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의 광인(3)
돈으로는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라는 옛말이 있다.
보통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데, 처음은 돈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요, 두 번째론 사람은 죽어서 귀신이 되더라도 돈을 탐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지금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었다.
“투, 투자라고? 내 서역행을 투자해준다, 이 말인가?
”그렇지.”
집안에 침입한 괴인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 집주인.
이런 불가해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에는 저 눈앞의 금자 주머니가 아주 많은 관계가 있었을 테니까.
오랫동안 멍한 눈으로 금자가 가득한 주머니와 나를 번갈아 보던 그가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투자···해준다는 건 고맙지만, 회수 가능할 진 확실치 않아. 아니, 불가능할 가능성이 더 커. 그래도 정말 투자해준다는···.”
“회수할 필요는 없어. 돈을 벌고자 했으면 위험하고 가능성도 별로 없는 서역행을 왜 고집하겠어?”
퉁.
벽면에 빼곡한 종이 중 사막에 관련된 내용이 적힌 부분을 손가락으로 두들기자,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하는 그의 시선.
“사막을 건너는 것 자체가 내 목적이지.”
“사막을···.”
꿀꺽.
“정말로 건널 속셈이란 말인가?”
“그래. 가능한가?”
내 말에 휙휙, 주변을 살피던 그는 바닥에 떨어진 금자 주머니를 누가 채갈세라 얼른 잡아 품 안에 집어넣더니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하지. 여긴 긴 이야기를 할 만한 곳이 아니니 말이야.”
“그쪽 말을 따르지.”
아닌 게 아니라 이 집은 누가 앉기는커녕 서서 움직이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으니,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려면 어디든 가야 했다.
집 밖으로 나온 그는 몇 걸음 걷더니, 곧 본인의 집만큼 허름한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객잔 안은···뭐, 예상대로였다.
개업하고 나서 청소는 한 번 했을까 싶은 불쾌한 냄새와 수북한 먼지는 그렇다 쳐도, 식사하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술만 먹는 손님들뿐이다.
대체 언제 적부터 앉아있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탁상과 혼연일체가 된 손님부터, 탁자가 좁아 보일 만큼 술병을 잔뜩 쌓아 놓은 손님.
그리고 네 개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나조차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중얼 내뱉고 있는 괴상한 사내까지.
딱 내가 상상하던 빈민가의 객잔 모습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여기요, 앉으시오.”
객잔의 모서리, 그나마 이 어두컴컴한 객잔을 유일하게 밝혀주고 있는 등잔불도 닿지 않는 곳으로 향한 그는 내 맞은 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라도 드시겠소?”
“아니, 별로 뭘 먹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설사 배가 비어 있더라고 해도 여기서 뭘 먹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심지어 내게 그런 제안을 한 그도 그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더니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아까의 그 말, 거짓은 아니겠지?”
“금자까지 한 주머니 던지면서 그런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비싼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어.”
“크, 크흠. 그건 그렇지. ···조금 질문이 늦긴 했지만, 물어보긴 물어봐야겠소.”
스윽. 그가 머리를 가까이 내밀고 내 눈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당신은 대체 누구요? 누구길래 그만한 돈을, 그런 소리를 하는 거요?”
“섬서의 유가장···이라고 하면 알아듣나?”
“섬서···아니, 설마!”
끼익!
내 대답을 들은 그는 경악에 가득 찬 목소리와 함께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그 동지가 설마···!”
“우리 아버님, 이시지.”
“그, 그랬구려. 그래서 그만한 자금을 이렇게 선뜻 내준 거였군.”
정리 안 한 수염을 쓰다듬고, 완전히 떡이 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대답하던 그는 번뜩, 고개를 들어 올리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혹시 유가장이 서역 출자 계획을 세운 거요? 이제 진짜 서역과의 교류가!”
“아니, 그건 아니야. 그저 나 한 사람만 가고 싶은 것뿐이지.”
“아, 그, 그렇소.”
털썩. 다시 힘이 빠진 듯 의자에 주저앉은 그는 역시나, 그럴 리 없지, 하고 뭔가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 눈앞의 남자가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그 사내, 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정리한 적 없는 수염과 머리에 반해 깔끔한 피부와 젊은 목소리. 그리고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근육까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하였다고 믿기엔 말이 안 되는 부분이 여럿 있었으나 말이다.
“···유가장은 서역과 관련된 일에서는 완전히 손을 뗐다고 들었는데, 설마 다시 시작하려는 거요?”
“아니, 그럴 계획은 여전히 없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이유로 찾아온 거지.”
“개인적인 이유?”
궁금하다는 듯 끝을 높이는 그에게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묻는다.
“혹시 서역의 천산에 관해 알고 있나?”
“서역의 지리···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천산이라는 곳에 관해선 들어본 적 없구려.”
“모르면 어쩔 수 없지.”
이만큼 서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도 모른다는 건가.
···실존하는 장소는 맞겠지?
대답은 가볍게 뱉었지만, 역시나 걱정이 생겨나는 건 멈출 수 없었다.
지금 서역 너머로 가려고 하는 것도 정체불명의 그 인간과 어머니의 한 마디 때문에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조금이라도 그게 답이다, 라는 확신이 생길 증거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게나 말이야.
화순도 그의 대답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탄식했다.
자신과 엮인 진실을 알기 위해 서역을 가고자 하는 건 화순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거기 가려고 사막을 건너고자 하는 거요?”
“일단은.”
첫 목적은 그것이지만, 거기서 또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몰랐으니 말이다.
아니, 반드시 무슨 일이 생기겠지.
그런 걸 바라고 가는 것도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었으니까.
내가 품고 있는 의문을, 화순이 품고 있는 의문을 모두 해소할 수 있는 확실한 대답.
그곳에서 그에 관해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떠나려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쪽은 왜 그렇게 서역에 목을 매지?”
“저 말입니까?”
천산에 관해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그것을 몇 번이나 되뇌고 있던 그는 내 질문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래. 이것저것 정보는 산처럼 쌓아 놓고 있지만, 그걸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 자금은 없어. 하지만 그걸 알고도 자료 조사와 연구는 멈추지 않는다···말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지?”
“그건···.”
내 말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말을 멈춘 그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서역에···가보고 싶었습니다.”
“그건 집안에 산처럼 쌓인 종이만 봐도 대충 알 수 있어. 내가 말하는 건 최소한 서역과 교류를 꿈꾸는 상인이라면, 자기 상단부터 어떻게 견실하게 운영할 줄 알아야···.”
“아뇨, 그게 아니라.”
“응?”
“그저 여행을···서역 전체를 돌아다녀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서역 전부를···?”
“서역이 사실 명나라 전체보다 훨씬 더 넓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그런 소문을 듣긴 했지만···그게 사실인가?”
“명나라의 한인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며 본인들의 땅을 중원(中原)이라 부르지만, 현실은 그와는 다르죠. 중원조차 좁다고 느낄 만큼 저 너머의 땅에는 무수히 많은 국가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죠.”
그렇게 말의 포문을 연 그의 눈빛은 전에 본 적 없을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이 어두컴컴한 식당에서 유일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렬한 광채는 순간 나도 움찔 몸을 떨 정도였으니 말이다.
“저는 그걸 제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제 능력으로는 꿈도 못 꿀 일이지만요.”
하지만 그 빛은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거기에 남은 건 절망.
현실의 벽에 막힌 이들이 흔히 짓는 표정을 지금 그도 짓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일은 하지도 않고 서역의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군. 어떻게든 떠나고 싶은 생각에 자금도 계속해서 줄였고. 하지만···.”
“···네. 여전히 제 능력으로 떠나기엔 한참 부족했죠.”
아까 그 내용을 읽어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초창기 연구에 비하면 최근의 연구는 필요한 자금을 절반까지 줄여내긴 했지만, 여전히 일반 양민이 낼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건 어디까지나 사막을 지나가기 위한 비용일 뿐, 서역에 도착하고 나서 사용할 자금은 또 마련해야 했으니···.
···지금처럼 무일푼에서 시작해봐야 최소 몇십 년. 아니, 어쩌면 자기 대엔 불가능하고 자신의 자식이나 그 자식에게 자신의 꿈을 미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내야 할 때의 이야기일 뿐.
“방금 그 돈이면 어떻지?”
“네, 네?”
“내가 방금 줬던 그 돈. 그 정도면 우리 둘 다 사막을 건널 수 있나?”
“어, 음, 물자를 어느 정도 구하는 건 가능하겠지만, 아직은 부족···.”
퉁.
품을 뒤적여 아까 그에게 건넸던 것과 똑같은 주머니를 하나 더 꺼낸다.
“이거면?”
“무, 물자는 전부 구할 수 있겠지만, 이대로 떠나는 건 여러모로 위험···.”
퉁.
“이거면?”
“사막을 건너기엔 충분···하겠지만, 도착한 뒤에도 쓸 돈이 남아 있을지는···.”
퉁.
“이거면?”
“충분합니다!”
후다닥! 소리가 들릴 만큼 빠르게 주머니 품 안에 주머니 챙겨 넣는 그.
“사막을 건너는 건 물론, 서역 전역을 탐방해도 모자라지 않겠어요!”
“그쪽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금자를 쓰진 않을 텐데, 그래도 괜찮나?”
“하하하! 그쪽에서도 금이 귀한 줄 아는 건 똑같습니다! 이 금자와 완전히 똑같은 가치를 가지진 못할지라도, 이 무게의 금만큼의 가치는 가질 겁니다.”
그거 다행이구만.
아버지가 서역의 돈을 어느 정도 챙겨주시긴 했지만, 아무래도 정확한 화폐의 가치를 알지 못했기에 걱정되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명나라처럼 금을 화폐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내게도 좋은 소식이었다.
끼익.
그가 목소리를 높이던 그때, 갑자기 주변에 퍼져있던 객잔의 손님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더니,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뭔가 확실한 목적을 가졌음이 분명한 움직임에 내 앞에 있던 그가 바짝 긴장한 채 가슴을, 정확히는 그 안에 담아둔 주머니를 가리듯 감싸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뭐, 뭐요?”
“너희 둘, 방금 뭔가 재밌는 이야기를 하던데···”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분명 금자가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
“좋은 걸 가지고 있으면 나눠 쓰자고, 응?”
그들의 말에 내 앞에 앉아있던 그의 안식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금자가 가득한 주머니를 무려 네 개나 얻었다는 흥분에 자신도 모르고 목소리를 높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듯한 눈치였다.
“저, 그, 우리는 그런 게 아니라···!”
“그 품이 아주 탐스러워 보이는데?”
“여자도 아니면서 왜 그리 가슴을 가려? 응?”
“다 달라는 게 아니야, 그냥 적당히, 적당히 나누자 이거지···.”
···아니, 말도, 분위기도, 행동도 전혀 나누자는 느낌이 아닌데 말이지.
뭐···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 못 한 건 아니다. 진심을 말하자면, 조금은 바라고 있기도 했다.
혹시나 그가 돈을 들고 튈 때를 대비하여 경고 정도는 해놔야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설마 그 경고를 할 수 있는 순간이 이렇게 빨리 찾아오리라곤 전혀 생각 못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만 하지들?”
“뭐?”
“외부인은 빠져! 이건 우리 도시 사람들끼리 할 이야기니까!”
아니아니, 외부인이라니, 무슨 소리야. 바로 눈앞에 있는 것 못 봤냐?
내가 기가 차서 한 마디 내뱉으려던 찰나, 놈 중 하나가 눈을 번뜩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방금 그 주머니, 네놈이 건넸지?”
그의 한 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서 나로 향했다.
제각각의 얼굴, 제각각의 모습.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서도 공통점이 하나 있었으니.
“이런 놈한테 그만한 돈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탐욕.
빛 한점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에는 오직 그것만이 가득했다.
“우리한테도 좀 줄 수 있겠···.”
“너희 같은 인간들에게는 한 푼도 못 줘.”
움찔.
놈의 말을 자르고 한 마디 내뱉는 순간, 그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설마 내가 그런 말을 내뱉을지는 몰랐는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잠깐 서로를 바라보던 그들은.
“우리가 지금 장난하는 것 같냐!”
쾅!
격렬한 분노를 내뿜으며 우리가 앉아있던 탁자를 후려쳤다.
“좋게좋게 이야기하려고 했더니 이거 안 되겠구만!”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주머니 싹 다 털어서 내놔!”
그렇게 말하는 놈들의 품에는 녹슬고, 이빨 빠진 검이 한 자루씩 언뜻언뜻 보이었다.
이놈들 원래부터 도적 떼들이었나? ···아니, 그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가 들어올 적부터 관심을 보여야겠지만, 이놈들이 관심을 보인 건 금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뒤였다.
아무래도 칼은 자기 호신용으로 가지고 있던 거고, 우리가 말하는 걸 듣고 공연한 욕심이 돌아 다가온 거겠지.
하지만.
“사람을 골라도 너무 잘못 골랐어.”
“뭐, 뭣···.”
우두둑.
“끄아아아악!!!”
멋모르고 탁자에 손을 올리고 있던 놈이 비명을 내질렀다.
검지부터 약지까지 손가락 네 개가 손등에 닿았으니 비명을 내지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긴 하지만.
“이, 이 새끼가 무슨 짓을!”
“그냥 죽여 버···!”
자신의 동료가 당하자 경악과 분노가 섞인 목소리를 내뱉으며 놈들이 품 안의 칼을 꺼내 들었지만.
탱!
탱!
탱!
“네놈들은 모르나 보지만 그만한 돈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둘 중 하나뿐이거든? 자길 지켜줄 만한 사람이 근처에 있거나.”
꺼내자마자 순식간에 손잡이만 남은 칼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들.
물론 원래 그 손잡이에 붙어있던 날은 내 손 위에 있었다.
아니.
우두둑.
예전엔 있었다, 라고 해야겠지.
“혼자만으로도 그걸 지킬 능력이 있거나.”
“카, 칼날을 맨손으로···!”
후두둑.
녹이 잔뜩 슬고, 이빨이 다 빠져있을지언정 칼의 형태를 취하고 있던 그것은 이젠 전에 무엇이었는지 추리도 못 할 정도로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나는 어느 쪽일 것 같나?”
“무림인, 무림인이야!”
“도망쳐!”
불을 본 짐승들처럼 비명을 내지르며 객잔 밖으로 도망치는 도적 떼들.
쫓을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만약 놈들을 다치거나 죽이고 싶었다면, 놈들이 도망치기도 전에 다 날려버렸을 테니까.
내가 원한 건 딱 하나.
“그러고 보니 깜빡 잊고 있었는데.”
“네, 넵!”
방금 내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본 그는 내가 부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쪽, 이름이 뭐지?”
“항곡산이라고 합니다! 곡산이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래, 곡산아.”
“넵!”
“앞으로의 여정, 잘 부탁한다.”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순간, 녀석의 이마에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횡단 준비
“곡산아.”
“네! 대협!”
“준비는 어느 정도 됐냐?”
“물자는 조금만 더 발품을 팔면 다 모을 수 있을 것 같고, 남은 건···.”
펄럭, 펄럭. 자신이 정리해둔 서류첩을 뒤적이며 곡산은 나의 질문에 착실하게 대답했다.
이제 겨우 이립이 된 곡산은 내 생각보다도 유능한 녀석이었다.
하루에만 한 성의 일년 세금에 맞먹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오가는 도시, 청해.
그만큼 많은 수의 상단이 난립하여 있는 청해에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사기꾼들도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지만, 사실은 썩은 게 절반 이상인 곡물이나 약으로 억지로 만든 근육을 뽐내는 탁타(橐駝; 낙타). 그리고 보온성 따윈 조금도 없는, 뭔지 모를 이상한 천으로 안을 가득 채운 침낭 등.
사는 순간 반드시 사막 횡단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물건들이 마치 함정처럼 청해의 시장 곳곳에 널려 있었다.
이들을 모두 피하기 위해선 불량을 가려낼 수 있는 눈과 좋은 품질의 물건을 찾을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정당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인맥까지 있어야 했지만, 지금 금로 상단에 그런 걸 바라긴 쉽지 않았다.
청해에만 해도 하루에 수십, 수백 개의 상단이 사라지고, 또다시 만들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이십 년 전 잊힌 금로상단의 이름 따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사실상 사기꾼들을 파악하기 위한 제일 좋은 방법인 ‘인맥’에서 바랄 것이 없어진 이상, 곡산의 도전은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므로 유가장과 현정표국에 미리 연락을 날려 필요한 물자를 얻어오게 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돼서, 대략 일주일만 더 시간을 주시면 준비는 완벽하게 끝날 듯합니다.”
“좋아, 괜찮네. 지금 하던 대로만 쭉 해줘.”
열고 보니, 그럴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확실히 곡산에게 옛날 금로상단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시절의 인맥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상단이 망하며 전부 사라졌지만, 그에게는 남은 것이 있었다.
의지.
오직 서역으로 넘어가겠다는 그 의지 하나만으로 녀석은 누구보다도 철저히, 그리고 확실하게 준비를 해왔다.
부족한 인맥을, 물건을 보는 눈을 시장 전역을 탐방하며 단련시킨다.
물론 그저 보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해에 모이는 사기꾼들은 그 분야에선 고수 중의 고수들.
초심자가 겉으로 봐선 그것이 정말로 좋은 물건인지, 나쁜 물건인지 파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곡산은 생각을 바꾸었다.
물건의 좋고 나쁨을 파악할 수 없다면, 다른 걸 보면 된다.
곡산은 그 뒤로 시장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기꾼은 한곳에서 오래 장사를 할 수 없다.
원래 있는 장소에서 한 번 사기를 치면 거기서 떠나 다른 곳에서 다시 사기를 칠 분비를 하고, 그것을 계속, 계속 반복한다.
물론 그들도 변장하고, 이름을 바꾸며, 심할 땐 자신은 뒤로 한 채 다른 사람을 앞세우는 일도 있기에 그걸 모두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곡산은 해냈다.
단 하나의 목적, 서역으로 떠나겠다는 열망으로 그는 시장의 상인, 그리고 손님의 얼굴을 대부분 익혀냈고, 그것을 통해 사기꾼들을, 그리고 그들에게 고용된 인물들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좋은 물건을 찾는 것또한 마찬가지.
사기꾼이 한 번 판 손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떠나는 것처럼, 좋은 상인은 한 번 물건을 판 손님이 있으면 그 손님은 다시 그들에게 물건을 사러 간다.
곡산은 그걸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곡산이 물건을 사 오는 곳은 최소 스무 번 이상 같은 손님이 오간 상단.
수천 개의 상단이 난립해있고, 엄청난 양의 물자가 오가는 청해에서도 품질로만 따지면 다섯 손가락 내에 들어가는 상단들이었다.
그런 그가 받아온 물자들은 내가 일부러 흠집을 찾으려 해도 찾지 못했을 정도로 훌륭한 품질의 물건들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곡산이 물자를 구하고 있는 동안 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서역의 언어에 관련된 서책은 이게 전부냐?”
“아뇨, 저쪽 창고에 보관된 것이 좀 더 있습니다.”
“그래, 알겠다.”
곡산이 산처럼 쌓아놓은 사막과 서역에 관련된 서책들.
그중에서 내게 필요한 지리와 언어에 관한 책을 모조리 섭렵하고 있었다.
곡산의 집에는 수많은 서책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중 내가 원하는 정보에 대한 서책은 역시 많지 않았다.
뭐, 서역과 중원의 관계성을 생각하면 서역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뭐, 그게 전부 수십 년 전 정보만 아니라면 최고겠지만 말이야.]
“어쩔 수 없지. 지나가는 것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막에 서책까지 챙겨올 수 있는 정신머리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
서역에 관한 건 최신이라고 칭할 수 있는 정보조차 최소 오십 년 정보고, 조금 심한 건 수백 년 전의 정보도 있었다.
물론 원본은 이미 다 사라졌고, 남은 건 그것들을 몇 번이고 베끼고 베낀 사본들.
결국 사본도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던지라 원래의 정보와는 달라진 듯한 부분이 많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이것도 감지덕지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천산에 관한 정보는 역시 없어?]
“찾아보곤 있는데, 아직까진 언급된 부분도 없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들었다던 바로 그곳, 천산.
곡산이 전에 없다고 했던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무리 우수한 사람이라도 실수는 있을 수 있는 법.
혹시나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서역의 지리에 관련된 서책도 찾아보고 있긴 했지만 천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정말로 실존하는 지형인 건 맞나?
아무리 이 안의 정보가 옛것들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천마의 핏줄임을 상기해보면 엄청나게 오래전부터 있었던 곳일 텐데, 그에 대한 언급이 이렇게나 부족하다니.
“···화순, 네 생각은 어때?”
혼자로는 답이 안 나오는 의견에 대해선 최대한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좋다.
내 뒤편에서 함께 책을 읽던 화순은 조용히 몸을 들어 턱을 쓰다듬더니,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확실히 이만큼 언급이 안 되는 건 이상하지만, 그래도 그걸로 없다고 확신할 순 없어. 지금에야 규모가 커진 마교지만, 박해받던 시절이 전혀 없던 건 아니니까.]
“서역에 있던 토착 종교 때문에 규모를 키우지 못했고, 그 때문에 아무나 알 수 없는 오지로 떠났다···이 말이야?”
[그렇지. 당장 마교도 신강까지 넘어가게 된 이유도 그것과 관련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으니까.]
흔히 있는 이야기다.
종교에만 국한될 게 아니라, 사람부터 가문. 심지어 국가까지, 견딜 수 없는 핍박에 도망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역사에도 흔히 있는 이야기니 말이다.
만약 어머니의 가문이 그런 경우였다면, 그리고 지금까지 숨어 지내고 있었다면 역사서나 지리에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
“결국 가서 부딪혀봐야, 한다는 건가.”
“뭐랑 부딪히신다고요?”
화순과 대화를 하던 도중, 입구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자, 양손에 자기 머리보다 더 높게 쌓인 책을 가지고 내게 다가오는 곡산이 보였다.
“밖에서 이야기하는 게 들렸는데, 혹시 다른 분이 계셨습니까?”
“아니, 혼잣말이야. 종종 책을 읽으면서 혼잣말을 하곤 하거든.”
물론 그런 버릇은 전혀 없다. 정보 요원 시절, 첩자라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남이 알아볼 수 있는 버릇은 모조리 지워버렸으니까.
물론 이건 화순과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들킬 때를 대비하여 만든 변명 중 하나일 뿐이다.
종종 농담도 받아줄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내 눈에만 보이는 귀신이랑 얘기하는 중이다’라는 말도 종종 하곤 하지만, 이 녀석은 진심으로 받아들일 것 같아서 역시 무리다.
“그게 다 역사랑 언어에 관련된 건가?”
“네. 일단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은 이 정도입니다. 며칠 더 뒤적여보면 좀 더 나올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만···역시 확답을 드리긴 어렵습니다.”
“그럼 됐어. 이 정도로 만족하지. 너는 남은 일만 처리해줘.”
“알겠습니다. 그럼 일이 마무리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방을 나서는 곡산의 뒤로 여러 명의 장정이 뒤따른다.
며칠 전의 식당 사건 이후로 내 이름이 알려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큰돈을 한 번에 얻은 것에 이런저런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만약을 대비하여 고용한 일꾼이었다.
좋아, 그럼 새로 가져온 책이나 살펴볼까.
방금 다 읽은 책을 탁자에 올려둔 뒤, 곡산이 놔두고 갔던 책을 살핀다.
[확실히 서역 사람들이 책 이름은 참 잘 지어, 그치?]
그러게 말이야.
‘중원을 탐방하는 서역인들을 위한 해역 본’, ‘한 권으로 끝! 서역 전역 탐방!’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신화들···.’ ···응?
곡산이 가져왔던 여러 서책 중 전혀 의외의 책을 발견하고 그것을 들어 올렸다.
분명 언어나 지리에 관련된 책만 부탁했는데, 아무래도 겹쳐 있었던가, 아니면 치우다가 착각하고 함께 가져왔던 모양이다.
[호오, 신화라···.]
신화라는 단어에 화순이 흥미가 돈 듯 내게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런저런 일이 있고 난 이후로는 조금 관심이 덜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종교와 관련해서는 흥미가 동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서역의 종교는 그 개수도, 규모도 비교가 안 된다고 하던데···종교 그 자체가 국가를 좌지우지할 때도 있다고 하더라고.]
“허어, 그 정도야?”
중원에서의 종교라 해봐야 대부분 국가에 종속되어 있고, 삼국시대의 황건적이나 우리 마교처럼 교주를 신으로 떠받드는 종교도 있긴 하지만, 사실상 그들도 국가와 비교하기엔 여러모로 손색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서역의 종교관은 중원과는 많이 다른 듯했다.
“용케도 그런 걸 알고 있네? 어쩌다가 알게 된 거야?”
[마교의 서고에도 서역에 관련된 서책이 몇 권 있긴 했거든. 책벌레 천마도 서역 책이라 해서 흥미가 돌았는지 몇 번이고 읽더라고. 덕분에 나도 기억에 생생해.]
“그럼 이거 한 번 읽어볼까?”
그리운 듯 옛날을 이야기하는 화순을 향해 들고 있던 책을 흔들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화순이 나를 향해 물었다.
[어? 괜찮아? 저것들 먼저 읽어야 하는 거 아냐?]
“어차피 언어나 지리는 어느 정도 반복되니까.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게 없는 건 아니지만, 잠깐 휴식도 필요하니까.”
이름은 확실히 재밌는 게 많았지만, 아무래도 중원에서 가까운 지역과 그곳에서 사용하는 언어만 조명하다 보니 서책의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너무 지도랑 번역본만 봐서 눈이 아프기도 하니까. 어때?”
[뭐, 그렇다면야.]
말은 평범하게 했지만, 화순도 퍽 기뻤는지 내가 의자에 앉자마자 바로 옆에 둥둥 떠 있는 상태로 펼친 책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호오, 그때 읽었던 책이랑은 확실히 다른데?]
“그래?”
[그래, 전에 읽었던 책은 아무래도 종교의 교리나 역사에 관한 책이었는데, 이 책은 종교가 처음 만들어지던 시점의 신화를 적어놓은 거니까. 마교로 치면 우리 아버지가 처음 마교를 만들 던 때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확실히 화순의 말대로였다.
책에 적힌 내용은 사실에 기반한 역사라기보단, 종교의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옛날이야기에 가까웠다.
마치 마교에서 초대 천마가 직접 십만 대산을 하나하나 다 세웠느니, 당시 존재하던 모든 고수를 무릎 꿇렸냐느니, 신이 되어 승천했냐느니, 뭐, 그런 것들 말이다.
···뭔가 그 인간이라면 다 해냈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 그런가.
[하하, 이것저것 말도 안 되는 것이 엄청 많네. 이 정도면 거의 마교랑도 비빌···응?]
“뭐야, 왜 그래?”
한창 웃으며 내가 넘겨주던 서책을 읽던 화순의 갑작스러운 침묵에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자, 화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의 어느 한 부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 여기 봐봐. 여기, 이거.]
“대체 뭐길래···엇?!”
화순의 행동에 의문을 품는 것도 잠시, 화순이 가리킨 곳에 적힌 문장을 읽는 순간, 나도 화순과 똑같이 말을 멈췄다.
[···하여 신을 배반하고 사막을 건너온 악마는 천산으로 흘러 들어가 자신의 자식들로 천의 가문을 만드노니 이들의 후손은 자신을 하늘의 악마. 혹은 그 후손이라 칭했다.]
천산.
그리고 하늘의 악마와 그 후손.
너무나 절묘하게 엮인 이 두 가지 단서.
과연 우연일까? 그게 아니라면 사실일까?
[그리고 이 서책의 출처,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낸 서역의 지리가 맞다면.]
쭉 이 서책을 읽고있던 화순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막을 건너자마자 제일 처음 마주하는 나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