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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67화 (167/185)

토번의 첫 도시, 임지(3)

“모두 잠깐, 잠깐 집중해주시길 바랍니다!”

내게 말을 꺼낸 뒤 상석으로 다시 올라간 돈둡 성주는 자기 자리에서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연회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소란스러워진 장내는 평범한 인간의 가성으로는 도저히 잠재울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었지만, 지금 돈둡 성주의 것은 달랐다.

연회장 전체에 울려 퍼진 돈둡 성주의 목소리에 모두 입을 다물고, 손에 쥐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 그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모두 연회는 즐기고들 계시오이까?”

“네!”

“물론입니다!”

“위대한 돈둡 성주님의 자비 덕에 근심, 걱정 없이 즐기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거 참으로 다행이로구려!”

하하하! 모두의 웃음소리가 연회장 안을 가득 채웠다.

대체 어떻게 무공을 익힌 적 없는 범인인 돈둡 성주가 오직 본인의 목소리만으로 연회장의 소란을 잠재웠는가, 그런 당연한 의문을 품는 이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술에 취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이 연회 자체의 분위기에 취한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 덕에 돈둡 성주의 연설은 멈춤 없이 계속해서 진행될 수 있었다.

“허나!”

쿵!

웃음으로 가득하던 연회장은 돈둡 성주의 맥을 끊는 한 마디에 다시 한번 침묵에 잠겼다.

단호하면서도 힘찬 그 목소리는 웬만한 고수들조차 감히 반박할 수 없는 그런 힘이 담겨 있었다.

그가 무공을 소유하고 있다는 나의 의심이 사실로, 그것도 여기 있는 대부분의 전사나 무인을 아득히 상회하는 수준이라는 것이 분명해진 순간이었다.

“이토록 즐거운 연회이건만, 이 돈둡은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오. 좀 더 큰 즐거움을, 커다란 흥이 필요하다고, 이 돈둡은 생각하오이다! ”

잠깐 숨을 고르듯 말을 멈춘 돈둡은 곧 좌중을 천천히 좌에서 우로 살피며 물었다.

“연회를 즐기고 있는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동감합니다!”

“돈둡 성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연회에는 흥이 없으면 안 되는 법이오, 흥은 곧 무를 통해 부르는 것이 제일이라는 우리 선조의 말씀을 모두가 기억하고 계실 것이오!”

척!

그 말과 동시에 돈둡은 나를 가리켰다.

그로 인해 순식간에 나에게로 향하는 사람들의 눈동자. 연회장 안을 가득 채운 인파의 집중된 시선에 보통 사람이라면 흔들릴지 모르나, 내겐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갈첸 장군의 은인이자, 그 교류가 막힌 지 백 년이 넘는 한족의 나라에서 온 무인께서 우리의 흥을 위해 손수 나서주신다고 하였소! 모두 그분을 위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시길 바라오!”

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

저 사람, 천상 호객꾼이구만.

본래의 성격이 그런 건지, 아니면 저 무공을 얻으며 생긴 성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 한마디, 한 마디로 사람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능력은 수준급이었다.

만약 그 능력이 나를 해하려 하는 데 사용하는 것만 아니라면, 나도 좀 더 편하게 웃으며 즐길 수 있겠지만.

“그리고 그러한 귀빈의 뜻을 받아들여, 본 성주는 우리의 성에서도 최고의 고수와 비무를 준비하였소이다! 부디 연회에 모인 모두 즐겨주시길 바라오!”

와아아!

휘이익!

돈둡 성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들려오는 환호와 휘파람 소리.

그리고.

쿵!

이 자리에서 오직 나만 느낄 수 있는 소리와 울림.

자기의 힘을 어떻게든 숨겨보려 했던 돈둡 성주의 노력이 용했다고 생각할 만큼, 자기의 힘을 전혀 숨길 생각도 없어 보이는 사내가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아무런 기세도 내놓지 않을 땐 돈둡 성주의 시종 중 하나처럼 보였지만, 기세를 내보이기 시작하자 거기에 나타난 건 인간이라 믿을 수 없는 기세를 내보이는 괴물.

지금껏 용케도 돈둡 성주의 뒤에서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 생각할 만큼 맹렬한 기세를 내뿜으며, 그는 연회장의 중심, 임시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나를 노리고 있다는 걸 전혀 숨길 생각도 없이 살기를 뿜어내며 나를 노려보는 상대.

그를 당당히 마주하며, 나 역시 두 자루의 창을 꼬나쥔 채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그럼 지금부터 비무를 시작하겠소이다! 부디 각자 최선을 다해 훌륭한 비무를 보여주시길 바라오!”

와아아!

비무대 위에 배우 두 사람이 모두 오르자, 아래에서는 커다란 환호 소리로 무대의 흥을 돋워 주었다.

그리고 눈앞에 그를 마주하는 순간, 확실히 깨달았다.

챙!

저놈은 여기서 나를 죽일 생각이라는 사실을.

중원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신월도(新月刀) 두 자루를 양손에 하나씩 쥔 그가 자세를 잡자, 아까보다 앞으로 나설 때보다 더욱 흉흉한 기세가 풍기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그냥 바로 일격에 쓰러뜨리고 싶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잠깐 접어야 할 때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외지고, 나는 초대받은 손님에 지나지 않는다.

갈첸 장군의 은인이라는 이유로 지금 이 자리에 있긴 하지만, 그것이 성주의 부하를 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최소한 놈이 내게 살심을 품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 정도로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지금 그를 해하는 건 최대한 자제해야 했다.

하지만 그걸 달리 말하자면.

“그럼, 시작!”

휘익!

그가 나를 확실히 죽이려 할 때는, 뭐든 해도 된다는 소리지.

돈둡 성주가 팔을 들어 비무의 시작을 알리자마자 그는 앞으로 도약했다.

휘릭, 휘리릭!

거대한 연회장의 절반을 쓰고 있는 비무였지만, 그가 발해내는 속도에 그 정도 거리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마치 활에서 갓 쏘아낸 살처럼 내게로 날아온 그는 바로 곡도 두 자루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아니, 차라리 정말로 마구잡이의 공격이었다면 어떻게 피하거나 막기라도 하겠건만, 그 공격에는 그걸로는 설명할 수 없는 완벽한 무리(武吏)가 존재했다.

뒤로 피하면 옆이 베이고, 옆으로 피하면 앞이 베이며, 앞으로 피하면 확실히 숨통을 끊을 약점을 보이게 된다.

상하좌우를 넘어 앞과 뒤까지 막아내는 독특한 공격.

만약 내가 한 번도 상대해본 적 없다면, 분명 엄청난 낭패를 당했으리라.

쿵!

“흡?!”

하지만 그에게는 불행하게도, 나는 이미 이 공격을 여러 번 경험했다.

초승달의 빛처럼 내 옆구리와 목으로 치켜들어오던 두 자루의 신월도가 창에 막히자, 놈이 순간 멈칫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설마 저 사막 건너의 무인이 자신의 공격을 막으리라, 생각한 적 없는 거냐?

그 미천한 경험과 그로 인한 망발.

퍽!

고통으로 갚아라.

“커헉!”

훤히 드러난 복부에 발끝이 찔러 들어오자, 놈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몇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섰다.

“오오오!”

“히야! 저런 몸놀림이라니!”

“사막 너머의 한족은 무를 예로써 숭상하는 일도 있다더니, 그 말이 거짓이 아니로군!”

화려하기 그지없던 놈의 공격이 나의 부드러운 몸놀림에 막히자, 주변에 있던 관객들이 감탄하며 한 마디씩 던졌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반격이지만, 그 안에는 수준 높은 무의 묘리가 여럿 섞여 있다.

상대의 흐름을 강제로 끊어 공격 기회를 만들고, 적이 반격의 생각조차 품을 수 없을 만큼 확실히 고통을 주면서도, 다시 몸을 일으킬 수 없는 정도로 심한 상흔은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곧바로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한번 공격을 날리는 놈.

이번에는 전의 공격처럼 허점을 보이지 않겠다는 듯, 상대적으로 속도를 줄이고 초식과 초식 사이의 틈을 최대한 줄이는 식으로 왔지만.

챙!

“으윽?!”

여전히 그래 봤자다.

아무리 초식과 초식 사이가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서로 다른 두 초식을 하나로 만든다는 건 불가능.

결국 제대로 대처할 방법을 모른다면.

꾸욱!

“끅!”

또 한 번 맞을 뿐이지.

이번에는 엄지발가락으로 발등을 지그시 누른다.

겉으로 봤을 땐 아무것도 아닌 공격처럼 보일 수 있지만, 발은 전신이 다 들어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부위다.

전신을 관통하는 충격에 잠깐 멈춘 놈을 향해 손을 뻗어 툭, 가볍게 건드린다.

그러자 휘청거리며 다시 한번 몇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나는 놈.

그러고도 발등의 통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놈은 몸을 숙인 채 방금 내가 눌렀던 발을 부여잡고 있었다.

···이놈 이거, 완전 맹탕이구만.

중원에서 상대했던 그놈들이라면 이런 반격을 예상하여 여러 수를 준비해뒀겠지만, 이놈은 그런 것도 없었다.

그 차이는 압도적으로 부족한 강자와의 실전 경험.

지금껏 이 두 가지 기술만으로도 웬만한 놈들은 다 쓰러뜨리다 보니, 빈틈을 노려졌을 때의 대응책이 부족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내게 편해지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이놈을 상대하는 게 무척 쉬워졌다는 것이요, 두 번째는.

“후욱, 후욱, 후욱!”

통증이 가시고,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린 놈의 호흡은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

나를 향한 격렬한 증오와 분노. 그리고 겨우 이 정도 공격에 흐트러진 자기혐오가 섞인 숨소리.

자신의 힘을, 무공을 맹신하던 놈에게 있어 지금 두 번의 공격과 거기에 이어진 간단한 반격으로 인한 패배는 감당하기 힘든 굴욕일 터.

이렇게 되어버린 놈은 금방 이성을 잃고 달려들기 쉽고, 이성을 잃은 공격이 지금처럼 ‘그냥 심하게 다치는 수준’으로만 끝날 가능성은 더욱 나지.

···내가 아까 바랬던 ‘진짜 공격’이 나올 가능성이 대폭 상승했다는 소리다.

“크아아아!!!”

그리고 생각뿐만이 아니라는 걸 진심으로 보여줄 생각인 듯, 짐승과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기세를 폭발시켰다.

“어엇?”

“우리 성에 이만한 고수가 있었단 말인가?!”

“저, 저거, 뭔 일 아는 거 아냐?”

그 심상치 않은 기세에 조금 전만 해도 환호를 내지르던 관객 중에서도 무공을 익히거나 기에 민감한 이들의 표정이 돌변했다.

쿠구구궁!

급조한 비무대를 넘어 연회장 전체를 들썩이게 만드는 기세.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안색이 파리해질 정도로 폭력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놈은 네발 짐승과 같은 기세로 내게 달려들었다.

아까처럼 회피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 공격이나, 초식과 초식 사이를 줄이는 ‘지성적인’ 형식의 공격은 절대 아니다.

오직 눈앞의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지 하나로만 이루어진 일격.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오히려 그렇기에 전의 두 번의 공격보다 피하거나 막기가 쉽지 않다.

지금 놈은 조금 전과 같은 수준의 반격으로는 멈출 리 없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맹수에게 통증은 이미 뒷순위.

자신이 당한 굴욕을 해소하는 것만이 그의 최우선 과제였으니까.

하지만.

[기회가 왔네.]

놈이 나를 죽일 기세로 공격을 뻗는다는 사실은, 달리 말하자면 나도 그만한 공격을 날릴 수 있다는 의미다.

막는 용도로만 사용했던 창을 이번에는 공격 용도로.

키이잉!

이번에는 확실히 놈을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의 공격으로.

천마창법 오의.

와류.

확실히 짐승은 인간보다 강하다.

허나, 그러한 짐승도 자연 앞에서는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으니.

방어도, 회피도, 반격도 전혀 생각지 않고 달려드는 짐승을 향해, 거대한 자연의 힘이 맞부딪히려는 그 순간!

쿵!

“허허허, 이런, 이런.”

여기에 모인 누구도 예상치 못한 r,의 등장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친 짐승과 광대한 대자연이 부딪히려는 근 순간. 그 짐승을 막은 건 다름 아닌.

“흥을 돋워 주겠다고 하다 손님을 해하다니, 이걸 한족의 말로는 주객전도라···한다고 했던가요?”

그 짐승의 주인, 돈둡 성주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손님을 두고 즐겁게 해드리진 못할망정, 이런 무례만 보이다니.”

마치 날뛰는 개를 제압하듯, 발바닥으로 나를 향해 날아오던 놈의 목을 지그시 누르고 있는 돈둡 성주의 눈은 아까 전처럼 전혀 웃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정 반대.

“주인 된 자로서 이자는 철저히 벌하도록 하겠습니다.”

혀로는 자신의 아래에 있는 그를 향해 화를 내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본심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아뇨, 무인에게 자존심이 없다면 어찌 무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허허, 이해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뽑은 창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다시 거두는 것도 내 무인의 자존심에는 분명 해가 가는 일이겠지요. 그러니.”

챙!

아직 미처 다 사라지지 않은 와류가 깃든 창끝을, 내 앞에 선 돈둡 성주를 향해 가리켰다.

“부디, 부하를 대신하여 한 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예상보다 훨씬 큰놈이 미끼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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