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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65화 (165/185)

토번의 첫 도시, 임지(1)

예정에 없던 인원 하나가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사막 횡단의 위험도가 높아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어차피 이제는 보름 내에 도착할만한 거리에 제국이 있다는 것도 확실시됐거니와, 두 사람이 삼 주간 먹을 음식, 달리 말하자면 세 사람이 이 주간 먹을 식량도 있었으니 말이다.

일단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식사가 그리 필요치 않은 나는 식량 섭취를 최소화하고 있었지만, 현재 식량 사정과 속도를 생각하면 딱히 필요찮은 걱정이었다.

식량이 줄어드는 속도가 빨라진 대신, 일행이 움직이는 속도 역시 빨라진 덕이었다.

토번의 장군이 합류하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가야 할 길, 즉, 그가 지금까지 왔던 길을 그가 안내한 덕분이었다.

몇십 년 전 지도로 지리를 파악하던 우리와 달리, 그는 지금 그가 겪었던 길을, 그 중 최단 길을 찾아서 우리를 이끌어 준 덕분이었다.

덕분에 원래 힘겹게 넘었어야 할 언덕도, 목숨을 걸어야 했을지 몰랐던 사구(沙口)도 모두 피하며, 큰 어려움 없이 사막을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허어···.”

“흐음···.”

“·········.”

사막을 건넌 우리를 제일 먼저 맞이한 건 토번 제국의 도시 중 하나. 임지(林芝; 린즈 지구)의 광경은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원래의 모습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벽돌만 남은 건물들 사이로 뼈대만 겨우 남은 건물들이 골목 아닌 골목을 이루고, 그곳에는 피로와 고통, 그리고 미약한 분노를 담은 사람들이 돌기둥이나 돌무더기. 혹은 누군가의 뼈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우리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그 참혹한 광경에 나와 곡산은 겨우 침음성만 흘리고, 토번의 장군 또한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슬픔과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는 걸 겨우 참아냈다.

십 오 년 넘게 마교에 몸을 담으며 온갖 끔찍한 광경을 봐왔다 자부하는 나도 이런 도시 규모의 폐허는 본 적 없었다.

[왜 그놈들을 악마라 부르는지 알겠네.]

그나마 우리 중 가장 객관적으로 도시를 살펴보던 화순이 이마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말했다.

[마교가 제일 미쳐 돌아갈 때도 점령지를 이따위로 두지는 않았어. 그건 당시 중원을 지배하고 있던 국가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자신들이 중원을 점령하면, 정파 대신 그곳을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지.]

그의 말대로 실제로 어느 국가든 전쟁을 일으킬 때 그 땅의 백성까지 죽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언젠가 자신이 지배할 땅의 도시와 백성을 죽이고 무너뜨리는 건 쉬울지 몰라도, 재건할 때는 무너뜨렸던 때의 수배. 아니, 수십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도시에 소속된 병사나, 더 심하면 사내 전부를 죽인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죽이는 동시에 모든 건물까지 다 부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놈들은 그런 것도 없어. 모든 걸 부수려는 생각밖에 없다고.]

오직 자신들의 파괴와 살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듯한 모습.

토번의 장군 말대로 악마라 부르기 부족함이 없었다.

“혹시 한 달 전에도···이 정도였습니까?”

“···아니요. 한 달 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악마들의 침공을 받고 있을지언정, 아직은 괜찮다, 그렇게 모두 판단하고 있었죠.”

그렇다면 지금 이 끔찍한 광경이 겨우 한 달 만에 다 벌어졌다, 이 말인가.

···젠장.

[만약 네가 놈들을 막지 않았다면, 중원도 이렇게 됐으려나.]

만약 그놈들이 이 짓을 벌인 악마들이랑 같은 곳에 속해 있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중원에 암약하고 있던 놈들 또한 지금 이놈들처럼 자신들에겐 어떠한 이득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파, 마도, 황실 가리지 않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다치고, 죽게 만드는 데에만 전력을 다했다.

무림에선 옥천이 천마의 자리에 오르며 행해진 대규모 숙청과 정파가 타락하며 청부 살인이 일어났고.

관에서는 황제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황태자의 몰락. 그 뒤로 이어진 내전과 직후에 벌어진 북해와의 전쟁까지 벌어졌다.

직접 나서지 않았을 뿐, 내가 회귀하기 전 중원에서 일어났던 모든 크고 작은 일에 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하고 있었다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다가 화산파에서 결전을 벌였던 놈이 내 어머니를 아는 눈치였던 걸 보면, 최소한 어떤 식으로도 연관이 있다는 건 사실일 터.

···일단 중요한 건 정보다, 정보.

거기에 속한 놈 몇을 죽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정체에 대해 파악하고 있느냐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아니, 그걸 넘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내가 놈들을 쓰러뜨린 건 죽고 사느냐의 전장이었고, 거기서 놈들의 본거지에 대한 정보를 캐내는 건 불가능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렇긴 하지만···.

“···일단 성으로 가시죠. 만약 성주께서 살아계신다면 휴식을 취하는 한편 정확한 사정을 좀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어두운 표정으로 주변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토번의 장군이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향해 말했다.

이런 끔찍한 상황 앞에서도 어떻게든 미소를 지어보려는 그의 의지를 어찌 모르겠는가.

“장군의 초대,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의 의지를 높이 사서라도, 그리고 또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부정적인 대답을 꺼내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으음?”

“이거···이상하군.”

성주가 거주하고 있는 도시의 중앙으로 향하는 도중, 점점 바뀌는 주변의 광경에 우리 세 사람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던 외곽과 달리, 도시의 내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무너진 건물의 숫자도 급격히 줄어들고, 주민들의 안색이나 외견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싶더니.

“여기는 청해의 성도보다 더 잘 먹고 사는 것 같은데요?”

곡산이 말한 대로, 우리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은 우리가 처음 도시에 진입해 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오 층 이상의 고층 건물과 열 칸 이상의 고급 건물들이 빼곡하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 역시 행복과 기쁨이 가득했다.

어디 그뿐만이랴.

사방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는 그 부유한 청해에서도 쉬이 맞을 수 없는 향신료의 향기가 가득하고, 시장에는 각종 식료품이 산처럼 쌓여 있으며 물건을 사고파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게 정말···아까 그곳이랑 같은 도시가 맞나?]

화순의 의문이 전혀 이상치 않을 정도로

물론 중앙으로 올라오는 시간이 짧다곤 할 수 없다. 낙타를 타고도 한 시진 하고도 반만큼 시간이 들었으니, 적어도 백 리(40km가량)의 거리 차이가 있겠지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가까운 곳은 아닐지라도, 같은 도시 안에서 아귀도(餓鬼道)가 펼쳐지고 있는데, 지금 여기선 이렇게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옆에 있던 장군에게 의문을 던지려던 그 순간.

“이, 이, 이!”

발갛게 물든 얼굴과 분노 섞인 신음. 그리고 머리까지 올라간 눈썹 끝까지.

···지금 이 사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구만.

“이 무슨···!”

“잠깐.”

그가 분노 가득한 호령을 일갈하려던 순간의 맥을 잡아 손을 뻗었다.

아무렇게나 막았다면 내가 막아도 바로 고함을 내질렀겠지만, 완벽한 순간에 뻗어진 손은 그의 분노조차 한순간 가라앉게 만들 정도였다.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그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어떤 심정인지는 알지만, 지금 여기서 소란을 일으키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외곽과 중앙의 격차는 이 도시를 관리하는 성주에게 전후 사정을 듣고 파악합시다. 만약 그 대답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면, 그때 분노해도 늦지 않으니 말입니다.”

내 말에 그의 안색이 천천히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그가 분노를 완전히 가라앉힌 거냐고? 그럴 리가.

지금 이 광경을 앞에 두고 그럴 리도 없거니와, 나도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어디까지나 진짜 폭발할 순간을 잘 구분하라는 것뿐.

지금 이들에게 고함을 내질러봐야 이 사태를 호전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짜 고함을 내질러야 하는 건 도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성주.

지금 이런 상태로 강제한 방치한 이유가 조금이라도 정당치 않았을 때, 그때 분노하라는 의미였다.

내 말을 이해한 토번의 장군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정면만 바라본 채 앞으로 향했다.

그가 이 화려한 도시의 광경에 눈을 주는 일은 그때 이후로 전혀 없었다.

*****

그리고 약 반 시진 후.

“앗!”

지금까지 봤던 임지의 다른 건물들과 비교해도 확연히 눈에 띄는 고급스러운 건물이 우리 눈에 들어온 바로 그때, 그 앞에 서 있던 문지기 중 하나가 목소리를 높이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갈첸 장군님! 갈첸 장군님 아닙니까?!”

“자네는···?”

“갈첸 장군님이 사막으로 향할 때, 마지막으로 배웅했던 병사 중 하나입니다!”

“아···그래, 기억나는군. 마지막으로 내게 짐을 낙타의 고삐를 건넸던 병사였지.”

“아아아! 기억해주고 계셨군요!”

문지기로 일하고 있던 병사는 갈첸(웃긴 이야기지만, 우리가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듣게 된 순간이었다) 장군을 향해 감격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정작 그 말을 듣는 그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병사의 얼굴 전체에 좔좔 흐르고 있는 개기름.

하루 세 번의 끼니 중 두 끼 이상은 고기를 처먹어야 생길 듯한 그 외견은 지금의 갈첸 장군에게 분노 외에는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성주는 지금 안에 있는가?”

“아, 네. 지금 연회장에 계십니다.”

“···연회장?”

“네, 이번에 악마들의 침공을 막아냈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한 연회의 개최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침공을 막아내? 연회를 개최한다고?!”

병사의 설명에 그의 꽉 쥔 손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저 앞의 참상과, 그와 반대되는 평안을 보고 왔던 그에게 병사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그의 뜨거운 분노에 붙은 심지에 불을 붙이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성주를···만나봐야겠다. 지금 안에 알려줄 수 있나?”

“알겠습니다. 바로 안에 전갈을 넣겠습니다.”

갈첸 장군과 이야기를 나누던 병사는 계급이 꽤 높은 병사였는지, 함께 문지기를 서고 있던 다른 병사를 손짓으로 부르더니 방금 그가 말했던 이야기를 안에 전하게 했다.

그리고 잠시 뒤.

“갈첸 장군! 어서 오시오!”

뒤로 수많은 시종과 시녀. 그리고 슬쩍 봐도 수준이 높은 병사들 여럿과 함께 나오는 휘황찬란한 옷을 입은 중년의 사내.

누가 말을 꺼내기도 전부터 이미 그가 이 도시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언어 외의 모든 것을 통해 알려주고 있었다.

“안녕하시오, 돈둡 성주”

“사막을 건너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나 보오? 몰골이 아주 말이 아니군! 한족의 땅에 도움을 청하는 일은 어떻게 되었소이까?”

“···모래 폭풍을 직격으로 맞고 실패하고 말았소이다. 부하도, 식량도 모두 잃고 말았지. 이 두 분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오.”

“호오, 그랬구려. 고생 많았소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혹시···?”

“성주의 예상대로, 이 두 분은 한족이외다. 사막을 넘어 이 땅을 건너오던 와중에 저를 발견하여 구해주셨소이다.”

“오오! 설마 내 평생 사막 너머에서 넘어온 한족을 보게 될 줄이야! 반갑소이다, 난 이 성을 다스리는 돈둡이라고 하오!”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우리에게 다가오는 돈둡 성주에게서는 아주 독특한 향기가 느껴졌다.

부유한 인간 특유의 사향 냄새와 지금까지 맡아본 것 중 가장 독한 분 냄새.

그리고.

“곡산, 항곡산이라고 합니다.”

“유현이라고 불러주십시오.”

“곡산! 유현! 만나서 반갑구려! 하하하! 오늘 밤, 우리가 악마를 쫓아낸 기념으로 연회를 열 생각인데, 부디 두 분도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시면 고맙겠소이다. 가능하면 그, 한족의 나라 이야기도 해주시면 고마울 것 같구려!”

껄껄껄! 우리의 대답을 다 듣지도 않고 큰 소리로 웃으며 다시 성안으로 들어가는 돈둡 성주.

그런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던 화순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도 느꼈냐?]

응, 당연히 느꼈지.

사향과 분으로 어떻게든 숨겨보려 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한낱 후각의 혼란 따위로 감출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지금껏 내가 여러 번 대적해왔던 놈들의 그 기운.

이곳에서는 이른바, 악마라 불리우는 그들의 기운과 똑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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