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로의 귀환(1)
서란이 깨어난 그 날, 독고화와 서란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서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생 보고 싶어 하였던 서로가 이렇게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는데, 할 이야기가 어찌 많지 않을까.
두 사람은 피곤함도 잊은 채 밤새 웃음꽃을 피운 후 다음날.
“이제 떠나는 거니?”
“네. 어머니도 뵈었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제겐 그곳에서 할 일이 있으니까요.”
독고화의 대답에 서란은 아쉬운 기색을 보이면서도,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딸과 좀 더 함께하고 싶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 자신이 맡은 바 임무를 다하려는 딸의 모습을 대견해 하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래, 네가 원하는 일을, 해야 할 일을 하렴.”
“감사합니다, 어머니.”
“그리고 유 소협.”
조금 전 독고화에게 보였던 미소나 목소리와는 많이 다른 모습.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의 딸을 걱정하는 또 다른 어머니의 표현이리라.
“네.”
“염치없는 부탁임은 알고 있지만···부디 제 딸 아이가 가는 길을 옆에서 함께 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고마워요, 유 소협.”
그리 말하며 깊이 고개를 숙이는 서란. 만약 그녀의 부하들이 보면 놀랄 모습이지만, 다행히 지금 이 자리에 그녀의 부하는 없었다.
우리가 떠나는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기 위한 서란의 배려였다.
“아, 그리고 저도 하나 부탁할 게 있는데···명도라고 저희랑 여기까지 같이 와준 어수룩한 놈이 하나 있습니다. 이번에 그 녀석이 서란 님의 부하로 들어가게 됐는데···실력은 그럭저럭 있는 놈입니다. 부디 잘 봐주십시오.”
“아···그 사람이라면 어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에 그만한 실력자라면 오히려 저희 쪽에서 환영입니다.”
싱긋,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녀의 말마따나 그 녀석이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번 일은 적성에도 그럭저럭 맞는 모양이니, 제대로만 한다면 녀석이 그토록 원하던 자신만의 터전을 잡을 수 있겠지.
“이야기가 길었네요. 두 사람 모두, 언젠가···가능하면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나요.”
“네, 최대한 오래 있다가 올게요.”
참으로 기괴하면서도, 사후 세계에 걸맞은 안부 인사와 함께 우리는 지금까지 팔에 묶고 있던 빛나는 끈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러자 짧은 떨림과 함께 우리 두 사람의 몸이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후 세계를 여정 하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미 하늘을 나는 건 익숙해졌지만, 지금의 부유감은 그것과는 완전 달랐다.
···무슨 낚싯줄에 달린 생선 같네 이거.
아주 천천히, 천천히 우리가 여기로 왔을 때처럼 어두운 심연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니, 솟아 올라간다, 라고 해야 좀 더 맞는 말이겠지.
그리고 그 심연에 우리 두 사람의 머리가 닿는 그 순간 강렬한 광채가 두 눈을 가리더니, 그리고.
“두 분 모두 잘 다녀오셨습니까?”
우리가 사후 세계로 떠났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
천수, 선화. 그리고 동자가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
“허어, 사후 세계가 그런 상황이었다니···미처 몰랐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천수와 선화는 깜짝 놀라며 우리에게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도 사후 세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전혀 모른다는 눈치였다.
“저희도 영산 밖에 나가 있는 동안에는 사후 세계에 다녀왔던 적도 없거니와, 여기 온 직후에도 바로 두 분을 사후 세계로 보내드려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뇨,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 알아내기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일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하려던 일은 다 하고 왔으니 괜찮습니다.”
이곳저곳 다 쑤시고 다닐 때만 해도 한 마디 해주고 싶은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할 일 다 하고 나니 별···.
···으음, 그냥 지금이라도 뭣 같았다고 한마디 해줄까.
[이미 늦었어. 그냥 할 이야기나 마저 해.]
“사후 세계의 일은 다 정리했으니, 두 분이 다음에 가실 때에도 그리 큰일은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다음에 사후 세계로 넘어갈 때도 마음 놓고 다녀올 수 있겠습니다.”
“현세에서야 사후 세계의 왕을 어찌어찌 쓰러뜨릴 수 있었지만, 사후 세계에서는 이야기가 다르거든요.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부하들도 그렇고, 겨우 다 쓰러뜨렸다 싶어도 바로 옆의 사자들을 죽여서 생명을 얻고···피곤하죠.”
흐음, 그런 방법도 있었겠구만.
하지만 바람의 왕은 너무 순식간에 당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그녀에게 싸움을 걸 때 이미 다른 사자들이 모두 도망쳐서 그런진 몰라도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물론 그런 짓을 벌이려고 했다고 해도···와류로 다 막아버렸을 테니, 그 여자가 어찌할 방법은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혹시나 남아있을 위협을 확실히 처리했다는 기쁨에 한편.
“그런데.”
천수와 선화,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던 걸 멈추고, 동자를 향해 고개를 돌려 현세로 넘어왔던 때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선주께서는 아까부터 왜 표정이 그러십니까?”
“네?”
“마치 저희에게 뭔가를 말해야 하는데 말하지 못하듯, 표정이 좋지 않으십니다.”
천수와 선화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쭉 미소를 짓던 그였지만, 종종 얼굴에 나타나는 걱정을 완전히 숨기기란 그 자애로운 미소로도 불가능했다.
“역시···은인과 같은 경지에 이른 분에게 표정을 숨기는 건 힘들군요.”
그는 고절한 경지에 오른 선인.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일쯤이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토록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숨기지 못했다는 건, 즉 지금 눈앞에 우리와 관련된 일인 한편···.
“···대체 어떤 나쁜 소식이길래 이리 감정을 숨기지 못하신 겁니까?”
그런 그조차 마음의 안정을 되찾지 못할 만큼, 큰일이라는 소리겠지.
내 질문에 그제야 미소를 내려놓고 진짜 표정을 짓는 동자.
여기서 지내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던 오두운 표정을 지은 채 그는 아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본디 우리 영산은 산 아래의 소식은 받지 않으나, 최근 사태와 더불어 손님 두 분과 관련된 소식은 알아둘까 하여 제자 중 몇을 산 아래로 내려보냈는데···최근 두 분의 고향 소식으로 산 아래가 시끄럽더군요.”
“중원에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천수와 선화도 그에 관련된 이야기는 듣지 못했던 것인지, 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최근 마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하더군요. 외부로 나가 있던 인원을 모두 끌어오는 한편, 내부에서도 어떤 준비로 시끄럽답니다.”
“생각보다 정보가 세밀하군요. 내부의 사정까지 알 정도라면···.”
제대로 된 정보 조직도 만들어져 있지 않을 동자가 내부의 사정까지 알 정도라면 둘 중 하나.
내가 알지 못하는, 정보를 모으는 데 특화된 특별한 선술이라도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정보가 뿌려지건 말건 상관없다, 라는 거군요.”
“네, 아마 그렇겠지요. 그래서 저도 두 분에게 먼저 말씀드리지 못한 겁니다. 이미 그쪽에서 갖은 고생을 하고 오신 두 분께, 좋은 소식은 들려 드리지 못할망정 이런 소식이나 전해드리다니···.”
“아뇨, 괜찮아요. 오히려 이렇게 알려주신 게 고마울 뿐인걸요. 아마 옥천이 저를 못 찾아서 몸이 달아올라, 어떻게든 저를 찾으려고 사람들을 모으는 걸 거예요. 그렇죠? 유···소협?”
독고화는 미소를 지으며 동자를 안심시키려 내 이름을 부르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 소식을 들은 내 표정이 그 이야기를 들은 세 사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있었으니 말이다.
“유 소협?”
“아니, 설마···그럴 리가···.”
빌어먹을 정보 요원 시절.
그때 기억만 없었다면, 지금 이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몰랐을 텐데.
입으로는 계속해서 부정하고 있었지만, 이미 머리로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조리 파악해냈다.
지금 독고화가 마교에서 사라진 것이 알려지는 건, 안 그래도 최근까지 천마로 인정받지 못했던 옥천에게는 제일 피하고 싶었던 일이었으리라.
그런데 그런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선인들에게도 알려질 정도로 마인들을 모은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가장 조용히 처리해야 할 일을, 가장 시끄러운 방식으로 처리하다니.
설사 옥천이 그 방법을 선택했더라도, 그를 보좌하는 다른 사람들이 막아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사람을 모으고 있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
그리고 내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보자면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정마대전.”
“···네?”
“놈은 지금 정파와 전쟁을 벌이기 위해 사람을 모으고 있다는 말입니다.”
“말도···!”
쿵!
내 말을 들은 독고화는 땅을 박차고 일어나며 큰소리로 외쳤다.
“말도 안 돼요! 그, 그 또라이가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그런 짓을, 그런 짓을···.”
하지만 그것도 처음 잠시일 뿐.
내 말을 어떻게든 반박하려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더니, 곧 완전히 힘을 잃고 침묵하고 말았다.
겨우 다시 입을 연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아까의 반박과는 반대로 무척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진짜로···전쟁을 벌이려 하는 걸까요?”
“제 예상으로는 그렇습니다.”
만약 옥천이라는 인간을 전혀 알지 못했다면, 혹은 그저 외부에 알려진 만큼만 알고 있었다면 나도 독고화와 비슷한 결론을 냈으리라.
하지만 나는 놈을 잘 알고 있다.
전생에서 천마가 된 그놈이 얼마나 미친놈이었는지, 또 얼마나 해괴한 계획을 저지르려 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놈은 옛날부터 정파에 대해 다른 교도들과 비교해도 과도할 정도로 증오를 품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아무리 그래도 마정대전은 그런 이유로 벌일만한 것이···.”
“놈은 이미 자신의 스승도 죽인 패륜아입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놈을 이해하면 안 됩니다.”
당장 전생에만 해도 옥천이 정마대전을 벌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나 같은 말단 정보 요원까지 알아낸 사실을 정파에서 귀중한 정보라고 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으리라.
정파에서도 온갖 정보를 입수했지만 ‘설마 이 미친놈이 진짜로 정마대전을 벌이려고 할까.’하는 의심을 계속해서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확언이 없었다면, 여전히 정파는 정마대전이 벌어질 리 없다며 낙관하고 있었겠지.
물론 원래 역사대로라면 정마대전이 벌어질 건 옥천이 마교의 힘을 있는 대로 끌어올린 한편, 정파의 힘은 있는 대로 약해진 뒤의 이야기지만···지금은 마교의 힘을 쌓을 시간도, 회귀 전처럼 정파가 힘을 잃을 이유도 없다.
아마 옥천 그놈도 그걸 알고(자기가 깨달았는지, 아니면 누가 알려줬는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급하게 일을 벌인 거겠지.
···하지만 오히려 이게 더 큰 문제다.
차라리 마교가 압도적으로 강하고, 정파가 한참 약하다면 큰 피해 없이 싸움을 끝낼 수 있다.
물론 정파 무인 전원에게 격렬한 증오를 품고 있는 옥천이 정파의 인물을 몇이나 살려줄까···하는 생각은 있지만, 그걸 포함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정파는 정파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중 셋이 인세를 져버린 대죄를 지었다는 게 밝혀진 후 멸문에 가까운 상태로 봉문 중이며, 마교 역시 오랫동안 천마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뭉쳐지지 못한 실정이다.
만약 지금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벌인다면?
···그 넓던 사후 세계가 좁다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이 정파, 마교 가릴 것 없이 죽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옥천이 그걸 모를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
“독고 소저.”
“···네.”
사건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그녀 또한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빨리, 마교로 돌아가야겠어요.”