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을 향해서(2)
“지금까지 고생했네. 돌아가는 길에도 조심히 돌아가게.”
짤랑. 그 말과 함께 곡산이 아기 주먹만 한 비단 주머니를 일꾼들의 개수에 맞춰 내밀었다.
그것을 본 순간 일꾼의 표정에 화색이 맴돌았다. 지금까지 길을 떠났던 일꾼 중 가장 커다란 주머니. 그 안에는 은자가 가득했다.
“감사합니다, 단장님!”
“식량은 정확하게 나눴나?”
“예! 두 분이 다섯 주일은 드실 양만큼 챙겨놨습니다! 부디 서역에 안전히 도착하시길 바랍니다!”
“응원 고맙네. 모두 조심히 돌아가게나.”
모래와 땀으로 가득하지만, 그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서로를 떠나보내는 두 일행.
그 중 당연히 곡산과 같은 방향으로 떠나는 나는 질문을 던졌다.
“저거 네 책 판 돈 아냐? 떠나는 애들한테 그걸 다 준거야? 아깝진 않고?”
“아까울 게 뭐 있습니까. 어차피 중원 아니면 쓸 일도 없고, 지금까지 고생한 사람들한테 주는 거죠.”
“···역시 너, 장사꾼 체질은 아니야.”
“저도 압니다.”
이럇! 삐친 듯 딱 한 마디 툭 내뱉고 바로 앞으로 달려나가는 곡산을 향해 웃음 지으며 따라간다.
···이 대화를 나눈 것도 어언 보름이 지났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대화였다.
이것저것 일꾼의 조율이 필요했던 전과 달리, 곡산이나 나나 계획서는 달달 외울 정도로 읽었던 덕분에 서로 대화 한마디 없이도 손발이 딱딱 맞았기 때문이다.
대신 대화가 줄어든 만큼 움직이는 속도는 훨씬 빨라졌다.
일꾼들이 타던 보통 낙타와 달리, 우리의 낙타는 이 개월간 쉬지 않고 움직일 걸 생각해서 청해에서도 명품이라는 소리를 듣는 낙타로만 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에 말했던 만큼 천마 수준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일꾼들과 속도를 맞출 필요 없이 혼자 달릴 때의 속도는 감탄스러웠다.
그날도 햇볕이 가장 뜨거워지는 정오가 되기 전, 한 치라도 더 나아가기 위해 달려나가던 때였다.
벌써 오십일 넘게 지켜본 사막의 광경은 언제나 와 다를 게 없었다.
오직 모래로만 이루어진 낮은 언덕과 옛날에는 푸르렀을, 하지만 지금은 모두 말라붙은 풀. 그리고 우리가 가는 길 중앙에 쓰러져 있는 사람까지.
언제나 보던 사막의 광경···아니.
“앞에 사람이 있잖아! 멈춰!”
“이럇!”
피히힝!
갑자기 끌린 고삐에 낙타가 비명을 내지르고, 멈춰진 발끝에서 자욱한 모래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흙먼지가 가라앉은 그곳에.
“물···물을···제발······.”
한 사내가 쓰러진 채, 최후의 단말마를 내뱉고 있었다.
*****
꿀꺽, 꿀꺽, 꿀꺽.
햐, 참, 그놈. 잘 마시네.
벌써 세 개의 가죽 부대에 담긴 물을 해치운 사내는 네 번째 가죽 부대의 물도 아까와 똑같은 속도로 먹어치우고 있었다.
···흐음.
그가 물을 마시는 사이, 나와 곡산은 그의 외견과 옷차림을 파악하고 있었다.
중원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옷차림과 장신구. 그리고 햇볕 아래에서 탄 게 아니라, 원래 그랬던 것처럼 진한 갈색의 피부까지.
“아무래도 서역인 같지?”
“네, 서책에 있던 묘사와 똑같군요.”
설마 이리도 일찍 서역인을 만나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곡산도 그 사실에는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관찰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푸하!
네 번째 가죽 부대의 물을 모두 마신 사내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물이 잔뜩 묻은 입가를 거칠게 닦으며 우리를 바라봤다.
“고맙소! 당신들 덕분에 목숨을 건졌소!”
단 한 번도 남이 말하는 건 들어 본 적 없지만, 너무나 익숙한 그 언어.
우리의 예상대로 그는 서역의 언어를 사용하는 서역인이었다.
“1시간이라도 두 분이 나타나는 게 늦었다면 정말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맙습니다!”
“아뇨, 서로 돕고 살아야죠. 더군다나 이런 사막에서 만나는 게 쉬운 일도 아닌데요.”
1시간이라면···대충 반 시진인가?
곡산의 서책에서 있던 서역의 시간 단위를 떠올리며, 그를 조심스럽게 일으켰다.
그의 말대로 사막에 오랫동안 조난해있었는지, 그의 전신은 흙먼지로 가득했다.
옷은 물론 피부가 노출된 부분까지 어디 한 부분 모래가 뒤덮이지 않은 부분이 없다.
만약 내 안력이 이만큼 좋지 않았다면, 그를 그냥 지나쳤을 만큼 그는 모래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건 그렇고···.”
목마름이 해결되자 이제는 배가 고파온 것인지, 우리가 건넨 말린 과일과 육포를 정신없이 먹어치우고 있던 그가 내 말에 고개를 들어 올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 서역까진 한참 남은 거로 아는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경악 어린 눈동자로 내 입을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고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질문했다.
“저희 말을···할 줄 아시는 겁니까?”
“어느 정도는 익혀놨습니다.”
“오오오! 이 넓은 사막에서, 설마 서역의 말을 할 줄 아는 한인을 만나다니! 이것이야말로 신의 축복!”
···아니, 기도하지 말고 우리 말에 대답이나 해달라고.
신이시여, 신이시여 외치며 모래에 고개를 박는 그의 모습에 순간 욱해서 한 마디 내뱉어주고 싶었지만, 서역에서 종교를 얼마나 중하게 여기는지 내가 읽었던 모든 서책에 적혀 있었기에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종교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고, 종교 때문에 왕이 몰락하고, 종교 때문에 국가가 멸망하다니.
중원의 상식으로도, 내 상식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저들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캐내기 위해선 그것을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줘야 하니까.
다행히 기도 시간은 길지 않았다. 종교에 그리 심취하지 않은 사람인지, 아니면 그보다는 자기 식사에 집중하고 싶었던 건지는 몰라도 바로 기도를 끝내고 다시 말린 과일과 육포를 입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두 분께선 아까 제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질문하셨지요.”
식사를 끝낸 직후, 그는 휴식도 없이 아까 우리가 했던 질문을 되새기며 대답의 포문을 열었다.
“저는···사실 토번(吐蕃; 옛 티베트 왕조의 이름) 제국의 장군입니다.”
토번 제국!
그의 입에서 나온 그 이름에 우리 두 사람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토번 제국이라면···사막을 건너면 제일 먼저 만나는 국가 아냐?!]
그뿐만이 아니지.
어머니의 고향, 천산과 관련된 신화 또한 토번의 종교와 깊은 연관이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곳의 장군이라는 사람과 만나다니, 이건 확실히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군만큼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먼 곳까지 홀로 어쩐 일입니까?”
그의 대답을 전부 믿는 우행은 없다.
옷차림부터 외모, 거기에다가 말까지 모두 서역의 인물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그를 장군이라고 확신하는 건 실수.
오히려 제대로 된 수행원도 없이, 토번부터 낙타로도 보름은 넘게 걸리는 이곳까지 왔다는 게 더 말이 안 된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던 걸까. 그는 조금 어두워진 얼굴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려면, 제일 먼저 지금 토번 제국에 닥친 대재앙에 대해 말씀드려야겠군요.”
“대재앙?”
“두분께선 잘 모르시겠지만, 토번 제국에는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여러 신화가 있습니다. 신이 세상을 창조한 이야기부터, 어떻게 인간을 만들었고, 그들이 어떻게 신의 은혜로 살아왔는가···아주 긴 이야기가 있죠.”
그가 말해주지 않아도 다 알고 있었다. 천산이 신화에 나온다는 걸 안 뒤로는 토번과 관련된 신화란 신화는 모조리 찾아 읽었으니까.
“신을 믿는 이라면 대부분 믿고 있는 신화지만, 그중에서도 너무나 말도 안 돼서 믿지 못하는 이야기는 있는 법이죠.”
“신화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널려 있기 마련이죠.”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신이 악마를 만들었고, 그 악마는 신에게 도전했지만 패배한 뒤, 우리 토번 제국 가까이에 터전을 만들어 자신의 자식을 길러 언젠가 신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린다던가,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모두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죠. 아니.”
그의 안색이 눈에 띄게 딱딱하게 굳어지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이제는 모두가 믿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지만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악마가···그리고 그의 자식이 정말로 나타난 겁니다.”
미세하게 떨리는 전신, 방금 마신 물을 모조리 짜내듯 흐르는 식은땀. 그리고 파랗게 질린 안색까지.
그의 말이 모두 진실임을 표명하는 동시에, 그의 공포가 그대로 전해지는 모습이었다.
[이거···너희 어머니네 일족 이야기 맞지?]
어쩌면.
화순에게 대답은 그리했지만, 사실 확신에 가까웠다.
내가 찾았던 여러 신화 중에서도 악마가 나오는 부분은 극히 적었고, 그중에서도 신이 확실히 패배시키거나 봉인시키지 못하고, 어딘가로 도망치고, 거기에다가 자신의 후손을 만들어 복수하겠다 한 건 그들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들이 무슨 짓을 벌였습니까?”
“그들은 정말···지상에 강림한 악마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은 짓거리를 벌였습니다. 단 한 명의 인간이라도 더 죽일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했죠. 직접 죽이는 건 물론, 마약을 유출하여 도시 몇 개 규모의 백성을 모두 중독으로 만들기도 했고, 독이 담긴 식량을 퍼뜨려 수만의 백성을 한 번에 죽이기도 했습니다. 도시 하나를 한 달 넘게 타오르게 만든 적도 있죠.”
“어찌 그런 끔찍한 일을···!”
경악하는 곡산과 달리, 그 말을 듣고도 나는 그저 이마만 찌푸리고 있었다.
그들의 악행에 전혀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같은 말은 아니다. 그들의 악행은 분명 끔찍하고, 또 참혹했으니까.
문제는 딱 하나.
그들의 악행을 내가 전부 어디서 들어봤다는 사실이었다.
[놈들이 하는 짓이랑 똑같지?]
응, 확실히.
어떤 식으로든 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그 수단.
그것을 위해서라면 독과 마약이라면 얼마든지 사용하는 외도들.
한때 정파와 마도, 그리고 황실에까지 손을 뻗고 있던 그놈들이랑 방식이 완전히 똑같았다.
“그들로 인해 지금 토번 제국은 반 토막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도를 제외하곤 대부분 도시에서 큰 혼란이 일어났고, 그들을 토번 홀로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혹시 사막을 건너려 했던 이유도···.”
“네. 예상하신 대로 두 분의 조국, 한인들의 나라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다른 서역의 국가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 빠르지 않습니까? 왜 홀로 사막을···.”
곡산의 질문에 서역인은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물론 저 혼자만 그런 중한 임무를 맡은 건 아닙니다. 저희와 인접한 타국에도 도움 요청을 보냈고, 만약을 대비하여 두 분의 조국에도 저를 보낸 것이지요. 물론 부하들도 여럿 대동하고 나왔으나···갑작스러운 모래 폭풍으로 인해 부하와 식량을 모두 잃고, 여기서 죽을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래 폭풍이라···하긴.
아무리 잘 단련한 병사라도, 뛰어난 장군이라도 모래 폭풍 앞에선 한낱 방해물에 불과하다.
철저한 준비를 해왔다 하더라도 그걸 뛰어넘는 자연의 힘 앞에선 그 또한 무력했으리라.
“그렇다면 다시 명나라로 떠나는 건···역시 무리겠구려.”
“네. 사실 부하들과 함께 떠났던 것도 사실상 자살 임무에 가까웠지만···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지금 제국의 현황에는 불가능. 차라리 이 한 몸, 평생을 몸 바쳐 일했던 국가에 바치려 했건만···부하도 잃고, 황제께서 내린 명령도 실패한 채 결국 저 홀로 이렇게 살아버렸군요.”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던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의 태양을 가만히 응시했다.
“위대한 하늘의 신이시여. 저에게 어찌도 이리 힘든 시련만 내리시나이까.”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처량하고 힘없어, 누가 들으면 죽기 직전의 노인이 말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어쩔 수 없나.
아직 그를 십할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준 사람이다.
이대로 버리고 가는 것도 뒷맛이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니.
“일단 제 낙타에 타시지요.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일단 제국으로 돌아가시긴 해야죠.”
“저, 저와 함께 가신다는 말씀입니까? 하지만 식량이···.”
“그래도 어떻게 아끼고 먹으면 가능하겠죠. 저는 식량을 많이 먹지 않아도 되니 괜찮을 겁니다.”
사실, 지금 내 낙타 옆에 달아 놓은 식량 주머니는 방금 그에게 준 걸 제외하곤 처음 들어있던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애초부터 먹지 않아도 되는 몸이고, 더위도 단전 내의 빙정 덕에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 물을 많이 마실 필요도 없다.
혹시나 곡산이 음식을 잃어버리거나 할 걸 대비해서 남겨놓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 사내한테 주는 편이 낫겠지.
“아아···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분에게 위대한 하늘의 신의 축복이 내리길!”
내 말을 들은 사내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박고 기도하려 하자, 툭,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직은 신에게 기도할 때가 아닙니다. 다시 제국으로 돌아가고, 모든 일이 끝났을 때.”
그 존재는 아직 여전히 믿을 수 없었지만, 어쨌든.
“바로 그때가 신에게 기도할 시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