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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73화 (173/185)

< 라우렌의 이름으로(2) >

그의 발언에 아까보다 살기는 줄였지만, 그래도 팔의 불파는 풀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그를 포함해 옷가게에 있는 서른 가량의 사람들 모두 나를 향해 딱히 적대감이라 할만한 감정은 품고 있지 않은 건 확실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을 완전히 신용하는 건 아니었다.

[···야, 서른이 아닌 것 같은데?]

응?

조금 전 놈들의 습격에 밖을 정찰한다고 나갔던 화순이 돌아오자마자 인상을 쓴 채 말했다.

[지금 가게 밖에도 이들과 비슷한 기운을 풍기는 사람들이 많아. 다 합치면 최소한···백은 되겠는데?]

···진짜? 백 명이 넘는다고?

[다들 가만히 있는 건 아니고 움직이고 있긴 한데, 대부분 가게 근처를 뱅글뱅글 돌고만 있어.]

화순의 설명을 마음속에 품은 채 그를 돌아보고 질문했다.

“너희는 누구지? 그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고?”

“의외로군. 이런 질문보단 주먹부터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지금 안 그러려고 노력 중이거든? 그러니까 빨리 말해. 당신은, 그리고 이 가게랑···그 근처에 돌고 있는 놈들까지. 대체 정체가 뭐야?”

“···밖에 있는 이들에 대해선 말한 적 없는데, 그들까지 알아차렸나?”

“내가 보기보다 기감이 좋아서 말이야. 그것보다, 지금 두 번째 물어본다. 당신들은 누구야? 그리고 왜 날 찾아왔지?”

살기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세를 뿜어내며 다시 한번 그를 향해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내가 뿜어낸 기세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그는 곧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놀라운 기세로군. 역시나 그 라우렌의 아들다운···.”

“대답.”

“크흠, 그래. 미안하군, 정말로 그녀의 자식이 나오니 흥분해서 말이야. 대답을 포함한 대화는···먼저 자리부터 옮기고 계속하지.”

밖으로 나가자는 말인가? 내가 그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뒤꿈치로 바닥을 두어 번 두드렸다.

스르륵.

그러자 소리도 없이 열리는 바닥의 문.

빗금이나 흔적조차 존재하지 않아 알아차리지 못한 비밀의 문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밖에서 우리 쪽 사람이 정찰하고 있긴 하지만, 만약을 위해서 이쪽으로 가지.”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이쪽으로 나를 몰아넣은 건가?”

“몰아넣었다기보단, 그러길 바랐던 것에 가깝지.”

그 대답과 함께 비밀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뒤를 따랐다.

끼익, 쿵!

저벅저벅, 쿵쿵, 끼이익~

위쪽의 문이 닫히고, 그 뒤로 수많은 사람의 발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원하던 목적을 달성하였으니, 더는 옷가게에 있을 필요가 없다, 이런 이야기인가.

[나는 위쪽으로 올라가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좀 보고 올게. 가능하면 우리 위치도 확인하고.]

좋아, 부탁할게.

내 부탁에 고개를 끄덕인 화순이 천장을 뚫고 하늘로 날아올라 가는 사이, 먼저 길 안에 들었던 사내의 목소리가 앞쪽에서부터 들려왔다.

“자네가 이쪽으로 들어오리라는 건 사실 도박에 가까웠어. 자네의 감각이 얼마나 민감한지도 알 수 없었고, 설사 그렇더라도 적대적인 시선을 보낸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죽이려 들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를 완전 괴물 취급하는 것 같은 건 착각인가?”

“어쩔 수 없지.”

나를 안내하던 그는 가시가 가득한 내 발언에도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이미 자네가 여기까지 오면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이미 유명하거든. 칠 가주와 그의 심복을 단숨에 쳐 죽이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마주친 이들 역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였으니, 걱정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니 주먹부터 날아올까 봐 걱정했느니 뭐니 말이 나왔던 거구만.

하지만 그 안에서 놓칠 수 없는 말도 함께 나왔다.

그쪽에 자리하지 않는 한 절대로 알 수 없는 그런 정보를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가볍게 꺼내는 사내.

“아무나 모르는 그런 정보를 그렇게 내뱉는 걸 보면···역시 너희도 그쪽 인간인가?”

“일단은.”

숨길 수 없는 실수를 짚어내 말했다, 라고 생각했건만, 그는 생각보다 더 담담하게 내 말에 대답했다.

그것도 부정이 아니라, 긍정의 대답을.

“다만 조금 방향성은 다르지만 말이야.”

“방향성이 다르다고?”

“길어질 것 같은 이야기는 도착하고 나면 하도록 하지.”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여러 가지 의문이 떠올랐지만, 방금 그의 말을 듣고 이런 상황에서는 입을 열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하고선 입을 다물었다.

[이거 꽤 깊은데. 지상 위로 올라가는 것도 좀 걸려.]

그리고 그사이,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온다던 화순이 돌아왔다.

밖의 상황은 좀 어때?

[일단 원래 있던 인간들은 전부 흩어졌어. 기억해두고 있었던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살펴보니까 전부 없어졌더라고.]

목적은 달성했다, 이건가? 그럼 혹시 우리가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진 알아냈어?

[사람 수가 많아지고, 건물의 규모도 점점 커지는 걸 봐선 외곽보단 중심부로 향하는 것 같긴 한데, 도시의 지리를 모르다 보니 정확하게 파악하진 못했어.]

그렇단 말이지.

일단 그의 뒤를 따르긴 했지만, 아직 그를 완전히 믿는 건 아니었다.

어머니의 이름과 쉬이 알 수 없는 정보를 꺼내긴 했지만, 그걸로 아군이라 확신하는 건 무모한 짓.

만약을 위해서라도 탈출할 곳과 그 방법을 구상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 없는 사이에 뭔가 중요한 이야기라도 나눴어?]

딱히. 도착하면 마저 이야기하자고 하더라고.

그래? 화순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앞으로 날아가 그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다시 내 쪽으로 날아왔다.

[딱히 거짓말하는 눈치는 아닌데···이 인간들, 대체 정체가 뭘까?]

글쎄다.

스스로 대답하고 나서도 참 기가 막힌 대답이라고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한창 침공당하고 있는 수도와 이 도시의 거리를 생각하면, 사실상 적진이나 다를 바 없는 곳에서 수상한 사람의 뒤를 쫄랑쫄랑 쫓아다니고 있다니.

시장에서 엄마를 잃은 아이가 당과를 주는 친절한 아저씨를 따라가는 것 이상으로 조심성이 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느꼈다.

만약 지금 기회를 잃으면, 평생 진실에 닿지 못할 거란 그런 직감.

그걸 믿고 나는 지금 그걸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 말을 할 거면 지금 쓰고 있는 불파부터 취소하지 그래?]

취소할 것 같냐. 만약이라는 건 항상 대비해야지.

화순과 그런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앞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다 왔네.”

그의 말에 시선을 앞으로 돌리자, 그가 천장에서 내리쬐는 빛을 맞으면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곳으로 나가면 우리 가문에서만 사용하는 안가(安家) 나오지.”

“안가?”

“그래. 이 집에 대해선 그들에게도 말한 적 없으니, 원하는 만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먼저 위로 올라가는 그의 뒤를 따라 그곳으로 올라갔다.

우리 위에 있던 것은 다름 아닌 하나의 커다란 방이었다.

아까의 옷가게와 크기 자체는 비슷했지만, 옷이다 뭐다 해서 좁게만 느껴졌던 가게와 달리 방 안에 있는 건 조금 큰 책상 하나와 의자 몇 개 뿐이기에 이 방이 더욱 넓게 보였다.

그중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은 그는 그 맞은편에 있던 의자를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편하게 앉아. 원하면 다과를 내놓을 수도 있는데, 어때?”

“딱히 필요 없어. 지금은 차랑 과자보단 정보에 목이 마르거든.”

“하긴.”

내 말에 픽, 웃음을 지은 사내는 끼익, 책상 앞으로 몸을 끌어당긴 뒤 책상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올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그쪽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아까 말 못 했던 진실을 말해주는 건가?”

“자네가 원하고,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내가 질문을 던져도 걸러야 할 대답은 거른다, 이 말인가.

그래도 예상보다도 더 좋은 대답이다. 독단적으로 정보만 던져준 채 사라질 거라는 예상과 달리, 최소한 내가 원하는 질문에 대답해주겠다는 소리니까.

그의 제안에 가장 먼저 궁금했던 질문, 아까 옷가게에 있을 적부터 묻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라우렌···내 친모와는 무슨 관계지?”

“주인과 부하의 관계···일 뻔했지.”

“···일 뻔했다?”

“네 어머니가 자기 자리를 박차고 벗어나기 전만 해도 그렇단 말이야.”

“어머니가 대체 어떤 자리에 있었던 거지? 어머니는 대체 뭘 버리고 갔다는 거야?”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거냐?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거냐?”

“당연히 몰라서 묻는 거지! 내가 첫 질문부터 농담이나 던지게 생겼냐?!”

쿵! 주먹으로 앞에 있는 책상을 두드리며 소리치자, 그제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나 보군. ···하긴, 그 여자는 그런 성격이었지.”

내 대답에 사내는 오히려 과거를 회상하듯 아려한 표정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아까의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온 그가 입을 열었을 땐.

“그녀는 천산의 열 개 가문 중 아홉 번째 가문의 가주···가 될 사람이었으니 말이야.”

“가주?”

“그래, 네가 임지에서 죽였던 칠 가주처럼 말이야.”

그가 아니라 내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

“전대 가주의 무남독녀로 태어난 그녀가 가주가 되는 건 기정사실이었지.”

내 일그러진 얼굴에 무슨 착각을 한 건지는 몰라도, 바로 후속 설명을 해주겠다며 입을 연 그는 어머니의 과거를 입에 올렸다.

“무공의 수준이 낮기는커녕 가문은 물론이고 천산 내에서 세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무조건 들어갔고, 내부에서의 지지도 공고했어. 전대 가주가 하도 잘한 것도 있지만, 그녀도 그에 못지않은 재능이 있었거든. 정치와 거래에선 이미 전대 가주인 아버지의 능력을 뛰어넘었다는 이야기까지 들렸으니까.”

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어색했다.

내가 아는 어머니는 무공 한 줄 모르고, 집 안에서 아버지를 내조하는 데 전력을 다하시던 그런 분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그의 말이 거짓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여장부 어머니를 상상하자니,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녀도 가주 자리를 얻는 걸 그리 나쁘게만 생각하진 않았어. 물론 밖에 나돌아다니는 걸 더 좋아하긴 했지만, 가문의 층계(層階)를 위로 올리는 데에도 관심이 있었거든.”

“층계? 그건 뭐야?”

“천산의 열 가문의 순위는 딱 정해진 게 아니거든. 가주의 무공이 특출나거나, 엄청난 공을 세웠거나, 대단한 업적을 이뤄내면 가문 또한 승계할 수 있거든. 우리 가문 같은 경우에는 열 가문 중 아홉 번째인 거지.”

“그런데···대체 왜 중원까지 넘어오게 된 거야? 그리고 왜 무공은 모두 잃은 거고?”

가주 자리에 올랐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주 자리를 떼놓은 당상 취급받을 정도였다면 어머니의 무공이 절대 낮은 건 아닐 터였다.

하지만 중원으로 넘어온 어머니는 대부분의 무공을 잃고, 삼류 이하 수준밖에 안 되는 내공만 겨우 남아있었고, 그걸로도 모자라 아직 젊은 나이에 병에 걸려 목숨을 잃으실 정도로 육신 또한 많이 쇠락한 상태였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내 질문에 그의 표정이 티 나게 어두워지더니, 곧 깊은 한숨과 함께 대답이 튀어나왔다.

“모든 건 삼십 년 전···놈이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지.”

“놈? 놈이 대체 누구···.”

오싹!

그의 말에 궁금했던 부분을 되물으려던 순간, 등골을 스쳐 지나가는 오싹함에 입을 다물었다.

알아차렸다.

그가 꺼내는 대답을 채 듣기도 전에 몸이 먼저 그것의 정체를 짐작하고 위험 신호를 보내왔다.

그런 내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사내는 하던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그것’은 본인 스스로를 신이라 말했지. 진심을 말하자면, 그걸 부정하진 않아. 그놈은 정말 신이 아니라면 보여줄 수 없는 위용을 보여줬으니까. 하지만 만약 그것을 정말 신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그는 마지막 말을 꺼내기 전, 잠깐 눈을 감고 숨을 돌렸다.

마치 그 말을 꺼내기 위해 힘을 충전하듯,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침묵하던 그가 겨우 다시 입을 열었을 때.

“사신, 혹은 악신이라고 불러야겠지.”

거기에 담긴 공포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 라우렌의 이름으로(2) > 끝

ⓒ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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