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으로 무림최강-160화 (160/185)

청해의 광인(1)

히힝?

내가 다가오는 기색을 느낀 것일까.

여물통에 머리를 박고 정신없이 여물을 먹던 녀석이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밥은 잘 먹고 있냐?”

이히힝~

함께한 지 근 오 년이 다되어가지만, 녀석의 울음소리는 아직도 적응되지 않았다.

천마는 장성해도 이 상태 그대로 늙어 죽을 때까지 살아간다, 라는 건 이미 북해의 마구간 관리자한테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래도 좀 더 크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고 말이야.

[그래도 지금까지 우리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줬잖아?]

그래, 그렇지.

손을 뻗어 턱을 매만지자, 밥 먹던 와중에 왜 이러나, 하고 기막힌 눈으로 바라보는 녀석.

하지만 그래도 주인의 손길이라는 걸까. 곧 녀석은 눈을 감고 조용히 내 손길을 만끽했다.

피식, 마치 갓 태어난 망아지를 쓰다듬는 듯한 감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이런 녀석을 보고 대체 누가 전설의 말이라 불린 천마라 생각할까.

녀석의 턱을 한참 쓰다듬던 도중 입을 열어 녀석을 향해 말했다.

“이번 여행에서 너는···그냥 여기서 쉬고 있어라.”

히힝?

한창 내 손의 감촉을 느끼고 있던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명마는 명마라고, 방금 내가 한 말도 녀석은 알아들은 것이다.

지금까지 녀석에게 고삐와 안장을 씌우고 난 이후, 녀석과 떨어져 지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같은 공간, 멀어도 같은 마을 내에는 무조건 있었으니까.

정말 인마일체(人馬一體)라는 말이 한낱 농담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여정은 다르다.

“지금부터 떠나야 할 곳은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들 거다. 국가 몇 개가 난립해 있을 정도로 거대한 사막을 뚫고 가야 하고, 그 뒤에도 뭐가 있을지 아무도 몰라.”

히히힝···.

“날씨는 덥다 못해 타오르듯 할거고, 마실 물도 모자랄 거다. 지금까지야 너나 나나 물을 마시지 않아도 살만했다지만, 거기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지.”

스윽스윽.

그리 말하며 녀석의 갈기를 슬슬 쓰다듬는다. 다른 부분은 망아지나 노새와 다를 바 없으면서, 이 갈기만큼은 전혀 다르다.

그 어떤 말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부드럽고 깨끗한 갈기. 최고급 비단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고급스러운 질감은, 녀석의 등을 타고 전장을 휘저을 때마다 많은 위안이 되었다.

“그러니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알겠냐?”

히히힝!

내 말에 녀석은 튼튼한 종마보다 더욱 힘차게 목청을 높이더니, 콰득, 내 옷 소매를 꽉 깨물었다.

마치 절대로 떠나보내지 않겠다는 듯 온 힘을 다해 소매를 무는 녀석.

힘으로 빼내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대신, 다른 쪽 손으로 녀석의 머리와 목 전체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걱정하지 마라.”

움찔.

“네 녀석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너도 알 만큼 알잖아. 내가 너처럼 좋은 말을 두고 죽을 사람으로 보이냐?”

히···.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돌아와서, 평생토록 타고 다녀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알겠냐?”

내 말이 나오고 잠시 뒤, 소매에서 느껴지던 무게가 점점 줄어들더니, 곧 완전히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녀석이 내가 떠나는 걸 허락해준 것이다.

“고맙다.”

스윽스윽.

다시 한번 갈기를 빗듯이 쓰다듬는다. 힘없이 축 처져있던 녀석의 머리가 슬슬 내 손을 따라 올라왔다.

“돌아오면···네 고향에 한 번 다녀올까?”

이히힝?

“있잖아, 북해. 가서 네 옛날 부하들도 보고 오고. 어때?”

히히힝~

녀석, 그리도 좋은가.

기쁨이 가득찬 울음소리를 내뱉는 녀석의 머리를 다시 한번 길게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다녀올게. 아프지 말고, 밥 잘 먹고.”

이히힝.

그렇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남겨야 할 녀석에게 인사를 남긴 후, 준비해둔 봇짐을 등에 지고 몸을 돌려 조용히 떠났다.

*****

청해.

중원의 최서단이자, 무한한 사막을 마주한 땅.

하지만 그곳은 비슷한 처지인 운남과는 많이 달랐다.

성도 내에 주민의 숫자부터 시작해서 오가는 물류의 양도, 성 내에 건립된 건물의 규모까지.

웬만한 중원의 성도와 비교해봐도 감탄이 나올 만큼, 청해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남만 대우림을 마주하고 있는 운남과는 천지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광경.

그렇게 비슷해야 할 두 성도가 완전히 상반된 형태를 띠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들의 머리 위에 있는 한 문파 때문이었다.

마교.

단일 문파로는 최대 규모의 문파이자, 정파(천마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최대의 적이며, 호시탐탐 중원 진출을 노리고 있는 그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 덕분에 청해는 놀라우리만치 발전할 수 있었다.

곤륜파를 위시하여 마교를 막기 위해 연합하고 있는 청해의 문파들은 그 규모만큼 엄청난 재정을 필요로 했고, 그렇기에 무림맹의 한 해 운영비 중 이 할이 넘는 금액이 모두 청해로 흘러들어왔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마교에서는 일단 자급자족할 수 있는 건 자급자족 하자, 이게 기본적인 행동 양식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중원에서 가져올 수밖에 없는 법.

물론 중원의 정파들은 마교에 물건을 파는 상단들을 고깝게 보긴 하지만, 노다지가 눈앞에 있는데도 칼 맞을까 봐 두려워서 도망치는 상인은 제대로 된 상인이 아니다, 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청해 내 정파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마교에서도 엄청난 자금을 청해에 풀어놓고 있었다.

덕분에 청해는 다른 성과 비교해도 절대 뒤치지 않는, 오히려 어마어마할 정도로 발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한 자금과 인력을 가진 청해의 상단들도 서역과의 교역로를 만드는 건 진작에 포기했을 만큼, 서역을 오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그걸 뛰어넘어, 지금에 와선 서역으로 넘어가는 건 자살 행위로 여길 만큼 무모한 짓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아버지가 서역과의 교역로를 뚫으려 했던 때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

[너희 아버지가 준 정보가 과연 도움이 될까?]

화순의 질문에 확답을 내놓지 못할 정도로 지금 서역에 관한 이야기는 청해 내에서 금구에 가까웠다.

···그래도 일단 찾아보자.

그래도 아버지가 주신 정보다. 당신의 철두철미한 성격을 생각하면 지금도 충분히 쓸 수 있을 정보를 주셨을 터.

청해 상황이 예상보다 더 좋지 않더라도, 분명 아버지의 정보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금로상단(錦路商團)···원래 비단길을 오가며 거래하던 상단인가?”

[만약 그 시절의 지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최고의 전력이 되긴 하겠네.]

이름에서부터 풍겨오는 전문가 느낌.

일단 한 번 찾아볼까.

이럴 때 그냥 발품을 팔아서 찾는다, 는 제일 최악의 수다.

아무 이유도, 대가도 없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배고프다고 땅을 보고 걷다가 그날 하루 밥 먹고도 남을 정도로 돈을 줍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럴 때 가장 빨리,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얻을 방법은.

근처에 있는 술집에 들어간다.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사람은 거의 가지 않을 것 같은, 이른바 매일 오는 사람만 오는 그런 곳일수록 더 괜찮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꽂히는 시선. 마치 말벌집 안에 들어온 거미를 노려보는 말벌처럼 나를 노려보던 손님들은 곧 내가 비어있는 자리에 앉자 다시 각자의 일행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귀는 확실히 나를 향해 기울이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흥미진진함과 함께 미묘한 적개심도 함께 풍기는 그들.

그리고 건들건들, 짝다리를 집으며 다가오는 점소이까지.

···딱 좋군.

“뭐 드실랴?”

존대도, 그렇다고 하대도 아닌 어정쩡한 말투로 질문을 날리는 점소이.

마치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주문을 받아본 적 없다는 듯 어색한 그의 모습에서 이 식당의 주 고객층이 어떤 이들인지 확신했다.

이 근처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토박이들.

이들에게 얻을 수 없는 정보라면, 다른 누구에게도 얻을 수 없다는 말과 다름없다.

“아니, 주문 안 하실 거요? 뭐 드실···”

땡그랑.

탱, 탱, 탱···.

다시 한번 불성실한 말투로 대답을 재촉하는 점소이의 눈앞에 누렇게 번쩍이는 금전을 던진다.

“어, 어어어···.”

“식사는 하고 와서 상관없고, 원하는 정보가 있는데.”

과장 좀 보태면 여기 있는 모두가 한 달간 삼시 세끼에 반주까지 곁들여 먹어도 벌 수 없는 돈이 눈앞에 나타나자, 조금 전만 해도 껄렁하던 점소이의 태도는 물론, 주변의 손님들에게 퍼져 있던 분위기도 돌변한다.

물론 그 돈을 훔치거나 뺏으려고 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당장 돈이 없다면 목숨이 간당간당한 그런 인간들이나, 돈만 보면 눈이 돌아가는 도적 떼 같은 인간들이라면 모를까, 자금이 쌩쌩 돌아가는 부유한 성내의 주민들이 그런 일을 벌일 리가 있나.

이들이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 하나에 금전 하나를 낼 수 있는 인간.

그런 인간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들도 다 알고 있기에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거면 충분하나?”

“아, 네! 어, 어떤 정보를 원하십니까?”

완전히 돌변한 점소이의 태도. 허리와 목을 빳빳이 세우고, 눈은 어디도 보지 않고 정면만 응시한다.

“금로상단이라는 상단이 지금 어디 있는지 좀 알고 싶은데.”

“그, 금로상단?!”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작 점소이가 아닌 뒤편에 있던 손님 중 하나에게서 튀어나왔다.

웅성웅성.

그를 시작으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는 손님들.

너나 할 것 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서 구분하긴 어려웠지만, 청력을 키워 어떻게든 분류하여 보면···.

[···좋은 말은 하나도 없는데?]

그러게.

어딘가 찝찝하다는 말투로 말하는 화순에게 동의를 표했다.

너무 목소리가 중구난방이라 듣다가도 계속 섞이고 섞여서 정확히 파악하는 건 힘들었지만, 어느 쪽이건 밝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봐,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시간이 흐를수록 제대로 된 정보는커녕,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지 대회라도 벌이는 손님들 대신 좀 더 제대로 된 정보를 캐기 위해 점소이에게 다시 말을 거려던 그 순간.

쿵!

“뭣들 이리 소란스러워! 조용히 닥치고 밥이랑 술만 먹을 것이지!”

식당의 안쪽. 주방이라 생각되는 곳에서 나타난 한 사내가 고함을 내지르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장 바닥보다 소란스럽던 식당에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침묵이 내린다.

물론 그 침묵에는 그가 기둥에 내다 꽂아버린 식칼도 한몫했다.

“네놈도 얼른 음식이 다 식기 전에 나르기나 해! 차가운 음식 내놨다고 돈 안내놓으면 네놈 급료에서 까버릴 줄 알아!”

“네, 네! 주방장님!”

“그리고 그쪽.”

빠각!

기둥에 꽂힌 거대한 식칼을 들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사내.

주방장인가? 그가 입은 앞치마에 흥건한 붉은 양념···양념 맞겠지? 일단 피비린내는 안 나는데.

“밖에서 들어보니 금로상단 놈을 찾고 있다던데, 맞나?”

“그렇소만. 혹시 그쪽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게 있소?”

“알다마다, 아니, 청해성에 사는 사람들 중 그 인간에 대해 모르는 인간이 있을 리가 없지.”

“···그렇게 유명한 인간이요?”

“물론이지.”

쿵!

내가 앉아있는 탁자 맞은편에 앉은 주방장. 자신이 앉은 의자가 삐걱거리며 비명을 내지르건 말건, 엉덩이와 등을 한껏 기댄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칼을 탁자위에 올려두며 말했다.

“이만한 돈을 들고 그 인간을 찾아오는 사람도 참 오랜만에 보는군.”

스윽.

내 쪽으로 고개를 가까이 한 주방장은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나를 향해 속삭였다.

“서역에 가려고 하는 거요?”

“그 사람이 유명하긴 한가 보오. 말도 꺼내기 전에 내가 하려는 걸 아는 걸 보니.”

“당연히 알 수밖에 없지. 그 인간을 찾는 경우는 오직 그것 때문이거든.”

그 순간.

그의 표정이 돌변한다.

“그리고 그중에 다시 돌아온 인간은 아무도 없고.”

마치 사형 선고를 내리는 법관처럼 싸늘한 표정.

“그 인간은, 정말 서역에 미친 인간이니까.”

그리고 그의 그 표정과 목소리르 듣고 확신했다.

아버지가 내가 제일로 원하던 그런 사람을 추천해줬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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