했지만, 그 안에 숨은 감정을 읽어내지 못할 정도로 어수룩하진 않았다.

절망과 공포, 그리고 그 이면의 분노.

그것을 상기시키는 건 고통밖에 되지 않으리라는 걸 깨닫고 다른 쪽으로 질문을 돌렸다.

“가주 중 몇이나 그쪽으로 넘어간 거야?”

“네가 임지에서 쓰러뜨린 칠 가주와 삼 가주. 그리고 일 가주, 이렇게 세 사람이 넘어갔고, 남은 일곱은 놈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거나, 어떻게든 살아서 도망쳤지. 너희 어머니는···후자였고.”

“그래.”

그의 전언에 어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서 중원으로 넘어왔는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갑자기 나타난 침략자에게 패배한 뒤, 자신의 고향 천산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슬픈 과거와 안전한 곳에 도착한 뒤에도 평안을 맛보지 못했을 그 심정을.

“···그래.”

내가 말을 미처 꺼내지 못하는 동안, 그는 그것을 이해하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잠깐 동안 이어진 침묵 뒤, 그는 슬픔과 안도, 두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나를 향해 다시 말을 걸었다.

“네가 여기 있다는 건, 그녀도 어떻게든 사막을 건너갔단 말이겠지?”

“응. 거기서 좋은 분을 만나 가정도 이루셨지. 나를 낳고 얼마 뒤에 돌아가시긴 하셨지만.”

“이미 놈과의 전투에서 자신의 선천지기까지 사용했었으니까. 그때까지 살아있었다는 것부터가 기적이지. 아이를 낳았다는 건, 누구도 상상 못 할 일이었고.”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머니의 몸은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뛰어난 의원이 치료해도 도저히 나을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그런 상황에서, 본인의 생명을 깎아가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했다.

나는 그렇게 어머니의 희생 속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너희는 날 어떻게 알아봤지?”

“음?”

“차라리 어머니가 너희에게 전언이라도 보냈다면 내 존재를 미리 알았을지 모르지만, 네 말을 들어보면 어머니의 생존조차 몰랐다는 눈치인데, 내가 어머니의 자식이라는 건 대체 어떻게 안 거야?”

물론 어머니와 자식인 만큼, 나는 많은 부분에서 어머니를 닮았다.

특히 눈동자는 아버지도 쏙 빼닮았다 할 정도로 어머니와 닮긴 했지만, 겨우 그걸로 내가 어머니의 아들이란 확신을 품고 말을 걸 정도냐고 묻는다면···역시 그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곤 이들은 내가 이 도시에 들어온 직후,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내게 접촉해왔다.

나에 대한 정보가 없는 이상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거? 확실히 네 말마따나 쉬운 일은 아니었지. 하지만 어렵다 와 불가능하다. 이 둘은 분명 다른 말이지.”

“불가능한 게 아니라, 어려울 뿐이라고?”

“뭐, 물론 네가 이해하긴 힘들었을 거야. 가장 먼저, 우리는 네가 올 장소를 특정했지.”

“어떻게?”

나도 무모하게 수도만 보고 일직선으로 달려온 건 절대 아니었다.

일부러 옆에 있는 도시로 빙 돌았던 적도 있고, 한 번 갔던 도시로 되돌아갔던 적도 있으며, 어떨 때는 하루에 세 도시씩 넘어가기도 했고, 한 도시에서 일주일간 지내던 적도 있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파악조차 하는 것도 어려울 만큼 완벽하게 대처해왔다 생각했는데, 이들은 그런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나를 찾아낸 것이다.

“위치를 속이려고 여기까지 오는 길을 일부러 꼰 건 확실히 유효했어. 실제로 우리는 너랑 훨씬 전에 접촉하려고 했지만, 수도 바로 앞에 와서야 만난 것만 봐도 그렇지.”

“···너희를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말이야.”

“알고 있어. 넌 그때 우리에 대해선 전혀 몰랐을 테니까.”

툭툭.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 두 개의 손가락을 폈다.

“하지만 너는 숨길 수 없는 정보를 두 개 남겨놨지. 처음은 숨으려고 했던 천산의 무인들을 억지로 찾아내 죽였다는 거고, 두 번째는 아무리 길을 꼬아도 도착지는 수도였다는 점이야.”

“그건···그렇지.”

실제로 내가 도시에 도착하면 침략을 멈추고 어딘가로 숨는 놈들도 있긴 했다.

물론 그런 놈들도 일부러 싹 찾아내 죽였다. 어차피 내가 떠나면 놈들은 다시 침략을 시작할 그런 벌레들이었으니까.

“그럼 답은 간단하지. 수도로 들어오는 길목 전체에 우리 사람들을 깔아놓는 거야.”

“···뭐? 진짜로 그 짓을 벌였다고?”

정보 요원에게 있어선 꿈같은 이야기다.

적이 있는 곳마다 모두 정보 요원이 자리하고 있고, 그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여, 중요한 순간에 모두 터뜨리며 진실을 말해주는 것.

모든 정보 요원들이 바라는 이야기지만, 세상에 그런 정보부는 없다.

항상 박봉에, 가용 가능한 인원을 최대한 줄이고, 임무 중에도 자신들이 쓴다며 마구 요원을 차출해간다.

그것이 상식인 정보전에서, 지금 그가 말한 건 도저히 이뤄질 수 없는 꿈이었다.

···그런데 그걸 정보부도 아닌 다른 사람이 벌일 줄이야.

“표정이 별로인데···괜찮아?”

“아니, 그냥 세상의 불합리함을 조금 느꼈다고 해야 하나···계속 설명해줘.”

하지만 이걸 말해봐야 나만 미친놈 되기 딱 좋지.

손을 흔들며 녀석의 다음 말을 요청하자, 이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까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뭐···어쨌든, 그렇게 네가 도착할 곳을 찾은 뒤에는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 본인들은 어떻게든 숨긴다고 하지만, 결국 토번 인과 한인은 분명 다르거든. 수만의 토번 사람 사이에서 한 명의 중원 사람을 찾는 거, 그것도 못 할 정도로 무능하진 않거든.”

“···좋아, 나를 찾은 방법에 대해선 이제 알겠어. 그럼 남은 건, 그런 짓까지 벌여서 나를 찾은 이유가 대체 뭐야?”

“지금 이야기의 흐름으로 대충 알아내지 않았나?”

끼긱.

그가 의자를 끌어당기며 좀 더 앞으로 다가오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복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복수?”

“그래,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도 그 때문 아니었나? 어머니가 남겨놓은 증거를 통해 토번까지 넘어온 것 아니냐고.”

말끝을 의문을 띄우긴 했지만, 말투 자체는 확신에 가까웠다.

그는 진심으로 내가 오직 어머니의 복수라는 일념 하나로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하긴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지금까지 그가 얻은 정보로 해답을 찾으려면, 그것 말곤 방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아니.”

그는 틀렸다.

“어머니는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숨겼어. 나는 물론이거니와 아버지께도 딱 한 번, 자신의 고향을 언급했을 뿐이지. 심지어 그 뒤에도 다시는 꺼내지 않으셨고.”

“뭐? 그럼 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데?”

“내가 있는 위치와 내가 갈 방향은 알았지만, 그 외에는 얻은 정보가 없나 보네.”

챙!

그의 말에 대답 대신 등에 있던 창을 꺼내, 그의 눈앞에 내민다.

진양의 뜨거운 열기에 살짝 이마를 찌푸린 그였지만, 그 이마가 다시 풀어지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건···!”

그것은 경악.

있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자, 경외와 놀라움에 얼굴 근육을 팽팽하게 당겨졌기 때문이다.

지금, 내 창끝에 어린 강력한 회전.

뚫어져라 와류를 응시하던 그가 천천히 나를 향해 시선을 옮기며 떨리는 물었다.

“너, 권능의 현 보유자였던 거냐?”

“신은 안 믿지만, 그래도 설화 정도는 있나 보네? 이걸 알아보는 걸 보니 말이야.”

그가 권능을 알아보기 전엔 옥천의 몸을 빼앗은 그놈이 다른 놈들에게 알려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다.

“아니···그걸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 물론 나도 그중 하나고.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 증거를 보여주면 믿을 수밖에 없지.”

“좋아, 그럼 내가 여기 왜 왔는지도 알겠지.”

와류를 다시 거둔 후, 창을 다시 등에 멘 나는 그를 향해 말했다.

“운명. 그리고 권능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지. 이곳에서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며 말이야.”

*****

“일단 이쪽에서 쉬도록 해. 다른 놈들도 여기선 널 못 찾을 거야.”

딸그랑. 책상 위로 독특한 모양의 열쇠를 내민 그는 턱으로 그것을 가리키며 가져가라는 몸짓을 취했다.

“안가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야. 음식은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건과와 육포가 있긴 한데···전설대로라면 넌 그런 거 필요 없지?”

“뭐, 있어서 나쁠 건 없지.”

“좋아, 그럼 식당은 여길 나가서 바로 오른쪽에 있어. 숙소는 왼쪽에 있고. 몸을 씻는 건 좀 참아줘. 마실 물을 공급하는 것도 힘들거든.”

“상관없어. 더러워질 일이 없는 몸이니까.”

“그거 잘 됐군. 전설 속 권능보다 현실의 권능이 더 좋은 것 같은데?”

끼익.

거기까지 말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우리가 방금 들어왔던 바닥의 비밀 문을 다시 열었다.

거길 통해 우리를 찾아온 이가 없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던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일단 그 신···아니, 개자식은 지금 수도에도 없어.”

[신에서 개자식이라, 아주 그냥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그의 말에 깔깔 웃으며 구르는 화순을 뒤로 한 채, 나는 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지금 수도를 침공하는 건 누구야?”

“일 가주. 우리 중 가장 강한 사람이면서···제일 먼저 우리를 배신하고 그 자식에게 붙은 놈이지.”

“흠···그렇구만.”

“네 어머니를 몰락시킨 건 분명 그 개자식이지만, 실질적으로 죽인 건 일 가주야. 그 녀석과 싸우느라 네 어머니가 선천지기까지 끌어 쓰도록 만들었거든. 뭐, 어찌 됐든 네가 죽일 놈 중 하나라는 거지.”

이미 내가 그놈의 휘하에 있는 천산의 무인은 모조리 쓸어버릴 거라 확신했는지, 그는 너무나 당연한 일을 말하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뭐, 그의 말대로 어차피 다 처리할 생각인 건 사실이었지만.

“놈은 텅 빈 천산에 처박혀서 가만히 있을 뿐이야. 뭘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그놈에게 다가갈 수 있는 건 세 명의 가주뿐인데 한 놈은 전쟁 중이고, 한 놈은 너한테 죽고, 다른 한 놈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불명이거든. 뭔가 비밀 임무를 받고 간 것 같긴 한데···.”

“비밀 임무···아니, 잠깐.”

그의 말에 나는 내가 중원에서 겨뤘던 이들 중 칠 가주와 비슷한 경지, 비슷한 무공을 사용하던 이를 떠올렸다.

화산파의 일을 끝마친 내 앞에 나타난 그 사내.

권능에 대해 유달리 격정적으로 반응했던 그가 혹시···삼 가주가 아니었을까?

“혹시 그 삼 가주라는 인간, 이렇게 생겼냐?”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의 인상착의에 관해 설명하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답했다.

“허어, 이미 삼 가주도 처리한 거야?”

“어렵진 않았어. 하도 미쳐있어서 자기 무공도 기억 못 하는 것 같았거든.”

“좋아, 그럼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군. 그것만 처리하면, 네가 천산의 그···개자식을 찾아가는 걸 막을 사람은 없을 거야.”

“그거 괜찮네.”

“일 가주에 관한 정보는 얻는 순간 바로 공유해주지.”

비밀 문 안으로 들어간 그가 웃으며 손을 흔들더니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조용히 사라졌다.

“도시를 오가느라 고생 많았을 텐데, 며칠간은 푹 쉬어두라고. 곧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될 테니까.”

또 다른 전쟁이라.

나 말곤 아무도 남지 않은 안가의 밖으로 나서며 그의 말을 천천히 곱씹으며, 앉아있던 의자에 몸을 맡겼다.

< 라우렌의 이름으로(3) > 끝

ⓒ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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