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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63화 (163/185)

서역을 향해서(1)

내가 언어와 지리. 그리고 천산과 관련된 신화의 지식을 습득하는 사이, 사막을 건너기 위한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사막을 건너며 사용할 물자와 그걸 끌고 갈 낙타. 그리고 사막을 함께 건널 일꾼까지.

모두 최상품에다가 대량으로 구매하느라 내가 준 돈을 대부분 사용하긴 했지만, 목숨이 걸린 일에 어찌 돈을 가지고 왈가왈부할까.

그리고 그렇게 물자 보급을 전부 마친 다음 날.

“뭐 남겨두고 가는 건 없지?”

“네, 서책은 이미 싹 다 팔아서 옥이나 금으로 싹 바꿨고, 집도 살 사람도 없어서 그냥 버리고 왔으니까요.”

“진짜 중원으로는 안 돌아올 생각인가 봐?”

내 질문에 처음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완전 훤칠한 청년이 된 곡산을 향해 묻자, 녀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그 뒤론 친척이나 부리던 사람들도 다 사라지고···어차피 저도 홀몸이니까요. 차라리 넓은 세상이나 구경하자, 이런 생각이죠.”

“집에 있던 책들은?”

“다 팔아넘겼죠. 책 자체는 희귀한데 사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제가 살 때만큼은 못 받았지만, 그래도 이번에 물자 구하면서 얼굴이 알려져서 그런가 그럭저럭 받긴 했어요. 저쪽에서도 쓸 수 있도록 싹 다 옥이랑 금으로 바꿨죠.”

“그럼 집도 팔아넘긴 거야?”

“그런 허름한 걸 누가 돈 주고 사가요. 그냥 버려놓고 왔죠. 아마 저희 떠나고 며칠 뒤엔 깡패들 소굴이나 되어있겠죠.”

오랫동안 살아왔던 집에 관해 이야기하는 녀석의 목소리에는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가득했다.

···뭐, 저런 집에서 좋은 기억이 있을 리는 만무하니 당연한가.

“그럼 준비는 다 끝났지?”

“네.”

자기 몫의 낙타에 올라타며 힘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녀석을 바라보며 나도 씩 웃으며 옆에 있던 낙타에 올라탔다.

드디어 떠날 시간이 됐다.

“그럼 모두 출발 준비!”

“네!”

“모두 꼭 살아서 돌아오자!”

“와아아아아!!!”

고용한 일꾼들의 힘찬 함성과 함께 백에 가까운 사람들과 그들이 탄 낙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엇이 존재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사막의 여정을 완수하기 위해서.

*****

“사막의 횡단에는 최소 두 달의 시간은 필요합니다.”

본인의 아버지에 이어 평생을 서역 연구에 바쳤던 곡산은 어떻게 사막을 횡단할 것이냐는 내 질문에 그 문장으로 말의 포문을 열었다.

“보통 사막 횡단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그걸 알고 최소한의 인원만 데리고 사막을 건너려고 하죠.”

“당연한 거 아닌가? 많이 데리고 가면 물자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잖아?”

횡단하는 동안 먹고 마실 식량도 어디서 뚝 떨어질 게 아니라 우리가 챙겨가야만 하고, 추운 사막의 밤에 입어야 할 옷도 챙겨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걸어갈 게 아니라면 타고 다닐 낙타도 다 먹여야 했으니, 가능한 최소한의 인원만 데리고 가는 게 상식이었다.

하지만 곡산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이 많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옮길 수 있는 물자 또한 많다는 사실을 간과한 거죠. 혼자서는 한 사람이 한 달 동안 먹고 마실 음식밖에 옮길 수 없지만, 수레 같은 걸 사용한다면 훨씬 많은 물자를 옮길 수 있죠.”

“그건 그렇지만···그만큼 소비되는 물자는? 그건 어쩌고?”

“물론 사람이 많으면 아무리 물자가 많아도 금방 떨어지겠죠. 하지만 숫자를 줄인다면?”

“···죽인다는 거냐?”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가 질문을 던지자 비명을 내지르며 부정하는 곡산.

“복귀시키는 거죠! 물자를 다 쓴 수레를 가지고 다시 중원으로 복귀시키는 겁니다. 약 일주일 간격으로 총 네 번. 한 달이 될 때까지 저희와 두 사람이 탈 낙타. 그리고 물자만 남기고 모조리 복귀시키는 겁니다. 물론 그 사람들에게도 ”

“···그거 괜찮나? 그렇게 해도 물자는 충분한 거야?”

“혼자 한 달의 물자를 옮기는 것보단 훨씬 여유가 있을 겁니다.”

곡산의 물자 계산은 그걸로 멈추지 않았다.

“이건 최근 구파일방에서 새롭게 개발했다는 최상급 벽곡단입니다. 다른 벽곡단에 비해 영양은 훨씬 많으면서 크기는 삼분지 이 정도밖에 안 되죠. 그리고 이 육포도···.”

최고의 물자를 구해왔다는 말이 그저 헛말이 아닐 정도로 녀석이 가져온 물자는 내가 한 마디 꺼낼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물건들뿐이었다.

소량으로도 최고의 효율을 보일 수 있는 식량과 몇 날 며칠을 쉬지 않고 달려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는 낙타. 그리고 마치 한몸처럼 완벽하게 움직이는 일꾼들까지.

큰돈을 건넨 내가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구해온 물자의 수준은 높았다.

“그리고 이건 제가 그동안 연구하고, 개발한 물건인데 벽곡단보다 보관도 쉽고 맛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 수레도 말이 아니라 낙타가 끌 수 있도록 개조했고요.”

그뿐만 아니라 세간에 없는 물건이나 좀 더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물건은 자신이 연구하고 개발한 물건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최소한 물자에 관련된 건 누구보다도 믿음직하다 할 수 있었다.

물론 곡산이 대비한 건 물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지도, 옛날에는 이 지도가 최선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닙니다.”

“흐음···확실히 이거, 비단길이 아직 현역일 때부터 사용한 지도였지?”

“그렇죠. 당시엔 아직 어느 정도 남아있던 수자원을 토대로 세워진 마을 같은 게 있었고, 그걸 통해 좀 더 안정적으로 횡단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죠.”

“확실히 지금은 마을이랑 국가도 전부 사라졌고, 지하수도 다 떨어졌으니까.”

“이 지도도 당시로썬 최단 길을 찾은 거지만, 지금 쓰기엔 확실히 돌아가는 부분이 없지 않죠. 그리고 이건 제가 수정한 지도입니다.”

곡산이 내보인 지도는 확실히 옛날부터 사용하던 지도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다.

당시 있던 마을이나 국가에 꼬박꼬박 들리던 옛 지도와 달리, 곡산이 직접 만든 지도에는 그런 것 없이 정말 최대한 빨리 사막을 횡단할 수 있는 길이었으니 말이다.

“대충 짧으면 일주일, 길면 열흘은 단축할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물자도 덜 가져가도 된다, 이건가?”

“그건 그렇지만, 일단 만약을 대비해서 물자는 조금 남도록 가져갈 겁니다. 사막의 모래 폭풍은 언제, 어느 사이 찾아올지 모르니까요.”

그의 호언장담 덕분일까, 아니면 철저한 준비 덕분일까.

보름 넘게 이어진 사막 횡단에도 우리는 큰 문제나 사건·사고 없이 여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

딱, 보름까지는.

“단장님! 단장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저 앞에서부터 달려오는 한 사내.

만약을 대비하여 곡산이 앞에 보내 둔 일꾼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

“저, 저 앞에서부터 커다란 모래 폭풍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모래 폭풍이라고? 으음···.”

일꾼의 대답에 걱정 어린 침음성을 흘리는 곡산과는 대조적으로, 뒤편의 일꾼들은 점점 소란이 커졌다.

“모래폭풍?!”

“사막의 모래 폭풍은 한 번 덮쳐지면 십 중 십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데···.”

“더 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되돌아가야 하는 거 아냐?”

조금씩 부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일꾼들의 목소리.

그래도 지금까지 사기가 높아 ‘맙소사 우리는 모두 다 죽을 거야!’ 같은 소란이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왜냐하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소란쯤이야.

“모두 조용!”

곡산의 호령 한 마디면 모두 침묵시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믿음직스러운 모습에 그만큼 믿고 따르는 사람이 많았던 덕분이었다.

일꾼들이 침묵한 걸 확인한 곡산은 낙타에서 내려 나에게 다가오더니 지도를 펼쳐 보였다.

“대협, 아무래도 길을 좀 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는 게 제일 빠르지?”

“으음···그게···.”

지도 위, 우리의 현재 위치에 손가락을 두고 있던 곡산은 뭔가를 계산하듯 지도 이곳저곳을 살펴보더니, 다시 나를 바라봤다.

“잠깐 확인해봤는데, 조금 크게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뒤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야?”

“네. 좌측에는 높은 사구(沙丘)가 있어서 올라가기 힘들고, 우측에는 옛날에 지하수가 많던 땅이라 구덩이가 많이 생겨서 위험합니다. 어느 쪽이건 사람들의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흐음···.”

내가 손을 내밀자 곡산은 곧바로 내게 지도를 내밀었다.

확실히 곡산이 말한 대로였다. 좌측에는 우리 둘만 있었다고 해도 넘기 힘든 높은 모래 언덕. 아니, 산이라 부름이 마땅한 것이 있었고, 우측에도 누군가 여기서 죽었다는 의미의 사(死)자가 가득 박혀 있었다.

어느 쪽이건 함부로 움직이는 건 위험하다.

설사 우리 두 사람이 움직이자고 일꾼들을 이끌어도, 어느 쪽으로 가는지 알면 분명히 반발이나 분노. 심하면 반란까지 일으킬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보름은 더 가야 할 일꾼들을 한 사람이라도 잃는 건 우리도 바라지 않았다.

“돌아가면 얼마쯤 걸리지?”

“짧게 잡아도 나흘은 걸릴 것 같습니다.”

“흐음, 그렇구만.”

짧게 잡아도 나흘이라면, 길게 잡으면 일주일은 될 수도 있다는 소리다.

물자야 일꾼들 사이에서도 자기 집에서보다 더 잘 먹고 지낸다, 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많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아낄 수 있을 때 아끼고 싶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최장 일주일이나 돌아가야 한다···.

···아니, 차라리 이런 식이라면.

“이봐.”

“아, 네, 전주님.”

곡산이 탐험단의 장이라 단장이라 불리는 것과는 달리, 나는 일꾼들 사이에서 전주라고 불리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곡산에게 돈을 투자해 준 전주(錢主)라는 소리다.

“자네가 본 모래 폭풍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되었나?”

“모래 폭풍 크기 말씀입니까?”

“그래, 저 옆에 언덕만큼 높았다던가, 아니면 그 정도는 아니지만 위험해 보였다, 그리 확실치 않은 수준이어도 되니 대략적으로만 설명해주게.”

평범한 폭풍이라면 그 규모를 두 눈으로 파악하기엔 쉽지 않지만, 모래 폭풍은 이야기가 다르다.

땅에서 끌어모은 모래로 인해 그 기세나 위험도는 보통 폭풍과 비교하면 훨씬 커지긴 할지라도, 그 규모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엄청나게 크진 않았습니다. 만약 옆에 언덕만 없었다면, 옆으로 조금만 피해도 피할 수 있을 정도입죠. 속도도 지금 뒤로 물러나면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고요.”

“···그래?”

뒤로 피하면 좋겠다, 라는 말을 길게 돌려서 대답하는 일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낙타의 옆에 메어놨던 두 자루의 창을 꺼내 들었다.

“그 정도란, 말이지?”

“전주님? 왜 무기를···?”

상황에 맞지 않게 창을 꺼내든 내 모습에 내게 대답해주던 일꾼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너 잠깐 나랑 다녀오자. 나는 맨몸으로 갈 테니 넌 낙타를 타고 가도 돼.”

“네? 아니, 잠깐만요, 전주님! 천천히 가주세요!”

다른 사람들의 속도를 생각해서 일부러 낙타를 타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면 급한 일은 혼자 뛰어가는 게 빠르다.

저 낙타가 지금쯤 집에서 쉬고 있을 천마 수준이면 모를까, 그 정도 낙타가 있는지도 모르고, 정말 있다고 해도 내가 준 자금으로는 다리 한쪽도 만들 수 없을 테니 애초부터 제외다.

툭.

앞에 있던 낮은 언덕을 오르자, 그가 말했던 모래 폭풍이 내 시야에도 들어왔다.

“흐음, 저 정도인가.”

“으아아···어, 얼른 도망치죠! 저런 크기라도 덮쳐지면 진짜 위험하다니까요!”

옆의 산보다 조금 낮은 정도인가. 모래의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세기가 약한 건진 몰라도 모래 폭풍의 규모와 크기는 작았다.

다만 그 작은 규모의 폭풍도 우리가 휩쓸리는 순간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물론.

챙!

그럴 생각은 하나도 없었지만.

“저, 전주님?”

“진짜 폭풍이랑 맞서보고 싶다, 라고 예전부터 생각은 해왔지.”

고오오!

“전주님?!”

“만약에 성공하면, 저기 가서 남들한테 자랑해라.”

내 전신과 창에서 피어오르는 기세를 느끼고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내지르는 일꾼을 향해 한 마디 내뱉은 후.

“실패하면, 어쩔 수 없지만.”

한 발 내디디며.

팔을.

창을.

기를.

“하아압!”

천마신공. 오의.

와류.

천마신공. 극의.

폭우.

그리고 그 두 가지의 합.

창에서 뿜어져 나온 폭풍우가 우리 모두를 집어삼킬 기세로 다가오던 모래 폭풍과 부딪힌다.

쾅!

쾅쾅쾅!

콰과과과광!!!

확실히 하나로는 모자라다.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한 사람이 뿜어낸 바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혹시나 했지만 열 개로도 모자라다. 살짝 기세를 늦추긴 했지만, 모래 폭풍은 여전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이라고 생각했지만 백 개로도 모자라다. 이리저리 깎여나가고, 아까보다 기세도 줄었지만 여전히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천 개라면.

“모, 모래 폭풍이···!”

부수고, 무너지고, 흐트러진다.

사막의 모래를 모두 품을 기세로 다가오던 모래 폭풍이 그 힘을 잃어간다.

그리고.

쾅!

마지막 한 방의 와류가 모래 폭풍을 꿰뚫는 순간.

파앗!

조금 전까지 우리를 향해 다가오던 모래 폭풍이 아스라이 사라진다.

“·········.”

“어이.”

“네, 넵!”

“청해로 돌아가면 객잔에서 공짜 술 좀 얻어먹어.”

눈앞의 광경에 입을 쩍 벌리고 침을 흘리고 있던 일꾼을 향해, 씩 웃으며 한 마디 내뱉었다.

“이 정도 이야기라면 누구라도 한 잔 사줄 테니 말이야.”

“아···네······네·········.”

사막 횡단 보름째.

서역에 도착하기까지 아직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던 날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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