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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61화 (161/185)

청해의 광인(2)

서역에 미친 인간.

주방장의 말에 다른 손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인간을 표현하기 좋은 건 그거지.”

“그렇지. 주방장이 한마디로 표현을 잘했구만.”

누구 하나 반박하기는커녕,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며 동의하기 바쁘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여기 있는 모두에게 광기에 찌들었다, 라고 평가받는 인간.

주변인들의 설명으로 가능한 그를 머릿속으로 그리던 그때, 내 앞에 앉아 있던 주방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금로상단이 어떤 상단인지 혹시 알겠소?”

“옛날 아직 비단길이 살아 있을 때부터 있던 상단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러겠다는 의지를 담아 만든 것 아니겠소?”

만약 금로상단이 터를 잡은 곳이 다른 성이라면 그 외의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청해라면 그 이유 말곤 있을 수 없었다.

서역에 미친 인간, 이라는 이명도 거기에 어울린 건 물론이다.

내 말에 주방장은 느릿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쪽의 생각대로요. 금로상단은 그중에서도 전자. 우리 청해에 무수히 난립한 상단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지.”

“당신들이 말한 사람이 그곳의 상단주요?”

“상단주, 라고 부를 수 있기는 한지도 모르겠군. 상단이라고 간판을 달고 있긴 하지만 거기에 남은 인간은 그 작자밖에 없거든.”

“혼자 밖에 없다고? 그런 걸 상단이라고 부를 수는 있나?”

물론 혼자서 일하는 상인이 없는 건 아니다.

보따리 상인이라 하여 봇짐 하나만 챙겨서 도시와 도시를 오가며 물건을 파는 상인도 있고, 그냥 집에서 만든 물건을 들고 근처 시장에서 파는 이들도 어찌 보면 상인이라 부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이들과 ‘상단’이라는 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더 많은 물건을 더 빠르게 조금 더 싸게 판다.

상단의 존재 의의라 할 수 있는 이 세 가지를 충당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의 숫자였으니까.

내 의문에 주방장은 덥수룩한 수염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며 대답했다.

“뭐···당신 말대로요. 그쪽 상단에서 물건을 떼다 판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이제는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니까.”

“···그거, 상단이라고 할 순 있는 거요?”

“일단 자기가 간판 달고 그렇게 있으니 그렇다고 말하는 거지, 진짜 상단으로 봐주는 이는 아무도 없소. 괜히 미친 인간이라고 숙덕대는 게 아니지.”

주방장은 꾸준히 그에 관한 설명을 이어나갔지만, 그의 길고 긴 설명에도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그의 초상화는 중구난방이었다.

그래도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하나.

여러모로 내 상식에 벗어나는 인물, 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상단.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겠소?”

“···이렇게 말했는데도 한 번 찾아가 보시려고?”

“나도 지금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란 말이오.”

그에 관한 정보는 무시하고 다시 처음부터 사막을 건널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라는 선택지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선택하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제일 큰 건 역시나 시간.

안 그래도 청해에서는 금구와 다를 바 없는 서역 행을 처음부터 발품 팔아서 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자금과 시간만 들인다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둘 중 어느 것이건 지금 같은 상황에서 투자하는 건 어려웠다.

하지만 서역에 미친 인간이라고 불리는 그 인간은 둘 중 무얼 쓸 필요도 없다.

“위치만 알려주면 내가 알아서 하겠소.”

“하···이거, 또 괜한 사람 목숨을 또 잃게 하는 건 아닌가 싶은데···.”

덥수룩한 수염과는 반대로 매끈매끈한 머리를 쓱쓱, 몇 번이고 쓰다듬던 주방장은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어차피 여기서 더 말려봐야 말을 듣지도 않겠지.”

“결국 당해봐야 안다, 라는 것처럼 들리는 건 귀의 착각인가?”

“뭐···아니란 말은 못 하겠군.”

퐁당.

그렇게 말문을 튼 그는 탁자 위에 있던 찻잔에 손가락을 담그더니 탁자 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나무였다면 찻물이 흡수되어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 없었겠지만, 긴 세월 기름때로 찌든 탁자는 긴 시간 찻물로 그림을 그려도 처음 찻물이 그대로 탁자 위에 남아 있었다.

“여기가 지금 우리가 있는 식당이고.”

툭툭. 제일 먼저 그린 장소를 손가락질하던 그는 곧 멀리 있는 한 장소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입을 열었다.

“여기가 그 상단이오. 아마 찾아가 봐도 그리 쉽게 만날 순 없겠지만.”

“낯을 심하게 가리는 사람이오?”

“아니, 말 그대로요.”

···말 그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려 했지만, 소매로 탁자 위 찻물을 모두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는 질문을 받을 태도가 전혀 아니었다.

이건 직접 가서 알아낼 수밖에 없겠군.

“정보 고맙소.”

“조심하시오.”

칼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던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또 그놈 때문에 누군가 목숨을 잃었다, 라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으니 말이오.”

“명심하죠.”

끼긱.

여전히 나를 향해 시선을 거두지 않는 손님들을 뒤로한 채 식당 밖으로 빠져나왔다.

사막 근처라 그런가,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볕은 섬서의 그것보다 훨씬 밝고, 뜨겁게 느껴졌다.

[그 미치광이를 한 번 만나러 가볼까.]

그럼 그럴까.

즐거운 듯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화순과 함께 주방장이 알려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역에 미쳤다는 그가 얼마나 도움 될지, 아주 작은 기대를 품으며.

*****

금로상단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주변의 모습도 점점 변해갔다.

서로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이 하나둘 줄기 시작하더니, 곧 건물들도 점점 해지고 낡은 것이 더욱더 많아졌다.

“쿨럭, 쿨럭!”

“으으···술···술을 더···.”

그리고 그런 건물 중 어디 한 곳이라고 특정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사방에서 들려오는 기침과 신음까지.

이미 쇠락의 바람이 다 지나가고 남은 잔해의 풍경이었다.

이런 곳에 있는 상단이라···보기 전부터 대충 알겠구만.

그리고 보기 전부터 이미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금로상단의 모습과 현실에서의 금로상단의 모습은.

“흠···이 정도면 좀 무서운데.”

놀라우리만치 똑같았다.

대체 언제 그렸는지도 모르는 현판은 먹이 다 빠질 대로 빠져 뭔가가 그려져 있었다는 흔적만 남아 있었고, 그것조차 제대로 달려 있지 않아 땅에 세로로 떨어진 상태였다.

“여기 누구···으음.”

누군가를 부르기 위해 문을 부르려던 손을 다시 거둔다.

부서지기 직전인 걸 넘어, 이미 한 번 부쉈다가 억지로 끼어맞춘 것 같은 문은 손을 뻗기만 해도 부서질 것처럼 약했다.

“어쩔 수 없나.”

어차피 문을 두드릴 필요도 없이 안의 인기척을 읽는 건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커다란 건물 하나밖에 없는 금로상단 안에는 사람의 인기척은커녕,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조차 없을 만큼 허름했다.

···정말 여기 있는 건 맞나?

주방장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눈앞의 광경이 너무나 충격적인 탓에 의심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이건 어쩔 수 없네.

휙휙.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머리와 비슷한 높이에 있는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불법 침입이야?]

사람이 살아 있긴 한지 한 번 확인하려는 것뿐이야.

거짓말은 아니다. 이웃에 관한 관심은커녕 자기 목숨도 신경 안 쓸 것 같은 이런 곳에서 죽기라도 하다간 진짜 십 년 지나서 시체 찾는 거다.

···그리고 이 인간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야.

상단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있는 것치곤 안에는 건물 한 채만 덜렁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건물이 크냐, 라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고향에 있는 내 방을 두 개를 이어붙인 수준의 작은 건물은 아무리 봐도 상단 업무를 하기 위한 용도의 건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그나마 다른 곳에 비해서 좋은 점이라면 그래도 처음 지을 때 튼튼한 재료를 사용했는지 문이나 현판에 비하면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 둘에 비교하면 그렇다는 소리지, 역시나 허름하다는 건 다를 것 없었지만.

“계십니까?”

혹시나, 하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품고 집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만든 이후 기름칠 같은 건 한번 없었을 대문은 녹이 잔뜩 슨 비명을 내지르며 자신의 속내를 선보였다.

문을 연 이후에도 여전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대신 다른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다.

최소한 병에 걸려 고독사 당했다, 는 것도 아니란 소리였다.

건물의 내부는 예상대로였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사람의 흔적이 없는 곳은 산처럼 쌓인 먼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딜 봐도 청소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입구부터 알려주고 있었으니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나를 놀라게 만든 건 따로 있었으니.

“···왜 서역에 미친 인간이라고 부르는 줄 알겠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조차 몸을 세로로 세워 지나가야 할 정도로 방대한 서적의 숫자는 우리 가문은 물론, 소림사나 마교의 서고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정도였다.

놀라운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야, 이거 전부 서역과 관련된 서적이야? 한어로 쓰인 건 물론, 북해과 동이의 말···어쭈? 이건 남만어인데?]

전 세계에서 모으고 모은 서역의 서적.

이곳의 주인이 서역에 미친 인간이라는 걸 집이 알려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역에 대한 정보는 복도에 널린 책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차라리 복도가 더 나아 보일 정도로 벽면은 본래의 모습을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종이들.

물론 그 종이에 적힌 것도 전부 서역에 관련된 것들뿐이었다.

내가 머리를 감싸고 고민하고 있던 사막을 건너는 방법부터 서역에 넘어가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서역의 무슨 물건이 중원에 잘 팔리고, 또 서역에선 중원의 어떤 물건이 잘 팔릴지까지.

웬만한 학자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연구결과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모두 한 가지 필체로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이 뜻하는 건 단 하나.

[···이 인간, 학자로 일했어도 엄청나게 성공했겠는데.]

그의 연구결과 중 하나를 집중하던 화순이 탄성을 내질렀다.

[심지어 연구결과도 정리 한 번으로 끝난 게 아니라 계속해서 수정해서 고쳐나가고 있는데?]

화순의 말대로 입구에 있는 연구결과도 훌륭한 물건이었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연구결과가 수정되고, 고쳐지며 더욱 체계적으로 발달하고 있었다.

한 바퀴 돌고 돌아 다른 쪽 벽면으로 가자, 그렇게 나온 결과는 나나 화순이 봐도 허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 그 자체.

여기 나온 대로 진행할 수만 있다면 확실히 성공을 보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으로는 무리겠네.”

연구결과에 적힌, 사막을 건너는데 필요한 자금은 전 중원에 걸친 표국 사업을 벌이고 있는 나조차도 눈살을 찌푸릴 만한 자금이었다.

그 부분을 어떻게든 줄이려고 노력한 흔적은 여실히 보였지만, 그걸 성공할 길은 요원해 보였다.

이런 허름한 집에서, 제대로 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 이가 도전하기엔 현실적인 벽은 너무나 크고 높은 것이다.

물론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자금만 충당되면, 당장이라도 일을 벌일 수 있다, 이 말이지.]

쿵!

화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안에 울려 퍼지는 굉음.

산처럼 쌓인 서책은 그 진동에도 용케 무너지지 않았지만, 앞에 있던 종이는 붙여놓은 밥풀의 접착력이 다했는지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렇게 떨어진 종이의 비. 그 틈에서 보이는 한 명의 사내.

“누구냐!”

제대로 관리조차 하지 않아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카락과 듬성듬성 자란 턱수염. 그리고 먼 거리에서도 느껴지는 불쾌한 냄새까지.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는 그는 길가의 거지를 데려다 놔도 이보다는 잘 차려입었을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고도 한 점의 불쾌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감히 내 집에 침입을!”

“당신이군.”

아니, 그보다는 기쁨이 앞섰다.

“이 연구결과. 진짜 적혀있는 대로 진행할 수 있나?”

“뭐, 뭣? 네놈, 대체 무슨 개소리를···.”

짤그랑.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품에 있던 주머니를 던졌다. 그의 고함조차 묻혀버릴 만큼 묵직한 소리를 내는 주머니.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하자, 나는 씩,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돈은 당신이 원하는 만큼 투자해주지. 나를 저 사막 너머로.”

살짝 열린 주머니 사이에서 보인 금자가 번쩍이는 순간, 그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서역으로 보내줘.”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마주한 우리 두 사람.

그렇게 만들어진 침묵은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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