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로의 귀환(3)
웅성웅성.
“누, 누구지? 저 사람···.”
“몰라···그런데 저기, 저 옆에 있는 사람 혹시···독고화 아가씨 아냐?”
“독고화 아가씨가 왜 저 인간의 옆에···.”
옥천이 앞에 있는지라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때문인지 오히려 그들의 궁금증은 증폭되었다.
옥천에 맞먹는, 어쩌면 더 높을지도 모르는 고절한 내공을 가진 사내와, 그 옆에 일행처럼 서 있는 독고화.
애초에 독고화가 마교 밖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그들에게 독고화의 등장은 갑작스레 나타난 사내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의 여파는 그대로 입으로 전해져, 처음에는 그저 주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지나지 않았던 웅성거림은 곧 마교의 본산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커졌다.
‘젠장, 입 좀 닥치라고, 이 새끼들아!’
‘당장 저놈들의 입을 막아야 하는데!’
“첫 대외 활동 중인 지금 움직이면 분명히 찍힌다, 절대 먼저 움직이면 안 돼!”
이렇게 되자 마음이 급해진 건 옥천의 옆에 있는 주변인들.
특히나 지금 떠들고 있는 그들을 관리해야 할 자리에 있는 이들이었다.
말이던, 행동이던 어떻게든 그들을 멈춰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옥천의 앞에서 경거망동할 순 없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식은땀만 흘리던 그들에게 나타난 한 줄기의 희망.
쿵!
“이 무슨 소란이냐!”
그는 다름 아닌 마교에서도 천마의 뒤를 이은 강자라 알려진 일장로. 적혈광마(赤血狂魔) 귀철이었다.
“침입자 앞에서 살기나 분노를 내뿜지는 못할망정, 구경이나 하고 있어? 네놈들이 그러고도 마교의 교도라 할 수 있느냔 말이다!”
우르릉!
목소리만으로도 대지를 흔들리게 만드는 심후한 내공!
마교의 교도들이 입을 멈춘 것에는 그의 말도 있지만, 거기에 담긴 그 기운 또한 있다는 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네놈!”
쩍!
칠 척이 넘는 귀철의 몸이 순간 흐릿해지더니, 그가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발자국을 남기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쿵!
그리고 그가 나타난 곳은 유현의 앞.
눈 깜짝할 새에 본산을 가로지른 그의 쾌속한 움직임에 본산에 모여 있던 마인과 교도는 물론, 상대적으로 무공의 경지가 훨씬 높은 옥천의 측근들 역시 숨을 삼켰다.
‘일장로의 무공이 전보다 늘었다!’
‘천마의 빈자리를 장로들이 대신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주장하더니···본인의 무공을 생각하고 그랬던 건가?’
‘괴물 같은 놈. 안 그래도 힘도 강하면서, 이제는 속도까지 높여?’
그의 강함을 알고 있던 이들까지도 떨리게 만드는 새로운 힘!
그리고 그 힘을 제일 믿고 있는 건, 바로 그 본인이었다.
일장로라는, 사실상 천마의 바로 아래라 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귀철이었지만, 사실 그는 마교의 교리 따윈 전혀 알지도 못하고, 신경 쓴 적도 없다.
그가 믿고 따르는 건 오직 하나.
힘!
오직 힘이 그의 주인이었으며, 왕이며, 신이었다.
강하면 강할수록, 빠르면 빠를수록, 크면 클수록 좋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는 누구보다도 독고삭을 믿고 따랐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인간 중 제일 강하고, 빠른 인간이 바로 그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독고삭이 목숨을 잃은 지금(물론 옥천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것이 사실이란 전제하에) 그가 따르는 이는 그에 견줄만한 강함을 보여준 또 다른 남자.
“감히 새로운 천마의 기념비적인 첫 행사에서 이런 행패를 부리다니! 목숨을 내놓을 준비는 되어 있느냐!”
옥천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그런 힘을 얻었는가, 는 묻지 않는다.
어차피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강해지는 걸 허락하는 마교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힘을 얻었는가는 귀철에겐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지금 귀철에게 중요한 건 딱 하나.
현 마교 제일 강자. 옥천의 첫 행보를 막아서는 이 무모한 남자를 벌하는 것뿐.
스릉.
귀철이 자신의 등 쪽에서부터 뽑아낸 ‘무언가’.
그것은 분명 검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지만, 만약 그것을 검으로 칭한다면 중원에 널린 수많은 대장장이가 헛웃음을 짓다 못해 분노했으리라.
이미 보통 사람들보다 머리 두, 세 개는 큰 체구를 가진 그와 비슷한 높이의 그것은, 검이라기보단 넓게 펼친 몽둥이에 좀 더 가까운 형상이었으니 말이다.
장정 열이 달려들어도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만 같은 그 ‘무언가’를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귀철.
그의 무력은 여기 모여 있는 전원, 심지어 유현까지도 알고 있었다.
이미 전생에서부터 그의 강함은 무척 유명했다. 아니,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유명했다 해야겠지.
당시 독고삭에게 권능을 빼앗아간 옥천은 그 힘을 백분 발휘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당시의 마교 제일의 강자는 현 마교 제이의 강자, 귀철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대부터 이어져 온것이었으니, 사실상 그는 독고삭의 바로 뒤를 잇는 강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하지만.
“하.”
그런 강자의 앞에서 유현은.
“재밌네.”
오히려 웃었다.
그것도 한 점의 거짓 없이, 진심을 담아, 진한 미소를.
꿈틀.
“···뭐냐, 그 웃음.”
그리고 그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귀철의 전신 근육이 움직였다.
지금껏 수많은 무인을 상대하며, 어떠한 감정을 표출하는지 무수히 보아왔다.
어떨 때는 분노, 어떨 때는 명예욕, 어떨 때는 절망.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여러 개의 감정을 동시에 표출하는 순간도 봤다.
하지만 그 어떤 자건, 어떤 때이건.
“무엇이 그리도 우습더냐?”
눈앞의 이 남자처럼 웃은 자는 없었다.
“나의 힘이 우습더냐, 아니면 내 뒤에 있던 백만의 군세가 우습더냐, 아니면 새로운 천마의 탄생이 우습더냐?”
그 무엇이건 절대 웃을 수 없는 이름이요, 무게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역시, 끓어오르다 못해 싸늘하게 되어버린 귀철의 분노.
하지만 그런 분노의 앞에서도 사내의, 유현의 입가에 그려진 미소는 바뀌지 않았으니.
“아니아니, 착각하지 마시오.”
기세등등한 귀철의 앞에서 손을 흔든 유현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난 그저···.”
쾅!
하지만 유현의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그가 채 말을 끝내기도 휘둘러진 귀철의 검.
드는 것도 힘들어 보이던 그 검은 그 무게와 크기에 아무런 관계없이, 순식간에 휘둘러져 유현의 머리를, 몸을 완전히 날려 버린 것이다.
아니.
여기 있는 모두가 그러리라 생각했다, 라는 것이 좀 더 옳은 말이겠지.
하지만 현실은.
끼긱.
“무, 무슨?!”
“···지금 이 상황이, 더없이 즐거울 뿐이니 말이오.”
그들의 예상과, 그들의 상식과 전혀 반대.
귀철이 전력을 다해 휘두른 검은 유현의 왼팔. 아니, 다섯 개의 손가락에 의해 막혀있었다.
불파(不破).
무엇으로도 부서지지 않는 위대한 방패.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현의 손이 그의 검격에 부숴지지 않도록, 잘려나가지 않도록 막아주었을 뿐.
귀철의 힘을 막아낸 건, 순수한 유현의 능력이었다.
“이, 이놈이!”
우뚝.
“흡!”
유현의 손에서 검을 빼내려던 귀철은 곧 숨을 들이켰다.
양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고 전력으로 당겨도, 검은 단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한 치가 무어냐.
유현의 손에 잡힌 검은 마치 유현의 손과 하나로 이루어진 조각이기라도 한 듯 미동조차 없었으니.
귀철은 점점 내공을, 근력을, 무공을 더해갔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가장 아래, 제일 낮은 곳에서 바라만 보던 사람과 이렇게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믿을 수 없는 광경 앞에서 유현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중얼거리며.
“이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소?”
쨍강!
손가락에 힘을 주는 순간, 마치 초겨울의 못에 깔린 얼음처럼 부서져 나가는 귀철의 검.
“크아아악!!!”
거기에 잔뜩 실려있던 내공은 그 방향을 잃고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그것은 곧 귀철과 함께.
“도, 도망쳐라! 도망쳐!”
“저 칼날에 맞았다간 목숨을 잃는다!”
그의 뒤편에 있는 마인과 교도들을 향해 쇄도했다.
평범한 크기의 칼이라면 귀철의 몸집으로도 다 막아낼 수 있겠지만, 지금 부서진 검은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크기를 가진 대검 중의 대검.
귀철은 물론 까딱 잘못하면 수백의 마인조차 목숨을 잃을 만한 양의 칼날 조각이 사방을 향해 흩어졌지만.
슈우욱!
“엇! 카, 칼날이 움직인다!”
그들을 향해 쏟아지던 칼날은 곧 그 방향을 반대로 하더니, 처음 터져나갔을 때보다 더욱 빠르게 유현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곧 하나의 자그마한 철구로 변한 그것을 손에서 놓은 유현은 여전히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귀철을 향해 말했다.
“지금은 그걸 즐길 시간이 아니라는 게 그저 아쉬울 뿐이요.”
“네, 네놈, 아니 당신은···대체···.”
부서진 검의 파편에 의한 얼굴의 상처에서 흐르는 한줄기의 피.
하지만 귀철은 그걸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떨리는 눈으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만약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지금 눈앞의 이 남자는.
‘독고삭과 옥천, 이 두 사람보다 훨씬 강하다!’
일 수, 라고 말하는 것조차 우스운 교환이었지만, 그 한 번의 교환에서 이미 귀철은 유현의 강함을 짐작하고 있었다.
강자라면 정, 마 가리지 않고 대우하는 그에게 있어서 유현의 위치는 이미 그가 지금까지 받들고 있는 강자, 옥천의 위에 있었다.
“이야기는 나중에 마저 하지요. 지금은 당장 할 일이 급해서 말입니다. 독고 소저?”
“네, 알겠어요.”
이미 뭔가 둘 사이에 이야기를 나눈 것일까. 유현이 그저 부르는 것만으로도 이미 독고화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 소협은 싸움에만 전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독고화의 대답을 들은 유현은 곧 안심한 듯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가볍게 몸을 띄우더니,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몇십만이 넘는 마인과 교도들의 위를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유현.
손만 뻗으면 발을 잡을 수 있을 만한 거리였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도 손을 뻗는 이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용기를 가진 인물이 없었다, 라는 게 좀 더 옳은 말이리라.
마교에서도 손꼽히는 강자, 귀철을 마치 어린아이 달래듯 간단히 쓰러뜨린 압도적인 강함.
그의 앞에선 숫자의 폭력도, 자신들의 영역이라는 자부심도 무의미했다.
그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건 딱 하나.
“네놈이구나.”
또 다른, 압도적인 강함 뿐.
“느껴진다. 이 기운, 이 힘. 네놈이 바로···.”
“바로 알아보네?”
어딘가 뒤틀린 분위기로 입을 열던 옥천의 말을 끊는 유현.
그에게선 아까 보였던 미소도, 활기찬 기운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네가 한 번도 가진 적 없던 거라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말이지.”
“한 번도 가진 적 없더라도, 이 기운을 착각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지.”
흐으읍.
마치 향기로운 꽃향기를 들이마시듯, 옥천은 감미로운 표정으로 코로 뭔가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 제일 놀란 건, 역시 그의 측근들이었다.
‘천마께서···!’
‘···감정을 보였다?!’
폐관 수련을 끝낸 직후부터 단 한 번도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지 않던 옥천.
심지어 독고화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그들을 찾던 수백의 부하들을 죽이라 명령할 때도 눈 깜짝 안 하던 그다.
그로 인해 ‘폐관 수련을 하다가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다’라는 음습한 이야기까지 나돌던 그가, 이토록 격렬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다니.
그 모습을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소름 돋아야 할지 헷갈리던 그들의 귀에 아까보다 더욱 감정 섞인 옥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오랫동안 기다려왔다.”
“무슨 과장을. 길게 잡아도 겨우 몇 년 아냐? 그게 긴 거냐?”
“너는 모르겠지, 내 갈망을, 그리고 욕구를.”
그 감정에 섞인 건 탐욕.
마교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그가, 지금 한 사내를 향해 마치 숨겨놨던 욕망을 분출하듯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목전에 둔 나의 기쁨을.”
“응. 몰라.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고.”
고고고!
고고고!
서로를 향해 기운을 내뿜기 시작하는 두 사람.
지금껏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사람을 향해 내뿜는 기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이며, 날카로운 기운.
하지만 두 사람은 그걸 전혀 이상케 생기지 않았다.
이미 마주하는 그 순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는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는, 그런 사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은.
쾅!
두 사람의 행동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